81화
pride of asia
콘테는 축구 감독이라기보단 이탈리아 마피아에 가까웠다.
그것도 일반 조직원이나 행동대장이 아닌 조직의 보스나 회장 같아 보이는 위엄과 포스가 넘쳐흘렀다.
쉽게 말하면 그냥 무섭게 생긴 사람이다,
“하아······ 뭐 됐어. 우승 축하한다, 진.”
감히 내 말을 어기다니!
사실 콘테는 자신의 지시를 어긴 것에 상욱에게 한 소리 할 생각이었으나, 막상 실제 상욱을 보니 반가움과 애정이 폭발했는지 별말 없이 넘어갔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뭐 종아리에 경련이 오거나 연골이 늘어났다거나 아픈 건 아닌 거지?”
“네? 아. 괘, 괜찮아요!”
상욱의 다리며 어깨를 눌러 대는 감독의 모습에 다소 당황스러웠던 상욱이 살짝 몸을 피하며 감독에게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 시간에 공항은 왜 나오셨어요?”
“왜 나왔겠냐.”
이 대목에서 갑자기 화가 솟구치는지 이를 갈며 소리치는 감독이다.
“너 보려고 나왔지. 어디 부상이라도 당하고 왔으면 죽여 버리려고 나왔지- 그런데!”
지금껏 함께해 온 콘테의 모습을 아는 상욱은 그가 죽인다는 말이 장난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잠시 흥분한 듯한 감독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건강한 네 모습 보니까 됐다. 고생 많았어. 일단 주말 나폴리전은 쉬면서 체력 회복하고, 다음 주 챔스에 출전하자.”
“아니에요, 감독님.”
“응?
“몸 상태 너무 좋아요. 나폴리전, 반드시 선발로 나가고 싶습니다.”
씩 미소 짓는 상욱의 모습에 화나 속상함 따윈 모두 잊은 채 평소의 애정 가득한 모습으로 바뀐 콘테 감독이 그를 와락 안은 채 웃는다.
“넌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이야.”
***
[세리에 25라운드, 흔들리고 있는 인테르가 최근 5경기 전승을 기록하고 있는 나폴리를 만납니다.]
[이번 경기는 올 시즌 스쿠데토의 행방을 가를 만한 경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양 팀 다 사활을 걸고 나올 겁니다.]
오늘 경기를 잡고 어떻게든 유베와의 격차를 벌려야 하는 인테르와 현재 3위 나폴리는 챔스권을 넘어 우승을 위한 교두보 마련이 절실했다.
[주전이 빠져 있는 인테르에 비해 나폴리는 주전이 모두 나왔습니다. 경기는 나폴리 주도로 진행될 확률이 높겠죠?]
[뭐- 그렇습니다. 인테르의 유일한 호재라고 하면 아시안컵에 차출됐던 진이 돌아온 것입니다만, 글쎄요. 이틀 전 새벽에 입국해서 컨디션이 정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나폴리는 최근 몇 시즌간 최고의 스쿼드를 만들어 냈다.
인시녜, 밀리크, 메르텐스가 이끄는 공격은 진-라우타로의 인테르, 호날두-만주키치의 유벤투스에게 이름값으로 밀릴지언정 서로의 호흡과 파괴력은 결코 밀리지 않았으며, 조르지뉴-함식-파비안 루이스로 이어지는 중원은 현 세리에 최고 수준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오른쪽에서 상대 수비를 부수는 크랙 역할의 인시네와 ‘천재’ 함식의 창의적인 패스는 팀의 여러 공격 옵션을 만들어 리그에서 대단히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팀으로 변모했다.
게다가 지금 나폴리의 감독은 커리어로 콘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의 카를로 안첼로티.
[원정팀 인테르에겐 쉽지 않을 경기가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나폴리의 승리를 예상했고, 인테르 벤치에서도 대단히 힘든 경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 경기 자체도 나폴리가 우위를 점하며 진행됐다.
[메르텐스가 조르지뉴에게 깔아 주고요, 조르지뉴가 돌파해 가는 함식에게 전달합니다. 함식이 그대로!]
초반부터 상대를 강력하게 압박한 인테르. 그러나 노련한 안첼로티는 탄탄한 중원 빌드업으로 이를 벗겨 내는 모습을 보였으며, 창의적 미드필더 함식이 오른쪽 터치 라인에서 상대 페널티 라인 앞으로 한 번에 보내는 패스에 인테르 수비진이 순식간에 흔들린다.
[밀리크 앞으로 떨어지는 공! 한 번에 터치하고 그대로 찹니다아!]
[한다노비치의 선방! 인테르! 그대로 역습에 나섭니다. 고딘이 브로조비치에게 전달하구요. 바로 뛰어 들어가는 페리시치에게!]
오버래핑한 페리시치가 라인을 부수며 들어가는 전상욱까지 연결하는 것이 인테르의 전략이었으나, 현 유럽 최고의 인터셉트 능력을 자랑하는 조르지뉴가 패스를 차단한 뒤 공격은 한 번 더 나폴리의 턴으로 넘어갔다.
[이거 위험합니다. 나폴리의 3톱, 함식에 파비안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바렐라가 내려옵니다만. 인시네에게 연결됩니다. 그리고- 인시네! 선제골입니다!]
조르지뉴는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인시네에게 깔아 주는 스루패스를 전달했고, 곧 인테르 오른쪽 골대 안으로 선제골이 들어갔다.
[스코어 1:0! 나폴리가 앞서나감과 동시에 직전 경기에서 승리한 유벤투스가 리그 1위로 올라섭니다!]
[굿패스! 굿 슈팅입니다! 첼시의 아자르, PSG의 네이마르에 비견할 만한 좋은 전개입니다!]
나폴리의 선제골이 들어가자 환호와 함께 경기장을 둥둥 발로 울리며 인테르 선수들을 조롱했다.
“꺼져라 아시안!”
“산 파올로에서 나가!(*나폴리의 홈구장 현재는 스타디오 디에고 마라도나로 변경)”
특히 이들은 현 세리에 최고 선수이자, 불과 3일 전까지 아시아를 정복하고 돌아온 상욱을 도발했다. 언론에서 저 동양인과 자신들의 ‘신’ 마라도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시작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마라도나가 나폴리를 떠난 지 20년이 훌쩍 지났으나 여전히 나폴리인들에게 디에고 마라도나는 도시의 영웅이자, 삶이며, 영원불멸의 자랑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동양인은 디에고가 될 수 없어!”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아가야!”
안 그래도 훌리건 문화가 심한 이탈리아 서포터들에다 그중에서도 빡세기로 소문난 나폴리 팬들이 소란에 인테르 서포터들 역시 맞대응했으나, 그 수가 홈팬에 비해 너무 적었다.
게다가 선제골까지 들어간 상황. 그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한 나폴리가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위대한 아시안이 슬슬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니 멍청이들아, 난 응원보다 저런 조롱이 날 더 설레게 한단 말이야.”
어떻게 축구팬이라면서 반년이 지났는데도 모를 수 있는 거지?
***
상욱은 사실 몸 상태가 100%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었다. 어쨌든 엊그제 저녁까진 카타르에 있었으니까.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빠진 주전, 컨디션이 나쁜 에이스.
인테르에겐 악재뿐인 결코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하는 법이고, 그는 영웅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반 막바지가 되어서야 진이 공을 터치합니다. 그만큼 인테르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음을 의미하죠.]
간만에 중원 싸움에서 승리한 브로조비치가 왼쪽 터치라인 끝에 있는 상욱에게 재빠르게 패스하자, 그는 가슴 트래핑으로 공을 받은 뒤 볼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페널티 라인 쪽으로 공을 전달한다.
[공이 시~ 원하게 직선으로 날아갑니다! 진의 발리 패스가 순식간에 페널티라인 안으로!]
[이거 기회예요! 페리시치가 더 빠르게 들어옵니다! 그대로 다이빙 헤더! 들어갔습니다!]
골이 들어가자마자 함식은 얼굴을 찌푸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상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왼쪽 터치라인 끝에 서 있던 놈은 패스도, 크로스도 아닌 괴랄한 패스를 뿌리던 상욱이었고, 신기하게도 공은 마치 택배처럼 상대방 머리 위로 전달됐다.
“공격수가 아니라 중미로 뛰어도 지금 나보다 낫겠어······.”
전상욱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한 함식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가나, 상욱은 이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진이 오늘은 포쳐 자리가 아닌 쉐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뛰고 있습니다.]
[중원에서 공을 수급하고 공격까지 전개하는, 현재 인테르의 3~4명이서 해야 할 역할을 혼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혼자서 상대 팀 4명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대목에서 해설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괜히 나폴리의 서포터들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밀리지 않는 걸 넘어 압도한다. 대체 어디까지 성장하는 거냐 저놈은.’
하프라인에서 상욱이 공을 잡자마자 나폴리의 중원 3인방이 그를 둘러싸고 강하게 압박했다.
보통 선수도 아닌 리그 베스트 미드필더 3명이 둘러싸자 상욱은 어느새 왼쪽 터치라인 끝으로 밀렸다.
[제아무리 진이라도 저 선수들을 모두 뚫을 순 없겠죠!]
[그렇습니다, 나폴리는 일단 공을 뺏고 바로 역습에 나가야······ 어, 어?]
갑자기 몸을 뒤로 돌리던 상욱, 이 모습에 상대 선수들은 당연히 그가 뒤로 백패스를 하는 줄 알고 곧장 뒤에 있던 브로조비치에게 다가가나 아예 뒤돈 상태로 공을 띄워 상대 페널티 쪽으로 길게 크로스하는 상욱.
[진의 이상한 크로스가 순식간에! 에스포지토 쪽으로 연결됩니다! 골키퍼 정면 그대로 슈웃! 들어갔습니다!]
[아마 역사에 남을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아시안은 정말······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요?]
전반전이 종료된 시점, 오늘 전상욱은 아직 한 골도 기록하지 않았으나, 오늘 경기장에 있는 모든 나폴리팬들은 전상욱을 보며 이미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저게 대체 뭐야? 같은 축구 선수이긴 한 건가?”
***
안첼로티는 역시 전설이자 승부사 기질이 다분했다.
순식간에 경기가 뒤집어졌음에도 그는 다시 선수들을 의기투합해 후반에 나섰고, 더욱 공격전인 전술과 선수 변화를 통해 반전을 꾀했다.
[나폴리가 더 집중하고, 압박을 더 강하게 가져갑니다.]
[아! 바스토니가 실수합니다! 밀리크 뛰어가고요. 마침내- 동점입니다!]
2:2.
안첼로티는 아직 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폴리 선수들은 그의 바람에 부응하듯 동점골을 기록했다.
양 팀의 끝없는 공방전이 펼쳐지던 후반 75분, 이제 슬슬 지쳐 갔던 상욱은 오늘 경기를 끝내고 싶었다.
[진이 하프라인에서부터 강하게 찔러 주는 패스! 둠프리스가 빠르게 뛰어갑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들어가는 패스에 인테르 선수들의 침투도 늦을 무렵, 이미 상욱은 미친 듯한 속도로 상대 진영으로 질주했다.
[아니, 어떻게 이 시간에 저 스피드가 나올 수 있나요!]
[둠프리스가 수비수 제쳐 내면서 크로스 올려 줍니다! 진이 따라 들어오는데요!]
상욱은 공이 떨어지기 직전, 슈팅하는 페인트를 취해 선수 하나를 벗겨 낸 뒤 이내 공을 위로 살짝 뛰어 앞으로 튀어 나간 메렛 골키퍼와 수비수 쿨리발리를 확실히 속였다.
이 터치가 어찌나 아름답고, 재빠른지 몇몇은 아예 넋을 놓고 쳐다보는 선수도 있었다.
이내 뒷발을 공중에 띄운 골키퍼를 살짝 넘기며 결승 골을 성공시켰다.
[오늘 경기 MVP가 정해졌습니다! 아니, 이미 경기 시작 전부터 우릴 알았을 겁니다! 오늘도 진이 진 했습니다!]
[이건 예술입니다. 축구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골! 여러분 세리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입니다!]
결승골을 넣자마자 바로 교체아웃되어 휴식을 위해 떠나는 상욱.
콘테 감독은 남은 시간 수비수들을 투입하여 스코어를 확실하게 지켜 냈고, 인테르는 리그 1위 자리를 굳건히 수성했다.
빠른 교체 아웃 이후 바로 집으로 향한 상욱은 아예 이틀 정도 훈련 없이 컨디션 회복에만 집중했고, 그의 체력과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인테르는 PSV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 타도 전상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