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80화 (80/114)

80화

또다시 PSV

전반 내내 한국 공격진에 유린당한 일본.

후반에 들어와서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공격수를 더 투입하거나, 중원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압박 강도를 늘리는 모습을 보였다.

전상욱이라는 최악의 적을 만났으나 희망을 잃지 않은 채 최선을 다했으며, 마지막까지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가진 수를 다 썼다.

기적을 만드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된 미나미노 타쿠미. 잘생긴 외모로 머리를 찰랑거리며 뛰어 다니는 비주얼은 분명 주인공 같은 모습이 맞으나- 악역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미나미노는 분명히 좋은 선수입니다. 감히 일본의 미래라고 불릴 만큼 잠재력 높은 선수입니다만······.]

이 대목에서 혼다 케이스케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라운드 위를 걸어 다니는 상대팀 에이스를 보고 한숨 내쉰다.

[진은 그보다 10배, 아니 100배는 뛰어난 선수입니다.]

빠르게 스피드를 올리지도 않았는데 성큼성큼 페널티 라인 쪽으로 올라가는 상욱.

수비수들은 넘어져도 끝까지 뛰어 들어가면서 그를 밀거나 유니폼을 잡으나, 상욱은 이 모든 것이 그저 연습인 것처럼 상대 진영 왼쪽으로 이동하더니 이내 재빠르게 크로스 올린다.

[아까는 호나우두를 보는 것 같았는데 지금 드리블은 전성기 시절 루니를 빼닮았습니다!]

[전상욱 그대로 낮은 크로스- 나카토모가 막았으면 좋겠는데요. 아······!]

자비는 없었다.

일본이 보이는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상욱은 어느 때 보다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가 소름 끼치도록 올린 정확한 크로스는 뛰어 들어오던 이승민의 발에 정확히 걸렸고 후반 59분, 마침내 4번째 골이 들어갔다.

[혼다 해설께서는 러시아 리그에서 뛸 당시 여러 세계적인 선수와 상대해 본 경험이 있을 텐데, 진은 어떤 선수와 가깝나요? 드리블은 메시? 득점력은 호날두? 패스나 침투 능력은 카카와 비슷한 것 같은데요.]

해설의 말에 혼다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솔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없습니다.]

[네?]

[없어요.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호날두니, 메시니 모르겠습니다. 도대체가 생전 본 적도 없는, 괴상한 선수예요.]

남은 시간 동안 일본은 남은 노력을 다했다.

후반에는 유효 슈팅을 2번 정도 날리고, 날카로운 크로스를 1번 날렸으며, 수준 높은 공격 전개를 1번 정도 보인 일본은 전반보다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이 골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

후반 89분.

남은 시간 동안 체력 관리와 부상 방지를 위해 크게 스프린트를 보이지 않던 상욱은 경기 종료를 앞두고 팬들을 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오른쪽 터치 라인을 재빠르게 질주한 그는 반니에게 배웠던 베르캄프 턴을 완벽하게 구사해 토미야스를 넘어뜨리고, 터치 한 번에 세리에 탑 수비수 나카모토를 쓰러뜨린 뒤 골키퍼까지 제친 뒤 여유롭게 힐킥으로 골을 마무리했다.

[아······ 진의 해트트릭과 동시에 한국의 5번째 득점이 들어갑니다.]

[0:5, 우리는 오늘 경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서포터들은 환호를 넘어 아시아의 황제에게 기립박수를 보냈고, 일본 팬들 역시 분함과 속상함에 눈물을 흘렸으나 절대자의 등장에 경외를 표했다.

경기 종료.

오늘 자신의 무기력함을 제대로 느낀 일본 선수들이 바닥에 엎드려 오열하는 모습을 본 일본 캐스터가 함께 눈물 흘리며 외친다.

[잘 봐 둬야 합니다. 지금은 죽을 만큼 괴롭지만 오늘의 패배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오늘은 한국과 진에게 당했지만! 내일은 다시 뛰어야 하고, 다음번엔 이들에게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캐스터의 질문에 혼다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외친다.

[그렇······ 죠! 다음번엔 승리, 또 승리뿐입니다!]

일본은 오늘 패배를 기억할 것이다, 다시 일어날 것이라며 자국팀의 선전을 기원한 혼다 케이스케.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느 때 보다 무겁고 쓰라렸다.

‘앞으로 10년, 길면 15년. 우린 절대 한국을 넘지 못할 것이다. 진과 함께 있는 한국은 아시아 역대 최강이 될 것이며, 저놈과 함께라면 월드컵마저······ 꿈이 아닐 거다.’

혼다도 평생 축구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것도 유럽 정상급 팀에서 주전으로 뛸 정도로 실력 있고, 감독도 할 정도로 축구 보는 눈이 뛰어나다.

확실하다. 전상욱은 세상을 놀라게 할, 아니 세상을 뒤바꿀 선수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왕 할 거면 세상을 바꿔라. 아시아 축구를 무시하는 놈들을 다 밟아 버리란 말이야.”

우승의 기쁨을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상욱을 지그시 내려 보던 콘테는 아쉬움과 기대감 등 여러 모습이 뒤섞인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난다.

***

“2019년 아시안컵 우승팀은! 대한민국입니다!”

58년 만에 이루는 대한민국의 메이저대회 우승.

2002년 전설들도, 2010년 선배들도 하지 못했던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 대표팀.

이번 우승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며, 월드컵 최초 원정 8강에 이은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은 전설로 기록될 것이다.

그란데 감독은 데뷔 무대이자 은퇴 무대를 무려 우승으로 끝마쳤고, 상욱의 명성은 한국 축구의 구세주에서 어느 순간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이자 영웅으로 상승했다.

- 2019 AFC 아시안컵 -

우승팀 : 대한민국

골든부츠 : 전상욱 10골(대한민국)

골든글러브 : 알리레자 베이란반드(이란)

대회 MVP : 전상욱(대한민국)

페어플레이 : 카타르

-[이번 대회는 누가 뭐래도 전상욱이 현 아시아 최고 선수임을 증명하는 무대라 볼 수 있었다. 10골을 득점하는 데 고작 4경기에만 출전한 그는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대회 MVP를 거머쥐었다.]

당장 8개월 전 월드컵에 이어 이번에도 골든 부츠와 MVP를 차지한 상욱.

아직 성인도 되지 않았는데 보이는 활약에 사람들은 정말 전상욱이 월드컵까지 우승시킬 수 있지 않을까, 설레발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가능하지, 난 신이니까.”

시상식 후 라커룸에 들어온 한국 선수들이 샴페인을 터트리며, 미친 듯 환호한다.

이틀 뒤 비행기로 각자 소속팀이나 고국으로 돌아가니 그전까지 진한 파티가 준비되어 있을 것······ 이나 상욱은 벌써부터 이탈리아로 돌아갈 짐을 챙기고 있었다.

“너······ 뭐 하니?”

축하 파티는커녕 바쁘게 매니저와 통화하고 짐 정리하는 상욱의 모습에 승민이 의아한 듯 바라본다.

“내일 새벽에 바로 이탈리아로 가야 해요.”

얼굴에 기쁨은커녕 다소 다급하고, 바쁜 기색을 보이는 상욱.

아무리 전상욱이 축구에 미친 축친놈이라고 해도 최소 우승 축하 파티 정도는 하고 가도 될 법한데 그는 바삐 몸을 움직인다.

“아, 아니 임마, 상욱아. 아무리 그래도 방금 우승했는데 그래도 오늘 축하 파티 정도는 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 너도 지금 엄청 피곤할 거 아냐.”

“그래! 야! 오늘은 놀자 진짜!”

“진짜 대한민국 만세다아!”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에 이미 광분한 팀원들 몇몇이 상욱 주변으로 다가와 머리에 맥주와 이온 음료를 뿌리더니 그를 얼싸안고 헹가래를 하거나 안고 뽀뽀하기도 한다.

팀원들 전체가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나 단 한 명, 상욱만은 다소 난처한 얼굴로 입을 끔뻑이자 이를 캐치한 승민이 유쾌하게 외친다.

“야, 야! 조용! 우리 에이스께서 한 말씀 하신단다!”

주장의 외침에 선수단 전원이 상욱만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자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형 나 늦으면 진짜······ 콘테한테 죽을지도 몰라.”

상욱 딴에는 진지하게 한 말이겠으나 콘테의 성격을 알 리 없는 대표팀 선수들은 조금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하던 장난을 계속한다.

“난 또 뭐라고! 야 마셔어어어!”

“응~ 내가 죽는 거 아니라서 상관없어~.”

“아니 미친놈들아! 이거 진심이라고!”

2번의 국제대회 참가, 2번의 MVP, 2번의 득점왕, 1번의 우승.

프로에 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의 커리어는 이미 아시아에선 대적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

동료들의 협박(?)으로 밤늦게까지 대표팀 선수들과 파티를 즐긴 상욱은 인테르 구단에서 준비한 전용기를 타고 곧장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탈리아에서 카타르를 고작 한 명을 위해 운행하기 위해선 너무나 큰 비용이 발생하나, 전상욱은 ‘고작 한 명’이 아니었다. 구단은 최대한 빨리 팀의 에이스를 건강한 상태로 마주하고 싶어 했다.

“조르제, 나 눈 좀 붙일게요.”

이번 대회를 뛰는 것보다 파티로 인한 피로감이 더욱 강해진 상욱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의자를 젖히자, 그의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가 다소 걱정스런 눈으로 중얼거린다.

“콘테 감독이 화가 좀 났나 봅니다. 원래 약속과 다르게 8강이 아니라 16강 교체 출전한 것에 한국 쪽에 항의하려던 걸 마로타 단장이 겨우 막았나 봐요.”

“아, 몰라요. 내일 훈련장 가서 다시 얘기하면 되겠지. 나 진짜 피곤하니까 일단 잡니다아······.”

이미 눈꺼풀이 턱밑까지 내려올 듯한 표정의 상욱이 손사래를 치며 잠에 든다.

인테르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라우타로가 부상으로 빠지고, 전상욱마저 아시안컵 차출로 빠져 있는 상황에서 가용 가능한 공격 자원이 없었던 콘테는 윙백 페리시치와 팀 내 유망주 에스포지토를 투톱으로 기용했다.

페리시치와 에스포지토, 둘 다 좋은 선수임은 틀림없었으나 이들이 대체해야 할 상대는 리그 베스트 공격수 라우타로와 황제라 불리는 진이었다.

최근 3경기 2무 1패, 5경기 1승 2무 2패.

유베와 10점 차까지 벌어졌던 승점은 이제 1점 차로 줄어들어 있었고, 강력한 압박을 바탕으로 하는 콘테 축구 특성상 후반기로 갈수록 선수들의 체력 저하는 더욱 극심했다.

수비야 콘테 특유의 백쓰리 전술이 완전히 녹아들어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었으나 핵심 선수 전원이 빠진 공격진은 멸망 그 자체였고, 인테르와 콘테가 상욱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말엔 세리에 25라운드 리그 경기가, 주중엔 psv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이 있는 살인적인 일정의 인테르.

아시아를 평정하고 온 소년이 다시 이탈리아, 아니 유럽 정복을 위해 나선다.

***

“진, 어때요? 몸은 좀 괜찮아요?”

“어으- 네네, 푹 잤더니 좀 괜찮네요, 이대로 집에서 쉬다가 훈련 가면 될 것 같아요.”

밀라노 공항에 내리자마자 하품을 하며 구단에서 준비한 벤에 몸을 싣는 상욱. 이번 대회에서 인테르가 보여 준 정성은 고마움을 넘어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새벽 1시를 넘은 시간.

주말에 상대할 나폴리의 선발 명단을 확인하던 상욱이 벤 안에 있는 검정색 물체를 보고 의아해한다.

“누구······ 세요?”

눈살을 찌푸린 뒤 조심스레 차 안으로 들어서자 덩치 큰 남성 하나가 상욱을 어깨를 잡고 크게 외친다.

“야!”

“가, 감독······.”

마피아보다 더욱 마피아 같이 생긴 얼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싶은 불같은 성격.

“너 왜! 더 뛰었어!”

안토니오 콘테가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불같이 외쳤다.

< pride of a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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