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77화 (77/114)

77화

서아시아의 맹주

우리 팀은 축구를 하고 있는데 진만 다른 스포츠를 하고 있었다. 이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게임이다.

-리샤오펑(前 중국 대표팀 감독)

***

한국과 중국과의 AFC 16강 경기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물론 중국 축구의 전력이야 아시아 내에서도 강한 편은 아니었으나, 저들도 호주와 사우디가 있는 조별 그룹을 통과하고 온 저력 있는 팀이었다.

이들은 한국에게 밀리긴 했으나, 분명 엇비슷한 경기력을 보였고, 실제 승리도 바랄 수 있을 만큼 좋은 모습을 보였다.

전상욱이 투입되기 전까진 말이다,

8강 상대 카타르는 개최국으로 이번 대회 최대 다크호스로 불리는 팀이다. 자국 정부의 강력한 재정 지원 아래 2022년 월드컵을 개최권을 따낸 이들은 이번 아시안컵 우승으로 아시아의 새 강호로 자리 잡고자 했다.

한국은 에이스 전상욱을 벤치로 보내고 경기를 진행했다.

카타르 정도는 상욱이 없어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코치진의 생각이었으나, 카타르는 이번 대회 한국이 맞붙었던 그 어떤 팀보다 강했다.

빠르고 거친 카타르 선수들은 홈 어드밴티지까지 받아 한국을 거침없이 압박했고, 백중세인 경기는 후반 60, 70분이 지날 때까지 1:1로 치열하게 이뤄졌다.

고심하며 경기를 바라보던 그란데 감독은 한국의 게임 체인저이자 치트키를 내보냈다.

[전상욱 선수 아직 몸이 덜 풀린 것 같습니다. 몸이 덜 풀린 것 같은데요.]

이번 경기도 70분에 교체 투입된 상욱. 컨디션 난조로 몸이 무거운 데다 시차적응이 덜 끝난 것이 보였다.

분명 그랬는데······.

[중앙에서 길게 올라온 크로스. 전상욱이 깔끔하게 공을 잡아 내고요. 수비 쫓아오는데 크루이프 턴으로 벗겨 냅니다! 저게 몸이 덜 풀린 모습인가요!]

[턴과 동시에 골대 왼쪽 구석으로 로빙! 들어갔습니다! 결승골이 될 것 같습니다!]

기어코 결승골을 집어 놓고 유유히 걸어 다니는 상욱.

카타르 정도는 잡는 게 당연하다는 듯, 별로 기뻐하지도 않는 표정을 짓는 상욱의 모습에 홈 관중들 몇몇이 불쾌한 모습을 보이나 그게 뭔 상관인가, 억울하면 이겼어야 했다.

[2경기에 4골! 이번 대회에서 출전 시간이 50분도 채 넘지 않는 전상욱입니다만 현재 이번 대회 득점 1위를 기록합니다!]

영원한 공한증 중국과 개최국 카타르를 찢어발기고 올라온 한국.

다음 상대는 서아시아의 맹주이자, AFC 최고의 전통강호로 불리는 이란이었다.

일본 다음으로 한국 대표팀의 최대 난적이며, 특히 이란의 홈구장 아자디 스타디움에서는 우리나라는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상대였다.

감독 역시 前 맨유의 수석코치이자 현 아시아 최고의 감독인 케이로스 감독이 버티고 있다.

객관적 전력은 오히려 한국보다 뛰어난 상대이나 그건 전상욱이 없을 때 이야기다.

***

“저놈만 혼자서 다른 스포츠를 하는 것 같군.”

이란의 감독 케이로스 감독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상욱의 경기 영상을 바라본다.

“이란이 10, 한국이 9정도.”

지금껏 전력상 우위이거나 비슷한 수준을 보였던 한국과의 파워 밸런스가 단 한 명 때문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미세하지만 지금껏 한국보단 전력 우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괴물이 등장해 버렸다.

“저놈 하나로 한국이 20, 25가 되어 버렸어.”

자국 대표팀 11명, 아니 20명과 교환하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선수, 아마 역사상 최고가 될 선수를 8강 상대로 만나는 것이다.

“분명 데뷔 때만 해도 아즈문과 비슷한 수준인 줄 알았는데······.”

사르다즈 아즈문.

이란의 주포이자 에이스이며, 현재 러시아 리그의 강호 제니트로 이적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선수다.

뛰어난 오프더볼 능력과 골 결정력, 침투 실력 등 이란 대표팀의 에이스로 불리는 아즈문. 이번 대회에서도 4경기 출전 3골을 몰아치며 서아시아의 천재임을 증명했다.

상욱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았던 케이로스는 그가 아즈문과 비슷하거나 좀 더 뛰어난 수준으로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상욱은 아즈문이 아닌 전 세계 어떤 선수가 붙여도 상대할 자가 없었다.

“최대한 웅크리다가 아즈문의 오프더볼에 모든 걸 건다, 양 윙어는 최대한 위로 전진한다······.”

선수들에게 가르칠 전술 브리핑을 준비하던 중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태워대는 케이로스.

“젠장, 이런 게 그놈 앞에서 의미가 있나.”

수십, 수백 가지 작전을 준비했으나 그중 하나라도 상욱에게 통할지 의문이다.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아니······ 감히 막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 아닐까?”

***

[결승까지 이제 한 걸음 남았습니다! 한국 축구 최고의 숙적 이란과의 피할 수 맞대결이 펼쳐집니다!]

[먼저 이란은 아즈문을 포함한 핵심선수 전원이 다 나왔고요. 우리의 가장 큰 변화는 전상욱 선수가 이번 대회 처음으로 선발 출전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상욱의 등장에 이란 서포터를 제외한 경기장에 있는 모든 관중들이 환호를 지르며 상욱을 보기 위해 허리를 세운다.

[이번 경기에 카타르 국민들도 많이 직관을왔네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전상욱, 이승민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특히 그렇게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전상욱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고 싶었을 것이다.

“상욱아, 몸은 어떠냐? 풀타임으로 나갈 만해?”

“좋아요, 확실히 쉬니까 몸이 낫네요. 월드컵 때보다 컨디션은 더 좋은 거 같은데요?”

주장 이승민의 걱정스런 물음에 상쾌하게 대답하는 상욱.

“컨디션 좋다고? 어······ 걱정인데?”

“네? 왜요?”

알 수 없는 말을 뱉어 대던 승민이 이내 걱정스런 표정을 짓더니 곧 사라진다.

“너 말고 이란 애들 말이야. 안 그래도 과격한 나라인데 여기서 지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상욱은 그런 이승민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형이 그걸 왜 신경 써요?”

***

경기 시작 직전.

피치 위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리고 있는 이란 감독을 바라보는 상욱.

“저 사람이 케이로스 감독······.”

다니엘 잭슨 시절 맨유와의 FA컵 경기를 할 때 케이로스를 만난 적이 있던 상욱은 그를 대단히 열정 있고, 선수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코치로 기억했다.

당시 호날두를 케어하던 모습에 놀라 꽤 리스펙하고 있었는데 한국 선수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리고, 손수 한국 감독의 얼굴에 유니폼을 합성한 티셔츠를 제작해 입고 조롱한 사실을 듣곤 실망했다.

대단히 좋은 컨디션.

굴욕에 대한 복수.

결승진출을 위한 마지막 교두보.

“아저씨, 오늘은 좀 아플 거야.”

어쩌면 이번 아시안컵은 여러모로 역대급 대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중국전, 카타르전을 최소한으로 뛰면서 컨디션을 끌어 올린 상욱은 이란전에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폭발시켜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오늘의 에이스는 따로 있었다.

[오늘 이승민 선수의 컨디션이 대단히 좋습니다! 왼쪽 측면을 완전히 털어 버립니다!]

[2명 제치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이성재 위로 올라오면서 발에 걸립니다- 아! 살짝 빗나갑니다!]

대표팀에 대한 모든 관심이 상욱에게 쏠려 있었고, 실제 에이스 역시 전상욱이긴 하나 이승민은 결코 만만한 선수가 아니다.

EPL 챔피언스리그 진출팀 주전 윙어이자 팀의 핵심선수인 넘치는 재능의 선수였다.

전반 18분.

상욱에게 집중되어 있는 이란 수비가 오늘 경기 지속적으로 공격 전개에 나서는 승민을 마크하기 위해 나선다.

왼쪽 터치라인에서 공을 툭툭 치면서 올라오는 승민. 이 모습에 상욱이 씩 웃으며 곧장 페널티라인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이번에도 공 잡고 위로 올라가는 이승민. 하프 스페이스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침투해 들어오는 전상욱 보고! 그대로 크로스 올립니다!]

승민의 기가 막힌 크로스는 순식간에 페널티라인 오른쪽 부근으로 침투하는 상욱에게 정확히 연결됐고, 그는 동시에 원터치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격루트입니다! 이승민과 전상욱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만든 골! EPL과 세리에를 대표하는 공격수들의 대-단한 득점입니다!]

[아시아 최강 이란을 상대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수비가 전상욱을 아예 잡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치열한 경기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전반 끝날 때까지 한국은 쉬지 않고 이란을 두들겨 팼다.

이승민-황찬희로 이어지는 양쪽 윙포워드는 매우 빠른 템포와 과감한 돌파에 이런 선수들 전원이 우왕좌왕하며 우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김재환과 강철로 이어지는 양쪽 윙백은 빠른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로 측면을 궤멸시켰다.

이번 경기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한국 대표팀, 각자 선수들이 자기 자리에서 완벽히 제 역할을 해 주며 경기를 압도해 낸다.

[전상욱 선수는 무슨 장풍이라도 쏘는 것 같습니다. 공을 잡자고 올라가자마자 상대 수비를 넘어뜨리는 거 보세요!]

[이게 화면으로 볼 땐 그냥 수비가 넘어지는 것 같은데 실제론 전상욱의 엄청난 스피드로 제쳐 내는 거거든요! 월드컵 골든볼 출신입니다! 상대가 안 되죠!]

이란 수비의 핵이며, 유럽에서도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는 밀라드 모함마디가 특유의 스피드로 상대를 끝까지 쫓아가나, 상욱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페널티라인 앞까지 진출한다.

[전상욱의 완벽한 돌파! 그러나 이란 수비가 많습니다! 어떻게······ 이야아아!]

컨디션이 대단히 좋았던 상욱은 자신의 한계가 대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수비수 4명이 동시에 에워싸고, 공간조차 없는 상태. 양쪽으론 이승민과 황찬희가 커버를 위해 올라온다.

“나 혼자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수비수 4명을 앞에 두고 갑자기 공을 위로 띄운 상욱은 순식간에 머리로 공을 앞으로 보내며 수비를 뚫어 낸다.

“اللعنة توق! (씨발! 막아!)”

당황과 분노한 이란 선수들이 동시에 발을 뻗으나, 그는 발바닥으로 공을 긁어 수비 급격히 위치를 바꿔 상대를 휘청이도록 만든다.

[공간 비었습니다! 전상욱! 세상에······.]

골키퍼와 수비를 앞에 둔 상욱은 장난이라도 하듯 볼을 살짝 위로 띄운 뒤 순식간에 발리슛을 성공시킨다.

순식간에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이 침묵했다.

해설과 관중, 양팀의 벤치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장면에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두말할 여지가 없는 월드클래스!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 혼자서 11명 전체 상대 가능한 선수! 여러분! 저 선수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아! 케이로스 감독이 괴로움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습니다! 안 돼요. 안 됩니다! 전상욱은 그냥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그런 선수가 아닙니다!]

방금 상욱의 골에 대단히 감동한 듯한 해설이 감정에 북받쳐 말을 이어 나간다.

[동 나이대 메시나 호날두도 저렇게 못했습니다! 지단이나 호나우두 역시 그랬고요! 아마 마라도나나 펠레도 그랬을 겁니다! 여러분 제가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닙니다! 저 선수는 그런 선수입니다. 아마 우리가 살면서 평생 보지 못한! 감히! 정점에 이를 만한 선수입니다!]

전반 27분, 2:0.

벌써 승부는 기울어졌고, 상대는 전의를 반쯤 상실했으나 상욱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남은 일본과의 결승전까지 그는 자신의 상태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다.

< 악당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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