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vs 중국 (2)
중국의 기세는 대단했다.
전반적인 주도권은 한국이 잡고 나가는 모습을 보였으나, 리피 감독 아래 놓인 중국의 패기는 가히 두려운 수준이었다.
[공 잡고, 장펑이 위로 올라갑니다. 이런 거 바로 커트해 줘야죠, 길게 우레이 쪽으로! 막아 내야 합니다! 그대로 슈웃! 살짝 비켜 나갑니다, 위험했습니다!]
[자! 우리가 우레이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중국 팀에서 유일하게 우리 골문을 노릴 수 있는 선수거든요?]
중국 슈퍼리그 득점왕 출신의 우레이는 준수한 스피드와 위협적인 침투 능력으로 유럽팀의 오퍼를 받는 13억 중국인의 희망과도 같은 선수이다.
순지하이 이후 스타는커녕 시궁창만 같았던 중국 축구에서 나온 보물.
사실 기량은 유럽 중하위권 리그 주전도 힘들 수준의 선수이나, 수준 낮은 중국에서 우레이는 황제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우레이vs전상욱, 아시아 축구 왕은 누구?]
[슈퍼리그 득점와 우레이, 에레디비시 득점왕과 맞대결!]
중국의 황색 언론들은 어떻게든 자국 선수를 띄우기 위해 비교하는 것이 굴욕인 전상욱과의 라이벌리를 만들었으며, 더불어 우레이가 자국 예능해서 했던 예능이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Q 네가 아무리 잘해 봤자 전상욱한테 비빌 수나 있을 것 같냐?
A 전상욱 잘하지. 근데 전상욱이 중국 슈퍼리그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해 본 적은 없잖아.
사실 이는 예능에서 악플을 농담으로 받는 코너에서 장난스레 대답한 것이며, 이미 우레이는 수차례 상욱을 리스펙하는 발언을 해 왔으나, 서로 사이가 극에 치달은 한중 양국 언론들은 이런 우호적인 기사는 쏙 빼놓았다.
[아······ 공격 전개가 좀 됐으면 좋겠는데요. 선수들이 지쳐 있는 것이 보입니다. 특히 해외파 선수들은 몸이 확실히 무거워 보이네요.]
후반 54분.
0:0 상황에서 황찬희와 이승민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리한 돌파를 강행하나, 중국 수비진의 거친 태클에 그대로 넘어지기 일쑤였다.
[아! 이거 이승민 선수 부상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괜찮나요? 카드를 줬으면 좋겠는데요! 경고······ 도 안 나옵니다.]
[심판 판정이 참 아쉽네요. 저건 경고는 기본이고, 퇴장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소림 축구를 정면으로 맞고 난 뒤 고통을 호소하는 이승민과 무려 월드컵 8강팀을 상대하여 무실점으로 플레이하고 있는 자국팀의 선전에 흥분한 중국 서포터들이 웃통을 벗은 채 욕설을 내뱉는다.
“离开卡塔尔! (한국은 카타르에서 꺼져!)”
“Quán xiāng yù chūlái! (전상욱 나와라!)”
소중화니, 빵즈니 한국 선수들에 대한 비난수위에 극에 달한 중국 관객들. 자신들은 출전하지도 못한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대단한 활약을 보인 것이 꽤 배 아팠던 모양이다.
[아, 결국 이승민 선수가 교체됩니다. 심한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이승민 선수가 나오면서 네! 드디어 나옵니다!]
[전상욱이 필드 위로 올라옵니다. 에레디비시 득점왕, 월드컵 골든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죠]
“영웅은 등장부터 요란하군.”
코치로부터 중국 관중들의 반응을 확인한 그란데 감독이 상욱의 출전을 보며 슬쩍 웃어 보이며. 9번 유니폼을 휘날리며 뛰고 있는 상욱을 보며 말한다.
“보여 줘라, 진. 진짜 천재가 어떤 건지 말야.”
***
후반 60분.
중국 선수들과 관중들은 이번 아시안 컵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 60분까지 이들은 아시아 최대 맹주와 엇비슷하게 싸우고 있었고, 몇 차례 위협적인 모습까지 만들어 내기도 했다.
비록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전상욱이 필드 위로 올라오긴 했으나 그리 겁나진 않았다. 자신들에겐 대륙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우레이가 있잖는가.
[우리한테 필요한 건 득점입니다. 최대한 빨리 득점해서 지금 중국이 갖고 있는 기세를 무너뜨려야 해요!]
[네, 전상욱이 공 잡습니다. 툭툭 치고 올라가는데 삼중으로 선수들이 마크합니다!]
상욱이 공을 잡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다리며 유니폼을 잡아끌어 공을 탈취해 내는 중국 수비.
[이거- 반칙이죠! 네, 휘슬 불었습니다.]
[전상욱 선수도 조심해야 합니다. 중국 수비가 너무 거칠어서 언제 부상당할지 몰라요!]
비록 반칙으로 뺏었으나 어쨌거나 수비에 성공한 중국 선수들이 상욱을 보며 이죽거리자 그는 무표정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러면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
‘한번 막아 보니 별거 아냐.’
‘허풍으로 가득했던 놈인 것 같아.’
중국 선수들의 비웃음이 들리자 상욱은 오히려 슬쩍 미소 지으며 제 위치로 돌아간다.
상대가 저런 같잖은 희망을 품고 있을 때 부수는 것 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중국을 깨무술 생각에 싱글벙글한 상욱이 황찬희에게 다가간다.
“많은 거 안 바란다.”
이승민이 빠진 지금 양쪽을 오가며 고군분투하며 공격하던 황찬희가 상욱의 등장에 맘을 놓은 듯하다.
“어떻게든 공만 보내 줘요. 승민이 형의 복수는 해야 하잖아요.”
“좋아, 너무 측면으로 이동하지 마. 최대한 중앙으로 공 보낼 테니까.”
쉽게 말하면 나한테 패스해라, 그러면 이길 수 있다.
대단히 오만하고 이기적인 말이나 찬희는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월드컵에서 상욱의 마법을 여러 번 본 바 있기에 감히 의심할 생각을 않았다.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전상욱 선수가 스프린트를 많이 하진 않습니다. 어제 카타르로 왔기 때문에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는 거겠죠.]
[네, 일단 경기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전상욱이 중원에서 공 받아서 황찬희 쪽으로 길게 롱패스! 와 정말 정확하네요!]
하프라인에서 길게 찬 롱패스가 공중에서 뚝 떨어지며 바로 찬희의 발에 떨어지자 이번에도 중국 수비들이 바로 달려든다.
당장 어디에도 줄 곳이 없는 상황. 수비들이 달려들기 직전까지 고개를 돌리며 아군 선수를 찾고 있던 찬희는 곧 하프라인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상욱을 목도한다.
“마이!”
머리보다 본능에 따라 움직인 패스. 찬희가 뒤로 넘겨준 공은 빠르게 굴러 뛰어들어오는 상욱의 발에 정확히 걸린다.
[황찬희가 전상욱에게, 그대로 중거리!]
결코 빠른 공이 아니었으며 대단한 회전도 없었다. 그러나 중국 골키퍼는 이를 전혀 막지 못했다.
상욱의 슛은 정확히 골대 오른쪽 끝에 크로스바 옆으로 들어갔고,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상대는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마침내 들어갔습니다! 한국의 선취골! 그리고 한국의 왕이 돌아왔습니다! 교체 투입 5분 만에 골을 만들어 내는 전상욱입니다!]
[대단히 정교한 중거리 골입니다! 꼭 강력한 슈팅이 좋은 슛이 아님을 증명하는! 전상욱의 멋진 중거리 골이 터집니다! 대한민국이! 앞서 나갑니다!]
이미 조별 예선 3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오늘 경기도 30분밖에 뛰지 못하는 상황이나 상욱은 이번 대회의 득점왕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같은 유럽 축구 강국을 정복한 선수가 축구 변방으로 불리는 아시안컵에서 부진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아까 도발하지 말지······.”
중국 선수들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공을 잡고 위로 올라가는 상욱.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데다 아시아권 팀들과 경기한 것이 전부인 중국 선수들에게 방금 상욱의 골은 티비에서만 보던 수준의 것이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우리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자! 이럴 때 추가 골까지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아! 집중하자! 고작 한 골이야!”
중국 선수들이 어떻게든 집중하여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할 때, 상욱이 지나가던 우레이를 만나 중얼거린다.
“영어 할 줄 아나?”
“······조금?”
“정말 해외로 나가고 싶다면 잘 봐 두고, 잘 배워 둬. 월드클래스가 어떤 건지 알려 줄게.”
선심 쓰듯 우레이의 어깨를 툭치고 올라가는 상욱.
“대신 수업료는 좀 비쌀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볼이 돌지 않은 오른쪽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은 상욱은 지체 없이 위로 들어간다.
중국 선수 두 명이 앞에서 마크하기 위해 발을 뻗자, 공을 뒤로 보내면서 속도를 줄이고, 이를 본 수비가 발을 뻗어 볼을 탈취하려고 하자, 바로 벌어진 공간 사이로 공을 차 넣은 뒤. 재빨리 페널티라인 위로 올라가는 상욱,
[중국 수비가 아무것도 못하고 찢어집니다! 상대가 안 됩니다, 전상욱 바로 위로 올라옵니다!]
뒤에선 포기 않고 뛰어오는 풀백과 앞에는 어떻게든 막아 보고자 다가오는 중앙수비.
상욱이 왼쪽 골대 쪽으로 달려가는 척하다 순식간에 반대방향으로 뛰어 들어가니 수비는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풀백은 속도를 잃는다.
순식간에 골키퍼밖에 남지 않은 상황. 왼쪽에 골 넣을 공간이 없음을 알아챈 골키퍼가 어떻게든 오른쪽 시야를 내주지 않은 채 앞으로 다가오나 상욱은 1cm 남짓 보이는 왼쪽 골대 끝으로 아웃프런트 슛을 날린다.
[묘기에 가까운 개인기! 골키퍼 나오는데요! 왼쪽으로 아슛! 들어갔습니다! 5분 만에 2골! 또 전상욱입니다!]
[방금 골은 전상욱 선수 커리어에 남을 만한 대-단한 골이었습니다! 중국 선수들이,정말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같은 국가대표인데 비교가 안 됩니다!]
한국 팬들은 환호하다 못해 거의 미쳐 날뛰고 있었으며, 중국 팬들은 너무나 압도적인 실력에 화도 안 나는지 그저 꿀먹은 벙어리처럼 상욱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어제까지 이탈리아 무대에서 해트트릭하고 넘어온 선수입니다! 저런 선수에게 중국 정도 수비는 문제가 안 되죠!]
78분.
전상욱의 2골로 경기 분위기는 압도적으로 한국 쪽으로 넘어갔고, 상욱은 별다른 스프린트 없이 공만 뿌리면서 체력을 안배했다.
[지금 보세요! 전상욱 선수가 중원에서 패스만 하는데도 중국 선수 전원이 떨어져 나갑니다!]
[전상욱이 중원에서 길게 떨궈 주는 공! 그대로 황찬희가 원터치로 슈웃! 들어갔습니다!]
교체 투입된 지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2골 1도움을 기록한 전상욱.
중국 선수들은 완전히 기세를 잃고 이젠 아예 상욱의 플레이를 구경하거나 배우는 모습을 보인다. 어차피 경기에서 진 거 배우기라도 하자는 모습이다.
중국 선수들은 완전히 기세를 잃고, 이젠 아예 상욱이라는 존재 자체에 공포감을 느끼는 듯했다.
과거 한국이 중국에서 선사했던 공한증이 다시 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면 재미없는데. 좀 더 달려들어. 안 덤빌 거야?”
상대 선수들의 모습이 어처구니없고 귀여운지 낄낄 거리던 상욱.
90+4, 3:0 상황에서 이대로 경기를 끝내도 됐으나 상욱은 괜히 이 먼 카타르까지 조국을 응원하러 온 팬들에게 뭔가 선물을 주고 싶었다.
[전상욱이 중원에서 돌파해 나갑니다, 수비 감히 따라오지도 못해요!]
순간 볼을 공중에 띄운 상욱이 바로 공중에 발을 띄운 채 넘어지면서 스스로 바이스클 킥을 성공시킨다. 어찌나 완벽하고 아름다운지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월드클래스! 저 선수에게 아시안컵은 너무나 작은 무대입니다! 전상욱!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습니다!]
[이게,정상적인 시스템에서 저런 선수가 나올 수가 없거든요? 대체 저 선수는 정체가 뭘까요!? 어찌 됐건 경기 끝났습니다! 4:0! 대한민국이 8강으로 갑니다!]
“진! 이번 대회 목표가 어디까지인가요!”
경기 종료 후 버스로 향하던 대한민국 선수단을 취재하던 일본 기자의 질문에 슬쩍 미소 지으며 지나가는 상욱.
“우승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어요.”
< 서아시아의 맹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