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발롱도르
2018년 발롱도르 수상자는 루카 모드리치의 차지였다.
2008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메시-호날두 시대의 독식을 끊은 최초의 발롱도르로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핵심적인 역할과 실버볼을 받은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인정받은 것이다.
많은 골을 기록하지 않았음에도 발롱도르까지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이번 시즌 모드리치의 활약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위는 모드리치와 마찬가지로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월드컵 Best11에 뽑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돌아갔다.
사실 발롱도르 2위도 대단히 영광스런 자리이나 평소 무례하고, 쪼잔하기로 소문난 호날두는 모드리치의 발롱도르 수상을 확신하고 아예 시상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3위는 전상욱의 차지였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주인공인 그는 2018년 에레디비시를 말 그대로 폭격했으며, 시즌의 반밖에 뛰지 못했음에도 득점왕과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다.
월드컵에서는 무려 골든볼을 수상하여 아시아 축구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인테르 이적 이후에는 그 호나우두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혹자들은 사실 이번 발롱도르는 아시안 최초 월드컵 골든볼 수상과 리그에서 경이로운 활약을 보이는 전상욱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챔스에서 활약이 16강까지가 전부인 데다 아직 아시아 선수가 진지하게 발롱도르를 노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기자단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 데뷔 1년 반 만에 발롱도르 포디움과 월드 베스트에 든 상욱의 임팩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고, 세간의 평가는 앞으로 최소 수 년간 발롱도르는 전상욱이 차지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 FIFA FIFPro World 11 2018 -
FW: 전상욱,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MF: 킬리안 음바페, 에덴 아자르, 루카모드리치, 리오넬 메시
DF : 마르셀루, 세르히오 라모스, 라파엘 바란, 다니 알베스
GK :다비드 데헤아
하늘이 내린 재능.
정점에 이른 선수.
수많은 찬사에도 상욱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도 하지 않았다.
***
“안 돼.”
“감독니임······.”
인테르 감독실.
난감한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보고 있는 상욱과 굳은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고래를 가로젓는 콘테 감독.
2019년 아시안컵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는 인테르에게 전상욱 대표팀 합류를 요청했다.
원래 규정대로라면 FIFA가 지정한 A매치 기간에 각국 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선수의 소속팀은 차출을 거부할 권리가 없으나, 인테르는 최근 많은 경기를 소화해 컨디션이 떨어진 상욱을 부상을 핑계로 최대한 차출을 미루고자 했다.
특히 콘테 감독의 반대가 극심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팀 전술의 핵심이자 에이스인 선수가 빠진다고 하니 감독이 난처해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월드컵에서 상욱을 활약을 누구보다 정확히 본 콘테 감독 역시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그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싫어.”
6개월 동안 자신의 애착 인형이 된 전상욱을 잠시라도 빼앗기기 싫었던 콘테 감독.
그라운드에 풀어 놓기만 해도 경기를 승리로 이끼는 니케를 누가 보내고 싶겠는가.
“제발 부탁드릴게요, 한 번만.”
“내가 제발 한 번만 부탁하마. 제발 가지 말아다오.”
상욱이 자존심까지 버리며 진심으로 부탁하자 콘테 감독 역시 기다렸다는 듯 두 손을 합장하며 곤란한 모습을 보인다. 그 역시 상욱에게 뭔가 진심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라우타로는 부상에, 세바스티안은 도저히 레귤러로 쓸 입장이 아냐. 이 상황에서 너까지 빠지면 페리시치를 원톱으로 세워야 할 상황인데, 여기서 두 달을 빠진다고?”
“······두 달 아니고 한 달 반이에요······.”
“젠장, 내 마음은 한 달이 아니라 하루도 싫어!”
얘기를 하다 보니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중얼거리는 콘테.
“유베와 승점차가 4점밖에 안 난다. 한 경기라도 지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거야. 챔피언스 리그는 또 어떻고? 지난 시즌 psv가 얼마나 강했는지, 네가 더 잘 알지 않니?”
진과 둠프리스가 빠진 psv, 사람들은 지난 시즌만 한 성적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고 난 상황은 달랐다.
팀 내 레전드 반니스텔루이 감독이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다잡았고, 에이스 하디 크루거를 중심으로 한 공격축구가 잘 먹혀들고 있었다.
현재 프랭키 더용, 더리흐트, 김재민 등과 같은 세계구급 유망주들이 활약하는 라이벌 아약스에 비해 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반니 감독의 역량이 지금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게다가 상욱의 국가대표 차출은 콘테만 막는 것이 아니었다.
“안 돼! 절대, 절대 안 돼!”
헐레벌떡 감독실 문을 확 열고 들어오는 마로타 단장.
평소 예의에 민감하고, 여유 있기로 소문 난 단장이 이 정도로 화들짝 놀라 들어온다는 것은 그 역시 상욱을 보내기가 정말 싫었던 것이다.
“단장님?”
마로타의 다급한 모습을 처음 보는 상욱이 다소 놀란 모습을 보이나 단장은 겨우 숨을 고르곤 말을 잇는다.
“이기적인 말이긴 하지만 진, 자네 조국에 말해 줄 수 없겠나? 이번 대회는 참가하지 않고 클럽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이야.”
“네······ 네?”
무리뉴의 트레블 시즌 이후 딱 10년 만에 온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단장은 실례를 무릅쓰고 상욱에게 부탁하고 있었고, 그들의 모습에서 진심을 느낀 상욱은 도저히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럼 절충안을 내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대회 자체를 불참하는 건 안 되겠어요.”
상욱의 현실적인 말에 둘은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두 사람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무리 전상욱에 대한 국내 여론이 좋다고 해도 소속팀을 위해 국제 대회 자체 출전을 불참하게 된다면 국내 여론은 단번에 바뀔 것이며, 한국이 대회에서 잘하든 못하든 상욱은 욕을 먹을 것이다.
뭐 여론이 아니더라도 상욱은 이번 대회에 나가고 싶었다. 상식적으로 월드컵이야 우승할 확률이 없다지만 아시안 컵은 달랐다.
60년간 아시안컵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한국을 우승시킨다면 그만한 메리트도 없을 것이며, 상욱의 대표팀 커리어에 첫 우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나 사랑 따윈 전혀 없는 상욱이나 호날두에게 유로컵 우승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커리어에 좋은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의 마로타 단장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낸다.
“8강, 아니 4강부터 결승까지만 뛰는 건 어떠냐? 어차피 진, 네가 있으면 결승까지는 갈 거잖냐.”
“그거 괜찮군! 그래, 그러면 길어도 한 달이다. 한 달도 아깝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대단한 양보라도 하는 것처럼 고민하며 말을 내놓는 두 사람.
“그러면······ 만약 한국이 16강이나 조별리그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조심스레 묻는 상욱의 말에 마로타 단장과 콘테 감독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외친다.
“그럼 너무 좋지!”
***
“지면 안 보낼 거야.”
아탈란타와의 리그 경기를 앞두고 콘테 감독이 심술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유럽 대항전은커녕 1부 리그에도 잘 올라오지 못했던 비주류 팀으로 불리는 아탈란타 BC는 명장 가스펠리니 감독의 지휘하에 화끈한 공격을 앞세워 명실상부한 세리에 강팀으로 우뚝 섰다.
기본적으로 빌드업과 조직력을 통한 수비 안정성을 추구하는 보통의 이탈리아 팀과는 다르게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한 빠르고 강한 압박을 진행하는 대단히 공격적인 팀이다.
실제로 지난 시즌 세리에 최다 득점 팀이기도 했던 아탈란타는 현재 인테르가 가지고 있는 올 시즌 최다 득점 타이틀을 뺏어 오고 싶었다.
[아탈란타가 인테르를 상대로 점수 쟁탈전을 해 볼 생각이었나 본데요.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죠. 아탈란타 공격이 강력한 건 맞습니다만, 상대가 다릅니다.]
중앙 하프라인부터 빠른 속도로 드리블 돌파해 나가는 상욱.
속도도, 실력으로도 안 되는 아탈란타 중원과 수비진이 의도적으로 몸을 부딪치거나,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수비를 해 보나.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거침없이 상대 진영으로 달려 나간다.
“막아! 어떻게든 넘어뜨려!”
아탈란타 벤치에선 가스펠리니 감독이 절박한 표정으로 선수들에게 외치나 상욱은 조금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이 달려갑니다! 당연히- 막을 선수가 없습니다! 에스포지토 쪽으로 길게 연결해 주고요!]
[에스포지토가 다시 상욱 쪽으로 짧게 패스합니다, 그리고 수비 달려오는데요!]
아탈란타 선수들, 아니 경기장에 있는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번 경기가 끝나고 대회를 위해 대표팀에 합류해야 하는 선수가 마지막 경기에 이렇게까지 목숨 걸고 할 것이라곤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래, 보통의 선수는 그랬다.
[진, 순식간에 수비수 따돌리고 골대 앞까지 왔습니다. 골키퍼 뛰어나옵니다만, 왼쪽 구석으로 그대로 슛! 들어갔습니다, 또, 또, 또! 진입니다!]
[4:2! 아탈란타가 점수 쟁탈전을 위해서 선수 전원이 공격에 나섭니다만 진에게는 상대가 안 되죠!]
[공격진 전원이 달라붙어도 진 하나에 안 됩니다. 아니, 진이 있는 팀과 공격적으로 상대해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자체가 어리석었습니다!]
오늘 경기 이미 2골 1도움을 기록한 상욱. 아탈란타 선수들은 어떻게든 불씨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상대를 압박하고 중앙으로 공을 돌리나 어느새 공격진에서 내려온 상욱이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의 공을 탈취한다.
[진의 완벽한 공격 차단! 이건 단순한 수비가 아니죠! 바로 역습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지금 보세요, 진이 수비수들을 달고 뛰어 주니까 공간이 생기고, 측면에서 오버래핑 할 기회가 생기지 않습니까!]
상욱이 공을 잡고 뛰자 곧 인테르 선수단 4~5명이 동시에 그를 커버하기 위해 올라간다.
[오른쪽 패널티라인 측면으로 돌파하는 진! 수비수들이 맨마크를 위해 달려듭니다! 그대로- 페리시치에게 스루패스가 들어가고요!]
[아! 비었습니다! 골문 비었어요! 페리시치 그대로!]
[기어코 한 골 더 들어갑니다! 5:3입니다! 현재 세리에 최고 공격수! 진입니다!]
2골 2도움.
그저 득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인테르의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절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제왕’이었다.
“전략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강한 압박은 상대 전진을 막았고, 풀백을 자르면서 공격하는 전술로 2골이나 넣었어요.”
경기 후 믹스존에서 인터뷰를 진행 중인 가스펠리니 감독.
“콘테는 좋은 감독이지만, 오늘 우리의 경기력도 절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럼 패인의 요인을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답하는 감독.
“진이오. 그놈이 있으면 어떤 작전도 통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축구 상식이나 전술 따윈 의미가 없는 선수예요.”
그러더니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가스펠리니.
“진이 여기 있는 한 인테르를 제외하면 세리에 어떤 팀도······ 앞으로 우승하지 못할 겁니다.”
가스펠리니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상욱은 이미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vs 중국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