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어디로 갈 건데?
“다음 행선지는······.”
상욱이 곰곰이 생각하며 말꼬리를 줄이자, 지금까지 유쾌하게 웃어 대던 조르제 멘데스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상욱을 바라본다.
“뭐야, 갑자기 왜 긴장해요?”
이상하리만큼 긴장한 에이전트의 모습에 상욱이 웃어 보이나 멘데스는 조금도 머쓱해하지 않는 듯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의 선택인데 긴장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상욱이야 그저 자신이 뛸 다음 팀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멘데스는 알고 있었다. 그가 하는 한 번의 선택이 유럽 축구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이다.
전상욱을 품는 구단은 해당 국가의 리그를 압도함은 물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위대한 성적을 낼 것이며, 구단의 위상이 전부 압도적으로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뒤이어 천문학적인 수익과 구단 위상은 급속도로 상승할 것이며, 전상욱이라는 슈퍼스타 하나 때문에 그를 관리하는 부서마저 생겨날 것이다.
아마 상욱이 천문학적인 이적료로 인테르르 떠난다면 마라도나의 나폴리 이적,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과 같은 축구사에 전설이 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물론 상욱은 100%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만 선택하겠지만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잠시 생각에 빠졌던 상욱이 곧이어 말을 잇는다.
“바르셀로나가 가장 끌리긴 하네요, 지금 느낌으로선 그래요.”
“메시······ 때문인가요?”
에이전트에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상욱.
상욱은 전생의 다니엘 잭슨 시절부터 메시를 동경해 왔다.
아니, 전 세계 축구 선수 중에 메시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G.O.A.T.
세계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를 향해 나아가는 스타가 직접 자신과 함께 뛰고 싶다고 인터뷰까지 했는데 설레지 않을 선수가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메시와 함께 뛰며, 잠시 동안 캄프누에 전설을 써 내려가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메시의 패스를 받아서 진이 넣는다. 진과 메시의 투톱이라! 상대 입장에선 지옥이 따로 없겠군요.”
껄껄 웃던 멘데스는 곧장 다음 질문을 보인다.
“그럼 다음 팀은 어딥니까?”
“다음······ 팀이요?”
“바르샤와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차선책도 필요하겠죠.”
이번엔 아까보다 덜 고민한 상욱이 곧 다음 팀을 말한다.
“맨시티요.”
라리가 양대산맥과 바이언이 유럽 축구의 3대장으로 불린다곤 하나 현재 세계 축구는 해게모니는 누가 뭐래도 EPL이 잡고 있다.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온갖 스타 선수들을 쓸어모으고, 세계적인 명장들과 실력 있는 보드진을 모셔와 팀을 뼈대부터 다시 세운다.
이왕 뛸 거면 유럽 축구의 가장 중심부에서 가장 비싼 돈을 받고 뛰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게다가 현역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펩 과르디올라의 지도는 상욱을 더욱 스탭업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럼 파리는 별 관심 없는가요?”
“아니, 관심이 없다기보단 앞선 2팀에 비해 흥미가 좀 떨어진다는 거죠.”
네이마르, 음바페와 같은 월드 클래스들과 함께 뛰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실력 또한 상승하겠으나 문제는 리그앙의 수준이다.
리그 내 1대장인 PSG를 제외하고 모나코와 마르세유는 파리를 위협하기엔 한참 부족했고, 그 밑에 있는 팀들의 전력은 파리가 유럽 대항전에 나가서 활약하기 전에 붙을 수 있는 스파링 역할도 되지 못했다.
우승이야 쉽게 하겠지만 상욱은 길어야 15년쯤 되는 짧은 현역 시절 동안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싶었다. 다니엘 잭슨 시절 그토록 EPL 무대를 바라 왔었던 것처럼.
“당신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아! 이번에 찍은 스포츠용품 광고 매출이 상당히 좋아요, 30만 유로(*한화 4억가량) 정도의 보너스가 더 들어왔는데 이건 바로 입금······.”
“아뇨, 한국에 부모님께 보내세요.”
상욱의 부모님은 아들이 인테르로 이적한 직후 직장을 관뒀다.
사실 아버지는 자기 계발을 위해서라도 직장을 계속 다닐 생각을 했었으나, 이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아들의 엄청난 위상 덕분에 세간의 관심을 너무 많아 받아 도저히 회사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이탈리아로 들어오기 직전.
“아빠,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평생 다닌 직장을 자신이 그만두게 만든 것 같아 괜스레 죄송스러운 맘이 들었던 상욱과 그의 아버지는 처음에 직장을 그만뒀다는 상실감이 있긴 했으나······.
“미안할 것도 많다. 으하하하! 엄마 아빠 해외여행 좀 다녀올게~.”
이미 아들에게 평생 벌어도 못 모을 돈을 용돈으로 받아 쓰고 있는 그의 부모는 효자 아들 덕분에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힘들면 축구 그만둬도 돼. 상욱아, 알지? 수능 봐서 대학 가도 되니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부상이라도 당하고 힘들까 봐 언제든 그만두라고 말하자 멘데스가 이를 통역으로 듣고 끌끌거렸다.
“지금 진이 축구를 그만두면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짐 싸 들고 말리러 올 겁니다. 특히 한국은 대통령이 올지도 몰라요.”
전상욱으로 환생한 지 2년이 다 되어 갈 때쯤, 그는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 오늘 챔피언스 리그 16강 발표날일 텐데?”
“아! 맞아요!”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멘데스가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테이블을 치며 바로 대진표를 확인한다.
[2018-19 챔피언스 리그 16강 대진 추첨 결과]
맨체스터 시티 vs 보르시아 도르트문트
AT 마드리드 vs AFC 아약스
토트넘 핫스퍼 vs 포르투
유벤투스 vs 리버풀
바르셀로나 vs 첼시
파리 생제르맹 vs 바이에른 뮌헨
올랭피크 리옹 vs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와 리버풀이 빅매치겠네요. 바르셀로나와 첼시는 서로 리벤지가 될 수도 있겠고요.”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각 팀의 대진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멘데스는 곧 마지막에 놓인 대진을 확인한다.
“아······.”
싱긋 웃으며 상욱에게 화면을 보여 주는 멘데스.
“저는 이게 제일 기대되는군요.”
PSV 에인트호번 vs 인테르
***
“왜 이리 표정들이 굳어 있어?”
2018년 11월 28일
psv 에인트호번 팀미팅을 앞두고 1군 감독 반니스텔루이가 선수단을 보며 가볍게 말한다.
올해까지 1군 감독직을 수행하던 필립 코쿠 감독이 EPL의 더비 카운티 감독 제안을 수락해 떠났다.
구단에선 외부 인력보다 구단의 레전드이자 2군 감독직을 잘 수행한 반니스텔루이에게 자리를 맡겼고, 그는 에이스 전상욱이 없음에도 올 시즌 아약스와 열띤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대진표 때문에 그러냐? 인테르랑 만난 것 때문에 그래?”
감독의 명랑한 말에도 선수들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다. 지금 선수단 대부분이 작년 전상욱과 뛰어 본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함께한 시간은 1년 채 되지 않았으나 이들은 상욱이 얼마나 사기적이고, 무시무시한 선수인지 알고 있었으며, 특히 상욱과 유스 시절부터 함께한 코디 가포, 조던 테저는 그의 엄청난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진뿐만 아니라 현 세리에 득점 랭킹 3위에 달하는 라우타로 마르티네즈와 올 시즌 리그 베스트 미드필더 바렐라 등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psv 선수들의 한 없이 침울해하고 있을 때.
“멍청한 놈들.”
뒤에서 거친 목소리의 하디 크루거가 선수들을 보며 외친다.
“진이 없으면 우리가 죽냐? 아무것도 못 해 우리는? 너희 다 그렇게 쓸모없는 놈들이었냐고!”
이젠 팀의 고참이 되어 선수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선 하디가 감독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앞으로 나섰다.
“다 떠나서 말이야 너희······.”
선수단 전체를 보며 강하게 일갈하는 하디.
“진한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우린 너 없이도 잘하고 있다고, 여길 떠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실제로 반니의 psv는 대단히 순항 중이었다. 리그는 물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으며, FA컵 역시 아직 생존 중이었다. 주포이자 에이스 상욱이 떠난 자리엔 플레이 메이커 하디 크루거가 자리했다.
8골 11도움을 기록 중인 그는 팀의 볼 배급과 공격을 둘 다 책임지고 있었고, 명실상부 에레디비시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지금 잘하고 있어! 당장 지금 성적은 진이 있을 때보다 더 좋단 말이야. 상대가 강하다고 포기하지 마. 진에게 당당히 보여 주는 거야!”
“지금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말이야.”
뒤에서 루크 데용의 목소리가 들린다. 팀의 주장과 부주장이 나서서 사기를 고취시키자 나머지 선수들은 당연히 따라온다.
이기든 지든 이들은 보여 주고 싶었다. 네가 없어도 우린 잘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하디 크루거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한 채로 인테르와의 경기를 준비한다.
“수모는 월드컵 하나로 족해.”
상욱은 자신이 지금껏 만나 왔던 선수 중 자신과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이자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러나 그건 경기장 밖에서나 그렇지, 경기장 안에서 그것도 상대 팀으로 만났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진, 이번엔 다를 거다.”
이미 4년 전 골든 보이 시절의 폼을 넘어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를 향해 가고 있는 하디크루거가 이를 갈며 타도 전상욱을 외친다.
***
2018년이 끝났다.
新 축구황제의 위대한 발자취는 세계 축구사에 더욱 강하게 자리했으며, 이제 전 세계에 전상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vs 피오렌티나
[이미 경기는 거의 끝났습니다만, 인테르의 위대한 아시안은 당최 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3:1에 후반 인저리 타임까지 끝나 가는 시간, 이미 승부는 인테르 쪽으로 기울었고 여기서 끝나는 것이 보통인 상황이나, 상욱은 절대 평범한 ‘보통’의 선수가 아니었다.
[천천히 몰고 올라갑니다, 라우타로 올라가는데요- 바로 때립니다아아!!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득점합니다! 여러분 진입니다!]
[왜 저 선수 앞에!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는 수식어가 받는지 명확하게 알겠네요! 여러분- 진입니다!]
세리에 38경기 중 딱 반이 돌았다.
19경기까지 진행한 현재 인테르의 스코어는 14승 3무 2패, 승점 4점으로 라이벌 유벤투스를 4점 차로 따돌리고 리그 1위에 올라 있으며, 득점 기록은 이후에 경기를 뛰지 않더라도 1위에 오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경이로운 활약과 동시에 여러 클럽에서 오퍼가 왔는데 기존 맨시티, PSG,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상욱을 여전히 진심으로 원하는 클럽에서 또 연락이 왔다.
[맨유, 진 영입에 1억 유로 제시!]
[마로타 단장, 1억 유로 가지고는 진의 한쪽 귀밖에 못 사······.]
[골게터 절박한 맨유! 루카쿠와 진 스왑딜 제시?!]
[마로타 단장 “더 이상 맨유 전화 받지 않을 것, 계속 쓸데없는 말만 늘어놔.”]
뭐 잘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2018년이 지나고 2019년 새해가 밝기 직전,
이 위대한 스타의 눈은 다시 한번 조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시안컵.
“이번엔 무조건 우승해야지.”
< 발롱도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