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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71화 (71/114)

71화

산시로의 악몽

‘진은 나보다 뛰어난 선수다,’

이과인은 전반부터 이미 인정한 상태였다. 스피드나 드리블이나 동료들과의 연계 등등.

진은 축구선수가 가져야 할 모든 능력이 한계치를 뚫고 올라간 육각형 선수였으며,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인 골 결정력 역시 압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비빌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한 때 유럽을 풍미했던 공격수이고, 지금도 리그 탑클래스 스트라이커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까.

“내가 부진한 것도 있겠지. 그런데 진짜 저놈은······.”

상식을 뒤바꾸는 선수다.

공을 잡으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수비들이 넘어지고, 패스 한 방에 선수 몇몇을 눈 뜬 장님으로 만든다.

슈팅은 어떠한가. 움직임은 야구의 너클볼 같은데, 파괴력은 직구와도 같다.

“같은 축구선수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진 같은 선수가 상대라는 것에 상실감을 느끼고 있던 이과인. 그러나 지금은 경기 중이었고, 그는 열등감 따위를 느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후반전 밀란이 처음으로 인테르 진영으로 갑니다. 수소가 빠르게 돌파합니다만, 아 상대 수비가 많아요.]

밀란의 왼쪽 윙 수소가 공을 몰고 페리시치를 뚫기 위해 전진하지만, 이미 센시와 페리시치가 동시에 그를 마크하고 있었고, 이 왼쪽 윙은 어쩔 수 없이 수비를 앞에 두고 앞으로 길게 크로스를 올린다.

[다소 높은 크로스인데요. 이과인이 높게 뜹니다! 이과이이인!]

[넘어지면서 왼쪽 발에 걸렸습니다만 골키퍼 펀칭해 냅니다! 골까지 연결됐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지금 상황이 4골 차로 뒤지지 않고 1, 2점 차였으면 역전의 발판이 될 수도 있는 찬스였다.

인테르 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밀란 선수들은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고 다시 경기가 진행될 무렵,

“안 돼, 안 돼!”

“진? 방금 골 안 들어갔어, 우리가 막았잖아.”

이상하게 분노하며 이를 갈아 대는 상욱의 모습에 오해를 라우타로가 설명을 위해 다가가나 오히려 짜증만 받는다.

“알아! 득점은 당연하고, 기회도 내주기 싫단 말이야!”

승부욕이 넘치다 못해 질질 흐르는 동료의 투정이 의외로 라우타로는 맘에 들었는지 씩 웃으며 앞으로 나선다.

“알겠어, 에이스. 이번에도 네 차례야.”

전반엔 인테르의 우위로 경기가 진행됐으나, 후반전은 아예 인테르가 완전히 압도하는 분위기로 진행됐다.

[아마 오늘 경기가 콘테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가 완벽히 들어맞는 경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수비로 역습 중심의 축구를 하나 라인을 올릴 땐 완전히 높여 상대의 허를 찌른다.

라우타로와 바렐라가 역습의 첨병 역할을 하며, 양쪽풀백 페리시치와 둠프리스가 순식간에 빠르게 침투한다.

이는 밀란의 높은 압박을 효과적으로 풀어내고 공략하는데 효과적이었으며 경기를 지배해 나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가장 무서웠던 건······ 당연히 위대한 아시아인이었다.

[곧바로 인테르가 공격 기회를 잡습니다. 브로조비치가 둠프리스에게 연결- 둠프리스가 라우타로에게 연······ 결하지 않고요! 그대로!]

순식간에 발목을 꺾은 둠프리스가 엄청난 힘으로 아웃프런트 크로스를 올린다. 이 방향에서 크로스가 날아들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밀란 수비들은 그저 공이 날아오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고, 이는 곧 상욱의 발 앞에 떨어진다.

[크로스 떨어지면서- 진! 진을 놓쳤어요! 그대로오!]

[오늘 경기 진의 5번째 골이 터집니다! 정확한 아웃프런트 크로스에 이은 진은 정석적인 하프 발리슛! 5:0!]

상욱 정도의 공격수가 떠먹여 주는 크로스를 놓칠 리가 없었다.

득점에 성공한 상욱은 이제 별 감흥도 없다는 듯 동료들과 대충 하이파이브만 한 뒤 자리로 돌아갔고, 밀란 서포터들의 절반은 어느새 자리를 비웠다.

[양 팀 간의 최다 점수차 승리가 01년에 밀란이 인테르에게 6점 차로 이긴 건데요. 아마 오늘 그 기록이 갱신될 수도 있겠습니다.]

[기록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리에 한 경기 최다 골 기록도 갱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록은 실비오 피올라가 1935년에 넣은 1경기 6골이 최대인데요. 오늘 진이 그 기록을 깰 수 있길 바랍니다!]

외국인이, 그것도 아시아 선수가 자국 선수가 쓴 기록에 도전하는 것에 그 오만한 이탈리아인들이 자존심 상할 만도 하나, 오히려 해설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상욱이 이를 깨트리길 바라는 듯하다.

그만큼 지금 상욱의 위상은 이탈리아에서 그저 질투나 자존심을 넘을 만한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과인 빼곤 수비해! 무조건 막아!]

어느새 벤치 근처까지 내려온 이용홍과 유리치 감독이 선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시한다.

이미 경기는 졌다. 진 경기를 더 이상 뒤집을 순 없고, 밀란이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실점을 막아서 오늘 경기가 ‘역사’에 남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다.

역사상 최다 점수 차 패배 팀의 사령탑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았던 유리치 감독과 선수들이 어떻게든 더 이상 실점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막는다.

[진이 힘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와 저 피지컬 좋은 케시에가 그대로 밀려납니다!]

[피지컬이 저렇게 좋은데 속력까지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보면 볼수록 탄성만 나오는 선수네요!]

공격은커녕 선수 대다수가 수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욱은 공을 몰고 가면서 팬덤 드리블로 중원을 젖힌 뒤 그대로 뛰어가 겁에 질려 있는 수비진을 목도한다.

[진이 뛰어가는 순간 수비진 전체가 겁에 질립니다!]

[그럴 수밖에요, 오늘 밀란 수비진은 단 한 번도 진을 막은 적이 없으니까요!]

이들에게 상욱은 악몽이자 괴물이며, 사신 그 자체였다.

“한 번이라도, 딱 한 번만이라도 막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자고!”

어떻게든 막아 내기 위해 힘을 다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해 달려드는 선수들. 이번에야말로-하며 상욱의 시선을 차단하고, 돌파를 막기 위해 양옆으로 공을 뺏기 위해 달려든다.

[이번에는 뺏을 수 있을까요! 달려듭니다만, 그대로! 아아! 진! 로빙패스!]

상욱은 놀리기라도 하듯 상대 수비수의 키만 살짝 넘기는 로핑 패스로 시도했고, 이를 확인한 레이나가 점프해서 공을 캐치하기 직전, 뛰어 들어오던 라우타로가 곧장 황소처럼 달려들며 헤더 골을 성공시킨다.

[들어갔습니다! 황소라는 별명이 허풍이 아니었네요! 스코어 6대0!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인테르입니다!]

[저건 진의 생각이 아주 유효했습니다. 상대 수비는 당연히 진이 돌파하거나 슈팅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거든요! 여기서 들어오는 선수를 보면서 로빙 크로스! 환상적입니다!]

인테르 서포터들과 벤치에서는 낄낄거리며 과연 팀이 더비 역사의 최다 득점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고, 밀란 벤치는 더 이상 경기를 지켜보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괴로워한다.

***

후반 85분.

여전히 인테르와 진은 밀란의 아픈 곳을 때리며, 상처를 덧내고 밀란은 제발 더 이상의 실점 없이 경기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진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인테르 선수들 역시 더비 최다 골 타이기록 달성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이대로 별일 없이 끝났으면 밀란에게 악몽까진 아니었을 것이다.

[중앙 수비수 바스토니가 상대 진영까지 올라와서 드리블합니다. 바스토니가 센시에게, 센시가 진 쪽으로!]

센시가 낮고 빠른 크로스가 상욱에게 전달되기 직전, 사파타가 진의 다리를 걸어 넘겨 넘어지게 만든다.

[진, 넘어졌습니다! 이건 명백한 PK입니다!]

[네! 사파타 본인은 공만 보고 달려든 거 같은데 다리에 걸렸습니다. 아, 운이 없는 편이네요!]

상욱이 넘어짐과 동시에 두 팔을 들어 심판에게 항의할 필요도 없이 주심은 바로 PK를 선언한다.

[찍었습니다. 네. 밀란 쪽에서 VAR를 요청하는데 솔직히 뭐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지나가는 일반인이 봐도 PK가 맞아요.]

[인테르의 패널티킥. 키커는 오늘 경기 5골을 넣은 진입니다. 당연히- 네! 득점합니다!]

골키퍼 반대 방향으로 찬 슈팅이 골대가 찢어질 정도로 강하게 빨려 들어간다.

[7:0! 밀란 더비의 역사가 다시 쓰입니다! 동시에! 세리에 한 경기 최다 골 타이 기록을 세우는 진입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이 트레블 이후 인테르 역사상 최고의 날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동시에 밀란 역사상 최악의 날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밀란 선수들은 그저 전광판만 바라보며 경기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콘테 감독은 이제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벤치에 앉아 코치진과 함께 웃으며 잡담을 나눈다.

“진한테 패스해! 오늘 한번 끝을 보자.”

90분이 지나고 추가시간마저 거의 다 지난 상황.

이젠 진짜 그만둘 법도 하나 인테르 선수들과 상욱은 아직 만족이 안 되는 듯했다. 이들은 지겹고, 집요하게도 사정없이 상대를 공략하며, 괴롭혔다.

[해설하는 입장에서도 지긋지긋한 인테르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됩니다. 진이 수비수 2명 사이로 라우타로에게 전달합니다.]

[라우타로가 파고드는 센시에게-.]

센시에게 향하는 공을 수비가 걷어 낸다는 것이 마치 패스처럼 상욱의 앞에 떨어졌다.

당연히 상욱은 지체하지 않고서는 발을 휘둘렀다.

[들어갔습니다! 세리에 역사가 뒤바뀌었습니다! 84년 만에 세리에 한 경기 최다 골 기록이 갱신됩니다!]

[이적한 지 1년밖에 안 된 선수한테 붙여진 별명이 감히 위대한-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별명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요?]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밀란 더비 역사상 최다 점수 차 승리가 오늘 경기 8:0으로 17년 만에 바뀌었으며, 리그 한 경기 최다 골 점수가 84년 만에 바뀌었다.

Q 역사를 다시 쓰게 된 것에 축하한다. 진! 최다 골 기록을 갱신한 소감을 말해 달라

A 매우 기쁘고, 영광스런 기록이지만 팀의 최다 점수 차 승리가 더욱 자랑스럽다.

Q 오늘 경기는 평소보다 더욱 날카롭고 골 욕심도 많이 냈다. 저번 이적시장에서 밀란과의 계약 과정에서 있었던 감정을 드러낸 것인가?

A 아니다. 세간에선 내가 밀란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난 밀란을 존중하고, 열정적인 서포터들을 존경한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건 처음 날 컨택했을 때와는 다르게 날 무시했던 밀란의 단장과 구단 수뇌부들이다. 이들은 날 존중하지 않았고, 난 내가 해 줄 수 있는 복수를 했을 뿐이다.

Q 세간에선 당신을 보고 세리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동의하나?

A 그럴 리가. 마라도나와 굴리트, 호나우두 같은 위대한 선수가 즐비한 곳에서 내가? 난 아직 멀었다.

Q 인터뷰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오늘 경기 소감 부탁한다.

A 항상 뜨거운 네라주리의 응원에 감사드린다.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제가 있는 한 밀란 더비에서 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8:0이라는 이례적인 결과에 이탈리아가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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