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2)
세리에 최고의 공격수이자 불과 작년, EPL 다수 팀들과 이적설이 있었던 곤살로 이과인.
대단한 골 결정력으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9번을 달고 있으며, 세리에 리그 베스트를 3회나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스트라이커이다.
당장 작년만 해도 1부 리그에서 겨우 생존한 밀월이 7백만 유로를 제시했니, 8백만 유로를 올렸니 염문을 뿌렸고, 당시 밀월의 스트라이커인 다니엘 잭슨의 완벽한 상위호환 대체자로 이름 올리기도 했다.
뭐 결국 새로운 도전보단 원래 뛰었던 리그 내에서 이적하긴 했으나 이과인의 이적은 실제 전상욱의 이적보다 훨씬 주목받았다.
그러니까 리그가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진짜 미치겠구만.”
후반을 준비하는 이과인과 밀란 선수들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어둡다.
“어떻게 한 골도 못 막아!? 아무리 진이 대단하긴 해도······ 대체 수비는 뭐 한 거야!?”
“뭐? 지랄하고 있네. 그럼 네가 진을 막지 그러냐? 유효슈팅 하나도 못한 새끼들아! 너넨 뭐 했는데!”
아직 전반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스코어는 0:3.
안 그래도 우울했던 팀 분위기는 완전히 박살 나 있었으며 아예 이번엔 선수들은 편을 갈라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워 댈 기세였다.
이번 경기를 끝으로 경질이 확실시된 유리치 감독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담배만 태워 댄다.
그래도 아직 노련함과 골 결정력은 상욱보다 자신이 앞서지 않을까 생각했던 이과인은 오늘 경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체념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진은 아예 피치 위에 있는 다른 선수들과 전혀 다른 스포츠를 하고 있는 듯했다.
평범한 드리블에 유럽 최상위 리그 베스트 수비수들이 우수수 쓰러지고, 패스 한 번에 밀란 선수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공만 쳐다봤으며, 슈팅 한 방에 수비수는 당연하고 골키퍼까지 넘어졌다.
“레오(*메시 별명)를 처음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저 실력이 고작 프로 데뷔 2년 차란 말인가······.”
혹여나 다른 팀원이 자신의 말을 듣고 전의를 상실할 까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이과인.
“상대가 너무 강했어.”
“젠장. 우린 다 끝이야-.”
선수들 간의 다툼은 겨우 멈췄으나 침울하다 못해 절망에 빠지기 직전인 밀란 라커룸.
“아직 안 끝났어.”
이과인이 선수들을 보며 이를 갈며 말하자 선수들의 이목이 처음으로 집중됐다. 다른 사람도 아닌 리그 정상급 공격수의 발언이었으니 말이다.
“후반에는 더욱 강하게 압박하자. 분명 인테르 놈들 전반보다 지쳐 있을 거야. 수비 쪽에 공간을 만들어 줘. 어떻게든 득점해 볼 테니까.”
“라인을 또 올리자고? 곤살로, 진한테 몇 골이나 더 얻어맞아야 만족할래?”
중앙수비 로마뇰리의 짜증에도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간다.
“이미 3골 차. 팬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기자들은 이미 인테르 승리라는 헤드라인을 만들어 놨을 거야. 여기서 경기가 끝나든 2골, 3골 더 먹히든 똑같단 얘기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미 최악의 전반을 펼친 밀란은 후반전에 드라마틱한 경기력을 보여 주지 않는 이상 세간의 비난을 피하긴 힘들 것이다.
“어차피 욕먹고 질 거라면······ 7:0, 8:0으로 진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 틀린 말 아냐.”
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주장 사파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팬들을 위해, 구단을 위해 남은 45분! 모든 걸 다 걸고 뛰자!”
이과인의 말을 사파타를 포함한 밀란의 모든 선수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이들은 마지막 작전을 위해 박살 나 있던 분위기를 간신히 수습하는데 성공한 채 라커룸 밖으로 나선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보자는 생각의 밀란 선수들이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
“단장님, 단장님 안 됩니다!”
“지금 이런 식의 방문은 선수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부하 직원들의 다급한 외침에도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말리는 부하들을 건방지다며 뺨을 후려치고, 정강이를 걷어찬 다음 선수들을 보며 다소 어색한 이탈리아어로 외친다.
“쓰레기 같은 놈들! 네놈들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대부분의 선수들이 단장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하다가 뒤이어 들어오는 말에 걸음을 멈춘다.
“나 여기서 쫓겨나는 꼴 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냔 말이다!”
단장의 말에 어처구니없던 이과인이 무어라 외치기도 전에 늘 뒤에서 팀을 지키고, 말을 아끼던 사파타가 갑자기 단장에게 뛰어가며 욕설을 내뱉는다.
“목숨을 걸고 있어! 우린! 우린 팬들과 구단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단 말이야!”
주장의 처음 보습에 잠시 벙 쪄 있었던 선수들은 뒤이어 정신을 차린 뒤 그를 말리기 시작한다.
“너 같은! 쓰레기랑 비교하지 마!”
“이, 이······ 건방진 새끼가!”
주장과 단장의 주먹다짐이 있기 직전, 겨우 정신을 차린 감독과 선수들이 달려와 이들을 겨우 떼어 놓는다.
“크리스티안 자파타! 네놈은 방출이야, 방출!”
“넌 오늘 경기에서 지든 이기든 짤릴 거야! 쓰레기 같은 자식!”
이과인이 살려 놨던 분위기를 다시 침묵시킨 걸 넘어 완전히 박살 내버린 이용홍.
사실 그는 꽤 실력 있는 CEO였으며, 주변의 평판은 별로 좋지 못할지언정 실적으로는 어디서든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성격이 불같고, 남들과 타협하기 힘든 모습을 지닌 그는 구단 내외부적으로 강력한 비난을 받고, 지위를 보전받기 힘든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고, 마침내 선을 넘고 말았던 것이다.
선수들은 혼란스런 상태로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고 단장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이를 갈아 댄다.
“이, 이 쓰레기 같은 놈들. 네놈들은 전부 방출이야! 난 절대 안 나가!”
***
“저쪽에서 뭔가 일이 생겼나 본데.”
인테르 라커룸 안.
상대의 라커룸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선수들이 궁금하거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콘테 감독이 이를 바로 차단한다.
“신경 쓰지 말고 우린 우리 할 거 만 신경 쓰면 돼.”
흔들리고 있는 상대를 얕볼까 걱정되었던 감독은 선수들을 더욱 강하게 채찍질하며 집중하도록 했으나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경기에 나선 인테르 선수들 중 자만하거나 얕볼 선수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
선수들을 모두 내보내고 콘테 감독이 상욱을 따로 빼낸 뒤 중얼거린다.
“오늘 경기, 솔직히 질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상욱은 지금부터 감독이 무슨 말을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나 감독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은 없었다.
“우리에겐 남은 일정이 아주 많아. 생각 같아선, 어차피 이긴 거 당장 널 교체하고 싶은데······.”
그저 안 된다고만 할 줄 알고 반항하려고 했으나 콘테는 오히려 즐거운 표정으로 상욱을 바라본다.
“네가 밀란 놈들에게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얼마나 복수하고 싶은지 잘 안다. 더욱이 너 같은 일류 선수들은 더더욱.”
“감독님.”
경기를 많이 뛰게 해 주는 것에 이토록 감동받아야 하는 현실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상욱은 감독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콘테는 처음으로 팀이 아닌 ‘전상욱’ 개인을 위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많이 뛰어도 좋다. 너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봐.”
“알겠습니다, 감독님.”
“대신······ 네가 아까 역사를 바꾼다고 했지? 6:0이 아니라 7:0, 8:0까지 만들어 버려.”
콘테의 말에 상욱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상쾌한 표정으로 이죽거린다.
“밀란 새끼들, 완전 죽여 버리겠습니다.”
상욱의 다짐에 콘테는 자신과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말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넌 정말 여러모로 맘에 드는 놈이야.”
***
다시 그라운드 위에선 상욱은 다소 지친 표정으로 서 있는 이과인을 보며 이를 꽉 깨문다.
전생, 그러니까 밀월의 다니엘 잭슨 시절 구단은 자신을 내치고 저 아르헨티나 공격수를 비싼 값에 사려고 했었다.
인생의 반 이상을 구단을 위해 뛰어온 본인을 헌신짝처럼 내 버린 채 말이다.
“너넨 진짜, 진짜 뒈졌어.”
애초 복수 대상은 이과인이 아니라 밀월이 되어야 할 것이며, 실제로 이과인은 밀월에 간 적도 없으니 복수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으나 상욱은 억지로라도 분노를 발산시키고 있었다.
적당한 분노는 끈기를 유발하며 동시에 피치 위에서 더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컨디션을 가진 상욱이 후반전에 나선다.
[평소에도 잘하는 선수입니다만, 오늘의 진은 정말로- 눈부시게 잘하네요.]
[저, 저 달리는 속도 좀 보세요! 카카가 밀란에서 재림한 게 아니라 인테르에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밀란이 전반처럼 이들을 압박하고 있긴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진 못했다.
전상욱은 마치 공을 가지고 장난치듯 밀란 수비진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고, 이 장난으로 밀란의 라인은 완전히 붕괴됐다.
[진의 중거리! 레이나가 손끝으로 펀칭해 냅니다!]
[골대에서 40M는 떨어진 곳에서 저렇게 정확하게 찰 수가 있나요! 자, 아직 공은 살아 있습니다!]
레이나가 겨우 펀칭한 공을 받은 라우타로가 뛰어 들어오는 페리시치에게 패스하자, 동시에 그는 왼쪽 터치라인 끝으로 이동한 상욱에게 공을 전달한다.
빠르게 달려 들어가던 상욱은 공을 위로 띄운 뒤 헤더로 살짝 오른쪽으로 보내면서 왼쪽에서 뛰어오던 수비수를 벗겨 내고, 동시에 양쪽에서 커팅해 오는 수비수들이 발이 뻗기 직전 머리로 공을 앞으로 보내어 수비를 부딪치게 만든다.
후반 53분.
[왼쪽 터치라인에서 진이 다시 묘기를 부립니다! 밀란 수비진이 완전히 붕괴됩니다!]
[순식간에 골키퍼 하나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대로 감아 찹니다아아아!]
방금 전 중거리 슛도 환상적인 선방으로 막아 낸 레이나 골키퍼는 또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손을 길게 뻗어 막아 보려 했으나, 공을 이들을 비웃는 것처럼 손가락 옆으로 빠져나갔다.
[들어갔습니다! 4:0! 혼자서 4골! 산시로의 악몽이 나타났습니다!]
[방금 전에 밀란 시절 카카가 생각난다고 말씀드렸는데 방금 플레이는 전성기 카카가 재림한 듯한 플레이였습니다. 대단히, 대단히 훌륭한 골이네요!]
방금 골은 의미가 컸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했던 밀란은 만회골은커녕 오히려 실점까지 했으며, 팀의 주축 수비수 전원이 전상욱 한 명에게 개인기로 유린까지 당했다.
[아- 밀란 원정서포터들이 야유를 보냅니다. 상대 팀이 아니라 밀란에게 하는 야유입니다]
4:0.
이미 경기는 기울었으나 콘테 감독의 지시는 더욱 거세졌다.
“라인 더 올려! 더 빨리 치고 올라가! 상대가 공 잡을 틈 자체를! 주지 말란 말이야!”
인테르 선수들 역시 전반보다 더욱 집중하여 경기에 나서고, 오늘의 MVP 역시 추가골 사냥에 나선다.
산시로의 악몽, 로쏘네리의 악령.
저승사자의 등장이었다.
< 산시로의 악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