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68화 (68/114)

68화

한국의 사령탑

“위원장님의 제안은 대단히 좋았습니다. 가족들과도 상의하고, 진심으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만······.”

이탈리아 라치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잘생긴 노신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중얼거리자, 맞은편에 간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대한축구협회의 국가대표선임위원장 김치곤이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다급히 말한다.

“연봉이 부족해서 그러십니까? 필요한 액수를 말씀해 보시지요, 감독님. 돈이야 맞춰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치곤 위원장이 만나고 있는 감독은 몇 해 전 레스터 시티로 EPL 우승을 일궈낸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돈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 쪽에서 제안한 액수는 충분했어요. 실제 클럽에서 받고 있는 연봉 이상을 제시받았고, 코치진 역시 모두 고용을 약속했으니까요.”

그의 얼굴엔 조금의 거짓이나 비아냥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라니에리는 ‘덕장’이나 성격 좋다는 세간의 평과같이 김치곤이 자존심 상하거나 낙담할까 봐 걱정스런 모습을 보인다.

“진심으로 한국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겐 중요한 도전이기도 했고, 한국의 저력과 가능성은 이미 이번 월드컵에서 확인했고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는 대단히 진지한 모습으로 치곤에게 말한다.

“제 고향 로마에서 감독직 제안이 왔습니다. 10년 만에 온 기회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 와이프의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도저히 아내를 두고 낯선 땅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아무리 라니에리가 쉬지 않고 매년 팀을 옮겨다 몇 년마다 팀을 옮겨 다니는 워커홀릭 저니맨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결코 가정을 등한시하는 파락호는 아니었다.

다른 문제도 아닌 가정사를 이유로 대는데 어쩔 것이며, 동시에 자국의 대표 클럽이자 고향 팀인 AS로마에서의 오퍼를 거절하고 한국으로 갈 이유는 하등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그를 설득해 봤자 의미 없음을 깨달은 치곤이 목례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괜히 찜찜했던 라니에리가 그를 불러 세운다.

“김 위원장, 잠깐만요.”

이 먼 이탈리아까지 자신을 위해 날아온 동양인을 본 라니에리가 미안했던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새 감독을 찾는 기준이 뭐라고 했죠? 월드컵 예선 통과 경험이 있는 지도자, 유럽 빅리그 경험이 있는 감독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 맞나요?”

“맞습니다, 동시에 팬들의 눈높이에 맞는 명성 있는 감독이면 더 좋겠죠.”

치곤의 말을 가만히 듣던 라니에리가 천천히 입을 연다. 제안을 거절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조언이라도 해 주려는 듯하다.

“내 생각은 다릅니다.”

“······네?”

“지금 한국의 목표가 월드컵 조별 본선 통과나 아시아권 우승이면 그런 감독이 맞겠지요. 그런데.”

라니에리의 말에 흥미를 보인 치곤이 다시 의자에 앉아 눈을 반짝인다.

“결국 16강, 8강을 넘어가면 이기기 힘들 겁니다. 브라질, 스페인 등의 조직력과 개인기 둘 다 압도하는 나라를 상대론 그저 잘 만들어진 팀으론 상대하기 힘들어요.”

“그러면 대체 어떻게······.”

“당신들 국가에 축구 천재가 있잖습니까. 진, 그놈을 이용해야합니다.”

“전상욱을요?”

“진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가졌고, 앞으로 한국 대표팀의 모든 시스템은 진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격과 수비는 물론 골키퍼까지 진의 입맛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말이에요.”

라니에리는 결코 한국 축구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레스터 감독시절 아스날의 왼쪽 윙 이승민에게 2골을 먹혀 패배한 적이 있으며, 월드컵 직전 이승민과 전상욱이 있는 한국을 다크호스라 부르기도 했다.

“한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이 아닌 어떤 나라라도 그렇게 할 겁니다. 지금 아르헨티나를 봐요. 선수단 전원이 메시에게 공을 몰아주지 않습니까.”

“그 말뜻은······ 감독님께선 전상욱이 메시······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상.”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말하는 라니에리.

“메시 정도야 당연하고, 펠레조차 넘을 수 있을 만한 선수입니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메시와 펠레 이상을 이야기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아니.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 친구는 알아서 잘하니까. 진을 가장 잘 케어할 수 있는 감독을 찾으시오.”

“그, 그런 감독이 어디 있습니까!? 누굽니까!”

단 한 명의 선수로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다, 단 한 명의 선수가 앞으로 한국 축구 100년사를 바꿀 수 있다.

세계적인 감독의 조언에 다급해진 치곤이 질문하자, 라니에리가 빙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당신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게 누구냐면······.”

***

월드컵 원정 8강과 역사상 최고 재능의 탄생에 온 국민의 관심이 축구에 몰려 있는 지금, 모기업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협회는 한국 A대표팀 새 사령탑 찾기에 나섰다.

‘조세 무리뉴와 같은 명망 있는 감독을 찾는다!’

협회장의 천명에 따라 여러 감독들이 물망에 올랐다.

지금까지의 협회 고위직들은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쓸 국내 감독이나, 성적부진으로 언제든 자를 수 있는 별 볼 일 없는 경력의 외국인 감독을 앉혀서 대표팀을 좌지우지할 생각뿐인 인사들이 주류였으나. 이번 월드컵은 국외뿐 아니라 협회 내부에서도 대단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앞으로 한국 축구는 전상욱의, 전상욱에 의한, 전상욱을 위한 시스템으로 변화해야 한다.’

현재 협회 내부에서는 소위 적폐라 불리는 기존 인사들과 대표팀이 가는 모든 방향을 전상욱으로 바꿔야 한다는 쪽의 김치곤을 포함한 레전드 출신 임원들 둘로 나뉘었다.

러시아 월드컵을 기점으로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취임한 홍명환은 이 두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가야 할 시점에 놓였고, 임원 회의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두 세력 간의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축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어찌 국가대표 출신이면서 그런 것도 모른단 말이오!”

협회 고위직으로 있는 비체육인 출신 기업가가 반대편 임원들을 보고 짜증스럽게 외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스타들이 없었습니까? 차범근, 박지성, 이승민까지. 개인을 중심으로 짠 대표팀 중 우리가 국제대회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낸 적이 있소?”

“그건 일반적인 선수의 경우고요.”

“일반적인 선수? 허참, 분데스리그 레전드 출신과 맨유에서 200경기 넘게 뛴 선수가 있는데 일반적인 선수?”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노려보는 기업가의 모습에도 김치곤 위원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아니,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건 인간의 기준입니다.”

“······뭐?”

“전상욱이 지금 어떤 선수인지 잘 모르시는가 본데.”

이들의 모든 얘기를 듣고 있던 김치곤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잇는다.

“58년 펠레, 86년 마라도나, 94년 호마리우, 98년 지단, 02년 호나우두. 선수들 이름은 한번쯤 들어 보셨죠?”

“누굴 아예 바보로 아는군. 이름은 물론, 해당 년도에 저 선수들이 월드컵을 우승시킨 것도 알고 있소.”

으르렁거리는 상대는 순간 새우 눈을 뜨며 치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혹시 저기 끝에 전상욱이 이름을 넣자는 말이오?”

“아니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 아무리 전상욱이 잘나가도 펠레, 마라도나에 비빌 수는 없지. 기업인 출신 임원은 이리 생각했으나 치곤의 다음 말은 상대를 충격에 빠트릴 얘기였다.

“그 이상입니다. 이번 대회 전상욱의 활약은 앞서 말한 전설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을 경기력이었죠.”

월드컵 5경기 11골로 골든볼과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한 선수.

역사상 그 어떤 선수도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 이런 성적을 거둔 적 없었다.

“전상욱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아니 아시아 전체를! 축구 변방에서 해방시킬 유일한 선수입니다. 월드컵 16강이 목표가 아니에요! 이런 선수가 전성기가 됐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대목에서는 그는 대단히 흥분한 듯 임원 전체를 바라보며 강하게 외친다.

“우리의 목표는 월드컵 우승입니다! 허풍이 아니에요! 전상욱이라면······ 정말 해낼지도 모른다고요!”

치곤의 말에 그의 옆에 있던 선출 출신 임원 다수가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보다 20년 가까이 프로생활을 해 온 선수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전무님,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임원들의 얘기를 전부 듣던 홍명환 이사가 고심을 거듭하다가 조용히 입을 뗀다.

“제 생각은 말입니다.”

***

“누가 내 얘길 하나, 귀가 왜 이리 간지럽지?”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Derby della Madonnina).

세리에A 최대 라이벌 AC 밀란과의 경기를 앞둔 인테르 훈련장.

“센시! 수비 커버가 느리잖아! 쿼조! 좀 더 빨리 올라오란 말이야!”

늘 그렇듯 훈련장 안에는 콘테의 불호령과 함께 선수들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으로 훈련을 진행한다.

“라우타로! 더 빨리······! 올라오고 있군. 센시! 그래, 이번엔 바로 커버하는구나.”

평소 콘테의 훈련이라면 막바지로 갈수록 선수들이 지치고 주저앉아야 하는 것이 보통이나 오늘 인테르 선수들은 어떻게든 끝까지 감독의 지시를 따른다.

이들의 눈동자에는 불같은 열정이 이글거리고, 한계까지 밀어붙여도 이를 악물고 뛰는 모습에 다소 놀란 콘테 감독.

밀란 더비를 앞두고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는 선수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최근 2경기에서 승리가 없었던 인테르는 반드시 경기에서 승리해 상황을 반전시켜야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밀란 전은 이번 시즌 스쿠데토의 향방을 가를 가장 중요한 경기다.

만약 승리한다면 삐걱거리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반전시켜 우승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지만, 패배할 경우 순위는 2위에서 한 단계 더 하락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진, 라우타로, 바렐라 등 우수한 선수들을 수급받고도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감독 역시 이전과 같은 전폭적인 신임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감독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경기.

상욱과 다른 선수들 모두 긴장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최상의 컨디션으로 밀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욱은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에 대한 각오가 남달랐다.

자신을 철저하게 무시했던 밀란의 단장 이용홍은 최근 팀의 무 승과 올 시즌 영입된 선수들의 연이은 부진으로 구단 내외로 강력한 압박을 받고 있는 이용홍.

밀란 측에서는 이번 인테르와의 경기에서 패배한다면 감독은 물론 전상욱의 영입을 반대한 이용홍을 한 번에 날릴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 목숨을 걸고 이긴다.”

상욱은 훈련이 끝난 뒤에도 주세페메아차 경기장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지옥 같은 훈련을 마치고 웬일로 인테르 선수들 몇몇이 개인 훈련을 위해 상욱에게 몰려든다.

“진! 남아서 훈련 더 할 거지?”

“1on1이랑 드리블 연습 좀 도와주라.

라우타로와 바렐라, 브로조비치가 상욱에게 다가와 추가 훈련을 요청한다.

밀란전 승리를 위해 늘 정규 훈련 외에 꾸준히 개인 훈련을 하던 상욱의 도움이 필요한 듯하다.

“좋아. 다만 지금의 나는 봐줄 생각이 없어.”

“······다시 생각해 보니까. 빨리 돌아가서 쉬는 게 좋을 거 같아.”

“맞아.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어. 회복해야지.”

그러나 그들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고, 밀란전을 앞두고 잔뜩 기합이 들어간 상욱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추가 훈련을 끝낸 상욱은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놔두고 돌아갔고, 그들은 멀어져 가는 뒤통수를 보며 야유를 건넸다.

“젠장. 괜히 우리한테 화풀이를 하다니!”

“네가 훈련하자고 그랬잖아.”

“괜히 잠자던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버렸군.”

<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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