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세리에 데뷔전
[2018-19 세리에A 인테르 대 UC 삼프도리아의 리그 개막전이 이곳, 주세페 메아차에서 펼쳐집니다!]
Pazza Inter amala!
Vivila!
인테르의 응원가가 주세페 메아차 가득 울려 퍼지고 7만여 명의 함성이 경기장 안을 메운다.
“와- 이거 진짜 미쳤군.”
경기 시작 직전 관중석을 둘러보던 상욱이 입을 떡 벌린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으나 실제 관중은 1만 명 채 그치지 않은 밀월의 ‘더 댄’ 홈구장과 3만5천명 수용이 전부인 psv의 ‘필립스 스타디온’에서 뛰던 상욱은 세계적인 규모의 경기장을 보며 대단히 놀란다.
“이제 진짜 유럽 축구 메인스트림에 들어온 거야.”
상욱은 새삼스레 자신이 지금 유럽 최상위 리그, 최상위 팀에 있음을 실감한다.
대건고부터 psv, 월드컵까지. 지금까지 상욱의 커리어가 전초전이라면 지금부터는 그의 삶은 끝없는 승부로 점칠 될 것이다.
“승부에서 패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그는 새삼스레 다시 태어나고 처음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
저니맨.
그것도 축구 역사를 전부 뒤바꿀 역사상 최고의 저니맨이 될 것이다.
***
인테르 홈경기이기에 선수 소개나 응원이 인테르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페라리, 무루, 콘티, 카푸토, 사비리······.”
먼저 원정팀 선수들의 소개를 대충 국어책 읽듯 소개한 인테르의 장내 아나운서가 웅장한 배경음과 함께 단상으로 올라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홈 팀 선수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들의 인테르 선발 라인업을 소개합니다!”
“우아아아아아!”
“으아아아!”
장내 아나운서의 마이크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동시에 이 거대한 건축물이 흔들릴 만큼 관중들의 환호가 들린다.
“라우타로!”
“마르티네즈!”
“이반!”
“페리시치!”
아나운서가 성을 말하면 관중들이 이름을 말하며 선수들이 한 명씩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다. 인테르 선수 10명을 모두 소개했을 때.
“한국에서 온 월드컵 MVP!”
이름 대신 관중들에게 먼저 소개부터 하는 아나운서.
아직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으나 지금껏 터졌던 환호 그 이상의 울림이 경기장 곳곳에 터져 나온다.
“진!”
“난 저 아시안을 보러 왔어!”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는 아나운서.
“전!”
“상욱!”
[와-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선수인데 환호가 정말 엄청나네요!]
[그럼요, 무려 월드컵 골든볼을 받고 온 선수니까요. 팬들의 기대가 높은 게 당연합니다!]
팬들의 대단한 기대를 안고 출정한 인테르였으나 막상 경기는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삼프도리아의 사령탑이자 이탈리아에서 감독 경력만 18년이 넘어가는 지암파올로 감독은 개막전에서의 첫 승리를 위해 그야말로 칼을 갈고 나왔다.
“인테르 공격은 후방 빌드업부터 시작된다. 머리를 노릴게 아니라 몸통을 잘라야 해.”
콘테와 인테르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해 온 그는 콘테 전술의 중심이 되는 양쪽 풀백을 철저히 마크했다.
[삼프도리아가 오늘 경기 준비를 잘하고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콘테 감독이 대단한 전술가이긴 하지만 인테르는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많아요. 훈련 강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전술이 완성되긴 쉽지 않죠.]
이제 막 영입되어 팀원들과 손발이 맞지 않는 둠프리스를 철저히 마크하고, 쉴 새 없이 측면을 압박해 피지컬 쪽으로 강하지 못한 페리시치의 전진을 묶는다.
양 풀백이 막히고, 빌드업 전개가 되지 않자 이를 파악한 상욱이 공격 전개를 위해 공을 잡고 위로 올라가자 지암파올로 감독이 선수들에게 외친다.
“죽을힘을 다해서 막아!”
상욱이 인테르에 입단하자마자 그의 플레이 영상을 2,000번 이상 보고 분석한 감독.
[진이 지체 없이 페널티 라인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2명, 3명이 붙는데요!]
“저 미친놈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막을 수 있는 놈이 아냐.”
제로백이라도 쓰는 것처럼 순식간에 속도를 달고 뛰어가는 상욱의 모습에 해설들이 열광한다.
[와아! 실제로 보니 더 빠르네요! 저게 월드컵 골든볼 수준의······ 같은 편 선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자 빠르게 질주하는 진! 남은 수비는 둘입니다!]
자신에게 달려오는 수비를 항상 그랬던 것처럼 수비수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 사이로 공을 빼내 그대로 골대까지 질주하려던 상욱이었으나.
[아 마지막 순간에······ 막아 냈습니다! 아우젤로가 목숨을 걸고 막아냅니다!]
피지컬 좋은 이탈리아 수비수 2명이 그대로 몸을 던져 상욱의 중심을 무너뜨린다.
[태클이 좀 거칠지 않았나 싶은데요. 잘하면 PK가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아······ 주심이 정상적으로 경기 진행합니다. 삼프도리아의 훌륭한 수비!]
“씨발! 이건 아니잖아! 심판!”
터치라인 끝에 있던 콘테가 벌떡 일어나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하나, 주심은 이런 콘테의 모습에 질린다는 듯 대꾸조차 않는다.
이미 유벤투스에서 전적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생각대로군.”
아시안 괴물을 막기 위해 지암파올로 감독의 작전은 2가지.
먼저 정상적인 수비론 진을 막을 수 없으니 PK나 경고를 받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를 수비한다. 두 번째는 타 리그보다 수비에 대한 판정이 관대한 세리에 심판들의 성향을 이용해 거칠게 수비한다.
“손으로 밀던, 발로 차던 상관없어! 그냥 막아!”
실제로 삼프도리아 수비수들은 몇 번씩 상욱에게 반칙해 가며 그의 돌파를 막아 냈고, 애초 라인 자체를 올리지 못한 인테르는 상욱 이외에 별다른 공격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진이 기대만큼 잘해 주진 못합니다.]
[뭐- 데뷔전이니까 팀에 적응이 필요할 수도 있겠고요. 세리에는 전 유럽에서 가장 뛰어나고 거친 수비를 지향하는 리그라 공격수가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전반 35분.
개막전에 조금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인테르. 오히려 이따금씩 삼프도리아가 견고한 수비 이후 나오는 역습으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오늘 경기 지금까지 작전이 완벽하게 적중한 지암파올로 감독이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다.
“이제 슬슬 라인 올리자.”
지금까지 전상욱이라는 공격수에게 쫄아서 라인을 완전히 뺐던 선수들을 조금씩 위로 올려 공격까지 시키는 것이다.
“뭐야, 막상 막아 보니까 별거 아닌데요?”
“흥! 우리 수비가 좋은 거야. 동양인, 이탈리아 수비가 얼마나 강력한지 오늘 제대로 보여 주마.”
절대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전상욱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자 자신감이 생긴 삼프도리아.
무승부가 목표였으나 이젠 목표를 승리로 상향조정한 이들은 수비수마저 올라와 인테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
“존나 더럽게 하네. 씹새끼들.”
전반에만 명백한 반칙 3번을 당하고도 1번의 프리킥도 얻지 못한 상욱이 삼프도리아 선수들을 보며 이를 간다.
수비력이 좋고, 공에 대한 집념도 좋은 데다 무엇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거친데, 심판은 고개만 젓는 기계 같다.
“호나우두가 왜 이탈리아에서 고전했는지 알겠군.”
그냥 에이스가 공을 잡기만 하면 백태클하거나 팔꿈치로 치거나 몰래 허벅지를 걷어차기도 한다.
네덜란드와는 차원이 다른 수비에 벌써부터 질린 상욱이었으나, 결코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근데 난 호나우두 수준의 선수가 아냐. 그것보다 몇 수는 높은 공격수지.”
자신 있게 중얼거리던 상욱은 곧 라인을 올리기 시작하는 상대를 보며 이죽거린다.
“아주 날 물로 본다 이거지?”
터치라인 끝에서 콘테가 선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지시하나, 그는 조금도 들리지 않는다.
“수비를 거칠게 한다면······ 아예 수비할 수도 없게 만들어 주마.”
전반 막판까지 인테르를 꼼짝없이 묶어 둔 삼프도리아. 경기 후 지금까지 했던 5번의 작전이 모두 성공하고, 라인을 올리는 6번째 작전에 돌입하는 이들을 상욱은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삼프도리아 수비들이 위로 올라와 공격 전개를 시작······ 아!]
중원에서 전진 패스하는 삼프도리아의 공을 순간적인 스피드로 차단해 낸 상욱이 순식간에 공을 몰고 앞으로 달려간다.
[우와······! 너, 너무 빠릅니다! 97년도 호나우두도 저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막아!”
순간적으로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상욱 쪽으로 몸을 날리나 이미 그는 이들을 순식간에 제친 뒤 페널티 라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후 상욱보다 라인 안에 있던 수비 2명이 그에게 발을 뻗어 보나 태클을 하려고 발을 뻗는 순간 이미 지나간 후였다.
[수비 달려오는데요! 저 속도가 정말, 아! 골키퍼 나옵니다만 그대로 로빙슈우우웃!]
[골골골골골! 믿을 수가 없습니다! 데뷔전! 데뷔골!]
7~9초, 그라운드에 있던 선수들의 체감으론 고작 5초 남짓한 사이에 첫 번째 골이 들어갔다.
눈 깜짝할 새 들어간 골에 삼프도리아 선수들은 물론이고, 인테르 선수단 역시 이게 현실인가 싶어 상욱과 골대를 번갈아본다.
[el fenomeno!(*인테르 시절 호나우두의 별명)]
[호나우두의 재림입니다! 신이 내린 재능이! 다시 한번 주세페 메아차로 돌아왔습니다!]
홈팀 응원석으로 달려온 상욱이 멋지게 슬라이딩하며 이들을 바라보자 뒤늦게야 이를 체감한 관중들이 경기장을 떠나가라 환호한다.
“진! 진!”
“아시아 호나우두다!”
그리고 상욱의 골을 본 지암파올로 감독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다.
“저게 뭐냐? 저런 놈을 어떻게 막아 내냔 말이다.”
삼프도리아에겐 안타까운 일이나 상욱의 기적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삼프도리아가 다시 라인을 내렸습니다. 진이 무섭긴 한 모양이군요.]
[방금 골에 대단히 놀랐나 봅니다. 하긴 경기를 지켜보는 저희도 이렇게 놀랐는데, 상대하는 선수들을 어땠겠습니다.]
다시 상욱에게 집중되는 마크. 상욱이 움직일 때마다 2~3명이 그를 따라가니 수비에 공간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를 라우타로가 비집고 들어가 상욱에게 한 번 더 연결한다.
[라우타로가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갑니다! 동시에 페널티 라인에 있는 진에게!]
이번엔 아까와 달랐다.
역습 상황도 아니며 이미 페널티라인 안에 수비들이 전부 들어와 라인도 만든 상태다.
[동시에 2명이 마크하는데요! 와······.]
상욱이 양 다리를 차례대로 원형을 그리는 스텝오버를 이용해 수비 2명을 아주 가볍게 제압한다. 수비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그는 곧 발목을 강하게 꺾어 골대 구석으로 공을 차 넣는다.
[저······ 저! 말도 안 되는 테크니션을 보세요!]
[그대로오오오! 들어갔습니다! 5분 만에 2골! 고작 18살! 새로운 축구황제가 나타났습니다!]
5분 사이에 여러 번 얻어맞은 삼프도리아 선수들은 후반전에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지암파올로 감독이 터치라인에서 선수들에게 무어라 외치나, 완전히 겁에 질린 수비들은 그저 상욱의 한낱 먹잇감이 될 뿐이었고, 사냥꾼은 곧 먹잇감의 숨통을 완전히 끊었다.
[오른쪽에서 바렐라가 진에게. 그대로 감아 찹니다! 또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세 번째 골!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진! 여러분 믿기 힘드시겠지만, 이건 현실입니다!]
전상욱의 해트트릭으로 첫 경기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인테르.
경기가 끝난 뒤 오늘 경기에 대한 총평을 부탁받은 콘테 감독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읊조린다.
“호나우두의 전성기를 못 본 사람이 있다면 아쉬워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진의 경기를 보면 되니까요.”
< vs 유벤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