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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59화 (59/114)

59화

오모시로이 한 선수

천재라는 걸 너무 얕보는 거 아닌가? 난 진 이후로 천재를 본 적이 없다.

-안토니오 콘테(前 인테르 감독)

***

놀란 건 콘테와 코치진뿐만이 아니었다. 힘들어 쓰러져 있던 선수들마저 입을 떡 벌린 채, 기어코 마지막 바퀴를 뛰어가는 상욱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저거······ 저거 로봇 아냐?”

“아니, 농담 아니고 심장이 기계로 되어 있나?”

농담이 아니라 콘테와 선수들은 순간 상욱이 초인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고작 18살밖에 안 된 선수가 지금껏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50바퀴를 일정한 속도로 완주한 첫 번째 선수이니까 말이다.

“끄어어어!”

마침내 50바퀴를 채운 뒤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물을 얼굴에 들이부으며 심호흡하는 상욱.

“괜찮나?”

이온 음료를 갖다 주며 그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콘테 감독. 상욱을 만난 지 고작 2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미 그의 얼굴은 상욱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헉······ 허헉······ 예. 뭐 견딜 만해요.”

사실 힘들어서 헛구역질이 올라오나 자존심에 괜찮다는 듯 씩 웃어 보이는 상욱.

보통의 경우면 지금 상욱이 애써 괜찮은 척한다는 것을 바보도 알 것이나, 눈에 완전히 콩깍지가 낀 콘테가 애정 가득한 눈으로 묻는다.

“무슨 생각하면서 뛰었니? 그러니까, 이렇게 힘든데 완주까지 한 이유가 뭐야?”

그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 상욱.

‘시바, 운동하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하는 거지’라고 할 뻔했으나 그는 곧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한다.

“더는 지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생각해 보면 늘 성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4강 문턱에서 좌절된 월드컵과 psv 시절 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챔피언스 리그 8강.

전생 다니엘 잭슨 시절부터 너무나 많은 패배와 너무나 많은 좌절을 겪어 왔다.

“왜 다른 클럽들이 널 영입하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겠군.”

그에게 스포츠 음료를 건넨 뒤 상욱의 머리를 쓰다듬던 콘테가 곧 씩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가장 잘하는 선수가, 가장 열심히 한다.

이번 시즌 인테르는 누가 주축이 되고, 누구를 중심으로 될지 이미 첫 번째 훈련에 깨달은 콘테 감독이다.

***

“진!”

“덴절-.”

psv에서 상욱과 한솥밥을 먹었던 덴절 둠프리스가 달려와 그를 와락 안는다.

“월드컵에서 네 활약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도 얼마나 난리가 난 줄 알아?”

psv에서는 상욱의 활약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새롭게 팀을 이끌 원석을 찾고 있었고, 둠프리스는 인테르로 떠나기 직전 코쿠 감독과 반니에게 언젠가 상욱을 다시 복귀시키도록 설득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모두가 널 그리워하고 있어. 코디도, 테저도 모두 네 친구인 걸 자랑하면서 말이야.”

바로 저번 주까지 네덜란드에서 훈련했던 둠프리스까 애틋하게 말하더니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 실실 웃어 보인다.

“아! 하디 크루거 말이야.”

“하디?”

“그래, 월드컵에서 너한테 진 걸로 아직까지 분해 있더라. 다음에 만나면 무조건 이길 거라면서.”

“흥, 소시지 자식. 아주 박살을 내야 정신 차릴 놈이지.”

평소 하디의 오만한 말투를 따라 하며 장난치는 두 사람에게 유창한 영어 실력을 한 상욱보다 10cm는 작아 보이는 남성이 유난히 친한 척을 하며 이들에게 다가온다.

“여어- 친구들!”

체구는 결코 큰 편이 아니나 몸은 단단한 전형적인 장사 체형의 리젠트 머리를 한 아르헨티나의 공격의 미래라 불리는 이 남자의 이름은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네가 둠프리스구나! 이야- 지난 시즌 인테르전 봤어. 너만큼 정확하게 크로스 올릴 수 있는 선수도 잘 없을 거야. 뭐 있다면 디마리아 정도?”

상욱과 둠프리스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빠르게 말을 뱉어 대던 라우타로가 상욱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구나!”

무슨 섹시한 모델이라도 만난 것 마냥 상욱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군침을 흘려 대는 라우타로.

“뭐, 뭐야?”

남미 특유의 진한 눈썹을 위아래로 들썩이며 다가오는 라우타로의 모습에 적잖게 당황한 상욱이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자 그는 그대로 상욱에게 와락 안긴다.

“진짜, 진짜진짜 만나고 싶었어! 진! 나는 네 팬이야. 아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라싱 클루브 선수 전체가 널 존경해!”

“알겠으니까······ 이것 좀 놓고······ 너, 이게 무슨······!”

남성의 적극적인 구애에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았던 상욱이 억지로 라우타로를 떼어 놓자 그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숙이며 설명한다.

“당황스러웠으면 미안해. 왜냐면 나는 널 정말 좋아하거든. 마드리드와의 데뷔전부터 월드컵까지! 정말 네 영상을 백 번도 더 돌려 봤지 뭐야!”

아르헨티나와 독일은 전통적으로 라이벌 관계이며, 지난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독일에게 패한 아르헨티나는 어떡하면 게르만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잘 알지도 못하는 동양인이 나타나 대신 복수를 해 주니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특히 라우타로에게 상욱은 공격수의 꿈같은 존재였다.

“솔직히 같이 영입됐다고 했을 때 견제를 좀 할 생각이었어. 어찌 됐건 주전 경쟁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는 악의라곤 조금도 없는 그저 경외심 가득한 눈초리로 상욱을 바라본다.

“너 훈련하는 거 보고 그런 맘이 싹 가셨어. 넌 내가 실력으로 비빌 수 있는 선수가 아냐.”

말하면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상욱에게 악수를 건네는 라우타로.

상욱은 말 많고 부담스러운 그가 별로 달갑진 않았으나 결코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기에 팔을 뻗어 악수를 나눴다.

“라우타로야, 내 친구들은 나를 토로라고 불러.”

“반갑다, 상욱이야, 진이라고 불러.”

이제 악수가 끝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는 여전히 상욱만을 바라본다.

“너 내가 왜 토로라고 불리지는 지 궁금하지 않니?”

“어, 별로 안 궁금한데······.”

계속해서 엉겨 붙는 토로가 지겨웠던 상욱이 대놓고 싫은 티를 내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내뱉는다.

“역시 너도 내가 라우타로라서 줄여 부른다고 생각했구나! 사실 엘 토로(El Toro) 스페인어로 황소라는 뜻이야.”

내가 왜 황소라 불리는지는 궁금하지 않은지 되묻는 라우타로였으나 상욱은 이미 한참 전에 훈련장을 벗어나 라커룸으로 대피했다.

“아으 귀찮은 놈이 생겼네.”

앞으로 타로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며 툴툴거리는 상욱이었으나 사실 심심하진 않겠다며 어느새 미소를 짓는다.

***

“덴절, 다닐로, 너네는 경기 내내 쉰다는 생각을 하지 마. 끊임없이 공격하고, 끊임없이 수비해야 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선수들의 기량 점검을 위해 같은 리그 소속인 우디네세와의 연습경기를 준비 중인 인테르.

비안코네리의 영원한 수문장 디노조프의 소속팀이며, 세리에 통산 득점 6위에 빛나는 디나탈레의 친정팀이었기도 하다.

사실 강팀이라곤 할 수 없으나 얇은 스쿼드로 지난 시즌 중위권까지 올라온 뛰어난 조직력을 자랑하는 저력 있는 팀이다.

“센시, 브로조비치, 바렐라. 창의성 없는 너희들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미친 듯이 뛰고, 무조건 상대의 공을 뺏어라. 죽을 때까지 압박하는 거야.”

지난 한 달간 죽기 직전까지 훈련했던 3명의 미드필더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슈크리니아르, 데브라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로 올라와서 오버래핑해.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바로 빠질 줄 알아.”

양 풀백과 중원, 수비진까지 지시한 콘테가 오늘 공격 라인업에 있는 라우타로와 상욱을 보며 설명을 시작한다.

“역습전환 시 진에게 빠르게 공을 연결하고, 풀백과 공격수가 침투한다. 상대 수비 숫자가 많으면 고딘을 제외한 센터백들까지 전원 올라오는 거야.”

전통적으로 빅&스몰 조합을 좋아하는 콘테는 큰 키의 전상욱과 상대적으로 작은 라우타로를 조합했으며 특히 상욱에게 많은 전술 요구를 지시한다.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고, 필요시엔 언제든지 수비가담을 해 줘야 하며, 중원에서 밀릴 땐 지체 없이 내려 와 팀의 점유율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필요할 땐 측면으로 빠져서 공격의 활로를 열어 주기도 해야 한다.

“할 수 있겠니?”

다른 선수들에겐 악을 지르나 상욱에게만큼은 부드럽고 걱정스런 모습으로 말하는 콘테.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욱에게 매료되어 아끼는 것도 있겠으나, 어린 선수가 맡기에는 짐이 너무 많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웃었다.

***

[진이 중원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습니다. 아마 이 정도로 내려와서 경기하는 건 저 선수가 데뷔하고 처음일 것 같습니다]

상욱은 콘테의 지시대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중원의 살림과 공격 전개를 둘 다 하고 있는 상욱. 후방에서부터 시작된 공을 바렐라에게 받아 환상적인 드리블로 상대 중원을 무너뜨린 뒤 공간을 만든다.

[아, 좋습니다. 인테르 중원에 부족한 창의성을 진이 불어 놓고 있어요.]

[진이 뛰어오는 둠프리스 쪽으로 짧게 연결!]

이를 받은 둠프리스가 페널티 라인으로 뛰어 올라오는 라우타로에게 공을 전달하나.

[아! 옆으로 비켜갑니다. 마무리가 아쉬웠습니다.]

아쉽게도 라우타로는 결정력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그 후에도 인테르는 상욱을 중심으로 꾸준히 경기를 지배해 나가나 아쉽게도 골까지 연결되진 못한다.

그리고 이를 상대가 놓칠 리 없다.

[한순간에 공을 잡고서 역습하는 우디네세! 왼쪽으로 돌파해 갑니다! 풀백이 돌아오려면 멀었습니다!]

오버래핑으로 비어 있는 공간을 정확히 찾아낸 우디네세의 윙어가 재빠르게 돌파하자 순식간에 인테르 수비가 뚫린다.

아직 손발이 맞지 않은 인테르 3백은 이를 제대로 커버하지 못했고, 윙어는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

[아- 진이! 달려갑니다! 저거죠! 지난 월드컵을 찢어 놨던 속도가! 우와아!]

어느새 득달같이 나타난 상욱이 깔끔하게 공만 걷어 내는 슬라이딩으로 상대 공격을 막아 낸다.

[대단히 좋은 수비, 진입니다!]

전천후로 활동하는 상욱. 그는 분명 감독의 지시를 100% 아니, 120% 이행하고 있었다.

“뭔가······ 뭔가 아쉽단 말이야.”

그럼에도 콘테는 상욱을 보며 아쉬움을 내뱉는다.

분명 잘한다. 아니, 그냥 오늘 경기 MOM을 받을 만큼 뛰어난 건 분명하나 어딘가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월드컵에선 훨씬 더 대단했는데 말이야.”

[이번엔 연계 플레이까지! 좋습니다!]

어느새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한 상욱이 공을 몰고 앞으로 나가더니 중거리 슛이나 중원에서 올라오는 미드필더에게 스루패스를 보내기도 한다.

“혹시······.”

턱을 괴고 조용히 생각에 빠진 콘테 감독이 고민에 빠진 듯 홀로 읊조린다.

“내 지시가 오히려 녀석의 재능을 억압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인테르의 세리에 개막전.

FW : 전상욱, 라우타로

MF : 센시, 브로조비치, 바렐라

MF : 페리시치, 슈크리니아르, 데 브라이, 고딘, 둠프리스

GK : 한다노비치

콘테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 앞에서 이탈리아인 특유의 제스처를 선보이며 전술을 지시했다.

“공을 뺏기지 마라! 숏패스를 중심으로 가지만 상황에 따라 롱 볼을 사용한 킥앤러시도 사용해라! 오늘은 개막전이야, 팬들이 실망할 만한 결과를 보여 줘서는 안 된다!”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선수들 하나하나마다 지시를 내리는 콘테 감독.

“진”

풀백과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와 라우타로까지 설명을 마친 그가 지시를 받기 위해 고개를 들고 있는 상욱을 보며 말한다.

“넌 오늘 프리롤이다. 경기장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으니까 네 맘대로 해 봐.”

그 말에 상욱이 지금까지 본모습 중 가장 밝은 미소를 띠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거야말로 제가 가장 잘하는 거죠.”

< 세리에 데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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