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이탈리아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러시아 월드컵이 마침내 끝났다.
4강 대진은 프랑스vs벨기에, 크로아티아vs잉글랜드가
맞붙었으며, 결승은 프랑스와 크로아티아가 우승을 걸고 피터지는 한판 승부를 벌여 결국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에야말로 월드컵 우승의 적기라 생각한 잉글랜드는 8강 vs 대한민국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인지 크로아티아전에선 다소 허무하게 패배하였으며, 3,4위 전에선 벨기에를 만나 패배해 4위에 그치고 말았다.
프랑스는 이전 월드컵에서 남아공 쇼크와 같은 여러 대표팀 파벌과 내분 문제를 딛고 우승까지 차지하였으며, 그리즈만과 포그바와 같은 새로운 주축 선수들은 팀의 규율과 화합을 만들었고, 혜성처럼 등장한 음바페는 앞으로 프랑스 축구의 위대한 전성기를 예고했다.
이번 대회 정신력과 중원의 활동력과 창의력으로 팀을 무려 결승까지 올린 크로아티아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마드리드의 미드필터 모드리치는 이번 대회에서 대단한 활약과 더불어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왜 본인이 올해 발롱도르의 강력한 후보인지 제대로 증명했다.
그 외에도 벨기에와 스웨덴 등 여러 국가가 월드컵을 통해 증명하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것이었다.
대회 직전 조별리그 탈락이 확신됐고, 16강은커녕 1승이라도 거둘 수 있을까 고심되던 팀이었는데 이들의 무려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무너뜨리고 8강에 올랐으며, 대회 최다득점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독일전에서 커리어 사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 준 김재민은 아약스에서의 활약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고, 야신상 후보까지 오른 조우현은 병력 문제만 해결되면 해외 빅리그로의 진출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 11골을 기록하여 1958년 월드컵 쥐세트 퐁텐에 이어 단일 대회 최다 득점 2위에 오른 전상욱은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본인의 월드컵 데뷔전에서 4골, 세계최강 독일을 상대로 2골, 8강 무대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한 전상욱은 누가 뭐래도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가 되었으며 전 세계 어떤 공격수와 비견해도 밀리지 않을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상욱에게 자국으로의 귀화 제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에 대단히 후회하고 있었으며, psv는 팀 내 최고 재능의 활약에 기뻐하면서도 싼 값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던 것을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반면 월드컵 직전에 상욱을 영입한 인테르의 마로타 단장은 고작 10억도 안 되는 돈으로 호나우두를 사 왔다며 팬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었다.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진이야말로 팀의 부진을 끊고, 리그를 지배할 수 있는 선수란 것을요.”
사실 라이벌 AC밀란이 상욱에게 관심 갖을 때 진을 알게 된 마로타였으나, 굳이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시점에서 그는 이미 구단과 서포터들로부터 광기에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 2018년 러시아월드컵 기록 -
골든볼 : 전상욱(대한민국)
실버볼 :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브론즈볼 : 앙투앙 그리즈만(프랑스)
골든부츠 : 전상욱 11골(대한민국)
골든글러브 : 티보 쿠르투아(벨기에)
영플레이어상 : 전상욱(대한민국)
베스트 XI
FW: 전상욱(대한민국), 해리 케인(잉글랜드)
MF: 킬리안 음바페(프랑스),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케빈 더브라위너(벨기에), 크리스타이누 호날두(포르투칼)
DF: 라파엘 바란(프랑스), 티아고 실바(브라질), 디에고 고딘(우루과이), 마르셀루(브라질)
GK : 티보 쿠르투아(벨기에)
골든볼, 골든부츠, 영플레이어, 베스트11 등 이번 대회 4관왕을 석권한 상욱의 앞에는 더 이상 ‘유망주’니 ‘어린 선수’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프로 데뷔 1년 만에 월드컵 골든볼을 차지한 전상욱은 지금 현시점에서 해리 케인, 레반도프스키 등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
“제안 온 CF만 5개고, 일반 방송이나 예능 섭외는 다 셀 수도 없어.”
상욱의 psv 시절 안내인이자 네덜란드 생활을 도왔던 안대근이 국내에 들어와 임시 매니저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이는 국내에선 친한 자국민 매니저와 함께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상욱의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의 생각으로 대근은 월드컵이 끝난 뒤 한 달간 상욱의 국내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지상파 3사에서 연락이 다 왔어. 아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서도 꼭 만나고 싶다고 전화왔고, JTBS에선 단독으로 다큐를 찍고 싶다고 미팅하자더라.”
당연한 말이겠으나 월드컵을 끝내고 국내에 돌아온 상욱의 인기는 단연 폭발적이었다.
말 그대로 월드컵을 씹어먹고, 하드 캐리해서 역대 최초 원정 8강을 보낸 선수에게 이 정도 러브콜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내일 오전엔 축구협회장 참석 협회 행사가 있고, 오후엔 러시아 월드컵 국가대표 해산식이······.”
에인트호번의 스타에서 이젠 한순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상욱의 모습에 괜스레 뿌듯한 대근이 열렬히 스케줄을 읊으나 정작 상욱은 별 관심 없어 보인다.
“형, 나 내일 비행기로 이탈리아 갈 거니까 바로 표 알아봐 줘.”
“······어?”
“한국에 너무 오래 있었어. 체력도 다 회복했고, 부모님도 뵜으니 이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야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뱉어 대는 상욱의 말에 벙찐 대근이 멍하니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즐길 차례이며, 동시에 돈 방석에 오를 기회였다.
그는 인테르 입단식 전까지 한국에 남아 수없이 많은 CF와 방송에 출연할 것이며, 떼 돈을 벌 수 있었다.
“아니. 어차피 내가 하는 게 아니라서 할 말은 아닌데,아쉽지 않겠냐? 그냥 방송국에서 앉아서 얘기만 하면 돈이 들어오는 거야. 게다가-.”
이 대목에서 대근이 슬쩍 미소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상욱이 너 정도 나이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아이돌 없어?”
“연예인이요?”
“그래, 지금 대한민국에 너 좋다는 애들이 한둘인 줄 알아? 탑 아이돌 센터든, 유명 배우든 맘대로 골라서 사귀면 되는 거야!”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는 스포츠 스타의 특권. 대근은 지난 1년간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던 상욱이 잠시 휴식하길 바랐다.
다른 스포츠 스타들처럼 요트에서 새끈한 모델들과 파티도 하고, 유명 연예인들과 데이트해서 스캔들도 좀 나 보고.
1년간 쌓여 왔던 피로를 풀길 바랬으나, 상욱은 조금의 관심도 없는 듯했다.
“아직은 아니에요.”
상욱은 여자를 만날 생각이 없는 것도, 포그바와 호나우지뉴와 같은 스타들처럼 인생을 즐기고 싶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막 새로운 팀으로 이적했으며, 아직 전생의 소속팀인 밀월에겐 아무런 복수도 하지 못했다.
발롱도르는커녕 월드베스트도 한 번 들지 못한 상태에서 상욱은 인생을 즐기기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경기장 안에서만 행복하고 싶네요.”
[전상욱, 일정보다 2주 빨리 이탈리아行!]
[‘영웅’ 전상욱 국내 일정 진행 않고 조기 복귀!]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행사를 몇 개나 잡아 놓은 축구 협회와 정치인들은 빠르게 복귀한 상욱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으나 실제 여론은 이들과 완전 정반대였다.
-가족이랑 시간 보내자마자 바로 이탈리아로 갔다고? Kia~ 그래 이게 프로 선수지!
-축협 새끼들, 전상욱 데리고 행사 못해서 ㅂㄷㅂㄷ 하는 거 보소 ㅋㅋㅋ 속 시원하누
-월드컵 내내 전상욱 캐리로 꿀 빨아 놓고, 월드컵 지나서도 빨려고 하네. 축협 수준 ㅉㅉ
-이번 월드컵은 ‘전상욱’이 잘한 거지 ‘대한민국’이 크게 잘한 건 아님 ㄹㅇ
월드컵이 끝난지 2주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미 상욱의 머릿속엔 다음 시즌에 대한 구상밖에 없었다.
***
[인테르, 세리에 무패우승 출신 콘테 감독 부임!]
[인테르 콘테 부임, 전상욱 주전 경쟁 앞날은?]
[‘첼시 출신’ 콘테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
2018-19 시즌을 앞둔 인테르는 지난 시즌 떨어졌던 팀의 영광을 다시 세우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먼저 자국 출신의 레전드 미드필더이자 유벤투스와 첼시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안토니오 콘테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지금껏 맡아 온 모든 클럽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는 유벤투스가 지배하고 있는 현 세리에의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낼 것이며.
또한 망치(il martello)라는 별명답게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이 출중한 그는 팀에 영입된 어린 선수들을 월드클래스로 키워 낼 것을 기대했다.
영입된 선수들의 면면도 대단하다.
수비에는 스테판 더 브레이와 에레디비시 베스트 풀백 둠프리스를 등을 영입하여 알차게 보강했으며, 주포 이카르디가 떠난 공격진엔 AT 마드리드에 이적이 유력했던 ‘아르헨티나 황소’ 라우타로 마르티네즈를 콘테 감독의 강력한 요구로 마침내 영입했다.
거기다 현 세리에 톱을 다투는 미드필더 니콜로 바렐라를 시즌 막바지에 영입하여 공-수-미 전원을 알차게 보강했다.
라우타로, 바렐라, 둠프리스 등 좋은 선수 여럿을 데려온 인테르이나 서포터들이 원하는 선수는 따로 있었다.
[네덜란드를 정복하고, 세상을 놀라게 한 아시안이 주세페메아차로 왔습니다!]
인테르 구단 장내 아나운서의 호기로운 외침에 아시아 축구 영웅의 입단식을 보러 온 주세페 메아차의 1만 관중이 미친 듯 열광한다.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월드컵 골든볼 출신의 위대한 재능!]
아나운서의 기세 넘치는 외침과 함께 키 크고 잘생긴 앳된 소년이 천천히 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전-상-욱! 진입니다!]
상욱은 문득 1년전 에인트호번에 처음 입단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환영은커녕 자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이젠 경기도 않는 입단식에 1만이 넘는 관중이 오로지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인사와 함께 인테르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서 간단한 개인기를 펼치며 서포터들과 인사한 상욱.
“보여 주시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자신을 보며 흐뭇하게 웃어 보이는 마로타 단장 및 부회장 사네티와 인사한 상욱은 드디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을 보여 소리치는 관중들을 마주한다.
[진! 여기 봐 줘!]
[사랑해 진! 나랑 사진 찍어 줘!]
고래고래 외치는 서포터들을 보며 상욱이 씩 웃어 보이자 곧 장내 아나운서가 질문과 함께 그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진! 인테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팬들을 위해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상욱은 서툰 이탈리아 어로 떠듬떠듬,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긴말 않겠습니다. 세리아를 네라주리로 물들이겠습니다.”
< 안토니오 콘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