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축구 종가
[원정 8강, 역사 쓴 대한민국!]
[3:0! 전상욱 1골! 대한민국 스위스 넘어 8강으로!]
[펠레 “대한민국, 8강 넘어 4강도 가능.”]
16강에 올라간 것도 기적적인 기록이나 무려 상대를 3:0으로 이긴 것에 이젠 전 국민이 월드컵에 미쳐 있었다.
TV의 모든 채널에서는 한국의 조별리그와 16강 경기 하이라이트를 이미 수천, 수만 번 방영했으며 8강 상대인 잉글랜드에 대한 분석과 유명 선수에 대한 방송을 24시간 내내 반복하고 있었다.
한국 대표팀 전체가 전국민적 인기를 끌었으며, 개중에서도 ‘영웅’ 전상욱에 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방송에서는 상욱의 가족을 인터뷰하고, 그가 다녔던 대건고를 집중 취재하는 등, 언론은 어떻게든 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들!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으니까 8강전도 잘하자! 파이팅! 사랑해!]
상욱의 부모님의 인터뷰와 응원이 공중파 방송에 그대로 나가고, 일각에서는 전상욱을 발굴한 대건의 前 감독인 백승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으나, 갑질과 폭행, 심지어는 뇌물까지 재조명되어 떡상은커녕, 더욱 수면 밑으로 떨어졌다.
8강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완벽한 복수이자, 아시아의 축구 변방에서 단숨에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선 한국은 8강에 진출한 다른 나라들에게도 견제의 대상이었다.
특히 8강 상대인 잉글랜드는 독일과 스위스 등이 격침된 것을 보곤 대대적인 한국 분석에 나섰다.
“매과이어-스톤스-워커 3백은 물론이고, 헨더슨과 델프가 강하게 프레싱해야 합니다.”
“우린 16강전보다 더욱 촘촘하고, 더욱 똘똘 뭉쳐서 진을 막아야 해요, 진은 정말 괴물 그 자체입니다.”
“마치 데니스 로나 케빈 키건을 보는 것 같아요. 정말 11명이 한 몸처럼 수비해야죠.”
영국 공영방송 BBC에선 리네커와 이안 라이트 등과 같은 자국 레전드들이 전상욱의 위협에 대해 여러 번 경고한다.
축구 종가로서 자존심이 어머어마한 영국인들이 아시아 축구 변방 국가의 10대 소년을 자국 최고의 레전드 키건, 로에 비견하는데도 자존심 상하기는커녕 그의 활약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 지금 상욱의 활약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미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아시아 영웅의 영입을 위한 눈치싸움이 한창이었다.
[맨시티, 아게로 대체자로 전상욱 영입 정조준!]
[클롭 “진은 3억 유로에 달하는 선수. 호날두·메시에 도달할 자질 충분해.”]
[진에게 퇴짜 맞은 ‘맨유’ 팀 내 최고 주급 제시하며 러브콜?]
맨시티, 리버풀, 맨유 등 프리미어 리그에 난다긴다하는 구단들은 상욱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이미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인테르 측과 물밑 협상 중이라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현시점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공격수.
잉글랜드의 감독 사우스게이트는 이런 상욱을 막기위해 라커룸 안에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아직도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멍청이는 없겠지?”
케인, 메과이어, 스털링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잉글랜드의 라커룸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긴장을 숨기지 못했다.
보통의 한국이었다면 아무리 잉글랜드가 유럽에서 부진하다 할지라도 웃으며 경기하겠으나, 지금의 한국은 권투 시합 중에 칼을 들고 있는 것과 같았다.
물론 그 칼이 전상욱이었다.
“진 혼자서 넣은 골만 9골이야. 상대는 독일, 스웨덴, 멕시코, 스위스. 우린 총력전을 펼쳐야 해!”
공격적인 풀백인 데니 로즈와 트리피어가 빠르게 오버래핑을 하며 한국의 약점인 좌우를 붕괴시킨 다음, 그 틈을 스털링이나 래시포드가 공을 몰고 바로 득점하거나 케인에게 전달한다.
“다이어와 델프가 진을 전담한다. 반칙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공도 못 건드리게 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야, 그놈은.”
한국전을 상대로 한 전술을 설명하던 사우스게이트 감독. 선발 라인업 전원에게 전상욱 파훼법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가던 도중 문득 말을 멈춘다.
‘젠장 설명한다고 막을 수 있는 놈이냐?’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감독 사우스게이트.
그는 인생에서 가장 기이하고, 괴상한 공격수의 등장에 대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진만 없다면 다른 선수들은 별거 없다. 우리가 준비해 온 대로 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다.”
잔뜩 긴장한 사우스게이트. 분명 아시안 괴물은 자신의 수비진을 박살 낼 것이며, 경기 중 그에게 여러번 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잉글랜드가 대한민국에 패배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기는 건 우리야.”
***
[다시 한번 2002년의 함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역사를 만드는 땅,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한국과 잉글랜드의 러시아월드컵 8강 경기가 지금 막 시작됩니다!]
[원정 8강입니다. 우리 선수들! 한 번만 더 이기면 4강! 또 한 번 더 이기면 결승! 지금부터 하는 모든 발 걸음이 역사에 기록되는 겁니다!]
[이미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원정 8강이니까요!]
파죽지세로 8강까지 올라온 한국과 잔뜩 긴장한 상태의 잉글랜드.
혹자들은 지금 기세면 한국이 잉글랜드까지 쉽게 꺾고, 4강에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이는 이번 대회를 ‘제대로’ 준비해 온 잉글랜드를 무시하는 생각이었다.
[위험한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내줬습니다. 프리킥은 트리피어 선수가 준비하네요]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가 장점인 공미 델리 알 리가 공을 잡고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이성용이 태클로 저지하자 잉글랜드 쪽에서 프리킥 기회를 잡는다.
[킥이 굉장히 정교한 선수인데요. 우리 선수들 수비벽을 제대로 세워서······ 아······.]
[들어갔습니다, 키어런 트리피어. 프리킥의 교본과도 같은 골입니다]
첫 골이 들어가고, 잉글랜드 관중들이 미치도록 환호한다. 전반 20분 만에 들어간 선제골에 한국 선수들이 당황하나.
상욱만은 고고히 경기장을 어슬렁거리며 뛸 준비를 마친다.
[선제 골을 먹혔으니 우리도 좀 더 공격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잉글랜드가 라인 간격을 좁고, 촘촘히 짜왔습니다. 전상욱 선수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하고 나왔네요.]
아예 전상욱이 공을 갖지도 못하게 만들자는 것이 이들의 작전이었고,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상대는 전상욱이다.
선제골이 들어간지 5분도 되지 않았을 무렵.
[이성용이 중앙에서 공 잡고, 좋아요! 전상욱 쪽으로 길게 찔러 줍니다!]
아시아 최고의 패스 마스터라 불리는 이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 다이어를 지나 상욱에게 공을 연결한다.
[굿 패스입니다만, 워커가 커버를 위해 뛰어갑니다!]
카일 워커.
순간 최고 속도가 38km까지 이르는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스피드를 보유한 풀백.
상욱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워커는 스피드로 세계 최고를 다투는 선수인데······.
[어······ 어어!? 못 따라옵니다! 워커가! 못 따라와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스피드! 보면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상욱이 순간 이를 악물고 상대 페널티 라인까지 쉬지 않고 질주하자, 당황한 워커가 두 발짝 뒤에서 상욱을 쫓아간다.
전 세계 1, 2등을 다투는 선수들의 질주에 다른 이들은 감히 잡지 못하고, 뒤늦게 달려온 스톤스가 상대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나 손에 힘을 주며 잡기도 전에 이미 상욱은 달아난 뒤였다.
페널티 라인 오른쪽으로 달려가던 상욱은 곧장 왼쪽 골대 안쪽으로 강하게 골을 성공시킨다.
[전상욱! 10호 골! 전상욱! 바로 이겁니다!]
[월드클래스!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순식간에 동점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수! 전상욱입니다!]
[여러분 이게 1년 동안 하는 리그가 아닙니다! 월드컵이고, 저 선수는 고작 5경기밖에 안 했습니다만, 역대 월드컵 최다 골 기록이 고작 6골밖에 안 남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니 아시아의 자랑입니다!]
상욱의 골로 상승 중이던 잉글랜드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가라앉는다.
벤치는 물론이고 그라운드 위에 있는 선수들마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특히 대놓고 상욱과의 속도 대결에서 패배한 워커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그는 대단히 거친 영국식 영어로 빙긋 웃어 보인다.
“뭐긴, 축구의 신이지.”
***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긴장한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식은땀을 질끈 흘리나 그의 입꼬리는 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잉글랜드가 넣으면, 전상욱이 넣고, 전상욱이 넣으면, 잉글랜드가 넣는다.
“둘 다 공격적으로 나가면 우리가 절대 질 수 없지.”
전상욱의 공격력은 토가 나올 정도로 강력했으나 한국 수비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약했다.
독일전부터 각성한 김재민이 어떻게든 분전해 주고 있으나, 현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케인과 스털링, 래시포드를 모두 막긴 버거워 보였다.
[워커가 하프라인까지 공을 몰고 앞으로 보냅니다. 뒤이어 핸더슨이 받는데요.]
[아! 우리 선수들 공격 전개를 좀 막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꼼짝도 못하고 있거든요?]
이번 대회 잉글랜드의 조직력은 참가국 중 최고 수준이었으며, 개개인의 기량도 대단히 높았다.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이 압박하는 선수를 간단하게 제친 뒤 위로 올라가 스털링에게 패스하자 그는 수비수 2명을 달고 뛴다.
[스털링 뛰는데요! 막아야 해요! 케인 쪽으로 패스 하구요! 케인!]
[아! 골대 맞습니다! 실점하진 않았습니다만, 이건 한점 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잉글랜드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나왔다.
흐름상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이들은 상욱에게 전담 마크를 3명씩 붙여 지키게 만든 뒤, 라인을 올려 한국을 가둬 패기 시작한다.
전반 38분.
중앙 쪽에서 공이 돌지 않자 풀백들의 오버래핑으로 공격에 활기를 돋구려고 했던 한국.
이는 반대로 수비의 공백을 야기했고, 맨유의 미드필더 린가드를 이를 놓치지 않고 오른쪽으로 뛰어 들어가는 워커에게 공을 전달한다.
[워커가 공을 잡고 길게 오른발 크로스!]
공은 순간 달려 들어온 케인의 왼쪽 발 끝에 걸린다.
[아······ 헤리 케인이 득점에 성공합니다. 이번 대회 5호골, 전상욱에 이어 득점 2위입니다]
[네. 지금은 워커가 공을 잡고 크로스를 올릴 때, 케인이 먼 곳에 있다가 김재민 앞으로 잘라 들어가는 플레이에 당했습니다. 김재민 선수, 오늘 경기 활약이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2:1, 전반 45분.
이대로면 잉글랜드가 앞선 채로 전반이 종료될 것이 자명한 상황.
“땡! 하면 바로 위로 뛰어 올라가요.”
사우스게이트의 작전을 알아챈 상욱이 주장 이승민을 보며 자신 있게 말한다.
“무슨 소리야?”
승민이 되묻고 뭐라 말할 기색도 없이 하프라인 밑에 있던 상욱이 공을 잡은 채 쌩하니 달려간다.
[첫 번째 골보다 더 빠른 것 같습니다! 아, 스피드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그저 공을 잡고 상대방 골대로 미친 듯이 뛰어가는 상욱.
그를 전담 마크하던 다이어가 순식간에 속도로 뒤처지고, 델프는 그에게 몸통으로 부딪쳤다가 그대로 넘어진다.
[와······ 저게······ 아니, 와, 이게 현실인가요?]
해설이 뭐라 할 말도 없이 그저 감탄만 하고 있을 때 상욱은 이미 무아지경으로 상대방 라인까지 올라 들어간다.
“젠장! 막아!”
상욱이 페널티 라인 오른쪽으로 들어가자 순식간에 놀란 잉글랜드 수비수 3명이 동시에 상욱에게 뛰어가자.
“이거! 하디 크루거한테 배운 패스라고!”
그는 뒤늦게 뛰어들어온 이승민에게 낮고 빠른 킬패스를 전달한다.
[전상욱이 이승민에게- 골!]
[들어갔어요오오! 이승민! 2:2!]
5경기 10골 2도움.
이미 대회 MVP는 상욱의 차지였다.
< 안녕, 러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