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vs 독일
[멕시코전 2:3 패배! 스웨덴전과 무엇이 달랐나?]
[흔들리는 신정길 리더십, 독일전 조기 강판하나?]
[2골 전상욱! 패배 속에서도 빛났다!]
멕시코전 패배는 국민과 언론들로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첫 번째는 선수들은 투혼.
실력이 부족하면 투혼이라도 발휘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애초
강팀인 멕시코보다 집착이나 열정이 낮은 것이 경기에 그대로 보였다.
두 번째는 감독의 전술 실패.
스웨덴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멕시코를 상대로 1차전과 그대로 같은 전술을
들고나온 것에 대한 책임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세 번째는 후반 막바지에 한 잘못된 선택.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은 수비를, 감독은 마지막까지 라인을 올려 공격을 선
택한 상황에 곧바로 실점 후 패배로 연결된 상황은 명백한 감독의 실책이었다.
언제든 냄비 끓듯 바뀌는 국민성 덕에 스웨덴전까지만 해도 선플로 넘치던 포
털사이트와 커뮤니티는 한순간에 대표팀에 대한 비난으로 변했다.
-신정길 안 짜르냐? 시발 진짜 국민들 혈압 오르는 거 볼래?
-‘전상욱’이 잘하는 거지 ‘대한민국’이 잘하는 게 아님. 전상욱 없었으면 스
웨덴한테도 졌다.
-대체 마지막에 라인은 왜 올린 거냐? 경기장 안에서는 수비하자고 했다며?
신정길 시발······.
-독일을 이길 리가 없는데 이러면 그냥 또 조별리그에서 떨어지는 거 아님?
대중들의 비난에 극에 달했을 무렵,
[경우의 수 따져야, 독일을 넘어야 자력 16강 가능.]
[독일전 승리해야 자력 진출 가능.]
언론에선 대한민국 축구의 단골인 경우의 수를 따지기 시작했으며, 각자 16강
진출에 대한 계산을 내놓고 있었다.
“모두 한번 승리하고, 한 번씩 패배한 상태야. 나머지 3팀 모두 목숨을 걸고
경기를 준비할 거야.”
라커룸 안에서 이승민이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통솔한다.
감독을 포함한 코치진은 이미 라커룸을 비워 둔 상태고, 특히 감독은 아예 호
텔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K리그와 국가대표 수석코치를 겸하며 감독으로서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 준 신
정길은 결코 무능한 감독이 아니었으나, 아직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나서긴 .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언론과 여론의 집중포화에 그의 멘탈은 부서질 정도로 흔들렸고, 제대로 된
업무수행조차 할 수 없었다.
뭐 신 감독 본인도 인정하는 것 같고 말이다.
특히 멕시코전 막판에 보인 거나한 실수에 협회 쪽에서도 감독의 역할을 최소
화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주도권은 전상욱과 이승민을 위시로 한 선수단에
게 돌아갔다.
전략, 전술의 경우 그란데 수석코치가, 그라운드 내에서의 판단은 상욱과 주
장 이승민이 맡았다.
“멕시코는 반드시 스웨덴을 잡을 거야.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승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라커룸 안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짐작하고 있다.
16강에 가려면 방법은 하나다.
독일을 잡는 것.
***
“이승민, 전상욱을 제외하면 별 볼 일 없는 팀이다.”
독일의 감독 요하임 뢰프 감독이 경기 직전 선수들에게 경기 브리핑을 진행했다.
“이승민은 혼자 득점까지 하기엔 모자라고, 전상욱은 이전 2경기 풀타임 출전
에 지쳐 있어.”
뢰프 감독을 비롯한 독일 대표팀 전체가 한국을 무시하고 있었다.
애초 한국에게 승리하지 못하면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
나, 그들에게선 긴장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게 패배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과의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도 뢰프는 ‘한국팀 경기를 잘 보지 못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라고 앞선 스웨덴이나 멕시코와 치른 경기들만 봤다
는 말만 했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뮐러는 ‘이승민, 전상욱만 막으면 이긴다.’는 뻔한 말만 뱉었으며, 주장 노이
어 역시 ‘전상욱을 제외하면 위협적인 선수는 없다.’는 인터뷰를 했다.
이런 독일의 모습은 국내에서 대단한 오만하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
다며 비판받기도 했으나 상대는 세계 최강이자 디펜딩 챔피언 독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세계 챔피언을 상대한 날을 한국에 기념일로 삼게 해 주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오만하고 자신감 높은 말을 끝으로 뢰프 감독이 돌아가
자 독일 선수들은 이미 한국전이 아닌 그 후의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16강 상대가 스위스라고 했나?”
“8강은 콜롬비아나 잉글랜드겠군.”
EPL 정상급 윙어 이승민과 현 유럽에서 가장 핫한 공격수 전상욱이 이끄는 공
격진은 언뜻 화려해 보이나.
훔멜스-보아텡이 이끄는 월드클래스 수비진과 수비형 미드필더 사미 케디라의
조합은 위협을 막을 준비를 마쳤다.
그저 끝나고 맥주나, 휴식이나 취할 생각에 빠져 있는 독일 대표팀 사이로 한
남자만이 유일하게 표정을 썩히고 있었다.
“맘에 안 들어.”
상욱의 팀 동료이자 이번 독일 대표팀 마지막으로 합류한 하디 크루거가 불만
스럽게 중얼거린다.
“왜 그래? 친구?”
“진을 무시하다간 큰코다칠 거야.”
“무시 안 해. 그래서 케디라를 바로 진 전담마크로 세우는 거잖아?”
뮐러의 말에도 전혀 위로되지 않은 하디가 더욱 표정이 일그러지며 말을 잇는다.
“자칫하다간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야. 진이 한번 맘먹으면 어떻게 하는
지······.”
“하디.”
뮐러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읊조리는 하디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는다.
“우리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진이 얼마나 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디 크루거이나, 솔직히 말해
서 독일이 한국에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현 세계 최강, 역대 최고의 축구팀이라 불리는 독일 대표팀은 지난 월드컵 우
승 멤버에 새로운 미래들까지 참여한 말 그대로 ‘위대한’ 팀이다.
“뭐······ 그건 아닌데.”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디였으나 이상하게 맘 한편에 담긴 불안이 사
라지지 않았다.
“우린 역대 최강의 팀이 될 거야.”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어 보이는 뮐러와 불안과 함께 다시 진을 만난다는 생
각에 흥분한 하디가 그라운드 위로 나섰다.
“멕시코전 이기지 그랬냐.”
로비에서 대기하며 상욱을 만나자마자 인사 대신 툴툴거리며 다가오는 하디.
인종도, 나이도, 생활 방식도 다른 인간이나 하디는 상욱이 맘에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으나 그것이 오만하게 느껴지진 않으며, 이
를 증명하는 상욱의 모습은 하디에게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젠장, 같이 올라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끼는 친구의 첫 월드컵이 이렇게 허무하게,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탈
락시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으나- 하디는 진의 친구이기 전에
독일 국가대표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또 시작이네, 멍청한 쏘세지 새끼.”
상욱은 도리어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하디에게 한마디 쏘아 주었다.
“오늘 처발리고 질질 짜지나 마.”
당연히 자신의 나라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을 위로하는 하디의 모습
이 기가 찼던 상욱이 하디를 보며 손가락 욕과 욕설을 내뱉는다.
“Arschloch!(병신!)”
이에 주변에 있던 몇몇 독일 선수들이 동요하나 상욱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
은 채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섰다.
“실력만큼 이상한 놈이군.”
“소문대로 또라이구나?”
상욱의 행동에 뮐러와 키미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나, 하디는 오히려 상욱
을 향해 낄낄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새끼, 이래야 이길 맛이 나지.”
***
- 독일 라인업 (4231) -
FW : 티모 베르너
MF : 토마스 뮐러, 하디 크루거, 마르코 로이스, 사미케디라, 토니크로스
DF: 요주아 키미히, 마츠 훔멜스, 제롬보아텡, 요나스 헥토어
GK : 마누엘 노이어
- 한국 라인업 (442) -
FW : 이승민, 전상욱
MF : 문성민, 이성용, 이성재, 황찬희
DF: 강철, 김영현, 김재민, 김용
GK : 조우현
***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조별리그 3라운드 경기가 기적을 만드는 곳, 카
잔 아레나에서 펼쳐집니다.]
[이번 경기에 주목할 점은 1, 2라운드에서 실책을 범했던 장수현 선수가 빠졌
다는 것입니다.]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수 있는 독일은 오만하리만큼 한
국에 대해 분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상대에 맞는 전술을 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전략
을 가지고 왔고, 이들은 오만함이 아닌, 자신감이라는 듯이 시종일관 한국을
흔들었다.
전반 14분,
[독일의 중원이 왜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지 알겠네요.]
스완지의 이성용과 전북의 이성재의 조합은 결코 나쁜 중원이 아니었으나 상
대는 독일이다.
케디라-하디크루거-토니크로스
월드 클래스 중앙 미들진은 한국에게 들어가는 공 배합을 모조리 차단했고,
최전방과 미들진에 끊임없이 공을 뿌려 준다.
활동량 많은 케디라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상대를 압박하면 마드리드의
‘교수’ 크로스가 공수를 완벽히 조율에 볼을 배급하면 하디가 끊임없이 공격
전개에 나선다.
[크로스가 탈압박 벗어 내면서 하디에게 연결, 아 우리 선수들이 막아 내기
쉽지 않습니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받은 하디가 이성용의 압박을 손쉽게 떨쳐 낸 뒤 패
널티 라인으로 진출한다.
“하디, 막아!”
전상욱의 외침에 오른쪽 풀백 강철과 수비수 김영현이 동시에 달려드나 하디
는 곧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앞서 뛰어가는 로이스에게 빠르
게 패스한다.
[아- 위험합니다아! 슛! 막아냅니다!]
[조우현 펀칭! 끝까지 처리해야 해요! 베르너가 슈웃!]
겨우 펀칭해서 막은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원톱 티모 베르너가 찬 발리
슛이 정확히 오른쪽 골대 상단을 향해 날아갔다.
[아! 얼굴로 막았습니다! 김재민입니다!]
[위험했습니다! 하디 크루거를 잘 막아야 해요! 저 선수에게 틈을 주면 안 됩
니다!]
전반 25분,
[이번 경기에서만큼은 우리 수비가 제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선 1, 2라운드 내내 부진했던 김재민이 오늘은 제대로 활약해
주네요!]
여전히 독일의 페이스로 경기가 흘러가고, 이들은 끊임없이 한국의 골문을 두
드리나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골이 나오진 않았다.
왼쪽 골라인 근처에서 서성이던 하디.
[하디한테 공을 주면 안 됩니다. 저 선수는! 자기 진영에서 공을 갖고 있어도
뺏어야 해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선수거든요!]
[아! 반 박자 빠른 스루패스! 이야! 전상욱입니다!]
베르너가 패널티 라인 깊숙이 뛰어나오는 것을 알고 연결한 패스. 뮐러와 로
이스도 뛰어들었으나 공을 받기위해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온 상욱이 순간 몸
을 날려 공을 커트해낸다.
[어떻게 공격만큼 수비도 이렇게 잘할까요, 전상욱 선수는!]
[공격 전개에 마무리에, 수비에 상대 흐름차단까지! 혼자서 5~6인분하는 선수
입니다!]
상욱의 분전과 함께 한국의 수비 역시 목숨을 걸고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하디는 완전히 예전 실력을 되찾은 듯 보이네요.]
[네- 저런 선수를 상대로 아직 한 골도 내주지 않은 우리 수비도 정말 칭찬할
만합니다!
“해내야 해”
대한민국의 수비수 김재민이 이를 악물고 그라운드위를 뛰어 다닌다.
지난 2경기 동안 5번이나 실점한 한국 수비는 전상욱-이승민이 있는 공격진과
대단히 비교됐고, 황금과 쓰레기가 공존하는 팀이라며 조롱당했다.
로이스와 경합에서 이겨 낸 뒤 이를 꽉 물고 뛰어다니는 김재민.
지난 몇 개월간 상욱과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상욱은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월드 클래스로 성장했으나 자신은 이번 대회
worst로 선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김재민이 목숨을 걸고 상대 선수를 막고 있을 때-.
“앞선 2경기보다 수비가 낫네요.”
“그래도 별거 없어.”
독일 벤치와 선수들은 압도하는 경기를 낙관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스코어는 0대0이었으나, 독일 선수들은 진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
고, 오늘 최고의 활약을 보이는 하디 크루거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져 갔다.
“지랄하지 마.”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저 미친 괴물이 아직 공격을 시작하지도 않은 것을.
그리고 상욱이 그라운드 위에서 서서히 뛰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다음 에피소드는 인테르입니다
신계에 다다를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