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원맨팀
[Goal.com] 월드컵을 빛낼 20인의 슈퍼스타
'위험한 10대' 전상욱, 월드컵 삼킨다.
-psv의 라이징 스타이자에서 프로 데뷔 1년 만에 인테르로 둥지를 옮긴 전상
욱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공격수 중 하나로 불린다.
2017-18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여 탈락
직전이던 PSV를 수렁에서 건져냈으며, 시즌의 절반만 소화하고도 에레디비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묘기에 가까운 드리블과 보고 있으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스피드, 양발을 자
유자재로 사용하며 구사하는 빠른 타이밍의 슈팅은 인테르에서 그를 왜 새로
운 ‘el fenomeno’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듯하다.
한국대표팀에 데뷔하자마자 독일, 스웨덴, 멕시코와 같은 강호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클럽팀에서와 같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
목된다.
***
[솔직히 말해서 한 달 전에 이 스코어로 멕시코에게 지고있으면 전 희망적인
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에게 저 정도 강팀을 상대로 스스로 경기를 뒤
집을 수 있는 선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있다, 이 말씀이시죠?]
이 대목에서 해설은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다소 목소리까지 떨어대며 외친다.
[있죠, 있습니다. 우리한텐. 아시아 역사상, 아니 감히 말하는데요. 축구 역
사상 가장 위대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이제는 있습니다]
충격에 빠진 이는 해설만이 아니다.
“진짜 저런 선수를 눈으로 직접 보는구나...”
“psv에서 활약했던 게 거짓이 아니었어”
직전까지 상욱의 오만함과 제멋대로인 행동에 불만이 쌓여 있던 대표팀 동료
들은 골이 들어가자마자 입을 떡 벌리고, 몇몇은 절로 박수를 치기도 한다.
상욱은 재빨리 골대로 다가가 공을 주워 들고 하프라인으로 돌아왔다.
“당신들이! 공만 제대로 주면! 또! 넣을 수 있으니까! 다시 공 보내!”
골을 넣기 전과 골을 넣은 후의 선수들 반응이 극명하게 변했다.
0:2
직전까지 보인 상욱의 모습이 패배를 직감한 경기에서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때 보인 후배의 맹랑함이었다면 지금은 팀 내 최고 에이스가 경기 조율을 위
한 지시로 바뀐다.
웃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상욱은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으니까.
남은 시간 8분,
“위에서 기다려. 어떻게든 위로 공 올려 줄 테니까.”
지고 싶지 않고, 절박한 건 다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길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기자 이들은 죽을힘을 다해 볼을 보호하
고, 운반한다.
가령 오늘 경기에서 아무런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이성재가 그렇다.
[간만에 공을 잡은 이성재가 아! 중앙에서 압박을 뚫어 냈습니다!]
[전상욱 쪽에 공간 비었어요. 그렇죠!]
이성재의 스루패스가 순식간에 에릭 구티에레즈를 지나 상욱에게 전달된다.
동시에 수비 2명이 그에게 힘껏 돌진하나 상욱은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반박자 빠르게 골대 안 쪽으로 공을 살짝 올린다.
[전상욱 그대로 칩샷! 아! 골대를 강타합니다!]
[너무, 너무나 아쉬운 장면입니다! 월드클래스 공격수가 만들어 낸 완벽한 장
면!]
비록 골로 연결되진 않았으나 이젠 한국 선수들 누구도 상욱의 말에 토를 다
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한국 선수 전체가 상욱을 의지하고 있었다.
***
“저놈의 아시안은 끝까지 말썽이구만.”
멕시코의 축구 감독 오소리오가 한숨을 내쉬며 코치진과 분주하게 전술 변화
를 논의한다.
스코어부터 앞서고 있었고, 상대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친
상태였다.
방심은 금물이나 사실 이 정도면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이 분명했다.
“속도 10점, 기술 10점, 골 결정력 10점, 팀 장악력······.”
강팀이든 약팀이든 가리지 않고 항상 상대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에 대한 맞
춤형 전술을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해 ‘교수님’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당연히 한국전에 대한 해법도 충분히 가지고 나왔다.
개중 전상욱은 양 팀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했고, 그가 평가할 수
있는 모든 항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팀 장악력 하나만 빼고.
이는 상욱이 못나거나 리더쉽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제 막 대표팀에 들어와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동양식 문화를 알고 있
었기에 당장 본인 뜻대로 선수들을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
각했는데······.
“10점. 아니 줄 수만 있다면 13~14점은 더 주고 싶어”
오소리오 감독은 결코 후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교수라는 별명답게 선수를
보수적이고, 다소 짜게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가 상욱에게 매겼던 팀 장악력 점수는 5점. 그러나 방금 장면으로 감독은
얼마나 자신의 판단이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울릴 만한 목소리를 가진 것도 아니야.”
그저 실력.
압도적인 실력 하나만으로 선수단 전체를 이끄는 상욱은 마침내 역전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전상욱 선수를 막기 위해서 멕시코 선수들 전원이 달려듭니다!]
88분.
이승민, 전상욱을 제외한 한국의 어떤 선수도 공격 전개가 불가능함을 확인한
오소리오 감독이 이들에게 수비를 여럿 붙인다.
“어떻게든 막아내라, 죽을 힘을 다해서 수비해!”
특히 상욱에겐 체력 많고, 투지 넘치는 피지컬 강한 수비수들이 4명씩 붙어
중앙으로 이동을 아예 막자, 상욱은 곧장 다른 작전을 구상했다.
[왼쪽 터치라인 밑으로 이동하는 전상욱! 바로 수비 2명이 따라 들어옵니다]
방법은 터치라인 바깥으로 공을 차서 작전을 새로 구상하는 것이나 백 패스해
서 다시 공격 전개를 준비하는 것.
평범한 선수들이라면 이렇게 공격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전상욱입니다.]
왼쪽 옆으로 질주하던 상욱을 막으러 수비가 따라가자 그는 급격히 방향을 바
꿔 패널티라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막으러 가던 수비 하나는 쓰러지고, 한 명은 이미 뒤쳐진 상태.
[수비가 막으러 뛰어나옵니다만! 빨라요! 너무나 빠릅니다!]
[오초아 골키퍼가 나오는데요! 그대로 슛!]
순식간에 1:1이 된 상태에서 막기 위해 나온 골키퍼를 농락이라도 하듯 골키
퍼가 뛰는 것을 보고서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켰다.
이번엔 한국의 해설이 아닌 반니가 속해 있는 영국 방송사 패널들이 흥분해
소리친다.
“Fantistic Gooool!”
“New 호나우두입니다! 은퇴한 호나우두가 브라질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있
는 아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건 팀 연습경기가 아니에요! 무려 월드컵입니다, 월드컵! 진과 비슷한 선
수들은 이 경기를 집에서 보고 있을거라구요!!”
이번엔 상욱의 활약을 예측했던 반니스텔루이마저 충격에 빠진 듯 중얼거린다.
“펠레야 저건, 아니. 그보다 위인지도 모르지······.”
***
추가 시간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
상욱은 이대로 경기가 끝나길 바랐다.
불과 10분 만에 0:2에서 2:2 동점까지 따라붙었으나 이는 단순히 상욱이 잘해
서만이 아니다.
멕시코 선수들의 실책과 기적에 가까운 운이 따랐기에 순식간에 2점을 따라붙
은 것이지, 기세가 올랐다고 해서 체력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젠 막아야 해요.”
“그래. 이젠 죽도록 막자.”
체력의 한계를 넘어 헛구역질까지 하고 있는 두 사람.
더 이상의 공격은 불가능하며 이제 남은 것은 모든 선수들이 똘똘 뭉쳐 이 스
코어를 유지해야 할 것이고, 그라운드에 있는 모든 한국 선수들 역시 같은 생
각이다.
1차전에서 큰 점수 차로 패배한 멕시코는 이번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다면
16강 진출이 거의 불가능에 이른다.
“다 뛰어 올라가! 무조건 이겨야 해!”
로자노-치차리토-벨라 3톱을 포함한 선수들 멕시코 선수 대부분이 한국 진영
으로 달려 나온다.
“죽어도 막아야 해!”
이승민의 지시에 따라 한국 선수들 전원이 수비를 위해 뛰어올라가나, 벤치에
선 괴상한 소리가 들린다.
“라인 위로 올려!”
신정길 감독은 이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순식간에 2골을 넣어 기세를 올렸으니 추가 시간에 역전골까지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신 감독의 생각이었다.
“선수들이 지쳤어요!”
그란데 코치를 포함한 대다수의 코치진이 강하게 반대하나 감독의 생각은 단
호했다.
‘어차피 독일전은 패배할 확률이 높다. 멕시코전까지 이겨서 16강 진출을 확
정 지은 다음 생각하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으나, 이는 지금 그라운드 안에 있는 한국 선수들
의 상태를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이번 대회 체력 면에서 1위를 다투는 멕시코와 최하위권을 다투는 한국. 실제
로 한국 선수들은 거의 좀비처럼 질척거리며 위로 올라간다.
“안 돼 지쳤······ 어! 이제는······ 수비, 해야 해!”
수비하러 내려가며 헉헉거리던 승민이 벤치를 향해 외치나- 목소리가 닿진 않
는 듯하다.
“라인 내려! 무조건 지켜야 해!”
“아니야, 올라가!”
그라운드 내에 2가지 지시가 공존하고, 동시에 한국 선수들은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막아야 합니다! 이렇게 공간을 내주면 안 됩니다!]
순식간에 한국 진영으로 넘어온 에릭 구티에레즈가 발끝으로 찍어 차는 로빙
패스 단 한 번으로 상대 진영에 공을 보낸다.
[막아야 해요! 치차리토가 슈팅하도록 만들면 안 돼요오오오!]
[장수현 태클······! 아······.]
의욕이 앞섰던 대한민국의 수비 장수현이 육탄으로 치차리토를 막으러 가다가
치차리토의 슈팅을 손으로 막고 말았다.
[VAR 확인이 필요해 보입니다만······ 아······.]
[PK를 내주고 맙니다.]
순식간에 얼어붙는 한국 팀과 16강 탈락 직전의 수렁에서 겨우 벗어난 멕시코
벤치와 관중의 환호가 대단하다.
이번 대회에서 한 실수를 꼽자면 수도 없이 많은 장수현의 치명적인 실책에
한국 선수들은 감히 얼굴 쳐들고 상욱을 볼 면목이 없었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경기를 이렇게 쉽게 망친 것에 대표팀 선수 전원
이 절망한다.
골키퍼 조우현 역시 이를 잘 알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집중력을 다해
공을 막기위해 몸을 던지나-
[네, 들어갔습니다]
[스코어 2:3, 대한민국에겐 대단히 뼈아픈 실책이자 기록입니다]
그대로 경기 종료,
한국 선수들 전체가 털썩 주저앉아 좌절하고, 그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던 상
욱마저 힘 없이 라커룸 안으로 들어간다.
[결코 바라던 상황은 아닙니다만 대한민국은 이제....]
남은 독일전에 모든 걸 걸어야겠습니다.
***
2:3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의 첫 패배.
-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현 순위 -
1위) 독일 1승 1패, 승점 3점 +2
2위) 대한민국 1승 1패, 승점 3점 +1
3위) 스웨덴 1승 1패, 승점 3점 –2
4위) 멕시코 1승 1패, 승점 3점 -1
작가의말
월드컵 에피가 길지 않을겁니다.
다음 경기는 하디와의 독일 전입니다
vs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