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47화 (47/114)

47화

트릭이 뭔데? (2)

[월드컵이 한 달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참..국민 여러분들께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가 싶습니다만-]

후반 50분이 넘어갔을 무렵,

해설이 혀를 차며 조용히 말을 이어나간다.

[이런 경기는 해설하기 너무 힘드네요]

0:0

경기 시작 직전 컨디션 난조로 선발로 나서지 못한 에이스 에딘 제코와 부상

인 피아니치가 없는 말 그대로 차포 다 빠진 보스니아를 상대로 최악의 경기

력을 보이는 국가대표팀.

에이스 이승민을 왼쪽 윙포워드로 두고, 오른쪽에 황찬희, 중앙 공격에 김수

근을 둔 대한민국.

아시아권에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강한 트리오였으나 유럽의 벽을 높았다.

월드컵 본선 직전에 열린 오늘 경기는 팬들에게 ‘그래도 곧 본선인데 뭔가 달

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철저하게 짓밟는 졸전이었다.

역습상황에서 제대로 공 하나 운반하지 못하는 미들진과 아무런 위협, 제대로

된 유효슈팅조차 만들지 못하는 공격진.

게다가 대표팀의 유일한 희망으로 불리던 이승민마저 여러번 득점찬스를 놓치

고, 상대압박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오늘 대표팀 경기력 전체가 안 좋긴 합니다만-]

이 대목에서 해설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솔직한 심정을 고한다.

[특히 수비는 최악의 수준입니다]

역습과 롱볼 한방에 그대로 뚫리는 어이없는 수비진과 오버래핑은커녕 수비도

제대로 못하는 양 풀백.

아약스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김재민은 5만명 넘는 자국 관중 앞에서 긴장했

는지 실수를 연발했고, 안 그래도 욕을 먹던 장주현은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ㄴ와..진짜 존나 못하네. 저딴 경기력으로 월드컵ㅇㅈㄹㅋㅋㅋ

ㄴ황찬희, 김수근. 대체 뭐하냐? 보스니아 수비도 못 뚫고 ㅅㅂ진짜; 말이 됨?

ㄴ아니 대체 신재용이 말한 ‘트릭’이 뭐임?

ㄴ어떻게 국가대표 경기가 이렇게 좆노잼일수가..

ㄴ전상욱 내보내라고!! 미친 감독새끼야 제발ㅠㅠ

네티즌들은 물론이고, 현장에 있는 붉은 악마들마저 응원을 잃고 차갑게 경기

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재용 감독의 애제자로 불리는 해외 빅클럽 출신의 이현승, 빠른 발로 지난

시즌 K리그 베스트 윙어로 뽑힌 문성민까지.

신재용 감독 나름대로 가상 스웨덴이라 생각하고 짰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신 감독 나름대로 본인이 준비했던 것들을 내놓으려고 준비한 것이 보입니다

만...]

[결과가 결코 좋진않네요. 아직 교체 카드가 한 장 남았으니까 새로운 선수를

써봤으면 좋겠는데요]

후반 63분,

양 팀의 지루하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경기가 계속 이어지고, 곧 관중들의 시

선은 한 사람에게 이어진다.

“전상욱!”

“전상욱 내보내라!!!”

갑자기 툭 튀어나와 네덜란드를 평정하고 온 대표팀은커녕 청소년 대표 경력

조차 없는 18살 소년.

‘영웅’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전상욱이란 존재는 관심과 환호의 대상이

었고, 상욱은 이들의 환호를 감히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감독님”

“...왜”

안 그래도 마지막 교체 카드로 상욱을 내보내고자 했던 신 감독이 먼저 다가

온 상욱에게 힘없이 대답한다.

“궁금한 건데 그 트릭이 대체 뭔가요?”

선수들에게 임시 등번호를 달게하고, 비공개 평가전을 진행한다. 평가전마다

완전히 다른 전술을 구사하고 윙포워드에게 풀백을, 공격수에게 미드필더를

시키는 등 포메이션까지 파괴한다.

[트릭을 쓰고 있습니다]

발표한 신 감독이었으나 트릭이라는 게 통해야 트릭이지, 변화를 주면 줄수록

성적이 더 떨어지는 시점에서 감독의 작전은 완벽한 자충수였다.

과도한 실험으로 국민의 비난을 자초했고, 선수들은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 최

악의 멘탈 상태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됐다.

“트릭 같은 건 없어. 젠장, 그냥 상대방을 쫄게 만들려고 거짓말 한 거야”

대놓고 약점을 물어보는 막내의 악의 없는 질문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신 감독.

“감독님, 그러면요”

꼬마는 뭐가 그리 자신만만한지 어깨를 쫙 편 채로 감독에게 읊조리듯 말한다.

“제가 트릭이 되겠습니다”

***

[최악의 경기력! 이럴거면 월드컵 왜 나가나?]

[신재용 호, 더 볼 것도 없다]

[5만 관중이 부른 전상욱, 대체 왜 안 내보냈나?]

오만 쇼크, 중국 대참사와 더불어 역대 최악의 경기력을 보인 대표팀.

차포 떼고 부진한 보스니아에게 0:2로 처절하게 패한 한국은 그야말로 대 국

민적인 질타를 받았고, 이슈가 얼마나 컸는지 유력 정치인마저 전상욱이 출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표팀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말을 전했다.

Q 전상욱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은 이유는?

A 이번 경기는 전상욱 선수 대표팀 합류 전에 전술이 짜여져 있었다. 본래 전

술대로 간 것이다.

Q 작전은 실패한 것 같은데 경기 중에 교체로도 써볼만 했지 않나?

A 우리 팀엔 전상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성민, 이우승 모두 대표팀에 처음

쓴 선수들이다.

Q 다음 경기에선 전상욱을 쓸 용의가 있는가?

A 다른 팀에서 전략이 노출될만한 발언은 하지 않겠다

신 감독의 인터뷰는 짤에 영상 편집까지 되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녔고,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신재용 감독을 경질 시키

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난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코치진 몇몇과 회의에 나선다.

보스니아전은 대표팀에게 매우 중요한 평가전이었다.

신 감독은 가상 스웨덴인 보스니아를 상대로 할 수 있는 모든 비기를 보여줬

고, 낼 수 있는 작전은 모두 낸 그는 무기력한 패배에 충격받고 만다.

“현 스웨덴의 전력은 보스니아보다 최소 1.5배는 강할겁니다”

수석코치 그란데가 한숨을 내쉬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대론 가망이 없습니다. 그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어요”

“축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오. 고작 선수 하나를 위해서 전체가 희생

할 순 없는 노릇이지”

그란데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는 신 감독.

앞선 경기에서 상욱이 말한 전술은 단순했다.

자신을 ‘트릭’으로 쓰는 것.

평가전에서 전상욱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 여론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상욱을 내보낸다.

그리고 내보낸 상욱을 엉뚱한 포지션에 넣어 국민적 질타를 받고, 상대 팀의

방심을 유도한다.

“월드컵은 연극 무대가 아냐, 어줍짢은 연기로 속아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지도 않고, 속인다고 하더라도 F조 놈들에게 통할까?”

강팀 킬러 스웨덴

북중미의 왕 멕시코

세계 최강 독일

한국이 속한 F조 팀들은 지금 대표팀 전력으로 넘을 수 있는 팀이 하나도 없

었다.

“제 눈이 정확하다면...”

신 감독의 단호함에도 그란데 코치는 조금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가능합니다. 진은 그럴만한 재능을 가졌어요”

보통의 코치진이었다면 단칼에 거절했을테지만 라리가 감독에 레알 마드리드

수석코치 경력까지 있는 그란데 코치의 주장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신

감독.

그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그란데 코치가 좀 더 절박하고, 좀 더 적극

적인 자세로 어필한다.

”사실 이것 말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

2018년 6월 8일

스웨덴전 D-10

이번엔 가상 멕시코를 상대하기 위한 미국과 월드커 직전 마지막 평가전에 나

선다.

미국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다.

비록 이번 월드컵 본선엔 오르지 못했으나 작년 북중미 골드컵 챔피언이며,

도르트문트의 크리스천 풀리식과 같은 스타 플레이어도 출전했다.

물론 멕시코보다야 못하겠지만 최소 한국이 만만히 볼 팀은 결코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처참히 나오고 있었다.

[미국이 멕시코보다 강팀이라고 할 수 없는데...신 감독 고민이 깊어지겠습니다]

1:3

3점이나 실점한 한국은 경기 내내 위험한 상황을 계속 연출시켰는데, 이는 미

국의 공격이 날카롭다기 보다 고질적인 한국의 수비 불안이 더 컸다.

비슷한 패턴의 세트피스와 롱패스 한방과 압박에 그대로 무너지는 수비 밸런스.

보스니아전과 비교해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대표팀. 공격 역시 별 다

를 바 없었다.

몇 번의 역습 찬스가 있었으나 무위에 그치고, 템포가 끊기는 상황이 발생했

다. 게다가 한국의 새로운 희망이라 불리는 전상욱 마저-

[오늘 전상욱 선수는 psv에서 뛰던 포지션과 전혀 다른 위치에서 뛰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소속 팀에선 중앙 공격수로 뛰는 선수입니다만 지금은 오른쪽

윙으로 나왔네요]

그 어떤 위협적인 모습도 보이지 못했다.

[애초 공격수로 뛰는 선수인데 윙포워드로 나온 이유가 있을까요?]

[현 대표팀 주전 포워드 황찬희의 부진과 빠른 발과 돌파력을 가진 전상욱 선

수를 침투시킬 생각이었나본데...]

결과는 실패했다.

이따금씩 상대가 놀랄만한 돌파를 보여준 상욱이었으나 측면이 익숙하지 않은

지 계속 실수가 나왔고, 공을 받아줄 선수도 없었다.

이에 평소 대표팀 경기밖에 보지 않는 라이트한 축구팬들은 오늘 경기에 부진

한 상욱을 대차게 까내린다.

ㄴ아니 전상욱 존나 못 하는데? 쟤가 진짜 네덜란드리그 득점왕이라고?

ㄴ네덜란드 리그가 K리그2 수준이랑 비슷하다더라. 시발 그럼 그렇지;

ㄴ와..진짜 우리 월드컵 좆됐다....

경기 막판,

이승민의 감각적인 터닝슛이 성공해 2:3 스코어를 만들긴 했으나 여론은 싸늘

했다.

최근 5경기 평가전 1승 1무 3패.

월드컵 출정식에서도 대표팀은 관중들의 냉담한 반응을 확인한 채 최악의 사

기로 러시아로 향했고, 언론들은 이들을 보고 ‘역대 최악의 대표팀’ 이니 ‘기

권이 나을 것 같다’니 온갖 악평을 쏟아낸다.

”남은 작전은 하나. 이거마저 안 되면....“

경기장을 나서는 신 감독의 표정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만큼 어둡다.

전상욱을 믿는 것.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

월드컵 본선 스웨덴 전을 앞둔 마지막 훈련이 끝났을 때. 신재용 감독이 웃으

며 선수들을 둘러본다.

“전 세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마저 우리가 이길 거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

대표팀 코칭 스텝이나 선수들 역시 세간의 비난과 조롱을 알고 있었고, 신 감

독은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잃을 게 없는 사람보다 무서운 건 없어. 우릴 무시했던 놈들한테 한 방 먹여

보자!!!”

감독과 선수들이 투지를 불태우고, 그라운드 밖으로 나설 때 아무도 없는 라

커룸에서 상욱을 부르는 이승민.

“자신있니?”

“네?”

“대표팀 선수들은 네덜란드에서 뛰던 하디 크루거나 로자노와는 달라”

뭐 당연한 말이겠으나 현 대한민국 대표팀 대부분이 psv 선수들보다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함께’ 경기하던 psv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홀로’ 축구를 할 것이며, 클럽

팀과 같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손발을 맞춰본 적도 없잖는가.

그러나 상욱은 오히려 웃으며 대꾸한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죠”

그러더니 자신감있게 그라운드 밖으로 나서는 상욱.

“보여드릴게요, 진짜 재능이 어떤 건지”

vs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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