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46화 (46/114)

46화

트릭이 뭔데? (1)

“헤이 코리안”

에레디비시의 모든 리그가 끝나고, 한국으로 가는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

항으로 떠나는 상욱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뭐...야? 너 아직 독일 안 갔냐?”

시즌이 끝난 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로 독일로 날아갈 것이라던

하디 크루거가 그의 집 앞에 있었던 것이다.

“어이, 작별인사도 없이 가려고 했어?”

얼굴 속에 섭섭함과 그리움 등 알 수 없는 복합적인 표정을 가지고 씩 웃어보

이는 하디.

“???뭔 개소리야 미친놈아. 어제 파티 때 너 술 존나 취한 거 부축해 준 사람

이 누군데!”

“...그.그렇게 많이 마셨나?”

“잘 가라고 쳐 울다가 내 앞에서 오바이트까지 한 거 생각하면 안 쳐맞은거만

으로도 고맙게 생각해 미친 소세지국 새꺄”

하디가 시즌 마무리 파티에서 한 진상짓에 대한 잘못을 탈탈 털린 뒤 머쓱한

표정을 짓자 상욱은 그제서야 웃으며 그에게 악수를 건넨다.

“1년간 재밌었다, 독일인”

“마지막은 이름으로 불러. 개자식아”

만나고 처음으로 악수를 하며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는 두 사람.

상욱은 생각했다.

저니맨으로 살고자 하지 않았다면 여기 남았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한없이 응원하고, 사랑해주는 서포터와 이미 좋은 친구가 된 동료들, 정이 들

기 시작한 구단 동료를까지.

그리고 죽을 듯이 싸우고, 싫어하다 못해 원망했던 하디 크루거.

한때는 원수처럼 다퉜으나 지금은 세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두 사람이 입은

으르렁거리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서로를 쳐다본다.

“언제 다시 볼진 모르겠지만...”

하디를 보며 뭔가 감동적인 멘트를 치려고 하던 때,

“뭐래, 너 월드컵에서 나 만나는 거 모르냐?”

“...어?”

하디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생각해보니 한국은 1달 뒤에 있을 러시아 월드컵에 독일, 스웨덴, 멕시코와

같은 조에 배정되어 조별 리그를 치르게 된다.

올 시즌 활약으로 간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하디 크루거와 국가대표 데뷔전을

앞둔 상욱은 F조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vs독일로 맞붙게 되는 것이다.

“약해빠진 코리안 놈들, 박살 내줄게”

기세등등하게 웃어 보이는 하디의 모습을 보던 상욱은 그에게 장난으로 니킥

을 먹인 뒤 이내 멘데스가 준비해 둔 차에 몸을 실으려고 할 때,

“젼샹욱! 아니, 진!”

어색하게 상욱의 이름을 부르던 하디가 그에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건

넨다.

“잘 지내, 친구”

처음으로 보는 하디의 천진난만하고, 애정깊은 목소리에 상욱 역시 그를 보며

미소짓는다.

“너도, 브로”

***

고작 1시즌 뛰었을 뿐이나 전상욱이 에레디비시에 준 충격과 인기는 상상을

뛰어넘었고, 네덜란드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상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동양의 영웅, 그는 네덜란드에 무엇을 남겼나]

psv에 입단하게 된 이유, 하디 크루거와의 갈등 원인, 앞으로 psv의 전망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받은 상욱은 최대한 성실히 답변하고, 인터뷰가 마무리에

이르렀을 때 문득 기자가 질문한다.

Q 진, 네덜란드 축구협회에선 당신의 귀화를 바라는 팬들이 많습니다. 네덜란

드 귀화 생각은 없어요?

A 영광스런 제의입니다만,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조국에서 국가대표팀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Q 당신 같은 재능을 가진 선수가 월드컵에서 활약하기엔 한국은 너무 약한 팀

입니다. 네덜란드는 당신 커리어에 정점을 찍을 국가가 될 수 있을 텐데요

다분히 의도 있는 질문이나 기자의 목소리에 다른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욱도 별 다른 반응없는 솔직히 말한다.

A 착각하는게 있으신데...저는 월드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커리어 안에 반드시 월드컵 위너가 될 겁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어느 때보다 자신있게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꿈꾸지 못했던 아시아 국가에서 월드컵을 우승하

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상욱은 생각한다.

축구황제의 대관식은 그때 열릴 것이라고.

상욱의 대표팀 합류는 국내외에서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이미 네덜란드나 이탈리아로부터 귀화 제안을 받은 젊은 아시안이 월드컵 참

가를 위해 조국으로 들어온 것은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달한 지금 사

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파주 축구 대표팀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상욱은 수많은 언론을 상대

해야 했고, 훈련장 안에서 그를 맞이하는 신재용 감독을 만난다.

“반갑다. 나 누군지 알지?”

신재용 감독은 이 전상욱이란 존재가 신기하기만 하다.

고교 1학년까지 제대로 된 기록도, 아무런 활약도 없었던 17살짜리 꼬마가 고

작 1년 만에 네덜란드를 씹어먹고 세리에 빅클럽까지 진출한 것은 아무리 생

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저번 시즌 보여준 네 폼이면 당장 주전, 아니 에이스로 뛰어도 이상하지 않

을 수준이긴 한데..”

이 대목에서 신 감독은 다소 신경 쓰이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잇는다.

“알다시피..우린 이미 월드컵에 사용할 전술이랑 포메이션을 정한 상태야”

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에이스이자, 아스날 소속 윙포워드 이승민,

오스트리아 리그 베스트에 빛나는 황찬희,

K리그 최강 전북 현대 공격의 주축이자, 신성으로 불리는 김수근.

EPL에서 뛰고 있는 이승민을 제외하고 현 국대에 상욱에게 실력으로 비빌 수

있는 선수가 있을 리 없겠으나 조직력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들 공격진은 1년 가까이 대표팀에서 호흡하며 이미 월드컵 준비 막바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상욱이 들어온 것이다.

“지금 상욱이 널 중심으로 전술을 다시 개편하기엔 월드컵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신재용 감독이 입에서 멤도는 말을 굳이 하진 않았으나 상욱은 그가 무슨 생

각을 하는지 알 것 만 같았다.

‘아직 난 널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은 다르다.

그것도 대한민국과 같은 약팀은 더더욱.

클럽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고도 국가대표에서 부진해 비난받는 선수가 한

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맨시티의 전설 아게로나 세리에 득점왕 이과인이 그랬다.

지금 대표팀이 부진으로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나 월드컵에 대한 준비가 부족

한 것은 아니었다.

괜히 자신이 써보지 않은 전상욱을 썼다가 실패하느니 이미 준비해 둔 전략을

사용해서 본선에서 진검승부하겠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다.

“난 널 조커로 쓰고 싶다. 상욱아”

말이 게임 체인저니, 한방을 보이는 조커니 떠들어대봤자 실제론 후보로 기용

하겠다는 말이다.

당장 주전으로 쓰기엔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것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상욱 역시 이런 신재용 감독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

었다.

psv의 코쿠 감독이 그랬다.

누가봐도 더용보단 자신을 써야 이길 수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본인 생각대로

더용을 중심으로 끌고 나가다가 박살날 뻔 했잖는가.

아마 신 감독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대표팀에 들어오면 환영식이나 훈련장 소개를 하는게 보통인데 말야...”

현 대표팀엔 이런 여유마저 많지 않았다.

[온드라스전 패배! 신재용이 말한 ‘트릭’ 뭔데?]

[전상욱 대표팀 합류! 16강 진출은 여전히 의문]

월드컵을 앞두고 진행된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졸전에 졸전을 거듭해 왔고, 축

구 팬들은 신재용 감독이언급한 ‘트릭’이 대체 뭐냐며 조롱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상욱의 첫 국가대표 데뷔 전이 시작된다.

***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은 날 경계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이들은 지난

시즌 내 활약을 봤는지 아예 먼치킨과 같이 생각하는 듯했다.

“아니 너 정도 재능이 왜 중학 축구 때는 유명하지 않았을까?”

대건고-인천 유나이티드 출신 풀백 김진영이 신기한 듯 바라본다.

국가대표 첫 데뷔가 월드컵 직전 평가전인 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것은

물론 같은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K리그 올스타와 해외 팀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 전원과 한 명씩 악수하고 있을

때,

“네가 전상욱이구나”

멀리서 주장 완장을 찬 멀끔한 사내가 내게 다가온다.

이승민

프리미어 리그 아스날에서 뛰는 왼쪽 윙포워드로 빠른 주력과 양발을 사용한

강력한 슈팅이 일품인 리그 탑 윙어다.

F조의 다른 팀들에겐 유일하게 막아야 할 한국 팀의 월드클래스 선수이기도

했다.

“전상욱입니다”

그는 반갑게 다가와 악수를 건네며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감독님한테 들었는진 모르겠지만..대표팀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냐. 지금

국내 여론도 그렇고, 대표팀 내부 상황도 그렇고...”

“대표팀 내에서요?”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고있는 대표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욕을 먹

는 탓에 내부 분위기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주장 이승민이 지속적으로 팀을 규합하기 위해 애쓰고 있긴 하지만 이미 새는

구멍을 어디까지 모두 막을 순 없었다.

‘이승민과 황찬희가 훈련 중에 언쟁을 높혔다’

‘신재용 감독은 이미 라커룸에서 권위를 잃었다’

‘이미 한국팀은 이번 월드컵을 버렸다’

등 말도 안 되는 루머와 내부 소식을 흘리는 ‘검은양’이 있었고, 당장 원팀

(one team)이 되어 뛰어야하는 대표팀 선수들은 팀 규합은커녕 불화만 일으키

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다시 성적을 내는 것.

경기에 이기든 지든 유의미한 결과나 경기력이 발전하며 서로 발을 맞춰가고,

실제로 경기에서 이기면서 사기를 충족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나-

지금 대표팀에 ‘승리’나 ‘투혼’ 같은 긍정적인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타계책으로 전상욱이란 선수를 새로 뽑긴 했으나 오히려 선수단 내부에

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릴까봐 볼멘 소리도 나오는 중이다.

‘최악이군’

승민의 설명을 듣고있던 상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현 한국 대표팀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듣긴 했는데 감히 이 정도일 줄이야 상상

도 못했다.

‘절대 포기는 없어'

스스로 선택한 한국 국적이며, 이미 언론엔 언젠가 한국으로 월드컵에서 우승

하겠다는 포부까지 밝힌 후다.

더이상 상욱에겐 선택지가 없었고, 그는 반드시 뭔가 이뤄내야 했다.

“이틀 뒤가 평가전이죠?”

“그렇지, 보스니아 전이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최근 챔피언스 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AS 로마의 폭격기 에딘

제코와 유벤투스 FC의 플레이메이커 미랄렘 피아니치 등 월드컵은 나오지 못

하나 현 전력은 한국보다 강한 만만찮은 팀이다.

첫 국가대표로 뛸 생각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생각하는

상욱.

일단은-

“트릭을 써야겠네”

트릭이 뭔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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