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41화 (41/114)

41화

정점

1차전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승리한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불행하게도

다소 오만하거나 긴장이 풀리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에 3골 먹히고, 후반에 역전한 경기가 불과 10년전 챔스 결승에서 있었

다. 하물며 2차전에 역전이 나오지 않으리란 법은 절대 없다!”

투헬 감독이 선수단 전체를 두고 설교한다.

1차전에서 선수들에게 긴장 완화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서 승리했다면 2차전은

선수들이 너무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도록 자중하고, 긴장이 풀리지 않게 지도

한다.

“하디 크루거는 이를 갈고 나설 거야. 진 역시 어떻게든 우리 약점을 파고들

거고”

투헬 감독은 지금 이상하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1차전을 압도적으로 승리한데다가 상대방 에이스들까지 꽁꽁 묶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1차전 이후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체력 안배와 함께 주전으

로 뛸 수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2차전이 에인트호번 홈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도르트문트가 질 확률

이 얼마나 있을까.

압도적인 승리, 아무리 못해도 도르트문트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는 것이 당

연하나- 불안하다.

“대체 왜...?”

당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투헬이 불안한 표정을 드러내며 경기장

안으로 나선다.

***

경기 전 인터뷰 현장,

수십 명의 기자가 모여있는 현장엔 감독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그라운드 위에서 선발 라인입에 있는 선수 1명 정도가 감독과 함께 인터

뷰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으레 이런 경우 팀내 주장이나 고참 선수가 나서는 것이 보통이나 오늘은 팀

의 에이스 진이 나선다.

[오늘 인터뷰에 주장 조엣이 아니라 진이 나온 건 공격적인 플레이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우리 팀은 언제나 공격적인 전술을 펼쳐왔습니다. 지금과 같은 스코어에선

더더욱 그렇게해야 하구요]

고작 18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라면 이런 다수의 기자들 앞에서 긴장하고 당

황하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상욱은 익숙한 양 마이크 앞에 선다.

다니엘 잭슨 시절 얼마나 많이 했던 것들인가.

[진, 밀란과의 개인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문이 도는데 진짠가요? 지금 협상

중인 팀이 있습니까?]

[오늘은 경기 관련한 인터뷰만 하겠습니다. 이적 사가는 나중에 질문하세요]

상욱의 냉정한 반응에 잠시 술렁이던 기자진은 곧 상욱에게 말을 잇는다.

[1차전에서 하디와의 호흡이 좋지 않았습니다. 2차전에선 다른 모습을 기대해

도 좋을까요?]

[1차전과 같이 무기력한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평이한 질문과 평이한 대답,

인터뷰가 끝날 때쯤, 기자 하나가 괴상한 질문을 해댄다.

[최근 음바페, 비니시우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들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다분히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질문.

여기서 할 수 있는 베스트 답변은 음바페, 비니시우스와 같은 선수들은 나보

다 위에 있으며 아직 난 멀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답일 것이나 오늘

상욱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팀에게도 무조건 승리할 수 있는 배수의 진이 필요했다.

[천재는 많지만 정점은 하나입니다]

이 미친 대답에 기자단이 술렁이며, 동시에 인터뷰 나온 코칭스텝까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 말은...정점은 진, 당신이란 말인가요?]

얼척없는 표정을 짓는 기자의 모습에 상욱은 썩소를 짓더니 감독과 함께 일어

선다.

[글쎄요, 내일 경기를 보면 알 수 있겠죠]

***

상욱의 미친 인터뷰는 당연히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유망주를 넘어 현 유럽 최고의 선수 소릴 듣는 음바페와 레알 마드리드 소속

비니시우스를 밑에 두는 인터뷰는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음바페 나보다 아래, 진 2차전 앞두고 자신감 충만!]

[진, 충격 발언! 비니시우스와 음바페는 한수 아래?!]

“미친 새끼”

“진 너 진짜 제정신이냐?”

“뭐야? 너네 나 못 믿는 거냐?”

절친 코디와 조던이 진의 인터뷰를 보고 그에게 질리니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건 아닌데...아니 이번 경기 지면 어떡할건데?”

이딴 인터뷰를 해놓고 경기에서 패배하면 아마 프로 생활 내내 조리돌림 당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길 수 있어. 무조건 이길 거야”

씩 웃어보이던 그는 이내 라커룸 안으로 들어오는 독일인 남성을 보며 중얼거

린다.

“그렇지, 하디?”

상욱의 말에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하디이나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아

있었다.

psv의 포메이션은 1차 전과 동일했다.

뭐 코쿠 감독 마음 같아서야 더용도, 자히비도 모두 써서 공격적인 라인업을

구축하고 싶었으나 스피드와 파괴력으론 유럽 어느 팀과 붙어도 밀리지 않는

도르트문트의 공격진을 상대로 라인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팀 밸런스를 맞추고 공격은 진-하디에게 이번 경기 모든 것을 맡긴 코

쿠 감독.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뎀벨레와 풀리식의 돌파에 psv가 꼼짝도 못합니다!]

전반 15분,

도르트문트의 자랑인 양쪽 윙포워드 우스만 뎀벨레와 크리스천 풀리식이 지속

적인 침투와 드리블로 상대의 공간을 완전히 벌린다.

포스트 아자르라 불리는 풀리식은 빠른 드리블을 통해 상대 수비진의 공간을

벌려놓고 양발 사용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우스만 뎀벨레가 무한 스위칭하며

공간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공간은....

[뎀벨레가 밑으로 짧게 깔아줍니다! 오바메양 달려드는데요!]

psv의 중앙 수비 2명이 수비하면서 오바메양에게 태클하나, 그는 이미 넘어지

면서 공을 건드렸고, 이는 곧 빠르게 psv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들어갔습니다!!! psv에게 필요한 건 4골입니다!]

[psv에겐 지옥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기엔- 상대가 너무 강해보이는 데요?!]

“정점은 어딨냐?!”

“오늘 하디 선발 출장한 거 맞아?”

도르트문트 팬들의 조롱과 멸시가 이어지나 상욱은 신경쓰지 않았다. 암울하

다 못해 지옥에 가까운 상황이나 그는 이상하리만큼 자신감이 넘쳤고, 오히려

피식 웃음까지 나왔다.

선제골이 들어가고 팬들과 선수들의 실낱같은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고 있을

무렵,

“포기하지마!!!”

상욱이 선수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강하게 외친다.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 동점

골을 넣고 그랬던 것처럼 그는 바쁘게 뛰어다니며 선수들과 서포터들을 독려

한다.

“아직 안 끝났어!

절망적인 상황이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psv 진영에서 벌어지는 공중볼 경합을 받아내는 반힝컬! 받은 구티에레즈가

하디에게 연결!]

공을 잡았으나 강력한 프레스로 도저히 앞으로 공을 보낼 자신이 없었던 구티

에레즈가 수비 가담 후 뛰어들어오는 하디에게 공을 전달한다.

‘또 드리블하겠지’

공을 잡은 하디를 본 도르트문트 선수 대부분의 생각이 그랬다. 또 뭔가 보여

주고 싶어서 공을 끌거나 돌파를 위해 스피드를 내겠지 싶어 수비가 바로 압

박해 들어가나-

[원터치에 이야!! 전방으로 빠르게 밀어줬어요!]

하디는 공을 잡자마자 전방에 있는 코디 가포에게 공을 연결했고, 왼쪽에서

돌파해나가던 코디는 곧 뒤에서 무지막지한 속도로 뛰어오는 동양인 포르쉐를

확인한다.

[왼쪽에서 진 쪽입니다! 진! 수비들이 따라가질 못합니다! 진!]

육상선수와 같은 속도로 냅다 뛰던 상욱은 너무 빨리 뛴 탓에 순간 패널티 라

인 앞에서 중심을 놓쳤고, 이를 확인한 수비들이 마크하려 하나 상욱은 그 와

중에도 겨우 뒤로 공을 보냈고-

이번엔 독일산 폭스바겐이 빠르게 등장해 그물이 찢어져라 공을 차 넣는다.

[골!!! 하디 크루거입니다! 기적을 불씨를 살리는 psv입니다!!]

[진이 순간 돌파해가면서 하디가 인사이드로 마무리! 지금은 아주 완벽한, 정

말 퍼펙트한 하디-진만이 할 수 있는 팀 카운터입니다!]

***

전반 20분,

남은 골 수는 3골.

psv의 완벽한 조직력이 만들어낸 골에 미약하게나마 희망에 불씨가 흘러가고

있을 때-

다리가 말썽이다.

”헤이- 마지막에 휘청이기는 왜 하냐?“

”뭐가 임마“

득점 후 내게 다가오던 하디가 절뚝이는 모습을 보며 뭔가 직감한다.

“교체해 진, 이건 아냐”

“너나 잘해 소세지 새꺄. 아직 이기려면 멀었으니까”

내 말을 무슨 오기로 알아들었는지 하디는 신경질적으로 내 팔을 잡고 외쳐댄다.

“고작 18살 밖에 안 된놈이 부상을 참고 뛸 필요없어! 이 경기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꺼져”

팔을 끌고 벤치 쪽을 향해 손을 드는 하디의 모습이 기가 차 그대로 그에게

와락 다가가 소리친다.

“까불지마, 하디 크루거! 챔피언스리그 본선 경기야! 이 무대에 서기 위해서

30년을 기다려왔어!!!”

“....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갸우뚱거리는 하디를 보며 냉정히 읊조린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나 고민해”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심각하지는 않는데 오늘 경기에 계속 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아마 지금

껏 누적된 피로와 경기 중 들어왔던 태클에 대한 통증이 갑자기 밀려온 것이다.

“제발 버텨줘라”

이 몸에 환생하고 나서부터 단 한주도 경기에 나가지 않은 적이 없다.

다리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벤치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이 자리에 오르고 싶었던가. 내가 빠지면 겨우 살려놓은 실낱

같은 희망이 무너질 것을 분명히 아는데 어찌 여기서 포기할 수 있겠는가.

전반 33분,

도르트문트는 3점이자 앞서감에도 지속적으로 강력한 공격 전선을 펼친다. 이

에 날 제외한 선수 대부분이 수비가담에 나선다.

[수비에 성공한 psv, 역습하기엔 도르트문트 수비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공을 받아줄 선수는 없고, 지금 몸 상태론 여기서 혼자 돌파할 수 있는 상태

는 더더욱 아니다.

암울하다 못해 절망적인 상황이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디가 패널티 라인에서 길게 로핑패스-]

하디가 올린 패스를 헤더하는 소크라테스. 그리고 떨어지는 공의 위치를 본

하디가 냅다 골대 구석으로 차넣는다.

[어...?! 진 그대로 로빙슛!! 또 들어가쒀요오!!!!]

[대체..대체! 저 선수는 뭔가요?! 제 멋대로 나와서 제 멋대로 골을 넣습니

다! 인터뷰대로 진은 천재가 아니에요!]

감히 시대의 정점에 이를 선수였다.

***

전반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2:1.

승리하려면 아직 2골이나 더 넣어야 하는 상황이며, 리그와 컵대회, 챔스를

병행하는 살인적인 일정으로 psv 선수들 대부분이 지쳐있는 데다 팀의 절대적

인 에이스 전상욱은 부상까지 앉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psv 선수 누구도 오늘 경기에서 패배한다는 생각 않고 있었다.

그들 곁엔 곧 新 축구황제의 대관식이 열릴 참이었으니까.

“도저히 널 빼지 못하겠다, 진”

“저도 나갈 생각 없어요”

코쿠 감독이 걱정스런 표정을 담자 상욱이 이를 웃으며 막는다.

“남은 45분도 뛸 수 있겠지?”

“그럼요, 반드시 이길게요”

오늘 경기가 아마 올 시즌 뛸 수 있을 마지막 경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한 상욱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다짐을 하며 그라운드 안으로 나선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수년이 지났어도 하디 크루거는 자신 인생의 최고의 경기

로 2017-18시즌 도르트문트와의 2차전을 꼽았고,

진의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는 호날두 이상 가는 대형 고객의 등장에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굿바이, P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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