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중국인 단장
“18살에게 주급을 15만(*한화 1억 4천) 유로나 준다고? 그것도 동양인을?”
AC밀란의 새 단장 중국인 이용홍이 심술궂은 얼굴로 담배를 내뿜자, 그의 곁
에 있는 또 다른 중국인 직원 몇몇이 당황한 듯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이거 어디서 올라온 거야?! 스카우터 1팀? 2팀?”
덩치 크고 배 나온 그가 짜증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겨우 말을 꺼내는 부
하들.
“그...마우로 타소티라고 수석 스카우터입니다..”
“아아! 그 구단 레전드 출신이라고 떠벌리는 이탈리아 놈이군”
이용홍은 타소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전 유럽에서 알아주는 명문 구단 AC밀란. 갑작스레 들어온 중국 자본과 중국
인 구단주 단장들이 팀을 장악했으나 원래부터 클럽을 지키던 관계자들은 이
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특히 타소티와 같이 일평생을 클럽에 바친 인간들은 더더욱 그렇다.
윗선에서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 것이지 뭐 축구는 전문가가 잘 안다니, 계
약은 신경끄고 돈이나 벌어오라니- 일할 때마다 마찰이 생기고 있다.
“안 그래도 나이 어린놈들만 영입한다고 유치원이니, 보육시설이니 욕먹는 중
인데 18살짜리한테 이 돈을 준다는게, 말이나 되나?”
“그래도 타소티가 실력은...알아주지 않습니까. 타소티 뿐 아니라 스카우터
해외팀에서 전원 영입 만장일치를 받고 들어온 선수랍니다”
같은 중국인 부하가 어떻게든 타소티를 옹호한다. 부하와 타소티가 같은 편이
라기보단 그는 어떻게든 선수를 판단하고 확인하는 건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생각인 듯 하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대답을 하는 부하이나, 순간 이용홍의 눈에서 불이
켜진다.
“이 개새끼가!”
그는 책상을 쾅 치며 상욱의 스카우터 파일을 그의 얼굴에 던지더니 이내 일
어나 조인트를 까고 멱살 잡는다.
“어디서 건방지게 그 새끼들 편을 들고 있어?! 너! 제국주의 dago(*이탈리아
비하 속어) 들이랑 붙어먹는 거냐?!!!”
“아이고..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하가 무릎까지 꿇으면서 사죄하나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던 단장이 몇 번
이나 더 구타한 뒤 겨우 화를 삭이며 조용히 속삭인다.
“어린 놈은 안 돼. 게다가 한국인은 더더욱!!”
중국의 한류 문화 금지 한한령이 극에 달한 지금 중국인이 헤드로 있는 구단
에서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는 것은 당국의 눈치를 볼 일이다.
게다가 주급 1억이 넘어가는 돈을 지급한다고 하면 자국 내에서 무슨 빵쯔(*
중국의 한국인 비하표현)에게 그토록 많은 돈을 주냐고 비난 여론도 있을 것
이 분명했다.
또한 유소년 선수 우선 영입정책으로 인해 세리에A 선수 평균 연령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밀란은 안 그래도 구심점을 잡을 베테랑 선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데 여기서 또 10대 선수를 주급을 이렇게 많이 주고?
“절대 안돼! 차라리 임모빌레나 메르텐스가 낫겠어!”
“그렇긴 합니다만, 지금 저희 재정 상황이....”
“닥쳐!!”
반바스텐의 진정한 재림이니, 즐라탄 이상의 재능을 가진 탤런트니.
알바 아니었다.
전상욱은 안 된다.
이미 결정한 일이다.
***
[아시안 영웅 진! 밀란과 개인협상 시작!]
[psv의 에이스, 오자마자 팀 떠날 판]
[AC밀란 주급 20만 유로로 개인협상 완료?!]
전상욱과 밀란의 이적사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50억 채 안 되는 바이아웃 덕에 대단히 많은 구단에서 연결이 되었으나 선수
는 단호했다.
맨유나 포르투, 레알 소시에다드와 같은 팀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던 상욱
은 시끄럽게 움직이며 몸값을 올리기보다 본인이 원하는 팀과 바로 연결됐다.
사실 선수 본인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에이전트에서 적극적으로 몸값을 부풀려
야했으나 그리 적극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주급을 많이 줄여야겠습니다”
밀란과의 첫 미팅.
다른 스카우터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제발 팀에 오기만 해달라며 상욱을 바지
가락을 잡고 늘어졌으나 막상 미팅에 들어와서 만난 모습은 달랐다.
전혀,
달랐다.
“우리 쪽에서 줄 수 있는 주급은 2만유로(*한화 2,700만원)가 끝입니다”
“뭐.뭐라구요?”
오만한 표정의 이용횽 단장의 모습에 한영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린다.
“뭐가 이상하죠? 우리 u-19 팀 유망주 주급에 비하면 10배 이상 높은 금액인데”
이 말에 한영이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말을 쏟아낸다.
“고작 팀 유스 선수랑 비교하는 겁니까? 우리 선수는 이미 현 세계 최고 유망
주, 아니 이미 유럽 상위권 공격수로 평가받는 선숩니다!”
밀란으로 옮기고 싶다는 상욱의 말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던 한영이 버럭 소리치나 이홍용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이
죽거린다.
“당신네 선수가 언제 데뷔를 했죠?”
“...뭐요?”
“정확히 11월 25일에 데뷔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전이죠. 그 때부터 1군에
서 생활한 게 3개월이 안됩니다. 나온 경기 역시 20경기가 안 되구요”
이홍용은 부하 직원들이 준비해 둔 종이를 읽으며 상욱과 한영을 번갈아 쳐다
본다.
“네덜란드에서 얼마나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그는 표정 없이 앉아있는 상욱을 쓱 보더니 주도권을 잡았는지
더욱 똑똑히 말한다.
“여긴 다릅니다. 수비도, 몸싸움도 지금처럼 쉽지 않을거란 말이죠”
“웃기는 소릴하는군. 얼마 전에 당신네 라이벌 박살낸 거 못 봤나보지?”
“우린 고작 한 경기로 선수를 판단하지 않소. 그리고 이 금액이 우리가 당신
네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전부요”
인테르 전을 언급하며, 이미 증명했지 않냐는 말에도 이홍용은 조금의 흔들림
도 없어보인다.
“지금 우리 팀에 공격수가 부족한 것도 아니오. 칼라니치, 수소, 실바, 쿠트
로네. 당장 주전으로 기용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러더니 이용홍은 쯧-하며 인심 가득 쓴다는 투로 중얼거린다.
“뭐- 선수가 정말 원하면 1~2천유로 정도 더 올려드리지”
처음 전화로 컨택했던 금액과 너무 다른 행동에 폭발한 한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어찌 이리 무례할 수가!”
당장 상대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한 한영을 진정시킨 뒤 대단히 예의있는 말투
로 조용히 말하는 상욱.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통역을 빌려 조용히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단장을 부르는 그는 목소리완 달리
눈매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방금 단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클럽 전체의 의견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예의바르나 지나치게 차갑고 냉정한 눈매다. 상욱의 소름끼치도록 냉정한 눈
빛에 당황한 듯 했으나 그는 곧 차분히 말한다.
”단장이라는 위치가 그렇지. 클럽에서 이적에 대한 모든 의견을 결정하는 자
리니까-“
”말 돌리지 마세요. 이 정도 클럽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상욱의 짜증스런 말에 단장 역시 기분 나쁘다는 투로 중얼거린다.
”그렇소“
이용홍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벌떡 일어선 상욱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문
쪽으로 걸어간다.
”상.상욱아!“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한영이 그를 따라 나서고 문득 문 앞에서 단장에게
말한다.
“통역, 지금 있는 그대로 전달하세요”
그는 어느 때보다 진심인 듯 보인다.
“이시간부로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오늘 나와 계약하지 못한 것이 팀 역사상
최악의 날이 되도록 해주겠소”
통역의 말에 단장은 기가 차다는 듯 웃어 보인다. 고작 18살짜리의 단언이 꽤
나 우스운 듯하다.
“내기하나 하지. 당신은 1년 안에 잘릴 거요”
“거 열등감이 심하군 그래. 좋아! 주급 3천유로 더 올려주지”
그의 농락에도 상욱은 오히려 깔깔 거리며 웃는다.
“이 문을 나가는 순간 30만, 300만 유로를 줘도 못 삽니다”
***
밀란이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경기롤 본 스카우터와 코치들은 그렇게 날 극찬했었는데 그와 상반되는 지금
모습은 아마 클럽 실무자들과 단장의 생각이 달라서 그런 걸 것이다.
뭐 이유따위야 상관없다.
결과적으로 밀란은 날 내쳤고, 날 원하는 팀이 이렇게 많은 입장에서 밀란은
바로 아웃이다.
‘이미 이탈리아로 마음을 정하긴 했었는데...’
PL 워크퍼밋 발급까지 1~2시즌 정도 이탈리아에서 뛰고 싶은 맘이 있었다. 세
리에의 거친 수비를 상대하면서 피지컬이나 실력을 더 올리고 싶은 생각이 있
었다.
”저 사기꾼 중국인 새끼! 일단 세리에 행은 접어두자. 아! 프랑크푸르트에서
는 9번 비워놨다고 하더라. 아니면 차범근 등번호 11번 써도 된대“
한영은 싸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달래기 위해 힘이 될 만한 말은 무엇이든 쏟
아낸다.
“아님 소시에다드도 연락와서 만나자고 하긴 하던데...아무리 봐도 내 생각은-”
“형 생각은 어떤데요?”
그 대답만은 안 나오길 바랬다.
“맨유행...은 어때”
그는 조심스레 이미 얘기 끝난 구단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지금이야 팀 주급체계 때문에 많이 못 준다 쳐도 알잖아, 거기 돈 많은 클럽
인거. 게다가 지금처럼 클럽이 위기인 상황에서 네가 나서서 딱-”
이 대목에서 그는 힘차게 연설이라도 하듯 말을 이어나간다.
“팀을 일으키면, 뭐겠어? 상욱아 네가 영웅되는 거야! 올드 트래포드의 새로
운 왕, 한국에서 온 진!”
스포츠 코리아는 원래 친 맨유 에이전트다.
05년 박지성 이적 사가부터 팀과 접촉하던 스코(스포츠 코리아)는 이후에도
팀에 한국인 유스를 보내고, 국내에서 맨유 관련 여러 행사를 진행하는 등 커
넥션이 많은 기업으로 당연히 날 맨유에 보내라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배한영은 날 맨유로 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회사는 맨유와의 관계가 이렇게 끊어지길 바라지 않을 것이고.
“여기까지 하죠”
담담한 목소리로 한영을 보며 말한다.
선수가 이미 거절한 제안을 계속 상기시키는 에이전트는 필요없다.
“상.상욱아, 그게 아니라-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에이전트와 계속 일할 수는 없어요”
당황한 한영에게 최대한 편하게, 최대한 예의바른 표정으로 말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스코를 떠날 생각이었다.
“전 제 의중을 확실히 꿰뚫는 에이전트가 필요해요. 형 아시잖아요. 어쨌거나
전....”
스포츠 코리아 같은 국내 에이전트가 감당할 그릇이 아니다.
“네 생각이 뭔진 알겠어. 대신 상욱아, 다른 에이전트를 구할 때까지만이라
도....”
다소 애절하게 말하는 한영에게 예의바르게, 그러나 단호히 말한다. 그를 아
꼈기에 얄팍한 희망이라도 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접촉한 에이전트가 있어요”
핸드폰에 떠있는 이름은 분명 한영도 아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Jorge Mendes]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유쾌한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밀란 놈들 소식 들었습니다. 진!]
우리 제대로 복수합시다!
조르제 멘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