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Forza Milan
“저 피지컬에 저 스피드가 말이나 되나?”
스카우터 타소티는 오늘 전상욱의 플레이를 보면서 계속 몇 년 전 팀에서 뛰
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떠올렸다.
190cm은 되어보이는 강력한 피지컬에 드리블과 플레이 메이킹이 가능한 육각
형 공격수. 즐라탄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 카카보다 더 빠른 것 같군”
볼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무지막지한 속력.
결코 동양인에게선 나올 수 없는 탄력과 스피드에 더욱 그를 흥미롭게 바라보
는 타소티다.
처음 그를 봤을 땐 잘 키워서 팀 주전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가 레
알 전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즐라탄과 비슷한 리그 베스트급 활약을 할 월드 클래스 선수. 상욱에 대한 타
소티의 평가는 단숨에 높이 올랐으며, 인테르와의 전반을 보고난 지금의 평가는-
반 바스턴과 조지웨아, 셰브첸코를 넘을 만한 팀 역대 최고의 공격수가 될 수
있는 재능으로 평가했다.
아니 이미 그들과 같은 수준일 지도 모른다.
“언제 뺏길지 몰라, 특히 PL 놈들이 붙어버리면...”
자금력으로 PL을 넘을 수 없던 밀란은 다른 팀이 관심갖기 전에 빨리 저 아시
안 천재를 영입해야만 했다.
일단 갈리다니 단장에게 말해 공식 오퍼를 넣어야.....
“우와아아아아!!!!!!”
통화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타소티는 갑자기 터진 관중석의 환호에 천천히
앉는다.
***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인테르의 주포이자 크레스포를 이을 아르헨티나 차세대 공격수 마우로 이카르
디가 이를 갈며 전반 마지막 찬스를 위해 돌진한다.
기세에 눌렸다.
상승세인 psv와 말도 안 되는 아시안의 조합은 말 그대로 자신들을 찢어발겨
버렸다.
아시안이 잘하긴 하나 팀 수비가 이렇게 무너질만큼 대단한 수준은 아니며,
인테르가 psv에게 이 정도로 밀릴 전력은 더더욱 아니다.
“하디 크루거랑 동양인만 막아! 나머진 별거 아니니까!”
이미 팀원들에게 몇 번이고 외쳤으나 당최 들어먹질 않는다. 초반 몇 번 보여
준 놀라운 패스와 완벽한 득점력에 선수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있었기 때문
이다.
“어떻게든 흐름을 바꿔야 해”
2점 차로 전반을 끝내면 후반전 시작에 부담이 크다. 하물며 이런 중요한 경
기에 2점이나 뒤져진 것은 절망적인 수준이다.
몇 년 만에 올라온 챔피언스리그인가. 결코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마우로”
“이반”
그리고 이카르디의 고민을 해결해 줄 있는 선수가 몇 있었다.
이반 페리시치.
양발 사용이 가능한 윙어로 빠른 발과 유럽 정상수준의 드리블을 가진 선수다.
골 결정력이 좋다곤 할 수 없는 선수이나 그가 함께 뛰는 선수는 지금 세리에
A 득점왕 출신의 이카르디다.
“기회가 많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지?”
“무조건 해낼게”
짧은 대화로 서로의 의견을 확인한 이들은 전반 마지막 기회를 맞이한다.
[올 시즌 최악의 경기를 펼치고 있는 인테르입니다. 오늘 이카르디와 진과의
맞대결이 관심을 모았는데요, 지금까진 진의 완승이라 볼 수 있겠죠?]
[그렇습니다. 이카르디가 실력에서 이렇게 밀릴 리가 없는데 아마 팀이 불안
하니 같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네요]
“마우로, 마우로! 엄마 젖이나 더 먹고와라!”
“불륜한 네 와이프 젖 빨고 다시 와!”
승리를 직감한 듯한 psv 팬들이 깔깔 웃대며 이카르디와 인테르를 조롱한다.
이번 시즌 내내 상대팀의 조롱섞인 농담과 굴욕을 맛봐야했던 psv 서포터들은
상황을 역전 시켜준 상욱이 진심으로 고마울 것이다.
“맘대로 떠들어 대라지”
페리시치가 공을 몰고 빠르게 뛰어나가자 psv 수비들이 낙엽장처럼 무너진다.
[페리시키가 하프라인 옆으로 빠르게 뛰어갑니다!]
[네, 오늘 경기에 부진해서 그렇지 페리시치가 에인트호번 수비들에게 밀릴
수준은 아니거든요! 아 길게!!!!]
45+3
페리시치가 빠르게 올린 크로스를 막아내기 위해 psv 수비들이 점프한다. 이
들의 머리가 공에 닿기 직전,
고작 키가 181cm 밖에 되지 않은 이카르디가 수비수들 위로 높이 점프하여 머
리로 오른쪽 골대 구석을 공으로 찍어누른다.
[들어갔습니다아아!!! 마우로!! 이카르디이이이!!!!]
[놀라운! 노올라운 점프력입니다! 상대에게 넘어갔던 주도권을 한순간에 찾아
오는 저것이 에이스의 품격이에요!]
골이 들어가자마자 하프라인으로 뛰어가 선수들을 격려하는 이카르디. 이번
골이 인테르 선수들이 각성하게 된 계기가 된 듯 하다.
“오늘 경기! 무조건! 무조건!! 이긴다!!!!!”
전반 종료,
이카르디의 말에 선수단 전원이 크게 소리 지르며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자 관
중석에 있던 타소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진을 바라본다.
“이거 이거...잘 하면 저놈 못살 수도 있겠군”
각성한 인테르 선수들을 보며 어느 때보다 냉정한 표정으로 라커룸으로 들어
가는 상욱.
그의 오늘 목표를 이카르디를 넘는 것으로 정했다.
***
“리드에 취해있지 마”
코쿠 감독이 라커룸에 들어가자마자 선수들을 질책한다.
물론 psv의 경기력은 대단히 좋았다. 아니 단순히 좋은 것을 넘어 오늘 팀의
경기력은 에레디비시 수준을 넘을만큼 강력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쉬웠다.
인테르와 같은 강팀은 그저 잘하기만 한다고 넘을 수 있는 팀이 아니었기 때
문이다.
“이카르디를 끝까지 놓치지 마. 반힝컬, 후반엔 네가 전담해서 마크하고”
진과 하디가 이끄는 공격에 비해 처절히 약한 수비에 대한 디테일한 지시를
내리던 그는 후반전이 시작되어 그라운드 밖으로 나서는 선수들을 하나씩 바
라본다.
16강 진출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너무나, 너무나 이기고 싶은 경기다.
넋 놓고 바라보던 코쿠는 이내 5경기 만에 팀의 에이스가 된 동양인 선수를
보며 조용히 읊조린다.
“진”
“네?”
“내가 이런 말 별로 안 하는 성격인데-”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이겨다오. 절대 16강 못 갈거라는 세간의 비난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
감독은 상욱에게 말하고나서 잠시 아차싶었다. 에이스에게 부담 지우기엔 상
대는 대단히 강한 팀이며, 그 에이스는 고작 17살밖에 되지 않았다.
“감독님”
그러나 상욱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밝은 표정으로 웃는다.
“오늘 주세페 메아차에서 웃으면서 나가는 팀은 우리-입니다”
상욱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서서히 인테르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폼이 살아나기 시작한 인테르 수비진은 치열하게 psv의 공격을 틀어막는다.
전반 내내 자유롭게 중원을 휘젓고 다니던 하디 크루거를 압박해 고립되게 만
들고, 더이상 이들의 중원에서 공을 돌게 하지 않는다.
로자노-자하비 윙 포워드 조합은 인테르 수비진을 고립 시킬 수 없었고, 오히
려 경기를 끝내기 위해 무리해서 공격을 퍼붓다 위기가 생긴다.
[자하비의 공을 뺏은 미란다가 브로조비치 쪽으로 전달합니다]
브로조비치는 공을 받자마자 수비 벽 뒤로 스루패스를 날리고, 이를 받은 칸
드레바가 1:1 상황을 만들자 뒤이어 마리우가 칸드레바 쪽으로 태클을 날린다.
[태클 깊었습니다! 이거 이거.....! 네! 맞아요! 찍었습니다!]
[PK! 한번 더 확인할 것 없는 완벽한 패널티 킥입니다!]
동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만큼 이카르디는 무능한 선수가 아니다.
골키퍼를 반대 방향으로 깔끔하게 골을 성공시킨 이카르디는 자신을 놀린 원
정석 서포터들을 역으로 조롱하며 경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후반 60분에 2:2 동점! 조 2위는 다시 인테르가 됩니다!!]
[인테르의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이 경기를 살린 겁니다! 과연 psv가 지금의
인테르를 공략할 수 있을까요?]
***
“인테르가 올라가겠군”
타소티가 눈살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라이벌 인테르가 16강에 오르는 것은 결
코 그에게 기쁜 일이 아니었다.
애초 AC밀란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조차 못 했으니까.
30년 넘게 축구계에 있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축구에, 아니 비단 축구 뿐 아닌 스포츠에 흐름이란 중요한 것이다.
이 흐름이 경기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며 팀을 승리하거나 패배시키기도 한다.
전반의 흐름이 psv에게 왔다면 지금은 완전히 인테르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이번 흐름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 팀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받쳐주는 선수 없는 하디 크루거는 이미 지쳤고, 로자노는 인테르 수비를 뚫
을 수 없다. psv 수비가 빌드업이 잘 되는 편도 아니고, 위험부담도 많다.
“남은 건 동양인 꼬만데....”
대단히 훌륭한 선수고, 미친 재능을 가진 것은 두 말할 것 없으나 아직 17살
이다.
뒤지고 있는 흐름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엔 너무 어린 선수다. 게다가
상욱의 실력을 아는 인테르 수비 전원이 그를 막기 위해 목숨을 다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기기 불가능하단 말이다.
“저렇게 어릴 땐 저 정도 좌절을 맛보는 것도 좋지”
상욱의 재능을 알아차린 타소티는 솔직히 이대로 경기가 끝나길 바랬다.
인테르가 올라가는 건 죽을만큼 싫었지만 더 이상- 저 미친 동양인이 활약하
는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이러다 다른 클럽들에게 뺏길 것만 같았거든.
[psv의 아시안 영웅이 공을 잡습니다. 하디도, 로자노도 막혔습니다. 진은 어
떻게 할까요?]
경기 시작 75분이 넘어가자 상욱도 지쳤다. 돌파하긴 버겁고, 본인이 공을 잡
자마자 2명, 3명이 그에게 달라붙는다.
이를 악문 상욱이 공을 몰고 앞으로 나간다. 막 하프라인을 지나 순식간에 뛰
어들어가던 상욱.
[진선으로 그냥 들어가는 건 무리입니다. 당장 수비들이 달려 들.....!!!]
[어..어어어?!!]
슈팅은커녕 크로스도 올리기 어려운 위치이나 상욱이 냅다 찬 슛은 순식간에
골키퍼 정면 위로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어찌나 순식간에 들어갔는지 월드 클래스 골키퍼 한다노비치마저 어안이 벙벙
한 채로 상욱과 골대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다시 psv가 스코어를 벌립니다!!! 진의 오늘 경기 해트트릭!]
[이제 더 이상 저 선수의 득점이 놀랍지 않습니다! 올 시즌 유럽에서 가장 핫
한 선수의 등장입니다!]
상욱의 골로 psv 벤치와 서포터석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환호한다.
[아시아의 왕! 에인트호번의 새 영웅!]
서포터들은 전부 일어나 상욱 전용 응원가를 부르며 그를 찬양했고, 상욱은
이들 앞에 나타나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표효한다.
“이거 참 미치겠구먼”
타소티는 그를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 짓는다. 상욱은 가져오고 뺏기고
흐름에 휘둘리는 선수가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가 흐름이라 이건가...!”
후반 80분,
경기 종료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으나 양 팀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
차게 움직이고, 관중석 안에서 또 한 명의 사내가 경기를 지켜본다.
“재밌는 친구가 있네요”
옆의 동료에 말에 웃는 70대 백인 노인.
분명 알렉스 퍼거슨 경이었다.
작가의말
곧 다음 이적시장으로 넘어갈 듯 합니다
글 방향성은 고민 많이 해보게습니다
아시안 호나우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