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26화 (26/114)

26화

별의 순간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경기장에 있는 관중들, 양 팀 벤치와 감독, 그라운드 안에 있는 선수들에 하

디 크루거마저- 현재 상황을 뒤집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psv에서 새 선수가 나섭니다. 진, 이번 경기가 1군 데뷔 경기입니다]

[데뷔전이 레알과의 경기에 패배를 직감한 사태라 별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진 않네요]

아시아에서 온 17살짜리 공격수의 등장에 해설자들이 괜히 혀를 차며 진의 선

전을 기원하나 말 그대로 응원일 뿐, 기대는 하지 못한다.

이는 아들의 1군 데뷔전을 위해 몰래 이번 경기 직관하러 온 상욱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상욱을 응원하기 위해 스포츠 코리아의 도움으로 이곳에 온 상욱의 부모와 배

한영 실장.

축구를 전혀 모르는 어머니는 그저 아들의 등장이 그저 신나서 손을 흔들고,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아는 아버지는 어렵지만 그래도

아들의 재능에 기대 하나-

한영의 표정은 좋지 않다.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상욱이는 아직 유망주고, 상대는...세계 최고의 축구

팀이니까요”

상욱이 잘하는 건 알고 있다.

일전에 만난 반니 감독이 우리 팀으로 보내줘서 고맙다며 얼마나 칭찬을 하는

지 괜히 머쓱할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4개월 만에 유스에서 1군 벤치까지 올

라온 건 팀 역사상 상욱이 유일했다.

그러나 상대는 ‘축구의 왕’이다. 그 잘난 메시라고 해도 단 시간 내 공략이

쉽지 않은 세계 역사 최고의 팀이란 말이다.

“뭐 이런 경기에 출전 한 것 만으로도 행운인가-”

공격 포인트 기록은 힘들겠으나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길

바라는 한영.

[구티에레즈가 전? 아 죄송합니다. 진에게 연결합니다. 그대로 뛰어 올라가나

- 네 카르바할이 간단히 처리합니다]

들어가자마자 공을 잡고 본인의 장기인 유려한 개인기로 돌파를 시도하나 세

계적인 수비수들에게 간단히 막힌다.

애초 공을 잡고 뭔가 해보려고 해도 압박이 너무 강해 고작 백 패스를 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 에레디비시 2군 리그 따위완 비교 할 수 없는 높은 수준에

상욱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17세 소년이 활약하기엔 상대가 너무 강합니다]

[네 에레디비시 리저브 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서 1군까지 올라온 선수

인데...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후에도 몇 없는 기회를 받아 크로스를 올리거나 빠르게 루크 더용 쪽으로

전진 패스를 해도 죄다 막히고 마는 상욱.

[꼬마야, 여긴 아직 네가 올 곳이 아냐]

레알의 수비수 라모스가 상욱을 바라보며 짧은 영어로 이죽거린다.

후반 80분,

경기장에 들어간 상욱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상대에 압도 당하고 있

었다.

“하디”

psv 왼쪽 풀백의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됐을 무렵, 상욱이 지쳐있는 하디 크루

거에게 다가간다.

“왜”

살짝 귀찮고 짜증 난 듯 중얼거리는 하디.

오늘 경기 그의 대결 상대인 토니 크로스에게 전후반 완벽하게 막힌 하디가

애꿎은 잔디만 찬다.

같은 조국, 비슷한 나이, 비슷한 포지션.

어릴 땐 하디가 크로스보다 훨씬 뛰어나고 대단한 재능이란 평가를 받았다. 1

군 데뷔도, 데뷔골도, 대표팀 합류도, MVP도, 뭐든 하디가 먼저였다.

그러나 소년급제(少年及第)가 좋은 법은 없다.

월드컵 MVP로 커리어 정점을 찍은 하디가 떨어졌을 때, 대기만성형 선수인 크

로스는 한 번도 추락하지 않은 채 꾸준히 성장했고, 지금 결과는 하늘과 땅에

이르렀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하디는 오늘 경기에서

활약해 자신이 크로스보다 뛰어남을 증명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오늘 그는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다.

“너 벌써 경기 포기했냐? 왜 병신처럼 고개를 처박고 있어?”

“까불지마 멍청아. 그냥 기세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냐”

경기장에 나온 지 고작 3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선수의 기세에 포기 직전인

본인이 스스로 창피한 하디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 경기는 진 경기다.

“이길 수 있어”

“....뭐?”

오히려 상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 씩 웃는다.

“너나 나나 이 팀에 오래 있을 거 아니잖아? 그러려면 시간이 없어. 상대가

어떻든, 이렇게 쳐발리고 있을 시간 없다고”

“그래서 어떻게 하잔 말인데”

어린 아시안의 호기로운 말에 짜증스레 반응하는 하디.

“제대로 된 킬패스 한번 넣을 수 있겠지? 천하의 하디 크루거가 이대로 경기

끝낼 건 아니잖아?”

저놈의 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대체 무엇인지 헛웃음이 터진 하

디가 천천히 중앙으로 복귀하며 읊조리듯 말한다.

“잘 할 수 있겠냐?

***

”의심 하지마“

VIP석에서 한영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던 psv 2군 반니스텔루이 감독의 말에

한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psv 유소년 팀과의 협업과 팀 레전드였던 박지성의 가교로 친밀한 관계가 된

한영과 반니 감독.

애초 골을 넣는다는 기대조차 하지 않은 한영에게 반니는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내 눈이 틀릴 리가 없어”

“감독님 말씀은...상욱이가 뭔가 보여준다는 말인가요?”

그의 말에 반니가 조용히 말한다.

“남은 10분 동안 psv에게 최소 1, 2번 정도의 기회를 주어질거야. 그리고 그

기회를 완성 시키는 건-”

진이다.

어찌하여 그토록 제자를 믿는진 모르겠으나 확신하다 못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 반니의 말을 조금도 공감하지 못한 채 경기장만 바라보는 한영이다.

84분,

경기 끝으로 흘러갈수록 마드리드의 압박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가운데,

[하디 크루거가 하프라인 쪽에서 공을 잡았습니다만, 카세미루가 압박...아!

깔끔하게 벗겨냅니다!]

플립플랩으로 카세미루를 제쳐낸 하디가 수비라인에서 위 쪽으로 빠르게 뛰어

올라가는 상욱을 보며 소리친다.

“Lauf!!!!!” (뛰어!)

하디가 다급하게 소리치긴 했으나 레알 선수들 그 누구도 당황하진 않았다.

상욱이 공을 잡은 위치는 고작 하프라인 조금 위일 뿐이었고, 뒤에는 팀의 수

비가 그대로 있었으니까.

[psv의 진이 뛰어 올라갑니다. 와 정말 빠르네요! 수비라인 까지 올라갑니다

만 모드리치가 커팅....어?]

수비 커버를 위해 온 모드리치가 태클하나 그는 더욱 속도를 내더니 한 발짝

앞으로 뛰어나간다.

어느새 그는 패널티 라인 앞까지 와 있었다.

[카르바할 막으러 나갑니다만, 이야아아아!!!!]

[너무너무 빠릅니다! 총알탄 사나이가 따로 없어요!]

카르바할 마저도 스피드로 벗겨내버린 상욱. 남은건 라모스 뿐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다.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재능있는 선수이나 여기까지가 끝이다. 세계 최고

수비수 라모스를 넘진 못할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의심하지 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반니가 조용히 읊조린다.

라모스와 뒤에 나바스 골키퍼만 남은 상황. 상욱은 지금 신체론 저 둘을 제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조금만 지체하면 뒤이어 돌아온 수비들에 의해 곧바로 탈취 당할 수 있는 상

황. 뒤이어 쫒아온 하디가 외친다.

“진! 여기!”

하디와 윙 포워드 로자노가 공을 받기 위해 달려오나 레알의 수비가 먼저다.

공을 받아줄 동료가 당장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상욱은 패널티라인 오른쪽에서

그대로 로빙슛을 쏜다.

아름답고, 완벽하고, 우아한 골.

“우와...”

운 좋게도 눈앞 상욱의 슛을 볼 수 있었던 하디 크루거는 그 짧은 순간 입에

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공은 완벽히 곡선을 그리며, 마드리드의 왼쪽 골문 안으로 천천히 빠져 들어

간다.

라모스도, 바란도, 나바스도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상욱의 슛을 바라만 보고

있었으며, 관중을 포함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가 잠시 정적에 빠진다.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믿을 수 없겠지만 방금 동점골이 들어갔습니다!!!

방금 교체된 선수입니다!]

[소름 끼치도록 우아한 골입니다! 저, 저 선수의 이름이 뭐라고 했나요? 진상

욱? 전싱욱? 혹시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요?!!!]

득점에 성공한 상욱이 팔을 뻗어 서포터 속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이미 정신나

가 광분한 팬들 사이로 들어가 팀 깃발을 받아내 카메라 쪽으로 다가간다.

“이런 거 하는거 진짜 안 좋아하는데...”

무어라 중얼거리던 상욱은 곧 카메라를 보더니 네덜란드 어로 강하게 외친다.

“Geef niet op!!!!!” (포기하지마!)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도 한 것 마냥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뛰어와 상욱에

게 안기고 마드리드 선수를 제외한 경기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잠시 미쳐있는

사이,

“젠장! 진!!! 넌 진짜 미친 자식이야!!!!”

상욱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듯한 하디 크루거가 그를 와락 안은 채 외친다.

[마치 마이클 오언의 데뷔골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소름이 사라지지 않

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간 봤던 골 중에 가장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레알 선

수들의 표정이 오늘 처음으로 어두워집니다!]

충격에 빠진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

경기 종료까지 5분여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골을 내줄 것이라곤 상상치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상황에서 선수들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겠으나-

“토니, 루카! 위로 올라가! 지금부터 라인 완전히 올린다!”

이들은 유럽 최강 레알 마드리드였다.

마드리드의 기세는 토 나올 정도로 매서웠고, psv에게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

았다.

[방금 실점에 레알 선수들이 각성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대회 최다 우승팀이니까요, 경험이 대단히

풍부한 선수들이죠]

호날두와 벤제마는 남은 시간 내내 psv의 골대에 사정잆이 슈팅 세례를 내뿜

고, 크-카-모 라인은 이들을 psv 중원을 잡아먹다 못해 전혀 공을 주지 않고

있었다.

[호날두 헤더!!!! 와 또 골대 맞습니다! 오늘 경기 골대 맞춘 횟수만 4번이

넘어가는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사실 상욱이 골을 넣든 안 넣든 오늘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가 이길 만한 경기

력이었다.

상욱의 골은 오늘 경기 유일한 팀의 유효슈팅이었고, 운이 좋아 무승부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 5골, 6골 먹혀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다.

그러니까 만 번 대결하면 9999번은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하는 것이 보통인 상황.

그러나 지금은 그 1번이다.

만분의 1 확률에 수렴하는 기적이 지금이란 말이다.

추가시간 5분,

마드리드는 쉬지 않고 psv의 골문을 두드리는데 실패한다.

거진 6분 만에 처음 자신의 패널티라인 밖으로 공을 몰고 나가는 psv.

[둠 프리스가 길게- 올려줍니다만 라모스가 걷어냅...아아!!!!]

루크 더용이 벌떡 뛰어 오르더니 라모스와의 경합에서 공을 탈취한다.

[더용이! 오늘 경기 처음으로 헤더 경합에 성공합니다!]

더용의 머리에서 떨어지는 공은 정확히 패널티 라인 중앙에 떨어지고, 동시에

마드리드 수비 여럿이 공을 걷어내려 다가오나...

[또 들어 갔습니다!!!! 저..저...동양인이!!! 역전골을 넣었습니다!!]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마드리드가, 지금! 레알 마드리드가 무너지고 있습니

다!!!]

흔들리는 화면 안으로 붉은색 유니폼이 담긴다.

9

[Jin]

special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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