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9화 (19/114)

19화

전직 월클 (2)

“수비할 때는 그렇지, 몸 더 낮추고 반 박자 빠르게!”

반니스텔루이 감독과 상욱의 개인 교습. 시작한지 3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

나 반니는 더 이상 그에게 가르칠 것이 없었다.

지난 3개월 만에 상욱은 반니가 가르쳐주는 모든 것들을 학습했고, 그의 플레

이 루틴이나 스피드에 심지어 가끔 골을 넣고 상대를 조롱하는 세리머니까지

따라하고 있었다.

“이런 건 따라할 필요 없어”

프리킥 골을 성공시킨 뒤 장난스런 표정으로 반니가 자주하던 환호 세리머니

를 하는 상욱을 보고 짜증스럽게 말하는 그다.

호날두, 즐라탄, 포를란, 호나우두, 마지막으로 손흥민까지. 지금껏 수많은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를 봐왔으나, 상욱은 달랐다.

애초 기본기와 스피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상욱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순간적인 센스였다.

아무리 어려운 경기가 있어도 상욱이 그라운드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경

기 흐름이 완전히 뒤바뀐다.

그는 자신이 에이스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고 움직이며, 늘 그렇듯 자

신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이제 자신이 더 알려줄 것은 없었다. 상욱의 기본기는 반니의 10대 시절을 아

늑히 뛰어넘고 있었으며, 경험이나 멘탈 관리도 대단히 뛰어나다

“무슨 프로생활 20년 넘게 한 녀석 같단 말이지”

이미 상욱의 실력은 리저브 리그에 있을 실력이 아니다. 에레디비시 리그 중

심부에 있으며, 20살이 되기 전에 리그를 씹어먹을 것이다.

‘앞으로 2년, 3년? 이 녀석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더 이상 알려줄 것이 없다고 생각한 반니 감독이 마지막 수업을 준비하며 개

인훈련 중인 상욱에게 가볍게 패스한다.

“진”

“네?”

“오늘은 나랑 1on1 한번 해보자”

공을 넘김과 동시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이는 반니스텔루이. 상욱 역시 그의

표정을 읽어내고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먼저 상욱이 공을 잡고 반니의 골대 쪽으로 드리블해나간다.

‘플립플랩? 라크로케타? 어떤 식으로 나올까?’

피부만 다른 브라질리언에 가까운, 묘기에 가까운 개인기를 보이는 상욱의 어

떤 식으로 나올지 준비하는 반니.

상체는 숙이고, 눈은 상욱의 다리와 몸을 번갈아가며 조금도 놓치지 않으며

맨마크하는 반니.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지 몇 년이나 지났으나 집중력하나만

큼은 대단하다.

‘움직인다!’

상욱의 선택은 그저 빠르게 질주하는 것이었으며, 반니는 그 모습에 슬쩍 미

소를 띤다.

맨마크 때는 패스나 드리블의 변화로 상대를 제치라는 교육을 잊은 듯한 상욱

의 모습에 아직 자신이 스승으로서 가르칠 것이 남았다고 생각한 반니가 씩

웃으며 긴 다리를 이용해 볼을 뺏으려는 순간-

“뭐.뭐야?!”

상욱은 공을 소유한 채로 총알같이 뛰기 시작한다. 어찌나 빠른지 아직 순발

력은 녹슬지 않은 반니가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하나 상욱은 이미 30m 앞으로

뛰어나간다.

“어떻게 공을 잡았을 때 더 빠를 수가 있지...?”

대차게 차고나가는 제자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곧 다시 공을

보내며 방긋 웃어 보이는 상욱.

두 번째 대결은 반니에게 더욱 참혹했다.

드리블 때는 터치를 짧게 가져가면서 수비하기 힘들게하라- 상욱은 가르침대

로 짧은 드리블과 한발로만 드리블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발을 바꾸는 트릭까

지 이용하여 완벽하게 그를 속인다.

첫 번째가 상욱 스타일대로 돌파했다면, 두 번째는 반니가 가르친 것을 그대

로 따라했다.

“아니 방금은 못 막을 이유가 없었는데...”

맞다. 스승의 가르침 이상으로 이를 응용한 게 문제지만.

빠르게 2번이나 막힌 감독은 스스로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이를 꽉 문다. 3

번 중에 한번은 이겨야하지 않겠는가.

이번엔 본인이 공을 잡고 앞으로 뛰어나가는 반니스텔루이. 살짝 드리블로 제

친 뒤 상욱의 골대 쪽으로 재빨리 뛰어갈 때 바로 뒤에서 제자의 속삭임이 들

린다.

“그것밖에 못해요? 내가 기어가도 그거보다 빠르겠네”

저건 자신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하는 플레이의 일종이며, 심지어 트래쉬 토

킹은 감독이 직접 가르친 것이다.

억지로 제자를 벗겨낸 반니가 득점을 위해 쉼 없이 올라가고, 이내 패널티라

인 앞까지 왔을 때-

“dit... gek!” (이런..미친자식!)

상욱이 감독의 상의 밑단을 잡아당기더니 이내 팔꿈치로 살짝 누른 뒤 가볍게

공을 탈취한 뒤 유유히 상대방 진영으로 공을 뻥 찬 뒤 골인시킨다.

“너! 이거!”

반칙이야- 소리치려고 했던 반니는 어깨를 으쓱하는 상욱의 모습을 보고 허탈

한 듯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다.

“이 위치라면 심판이 볼 수 있는 시야가 아니죠?”

이 또한 자신이 상욱에게 알려준 것이다. 배운 것을 그대로 진행한 제자는 미

소를 띄며 스승에게 팔을 뻗어 일으킨다.

“앞으로 개인수업은 없다”

“에?! 아니...삐진거에요 설마?”

아니 말상 새기가 고작 그거 때문에 삐져서 수업을 하니 안하니 저러나-

상욱이 놀란 표정을 짓자 곧 그는 제자에게 악수를 내밀며 웃음 짓는다.

“더 이상 가르칠게 없기 때문이야. 네 스승은 이제 실전에서 배우는 경험뿐이다”

반니는 조금의 짜증도, 이죽거림도 없는 그 어느 때보다 초연하고 진심어린

모습으로 상욱에게 말한다.

“진, 넌 유럽의 왕이 될 거야. 아마 역사상 가장 앞에 네 이름이 적힐 수도

있겠지”

상욱의 무궁한 재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반니였으나 방금 플레이로

완전히 확신한 듯하다.

“난 전설을 지도했던 첫 지도자로 남고 싶다. 그러니까 부디- 네 재능을 썩히

지 마라”

첫 감독은 대건고 백승수이긴 한데 이놈은 감독이라 부르기엔 창피한 수준이

니까.

상욱 역시 반니스텔루이의 악수를 양 손으로 공손히 받은 뒤 속삭이듯 말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

“하디 크루거, 어떻게 생각하냐?”

훈련을 마친 뒤 식사 중에 반니 감독이 유려한 영어를 구사하며 묻는다.

나의 네덜란드어 학습을 위해 대부분의 대화는 느리더라도 네덜란드어로 하던

감독이 영어로 말함은 분명 디테일하게 듣고 싶어 함이 분명했다.

“크루거요? 뭐..좋은 선수죠. 킥도 깔끔하고, 공격수 쪽에 뿌리는 스루패스는

말할 것도 없구요”

독선적이고,

느릿거리고,

신체도 약하다.

한마디로 현대 축구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굳이 감독에게 다른

선수 흉을 볼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제 하디와는 리저브 팀에서 함께 뛰어

야 할 사이가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러세요? 제가 그 친구한테 뭐 배울 거라도 있어요?”

“배우긴 그놈이 배워야지”

“네?”

“아니다. 하디 얘기를 왜 하냐면-”

당장 다음 발베이크의 원정경기에 나와 하디를 선발로 내세울 생각이라고 한

다. 경기는 3일 뒤, 아직 리저브 팀 선수들과 손발을 맞춰본 적 없으니 영상

을 보며 플레이를 익혀두라는 말이다.

“네네, 알겠습니다”

그 후론 하디 크루거의 psv 경기 영상을 찾아서 분석하기 시작한다.

스폐셜 모음만 보면 포르투칼의 콰레스마가 세계 최고의 선수란 말처럼 편집

된 하이라이트를 봤을 때 하디 크루거는 감히 에레디비시에 있을 수준이 아니

었다.

상대를 완전히 속이는 페인팅과 뛰어난 볼 간수능력, 가히 천재라 불릴 킥력

과 정리는 패싱능력은 영상을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러면 실제 플레이는 어떨까”

경기 풀 영상은 하이라이트에 비해 처절한 수준이었다. 그의 활약은 하이라이

트에 나오는 것이 전부였으며, 경기 대부분 공을 끌다가 뺏기거나 수비의 강

력한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팀 플레이가 좀 됐으면 좋겠군”

아니면 믿을만한 동료라도 있었으면 나았을까. 생각해보면 웃기다, 저놈 대체

왜 저렇게 공을 끄는거야?

자신에 대한 에고(ego)가 강하고, 한때 월드클래스 소리를 들었던 건 알겠는

데 3~4년 전 얘기가 아닌가. 이 정도면 그 자존심, 버릴 때도 됐는데 말야.

“으- 벌써 걱정 되는구만”

***

발베이크 2군팀과의 경기 당일.

17살에 프로 데뷔를 앞둔 상욱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라커룸 안으로 들어선다.

“헤이- 아시안 천재”

“프로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 친구”

[Jin] 이라는 유니폼이 적힌 9번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보고 2군 동료들 몇몇이

먼저 와 말을 건다.

이들도 유스리그에서 상욱의 폭격을 알고 있는 모양인지 호의적으로 그를 대

하고, 상욱 역시 웃으며 선수단 전원과 인사한 뒤 문득 전체를 돌아보는 상욱.

중요한 한 놈이 없다.

“어? 하디 크루거 어디 갔어?”

“아 그 새끼?”

“그 독일 놈은 이 시간에 안 와”

그저 물어봤을 뿐인데 표정부터 찡그리며 새끼니, 독일 놈이니 비아냥거리는

선수들을 보니 대충 하디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뭐야, 오늘 선발에서 빠졌나?’

경기 시작 10분 전인데 아직까지 안 나오는게 말이 되나- 생각할 때,

문이 열리고 곧 매끈하게 잘생긴 독일 청년이 껌을 씹으며 들어온다. 깔끔한

금발에 날카롭다 못해 베일듯한 콧날은 축구 선수가 아닌 배우에 더 어울릴

법한 외모다.

“오늘부터 같이 뛰게 됐어. 전상욱이야, 여기선 진이라 부르고-”

아침부터 생각하면서 나온 인사말과 함께 악수를 건네나 그는 날 슥 쳐다보더

니 이내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앞으로 팀 중심이 될 유망주야 인사 좀 하지?”

리저브팀 주장의 말에 그는 콧방귀를 끼며 날 슬쩍 쳐다보더니 이내 한쪽 귀

에 에어팟을 끼며 이죽거린다.

“리저브 선수들까지 다 기억해 줄 순 없어. 1군에나 올라오면 그때 인사하지”

이거 상상이상으로 미친 새끼 아닌가..

무례함을 넘어 신박한 수준인 하디 크루거의 인성을 본 상욱이 새삼스레 감탄

하고 있던 차에 곧 이들의 반니스텔루이 감독이 코치진과 입장한다.

“goede lunch” (좋은 점심이야)

오늘 경기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과 함께 전술, 선수명단을 발표하는 감독,

4-4-1-1로 진행될 것이며, 하디 크루거가 중앙 미드필더의 1, 전상욱이 센터

포워드의 1을 맡게 된다.

“중앙 미드필더들은 하디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양쪽 윙어

는 언제든 수비할 수 있도록 라인 밑으로 내려”

다소 수비적인 전술을 지시하던 반니 감독이 문득 하디 크루거의 눈을 보며

분명히 말한다.

“하디. 오늘은 공 오래 끌지마”

“.....”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하디이나 반니는 더욱 단호히 말한다.

“부탁 아니고 명령이야. 돌파 못할 것 같으면 진(Jin)한테 패스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밑으로 볼 돌려”

제아무리 하디가 유아독존에 독단적이라 할 지라도 감독의 명의 어길 순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감독도 자신보다 최소 3수는 위에 있는 커리어를 가진 뤼트 반니스

텔루이가 아닌가.

“알겠나?”

“....네”

하디의 대답과 동시에 선수들 전체를 바라보며 밝은 목소리로 외치는 반니.

“OK! jongens- (좋아! 제군들)

발베이크 놈들을 죄다 죽여버리자!!!”

“우어어어!!!”

“가자아!!!”

선수단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상욱의 프로 데뷔 전이 시작된다.

(수정)불.협.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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