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8화 (18/114)

18화

전직 월클 (1)

2017년 10월 16일,

psv 에인트호번은 창단 이래 역대 최악의 시즌을 진행 중이었다.

9경기를 진행할 동안 현재 성적은,

3승 2무 4패, 10골 21실점 골 득실차 –11로 지난 시즌 리그 2위 팀의 위엄과

명성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현재 감독이 구단 레전드인 필립 코쿠가 아니었다면 당장 경질 당했음은 물론

이요, 퇴근길에 훌리건들에게 테러라도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전술, 조직력, 사기, 기량 등 그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는 구단이나 그

중 가장 최악, 막장 of 막장을 꼽자면 답도 없는 공격라인이었다.

“쓸 만한 공격수가 이리 없어서야...”

팀의 주전 공격수이자, 에이스이자, 주포인 루크 더용의 부진은 코쿠 감독이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저번 시즌 부상으로 15경기밖에 나오지 못했음에도 8골을 기록한 그는 이번시

즌 코쿠 축구의 중심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9경기 시점에서 그의 1718시즌 성적은 9경기 1골.

그 한골마저 PK로 받아 넣은 더용은 리그 내 그 어떤 공격수보다 부진하고 형

편없었다.

저번시즌 크게 당한 다리부상으로 스프린트가 약하고, 강점인 제공권에서 망

설이는 모습을 보이니 골은커녕 제대로 된 연계마저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더용의 경기감각 되찾기 위해 잠시 후보로 내려서 쓸 수도 없는 노

릇이었다.

“에란 자히비 컨디션은 어때?”

“부상 회복까지 1주일, 컨디션 점검까지 1주일. 2주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쓸만한 백업이었던 에란 자히비의 부상으로 감독은 좋든 실든 더용

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악의 부진 PSV! 코쿠 감독 경질 초읽기...]

[루크 더용. 슈팅 대비 골, 유럽리그 최악!]

언론에선 쉬지 않고 팀과 감독을 깎아내리고, 인내심 바닥난 서포터들은 유스

감독부터 다시 배우라니, 히딩크를 데려오라니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었다.

게다가-

“neuken!!” (씨발!)

“이럴 거면 유스팀을 1군에 올려!!”

u-19팀이 리그 내 최대 라이벌 아약스를 꺾고 유스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모

습과 대비되는 성인 팀의 부진에 팬들은 지속적으로 유스 선수들의 기용을 원

했다.

“전상욱....”

아약스 전에서 보인 상욱의 활약은 코쿠 감독마저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유럽 최고수준의 드리블과 살면서 감히 느껴보지 못한 스피드, 묘기 수준의

개인기과 골 결정력은 영상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는 문득 뤼트가 처음 상욱을 소개했을 때를 기억한다.

‘자넨 이놈을 2달 안에 1군으로 데려가려고 할 거야’

‘이 놈은 유럽을 제패한 최초의 아시안이 될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반니의 말을 무시했다.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제대로 된 대회 경험도 업는 아무 정보없는 17살짜리

아시안 꼬맹이를 극찬하는 모습에 혀를 차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필립 코쿠는 다음 원정 경기 벤치 마지막 자리에 하디 크루거와

전상욱을 고민한다.

“그래- 이 놈이다”

***

psv 2군과 고어 헤드 2군과의 리저브 리그경기.

양 팀 모두 별 의미 없는 공방전과 수준 낮은 경기에 관중들과 서포터들 대부

분이 관심 없이 경기를 지켜본다.

“별거 없네”

프로라고 해도 유럽리그 10위권 밖에 있는 에레디비시의 2부리그다.

느리고 투박하고. 당장 직전 시즌 유로파리그 최우수 수비수와 한판 붙고 온

내게 저 정도 수준은..크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상대 선수들 대부분이 얼마 전 붙었던 아약스 유스 팀보다 기량 자체에서 낮

은 듯 보였으며, 뭐 우리 팀 리저브 선수들 역시 유스팀에 조던 테저나 코디

가포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역력했다.

“프로라고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가-”

후반 34분,

배가 고파 근처 매점에서 핫도그라도 사와야겠다 싶어 일어나려던 순간-

벤치 끝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선수의 등번호가 보인다.

[Hardy Krüger]

하디 크루거.

독일에선 보기 드문 천재형 스타일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미 18살에 분데스

리가 리그 베스트를 씹어 먹던, 재능 면에선 메시 이상이란 평가를 받던 역대

급 유망주였다.

[제 2의 발락, 레버쿠젠의 현재이자 미래]

[바이아레나의 왕자]

당시 레버쿠젠의 로저 슈미트 감독 밑에서 만개하여 핵심 선수로 부상하여

2014년 독일리그 최강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으나 주전에서 밀려 점점 기

량을 찾지 못하다가 저번 시즌 완전히 팀에서 배제, 네덜란드 리그까지 오게

된 것이다.

psv에서의 생활도 그에겐 결코 긍정적이진 못했다. 10대 때 재능만을 가지고

축구하는 잊혀진 비운의 스타.

선천적인 유리몸에 기량저하, 2년 가까이 잃은 실전감각 회복을 위해 하위리

그까지 온 하다지만 여기서도 그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필연적인 큰 부상과 잔병치레들로 망가진 몸은 예전과 같은 스프린트와 재빠

른 드리블을 만들지 못했고, 그 시절의 플레이 스타일을 유지하지 못하니 경

기 중 템포만 끊어먹고 별 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현대 축구에 결코 살아남기 힘든 유형인 수비가담 적은 공격형 미드필

더 자리에 있는 그는 전술적으로도 완전히 배제 될 수밖에 없었다.

“코쿠 감독 픽(pick)이었어”

멍하니 앉아있는 하디 크루거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 이를 눈치 챈 한영이 어

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에인트호번 역대 최고 이적료를 지불하며 데려온 선수인데..별 다른 활약이

없어”

수준 높은 스루패스와 볼 다루는 능력을 뛰어나나 활동량이 낮고, 템포 자체

가 느리다보니 팀 전술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감독 픽이면 선수에 맞게 데려온 선수에 맞는 전술을 짜줘야 하지 않나

요? 게다가 하디 정도 재능이면-”

“초반 몇 경기 정도는 그랬지. 하디를 중앙 삼각편대 앞에 두고 나머지 중미

2명이 받치는 형식으로 말야”

그러나 하디의 낮은 활동량 때문에 다른 미드필더들의 활동반경이 줄어들다보

니 동시에 3중미를 사용하는 수적 우위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그래도 찬스 메이킹 횟수가 많거나 패스라도 잘 뿌려주면 상관 없었

는데-”

“지금 기량이 활동량을 포기할 수준은 못되나 보군요”

내 말에 한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뭐...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하디가 이곳에서 제대로 된 활약과 본인의 진짜 기량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천

재 아니랄까봐 가끔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아마 리그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아니면...본인이 적응하기

싫어하거나.

“뭐 어찌됐든 하디는 최소 이번시즌까지는 1군에서 뛰어야할 선수야. 1700만

유로(한화 235억)나 주고 사온 선수니까”

1군에서 뛰려면 어떻게든 하디와 함께 뛰는 법을 익혀야하며 전술적으로 그와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는 것이 한영을 말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컨디션 조절을 위한 2군 경기라지만 경기 종료 15분을 남겨두고 한참

약팀과의 대결에서 지고 있음에도 멍하니 경기장만 쳐다보는 모습에 한심함이

묻어나온다.

‘본인이 진짜 에이스라고 생각하면 내보내달라고 감독 뺨을 후려쳐도 모자란

상황에 말야’

아직 뛸 수 없는 상태인가? 아니 저 자식 지금 뛰고 싶긴 한가? 싶을 때,

“Scheidsrechter!” (심판!)

감독의 교체사인과 함께 18번을 달고 있는 하디 크루거가 천천히 경기장 안으

로 나선다.

“어디 실력 좀 보자”

하디 크루거는 나도 예전에 꽤나 좋아했던 선수다.

확실히 말한다. 좋아‘했던’이다. 그의 재능이 진짜라고 생각했던 2014년까지

말이다.

윙에서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역동적인 스위칭으로 순도 높은 공격 스텟을

쌓았으며, 공격형 미드필더로 뛸 때는 창의적인 패스와 위협적인 찬스를 여러

번 만드는 말 그대로 천재적인 선수였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my!!!”

하고 공을 받아낸 하디. 본인 딴에는 경기를 뒤집어보려 공을 몰고 앞으로 나

가나 성인 남성 평균키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네덜란드 산 수비수들의

거친 태클에 176cm 미드필더는 쉽게 나자빠진다.

뒤늦게 다가온 중앙 미드필더들이 하디에게 들어오는 압박을 막기 위해 다가

오나 이미 공을 탈취당한 후.

“하디 뭐하냐!!!”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왜 이리 약해!”

하디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서포터들은 생각보다 약해빠진 그의 모습에 실망

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욕설을 내뱉는다.

그래, 구단 최고액으로 영입한 선순데 저럴만하지. 밀월이었으면 아마 퇴근할

때 얼굴에 정어리 파이를 던졌을 거다.

“공 잡고 좀만 더 버텨줘, 친구”

하디를 보호하던 psv 중앙 미드필더가 다가와 점잖게 말하나-

“네가 빨리 와서 커버하면 되잖아?!”

그는 오히려 짜증 섞인 얼굴로 수비를 째려보며 이내 사라진다.

‘저 새끼 뭐지? 분노조절 장애인가? 밀월 주장일 때 저런 놈이 왔으면 반쯤

죽여놨을 텐데’

기분이 안 좋은가. 아님 자신의 실력에 대한 맹신이 다소 지나치진 않은가싶다.

남은 시간 내내 하디는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따금씩 수비진을

뚫어내거나 동료 선수에게 기막힌 패스를 보내는 등 번뜩이는 플레이도 있었

으나 대부분 수비에게 막히기 일 수다.

후반 88분.

“마이!!”

이번에도 공을 받은 하디. 오늘 경기 5번의 터치 모두 패널티 라인으로 연결

되지 못했으나 그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 있게 공을 잡아낸다.

상대진영 왼쪽라인 끝으로 이동한 그는 순식간에 패널티라인 쪽으로 공을 몰

고 앞으로 나선다.

이 모습에 놀란 골키퍼와 상대 선수들이 수비를 위해 앞으로 다가오자 하디는

순간 공을 공중으로 높이 띄어 수비와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칩샷을 성공시킨다.

건방진 이유가 있었다.

“괜히 천재라 불린 게 아니군”

순간적인 판단과 골대를 보는 시야, 골키퍼 키를 넘기는 슈팅능력까지. 역시

재능하나는 확실한 선수다.

“크루거!!!!”

“씨발 존나 사랑해!!!!”

방금 전까지 하디를 욕하던 서포터들이 순식간에 돌변해 환호하자 그는 곧 검

지를 입에 대고 관중석을 돌아다니는 세리모니를 펼친다.

거 골 넣었으니까 닥치라 이거다.

***

“이건 정말 아냐”

2군 감독으로 부임한 반니스텔루이와 수석코치 헨드릭이 경기에 대한 감평을

논의 중이다.

하디의 기적적인 동점골로 psv 2군은 졸전 끝에 고어헤드와의 경기에서 무승

부를 기록할 수 있었다.

헨드릭은 다음 경기에는 무조건 하디를 선발로 기용해야한다고 주장하나 감독

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웃기는 소리 마. 팀 플레이 전혀 안 되는 거 못 봤어? 공이나 질질 끌고 말야”

“그래도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하디 뿐이잖습니까. 앞으로 2주는 여기

서 뛸 건데 쓸 수 있을 때까진 제대로 뽑아 먹어야죠”

하디 크루거는 말 그대로 계륵(鷄肋) 같은 선수다.

분명 차이를 만드는 한방이 있어 팀을 구원하기도 하나 늦은 템포와 다소 독

선적인 플레이로 팀을 위기에 빠트리기도 한다.

게다가 리켈메나 외질처럼 플레이 메이커로서 능력이 최정상급도 아니잖는가.

있으면 분명히 좋으나 그만큼 불필요한 부분도 많은 선수.

뭔가 자극을 줬으면 좋겠다, 동료들과 함께 만들면 저 능력 더 극대화 시킬

수 있을텐데-

생각하던 반니스텔루이 감독.

곧이어 감독실 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 불쑥 들어온다.

”regisseur~“ (감독님~)

어색한 네덜란드어를 구사하며 씩 웃어보이는 잘생긴 어린 아시안.

“개인교습 시간임다. 언능 나오시죠”

어쩌면 둘이 좋은 콤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감독이다.

작가의말

낭만을 꿈꾸지 않는 축구천재 → 축구천재는 낭만을 꿈꾸지 않는다.

제목 변경하였습니다.

나이나 설정오류는 제가 주말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전직 월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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