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5화 (15/114)

15화

더 탑퍼 (De Topper)

“뤼트, 표정이 왜 그래? 기쁘지 않나?”

“하핫!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가?! 여튼 준비하라고”

이사회 면담 후 반 니스텔루이 감독은 얼이라도 빠진 것 마냥 천천히 걸어 본

인의 사무실로 들어온다.

u-19 감독이 된지 반 년 만에 온 리저브팀 감독제의. 고작 유스팀에서 2군 팀

감독으로 상승한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 하겠으나 2군 팀은 실제 ‘프로’팀

이다.

성적보단 선수를 키워내고 성장시키는데 주력을 두는 유스팀이 아닌 유의미한

성적을 내서 팀의 우승을 노리는 프로팀이며, 여기서 증명하는 성적이 곧 그

를 psv 1군팀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친정팀의 1군 감독이 돼서 에레디비시를 누비고 싶었던 그에게 2군

감독 제의는 더 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며, 당장 축하파티를 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듬성듬성 아쉬움이 묻어나기까지

한다.

“전상욱은..어떻게 하지?”

25년 넘는 축구 인생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를 지도하게 됐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10가지를 알고, 20가지를 깨우쳐오며, 하루하루 급격히 성

장하는 것이 보인다.

아쉬웠다.

바로 옆에서 저 녀석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유스를 씹어먹고,

리저브팀의 에이스가 돼서, 자신의 psv의 중심으로 별이 되는 모습을 함께하

고 싶었던 것이다.

반니는 리저브 팀에 상욱을 꼭 데려가고 싶었다.

“진(Jin)을요? 리저브 팀에?”

자신과 오랜 기간 함께해온 수석코치 헨드릭에게 상욱의 리저브 팀 콜업에 관

한 의견을 묻는다.

“뭐 실력이야 의심할 필요가 없긴한데..”

“보여준 게 너무 없다?”

“네 그렇죠. 고작 유스팀에서 4경기 밖에 안 나온 친군데 실제 프로는 다르잖

습니까”

아무리 2부라고 해도 프로 무대는 유스와 다르다. 승리하기 위해 모든 걸 다

하고, 눈에 띄기 위해 처절히 움직인다.

“일단 한번 리저브 팀에 올려보시죠? 시험 삼아서 써 보다가 아니면 다시 유

스로 내리면 되잖습니까”

코치의 말이 맘에 들지 않았던 반니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남은 커피를 전

부 마신다.

상욱 역시 유스에서는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나 프로 무대에선 특출난 편

이 아니며, 괜한 스피드를 올리고 개인기를 하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고작 17살 꼬마가 아닌가.

“프로무대에서 부상이라도 당하기라도 할 까봐 그런겁니까?”

“그래, 괜한 욕심 때문에 유망한 선수를 망칠까봐 그래”

“진...그 녀석을 정말 아끼시는 군요”

“세상 어느 감독이 녀석을 싫어할 수 있겠나”

헨드릭 역시 감독의 진심어린 모습을 보며 사뭇 놀란다.

반니는 본래 남에게 크게 관심이나 애정을 쏟는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개

인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며, 모든 것은 팀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다음 경기가 아약스 전입니다”

“그래 안 그래도 이사회에서 한 소리 듣고왔어. 아약스 놈들은 유스 뿐 아니

라 갓난아기여도 이겨야 한다고”

“그렇다면-”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났다며 목소리가 빨라진 코치.

“아약스 전에서 하는 걸 보고 결정하시죠. 아무리 유스라도 아약스 정도를 잡

을만한 능력이면 리저브 팀 정도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수염을 어루만지던 반니가 다음 경기 아약스의 선발라인업을 확인한다.

“더 리흐트?”

“네, 녀석을 상대로 얼마나 할 수 있는지 한번 지켜보고 결정 하시죠”

반니 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리듯 말한다.

“그래, 진 개인적으론 굉장히 중요한 경기가 되겠군”

***

AFC 아약스의 유스 시스템은 에레디비시의 타 팀들과 비교자체를 거부한다.

요한 크루이프와 리누스 미셀스가 몸을 담았던 70년대를 전후로 하여, 1군과

마찬가지로 토털풋볼을 어린시절부터 체계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으며, 탁월한 유스시스템 아래 무수한 스타를 발굴했다.

멀리는 요한 크루이프부터 마르코 반 바스텐, 데니스 베르캄프, 오베르마스,

레이카르트 등 유럽 축구의 레전드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최근에는 더리흐트,

프랭키 더 용, 판더베이크 등의 유럽에서도 한가닥하는 유망주들이 줄을 잇는다.

명실상부 유럽 유스 최강팀.

1군 팀은 어떨지 몰라도 에레디비시에 유스리그에서 아약스는 타 팀과의 비교

를 거부했다.

게다가-

[마테이스 더 리흐트가 경기장에 나옵니다! 리저브팀 주장이자, 1군에서도 귀

하게 쓰이는 선수인데요!]

[네, 부상 복귀 이후에 실전 감각을 위해서 유스 팀 경기에 나온 모양입니다.

거기다 상대가 라이벌 psv이기 때문에 본인도 출전 의지를 불태웠다고 하죠!]

마테이스 더리흐트

2군 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1군으로 콜업되어 주전으로 뛰고 있는 현 에레디

비시 최고의 유망주.

저번 시즌에 이미 프로에 데뷔해 아약스 최연소 득점 기로의 두 번 째 자리에

이름을 올렸으며, 유로파 리그 베스트 팀에 뽑힌 현 아약스 리저브 팀 주장을

맡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 중 하나다.

이 경기는 psv에게 불리했다. 아약스 홈 구장 관중석에는 신성 더 리흐트를

보기위한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어린 디 호드조(신의 아들들 *아약스의

별칭)의 승리를 기원하는

“에인트호번 촌뜨기들 다 죽여버려!!!!”

“마테이스!!! psv 아시안 공격수 죽여버려!!!”

“너네 1군팀 저번주에 졌는데 왜 깝침?”

“아시아 닌자 진(Jin)이 너네 다 교수형시킨대!”

더 탑퍼(De topper)라 부르는 psv와 아약스의 강력한 라이벌리 때문인지 유스

팀끼리 경기임에도 양팀 서포터들은 치열하게 응원한다.

“오우 이런 분위기 오랜만인데?”

치열하다 못해 누구 하나 죽어야 할 끝날 것 같은 치열한 분위기.

이번 생에선 처음 느껴보는 치열한 응원 소리를 눈감은 채 조용히 듣고 있는

상욱.

예전 다니엘 잭슨 때나 들을 수 있었던 시끌벅적한 소음이 그를 즐겁게 만든다.

경기 시작 직전,

“테저”

“....”

“야 임마! 테저!!”

“어..어?!”

그라운드에 나와 팀원들을 모으지도 않은 채 그저 멍하니 골문 앞에 서 있는

주장 조던 테저.

경기 시작 직전 임에도 그는 금발 휘날리며 몸 풀고 있는 더 리흐트를 바라본다.

테저에게 그는 꿈 같은 사람이자, 악몽같은 선수였다.

같은 나이, 같은 포지션,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두 선수이나 유소년

내내 인정받지 못한 테저에 비해 데흐르트는 그 나이대의 슈퍼스타 그 이상이

었다.

16살에 1군 데뷔, 구단 역사에 남는 골, 연령별 대표팀 에이스, 구단 역사상

최연소 주장 역임 등.

평생을 psv에서 뛰며 차근차근 올라와 유스팀 주장까지 된 테저와는 결이 다

른 선수. 테저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고 있는 듯 했다.

“테저 쫄지마 할 수 있어. 별거 아냐. 이길 수 있어, 그동안 죽을만큼 노력해

왔잖아-”

혼자 자기 최면을 거는 테저와 압도적인 홈 팀 분위기에 주눅 들어 있는 코디

카포.

간만에 느끼는 홈 팬의 따뜻한(?) 응원에 가슴이 웅장해지는 상욱까지.

더 디퍼 유소년 버전 경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

Holy shit!

아약스 유스팀은 지금껏 환생 후 상대해본 팀들 중 단연코 최고의 강팀이다.

선수 한명 한명의 기량도 뛰어날뿐더러 팀으로서의 조직력도 에레디비시 유스

팀 가히 최강이라 할 수 있겠다.

화끈한 공격축구와 거친 플레이. 네덜란드 축구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하는 아

약스 유스의 플레이 앞에 우린 속속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실력에서 크게 밀리진 않았다. 상대가 강팀이긴해도 어찌됐든

10대 선수들이며, 우리 역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그러나 이 녀석만큼은 다르다.

[더 리흐트가 정면으로 공을 몰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 드리블도 좋아요!

스루패스 길~게 연결합니다]

[테저가 놓쳤어요! 그대로오! 들어갔습니다. 아약스의 선취골!]

오늘 이상하리만큼 몸이 얼어있는 조던 테저가 더 리흐트의 전진을 놓쳐 전반

5분 만에 선취골을 내주고 만다.

공격과 수비에서 유스팀 레벨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는 더 리흐트. 그는 경기

를 완전히 주도하며 상대를 확실하게 유린하고 있었다.

그 후론 일방적으로 아약스의 페이스대로 진행되는 경기.

강력한 프레스와 위에서 내려찍는 피지컬에 psv 선수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밀린다.

“네가 반니가 키우고 있다는 그 아시안이냐?”

“별거 아닌데? 하여튼 에인트호번 놈들 허풍은-”

전반 15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 보며 비웃어대는 아약스 수비진.

뭐 난 별 상관 없었으나-

“klootzakken!!” (개자식들!)

동료애 투철한 코디 가포와 왼쪽 윙 포워드 윌리엄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상대의 도발에 걸려 미친 듯 앞뒤 안 가리고 돌파하는 양쪽 윙 포워드들의 공

격은 이들에게 손쉽게 막히고, 오히려 아약스의 빠른 역습에 걸려 또 한 골

먹히고 만다.

전반 20분

0:2,

지금껏 제대로 된 공격기회 한번 잡지 못한 우리 팀. 실망한 팬들은 응원 걸

개마저 거꾸로 걸 정도로 침울했으나 이상하게도 난 자꾸 웃음이 난다.

간만에 잡은 기회.

아약스 수비의 프레스를 강한 피지컬로 뚫고 패널티라인 정면에서 골을 차려

던 순간,

[리흐트가 완벽게 컷팅합니다! psv의 슈팅하나도 내주지 않는 아약스!]

더 리흐트가 번개처럼 깔끔하게 걷어낸다.

현대고 김재민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위압

적인 수비 실력.

이게 세계에서 주목받는 유망주의 수준이란 말인가.

“너 요새 유명하더라, 아시안”

“뭐- 골을 좀 넣긴했지. 오늘 더 유명해질테고 말야”

“지고있는 주제에 꼴깝은”

기가 찬 듯 혀를 차는 리흐트를 보며 씩 웃어보인 뒤 필드 위에 있는 선수 전

체를 보며 어색한 네덜란드 어로 외친다.

“Boerûh!!!!” (농부*psv의 별칭)

어찌나 크게 외쳤는지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까지 화들짝 놀란 눈치다.

“포기하지마!!! 내가 3골 더 넣어줄테니까!! 오늘 무조건 이겨서 돌아간다!!!!”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친다.

밀월에서 경기하다 보면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보다 야유와 욕설이 더 익숙하

다. 그리고 이런 야유는 활약 한번에 단숨에 바뀐다.

전반 43분,

2점 차로 전반이 끝나면 역전하기 어려워진다. 전반 내내 아무런 결과도 만들

지 못한 것에 선수들의 의욕도, 힘도 떨어질 것이다.

“흐름을 가져올 방법은....”

킹을 잡는 수밖에 없다.

난 오늘 더 리히트에게 3번이나 막혔다.

근데 뭐? 어쩌라고?

축구- 어쨌든 골만 넣으면 이기는 스포츠 아냐?

“테저 제대로 올려!!!!”

팀의 주장 조던 테저가 아까 더 리흐트가 했던 것 그대로 돌파 후 길게 앞으

로 스루패스를 내지른다.

동시에 미친 듯 앞으로 내달려 수비벽을 뚫어내고 이내 골라인까지 질주한다.

“어딜!!!!”

뒤늦게 더리흐트와 센터백이 커버를 위해 달려온다. 센터백은 전혀 상욱을 전

혀 따라잡지 못하고, 뒤어어 나온 리흐트가 빠르게 뛰어 공을 커트하기 위해

앞까지 다가오나-

“이런 제길!”

심장이 터지도록 질주함에도 전혀 상욱을 따라잡지 못했다. 뒤이어 달려들어

몸싸움조차 밀린 리흐트.

마지막으로 상욱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는 최후의 방법까지 꺼내나-

이미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간 후다.

[골골골골골!!!! psv에 아시안 스타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아직

경기 안 끝났다.

역대 최고의, 가장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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