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유스리그 학살자 (2)
팀에 들어온 지 이주 째,
좋은 주장과 함께 지낼수록 날 인정해주는 선수단과 지내며 빠르게 팀에 녹아
들고 있었다.
우리 팀 주장이자 나보다 2살 많은 수비수 조던 테제는 나와 함께 다니며 이
것저것 알려주면서 간단한 네덜란드 회화를 알려줬고, 현지인들과 함께하니
의사소통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테제는 괜찮은 수비수다.
수비치고 키는 작지만 피지컬이 단단해서 자신보다 큰 상대와의 몸 싸움도 곧
잘 버티며, 풀백에서도 퉁할 만큼 빠른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어 수비 커버범
위도 넓다.
뭐, 공격에서 세밀한 플레이가 아쉽긴 하나 그거야 아직 유스인데 천천히 배
우면 되는거고.
“진!! 받아!”
또 다른 유스팀 에이스 코디 가포가 대단히 좋은 위치에서 크로스를 올린다.
공은 정확히 내 머리를 지나 정확히 골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상욱 풀 네임 발음이 어려웠던 동료들이 날 부르는 애칭은 ‘진(Jin)’다. 경
기 도중 발음하기 편하게 부르다보니 이렇게 박혀버렸는데 뭐 조니, 존, 자니
- 아무렇게나 불러도 별 상관없다.
코디 가포(Cody Gakpo)
조던 테제와 같은 19살로 국적이 네덜란드와 토고를 같이 갖고 있는 흑인 선
수다. 양쪽 윙포워드와 스트라이커를 모두 볼 수 있는 선수로 지금은 오른쪽
윙으로 기용된다.
드리블도 좋고, 빠르고, 크로스도 비교적 정확한 편이어서 그런지 청소년 대
표도 여러 번 뽑힌 팀의 성골 유스.
“크로스 봤냐?! 진의 나라 손흥민보다 깔끔하지?”
“비교할걸 비교해 븅신아, 그 사람은 신이고”
새끼가 어디 우리흥이랑 비비려고 드는지 알 수가 없네. 여튼 난 팀 내 선수
들과 함께 지내며 빠르게 적응해나가고 있었고, 점차 팀의 주포로서도 성장하
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제일 맘에 드는 것은-
“진, 넌 오프더볼 움직임을 좀 더 배워야 해. 공격수는 골 넣는 것만큼 중요
한 게 공을 갖고 있지 않을 때 하는 플레이거든”
반니의 개인지도를 하루 몇 시간이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건고에 있었을 땐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 공격수의 교과서라 불린 선수가
직접 장·단점을 찾아서 코칭해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딨겠는가.
매일 남아서 하는 개인지도에 실력이 하루하루 성장해감을 느낄 수 있었고,
반니 역시 끊임없는 질문에도 조금도 귀찮은 티 내지 않고 성심성의껏 지도했다.
그리고 곧 내 유스팀 데뷔 전이 시작된다.
***
psv u-19와 흐로닝언 19세 팀의 에레디비시 유스리그가 열린다.
유스리그라는 것이 원래 관중보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위한 것으로 리그 경
기수도 적고, 사람들의 관심도 낮으나 그 열기만큼의 성인리그에 못지않았다.
유스 경기에 찾아올만한 사람이라면 웬만큼 축구와 응원하는 팀에 미쳐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거든.
“아시아에서 왔다는 그 꼬마구나!!”
“17살인데 키가 왜 저리 커? 키가 더용만큼 되겠는데?”
psv 열성 팬들은 선발로 나선 상욱을 보며 한 마디씩 거든다.
더용을 제외하곤 팀에 제대로 된 공격수가 없는 팀의 현 상황과 박지성, 이영
표 등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기억하는 팬들은 어느 때 보다 상욱의 활약을 기
대한다.
“딱 더용만큼만 했으면 좋겠군”
“야야- 그건 너무 갔잖아. 그냥 1군에서 제 역할만 해줘도 만족해.
뭐..그렇다고 대단히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1년에도 수십, 수백명의
유스 선수가 올라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냥 오래 팀에 있으면서 적당히 적응해가나는 것. 아시아에서 온 선수를 보
는 팬들의 입장은 딱 그러했다.
”4-3-2-1로 경기 나설 거야. 양쪽 윙 포워드는 가포와 윌리엄, 중앙에는 진이
선다“
경기 시작 전,
마지막 전술 설명과 선발 라인업을 말하던 반니. 뭐 훈련대로만 하면 절대 질
수 없다,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보이자-
늘 하던 얘기를 하면서 경기장 위로 선수들을 내보내던 반니는 문득 상욱을
바라본다.
”헤이- 진,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해?“
”전방 압박해서 수비 뒷공간을 열어준 다음 다른 선수들이 올라올 수 있게...“
지난 2주간 상욱이 경기장 위에서 해야할 역할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않도록 교
육한 반니. 상욱이 다소 귀찮다는 듯 말하자-
”아냐“
오히려 담백하게 웃는다.
”오늘 경기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에?“
“최대한 많은 골을 넣는거야”
사람들 앞에 전상욱이라는 존재가 어떤 선수인지 팬들 앞에 보여주고 오라는
반니의 말에 지금까지 긴장하고 있던 상욱의 얼굴이 살짝 펴지기 시작한다.
“그거야말로- 제가 제일 잘 하는거죠”
***
버질 반다이크와 아르헨 로번의 친정팀이었던 흐로닝언 유스는 결코 약팀이
아니다.
팀 자체도 안정적인 중위권을 나서며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힘 있는 축구를
하는 이들은 이미 올해 psv 19세이하 팀과 2번 상대에 1승 1패를 기록한 바
있다.
아무리 psv가 유스리그 1,2,위를 다투는 강팀이라 할지라도 쉽게 넘 볼 수 있
는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두번째 골! 들어갑니다!!! 한국에서 온 Jin!]
[벼락같은 골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빠를 수가 있나요? 같은 편 선
수도 진이 온걸 몰랐을 겁니다!]
리그 수준에 맞춰 스텝업을 해온 상욱의 활약은 대통령금배에서 보인 기량 이
상을 선보이고 있었다.
경기 초반 코디 가포의 깔끔한 크로스를 받아 낸 뒤 상대 수비수를 압도할만
한 힘으로 헤더 골을 뽑아낸 그는 얼마지나지 않아 2번째 골을 노렸다.
양 팀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한창 중원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득달같이 공을 잡
고 나온 상욱은 감히 따라가지 못할 빠른 속도로 달려가 벼락같은 골을 성공
시킨다.
“Wie is in godsnaam dat kind!
저 자식은 대체 누구야- 흐로닝언 감독의 분노가 벤치를 지나 경기장 안까지
울려 퍼진다.
한국 대표팀 경험도 없고, 경력도 일천한 동양인 꼬마 하나가 지금 자신이 몇
달간 키워낸 선수들 단번에 박살내고 있었던 것이다.
”와우 이렇게 쉽다고?“
이는 상욱조차 놀랄만한 일이다.
자신의 실력이 상승한 것도 있겠으나 처음으로 믿을 만한 동료들이 생기니 그
의 실력은 배가 되어간다.
뭐 대건고의 배정환 같은 선수들도 나쁘지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상욱보다 실
력이 한참 아래에 있는 선수들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psv의 코디 가포나 조던 테제같이 상욱과 비슷한 수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계플레이를 하기 시작한 상욱을 막을 팀은-
최소 네덜란드 유스엔 없었다.
지상에 있는 먹이를 노리는 매 마냥, 상욱은 상대 수비의 조그마한 실수조차
놓치지 않는다.
평범한 패스 미스가 나자 상욱이 미친 듯이 뛰어들어가 공을 탈취한 뒤 코디
가포에게 패스하자 코디는 오른쪽으로 뛰어들어가더니 그에게 낮은 크로스를
날린다.
넘어지면서 발끝으로 찬 슛팅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전반전
에만 3골이 터진다.
[아시아에서 진주가 온 것 같습니다! 전반에만 3골째! 전-상-욱! 이 소년의
이름을 꼭 기억하셔야겠습니다!]
흐로닝언 벤치에서는 전상욱이 누군지,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지에 대한 연구
가 한창이다. 어떻게든 저 괴랄한 동양인 선수를 잠시라도 막기위해 방법‘만’
찾다가 전반이 끝난다.
전반 종료 후,
압도적인 경기력에 만족한 듯한 미소로 선수들을 맞이하는 반니.
이런 스코어가 나왔을 땐 굳이 잘못을 지적하거나 전술 수정 역시 하지 않는다.
”후반에도 이렇게만 간다. 그리고 진“
”네?“
”후반에 2골 더 넣어“
psv에게 후반은 오히려 전반보다 더 쉬웠다.
흐로닝언 선수들은 하프타임 때 무슨 지시를 듣고 왔는지 후반전이 시작하자
마자 상욱에게 달라 붙었고, 이는 순식간에 코디 가포와 다른 선수들에게 기
회를 만든다.
[중앙 비었습니다, 코디가포 그대로! 고올!]
[전상욱에게 선수가 몰리니까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가 생깁니다. 특히 코디
가포는 유스리그에선 최고 수준이에요! 저렇게 기회를 주면 안 됩니다]
4:0
성인 선수들도 이런 스코어면 경기하기 싫어지는데 하물며 유스 선수들에게
4:0이란 스코어는 절망적이다.
그리고 상욱은 아직 이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중앙 미드필더 전체를 뚫
은 상욱은 이번엔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고, 오늘 그의 4번째 골이 터지자-
”위송빠레!!!“
”뚜루뚜뚜뚜뚜!!!!“
흥분한 관중들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예전 박지성의 응원가를 불러 새
롭게 등장한 한국인 영웅을 환영한다.
후반 70분이 지나고 더이상 경기 지속은 의미없는 상황.
전상욱의 완벽한 헤딩경합으로 떨궈 낸 골을 코디 가포가 한 번에 득점에 성
공하고, 후반 막판에 상욱이 기어코 골을 또 넣으며 psv는 무려 7:0으로 경기
에서 승리한다.
[psv 에인트호번 u19 7 : 0 흐로닝언 u19]
11’ 전상욱, 24‘ 전상욱, 39’ 전상욱, 58‘ 코디가포 68’,전상욱 72‘ 코디가
포, 91‘ 전상욱
테제를 포함한 psv 선수단은 상욱의 데뷔와 첫 골을 진심으로 축하했으며, 그
의 진기록은 지역 언론과 국내에서도 소소한 화제가 됐다.
[아시아에서 나타난 축구천재, 뤼트에게 안기다]
[박지성의 후예, psv에서 부활하다!]
유스리그라지만 데뷔전에서 무려 5골을 박은 아시아 선수에 대한 기대는 psv
팬 포럼에서도 관심 폭발이었다.
ㄴ자히비도 없는데 더용 백업으로 한번 써보는거 어때?
ㄴ성인 리그가 X밥으로 보이냐?
ㄴ난 어린 선수들한테 기회를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해. 예를들면 코다가포나
조던테제 같은 선수들부터, 저 아시안까지 말야.
ㄴ어린 선수들한테 기회 줘서 아예 리그 말아 먹을래? 이번엔 아약스에 밀리
고, 페예노르트한테도 지면 챔스도 못 나가
팬들의 의견은 각양각색이었으나 하나 중요한 것은 구단 자체에서 상욱을 주
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도저히 막을 상대가 없습니다!]
[또 넣었습니다!!! 진! 상! 욱!]
[아니죠! 우린 저 선수의 별명을 진! 이름은 저언-사아앙-욱이라고 부릅니다!
또 들어갔습니다!]
3경기 8골 2도움.
난 말도 안 되는 스텟을 쌓아가며 말 그대로 유스리그를 학살하고 있었다.
수비를 파괴하고, 상대를 농락하며,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단 3경기만에 난 확실한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으며 동시에 우리 팀은 유스
리그에서 3연승을 거뒀다.
전상욱-코디카포가 이끄는 공격라인과 조던 테제가 든든하게 지키는 psv u-19
는 더 이상 리그에서 적수가 없는 듯 했고, 내가 느끼기에도 솔직히 이곳에
있기엔 내 덩치가 너무 커진 듯했다.
마치 다 큰 호랑이가 새끼 때부터 있던 조그마한 철장에 갖힌 기분이랄까.
반니의 끊임없는 개인 교습에 팀 내 훈련으로 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었
고, 팀에 입단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 난 벌써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
고 있었다.
그전에-
아약스 u-19 팀과의 라이벌 전이 남아있었다.
더 탑퍼 (De To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