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유스리그 학살자 (1)
[‘포스트 손흥민’ 전상욱, PSV 에인트호번 입단!]
[OSEM] 대건고 소속의 전상욱(17세)이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PSV에 입단한다.
psv 관계자는 13일 “전상욱 선수와 가계약을 한 상태”라며 “입단 절차를 마무
리하면 전상욱 선수의 성장과 팀의 성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교 1학년인 전상욱은 지난 50회 대통령금배 축구대회 MVP에 빛나는 최근 국
내 유망주 중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선수다.
이에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좋은 활약
을......]
최근 대회에서 미친 활약을 보인 상욱의 psv입단 소식은 인터넷 포털과 커뮤
니티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배 현대고 전 활약 영상 조회수가 100만 뷰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상욱
의 해외 진출은 손흥민 이후 유망주에 목마른 한국 축구의 소소한 활력이 됐다.
사람들의 관심도 각양각색이다.
ㄴpsv? 예전에 박지성이 맨유가기 전에 뛰었던 팀 아님? 지렸다. 1군 데뷔해
서 맨유가자!
ㄴ맹구를 간다고? 상욱아! 여기다 모욕죄로 신고해라!
ㄴ대통령금배 플레이 보니까 ㅆㅅㅌㅊ더라. 대성해서 한국인도 레알 한번 가
보자!
ㄴ기사 존나 웃기네ㅋㅋPSV 유스팀에 입단한 건 왜 빼냐? 무슨 기사를 1군 데
뷔한 것 마냥 써놨냐. 심지어 입단테스트 받고 들어간 선수 아님?
잘할 것이니 응원하자! 란 댓글 80%가량, 별볼일 없는 아시아 한정 유망주라
며 평가절하하는 댓글 20%가량. 상욱에 대한 평가는 상반됐으나 하나 확실한
것은 상욱이 지속적으로 언론과 대중들에게 관심받고 있다는 것이다.
***
psv 에인트호번 감독실.
“좆됐군”
팀의 레전드이자 현 1군 감독을 맡고있는 필립 코쿠가 벌써 몇 개비 째 담배
를 태워댄다.
더치 슈퍼컵(Dutch Super Cup)에서 리그 내 최대 라이벌 아약스에게 0:2로 무
기력하게 패배한 것에 대해 팬들의 원성을 듣고 있는 데다 주전 공격수 더용
을 받쳐줄 유일한 공격수 에란 자히비마저 부상으로 쓰러진 상태다.
공격으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선수는 더용 뿐. 이대로 시즌을 시작한다면 망하
는 건 당연한 수순 일 것이다.
“영입은 안 된다, 그러면 임대라도-”
생각하던 코쿠 감독이 이내 말을 멈춘다. C.비니시우스, 포를란 등 급하게 임
대했다가 주급만 버리고 실패한 공격수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야했다. 더용을 받춰줄 쓸모있는 공격수를 찾을 방안을.
“여- 감독님”
“뤼트, 왔나”
u-19 감독 반니가 씩 웃으며 감독실 안으로 들어온다. 둘의 직급은 다르지만
현역 시절 국가대표에서 오래 뛴 사이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무슨 좋은 일있어? 유스에서 선수 뺏어 간다고 툴툴거릴 땐 언제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코쿠 감독의 말에 반니는 여전히 웃으며 서류뭉치를 하나
건넨다.
“이번에 u-19 팀에 뽑은 선수들이야”
자국 리그 선수가 대부분이며, 동유럽 선수 몇몇이 보인다.
“당장 주전으로 쓸만한 놈은 없군. 어? 크라머인가? 그놈 괜찮지 않아? 또 안
뽑혔네?”
한참 파일을 넘기던 중 문득 생각난 듯한 코쿠.
“그 새끼, 경기 중에 사고를 하도 쳐대서 안 뽑았어. 생각 같아선 내쫒아버리
고 싶다”
반니의 말에 이해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감독은 이내 리스트 마지막에 있
는 상욱을 발견한다.
“전..상욱? 한국인이네? 얘는 어때?”
코쿠의 말에 반니는 기다렸다는 듯 다리를 꼬고 앉는다.
“뭐야? 자신감 넘쳐보이네, 얘는 쓸만한가봐. 뭐 박지성 정도 될 만한 재능이
냐?”
“그 이상”
반니의 말에 코쿠가 저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웃는다. 동료를 무시하려던 의도
는 아니었다. 그러나 반니의 말이 안 되긴 했다.
psv에서 박지성이란 존재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다.
고작 동양인이 리그 우승과 팀을 챔스 준결승까지 올렸으며, 발롱도르 후보까
지 오른 팀 레전드를 고작 유스팀에 막 입단한 유망주랑 비교하는 것이 우스
울 만도 했다.
“아니, 두 차원, 세 차원 이상은 위에 있다고 봐도 돼”
코쿠의 웃음에도 반니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그는 지금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자넨 이놈을 2달 안에 1군으로 데려가려고 할 거야”
“17살 꼬마를? 2달 안에? 천만에, 우린 더용도 있고, 2주 안에 자히비가 돌아
올 거야”
코쿠의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반니가 읽어보라며 상욱의 스카우트
평가서를 놓고 나간다.
“내기해도 좋아. 사실 나 역시 이놈을 얼마나 데리고 있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거든”
반니가 나간 문을 잠시 바라보던 코쿠. 뭐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렇게 호들갑
인지 맨 뒷장에 있는 상욱의 스카우터 보고서를 확인한다.
[2017년 C-5 스카우트 보고서]
[이 름 : Jeon Sang-wook
생년월일 : 1999.04.20. 17세
주 력 : 10
가 속 : 10
민첩성 : 9.6
온더볼 : 9.2
오프더볼 : 8.5
점프 : 9.7
헤더 : 9.8
멘탈 및 부담감 대처 : 9.1
기본기 : 10
드리블 : 9.5
파워 : 8.8
슈팅 : 9.2
패스 : 8.3
시야 : 9.4
지능 및 센스 : 10
총평 :
-평균 점수 9.5점으로 팀 역사상 최고 평점 기록함
(94년 호나우두의 기록이 9.3)
- 어린 선수이나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스킬과 단번에 수비를 허무는 패스능
력을 가짐. 직접 골을 만들어내는 시야를 가졌으며, 매우 빠르고 탁월한 반사
신경을 통해 매우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감. 강한 슈팅과 패싱 능력은 묘
기 수준에 가까움
- 보고서대로 성장한다면 팀 내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가능성 보임. 구단에
서 각별히 케어하고 자율성을 보장해야 할 것임]
“역대...최고라...”
리포터를 자세히 읽는 코쿠 감독이 남은 담배를 태우며 생각에 잠긴다.
“그래, 지켜봐주마. 네가 진짜 호나우두를 뛰어넘을 재능인지 말야”
***
psv 선수와 함께 있다니, 가문의 영광이라며 호들갑 떠는 대근을 겨우 말린
뒤 그에게 네덜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PL 진출을 위한 워크퍼밋 발급과 빅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위해 최소 몇
년간은 이곳에 있어야 되기에 배우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지금 신체는 신체만큼 머리도 상당히 비상했고, 난 며칠 만에 더듬거리긴 하
나 기초적인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는 레벨에 올라섰다.
2017년 8월 10일
psv 에인트호번 u-19 유스팀 훈련장.
반니스텔루이 감독과 코치들의 소개를 받아 팀에 합류한다.
첫날은 가벼운 체력운동과 패싱, 웨이트를하며 시간을 보낸다. 지금 몸 상태
에서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17%가량.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능력을 끌어
올릴 것이다.
다른 것보다 일단 선수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어린 선수들 대부분이 동양인 자체를 처음 보는 데다 심지어 동료로 있어야
하니 어색하고 다소 꺼려한다.
먼저 말을 걸긴 해도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대화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헤이- 동양인!”
“응?”
“네가 우리 유스 수비수들을 박살 내고 올라온 걔냐?”
나보다 5cm 정도 작은 키의 흑인 수비수가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며 다가온다.
바트와 크라머라는 17세 팀 선수들을 박살 내고 테스트 불합격까지 시키고 온
날 좋아할 리가 만무했다.
“크라머가 얼굴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 오더라. 너 대체 무슨 짓을 해서 여기
온 거야?”
흑인 소년은 내가 맘에 안 드는 듯 위아래로 쏘아보더니 이내 공을 가져와 굴
린다.
“코치들이 네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난 안 믿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인종차별 듀오를 옹호하려는 듯해서 이 새끼도 제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해 퉁
명스럽게 대답하자 흑인 소년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비꼬아댄다.
“나한테도 보여줘 봐. 네가 가진 재능이 진짜인지”
하..이런 귀찮은 새끼.
그러나 근처에 있던 공을 놈에게 전달 한 뒤, 1on1을 시작한다.
“좋아, 그런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주마”
***
“이거..재밌겠는데요?”
플레잉 코치가 벤치에서 이 모든 장면을 보고 있던 반니에게 다가와 말한다.
상욱을 상대하는 흑인 소년은 19살 팀의, 주전 수비수 조던 테제.
중앙과 오른쪽 풀백을 둘 다 볼 수 있는 희귀한 선수로 수비력도 좋고, 속도
도 빨라 구단에서도 신경 써서 키우는 대형 수비 유망주다.
“저 동양인 꼬마, 테제한테는 무리지 않을까요?”
“그러게요, 테제는 이번 시즌부터 2군 팀에 콜업 될 정도 수준인데”
상욱의 재능이 대단하다고 한들 아직 준비 안 된 17세 꼬마다. 나이도 2살이
나 많고, 경험 수준도 높은 테제에겐 무리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
나 반니스텔루이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 중얼거린다.
“웃기는 소리 마”
자신의 눈이 틀릴 리 없다.
전상욱이 공을 몰고 나가자 테제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상욱을 마크한다.
‘오 나름 자세가 좋네? 허점도 없고’
지금껏 네덜란드에서 본 수비수 중에 가장 실력 좋다고 생각한 상욱이 순간
발을 바꿔 미친 듯 위로 올라가자 테제 역시 비슷한 속도로 그를 따라잡는다.
“스피드는 나도 자신 있지!”
상욱과 같은 속도로 뛰어오며 그를 맨마킹하던 테제. 그러나 상욱은 이내 이
죽거리며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이더니 이내 미친 듯 질주한다.
“어..어?!”
둘의 거리는 순식간에 두뼘이상 차이나고, 자신의 속도를 주체 못한 테제가
놀라 넘어졌을 때 상욱은 이미 골을 넣은 뒤 다시 그에게 다가가 손을 뻗는다.
“....shit”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상욱의 손을 잡고 일어나더니 바로 원모어!를 외치며
재대결한다.
“소용없을 텐데-”
한국어로 나지막이 말하던 상욱은 아까와 같이 공을 몰고 앞으로 빠르게 달려
간다.
“같은 작전 2번은 안 통해!”
이미 공 근처에서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테제. 이번엔 치달을 제대로 막고
자 하는 생각으로 달려드나,
“흐억!”
마지막 순간에 상욱이 순식간에 자세를 틀더니 반대방향으로 공을 몰고 나가
고, 테제는 한번 더 엉덩방아를 찧는다.
완벽한 패배, 그것도 2번이나.
이 정도면 자존심 상해 그만둘 만도 하나 그는 무슨 오기에서인지 몰라도 ‘라
스트 원모어!’를 외친다.
상욱 역시 그의 대결이 퍽 지루하진 않는지 웃으며 대결을 시작한다.
“근성하난 맘에 드네. 이런 놈들한테는...”
진심으로 상대해줘야지.
모든 집중력을 다해 상욱을 마크하는 테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는지 그 눈
빛부터가 다르다.
천천히 드리블하다가 뒤로 돌면서 반대발로 공을 공중으로 띄우더니 이내 빠
르게 달려가 수비보다 공을 먼저 받아내는 상욱.
기가 막히게 잘 들어간 레인보우 플릭(사포)에 선수들은 물론 스텝들 사이에
서도 탄성이 터져 나온다.
“허우우!!!!”
“소문이 사실이었구만!”
선수들이나 입단 테스트 경기를 못 봤던 코치들까지, 모두 상욱을 인정한다.
이놈은 격 자체가 다르다.
코치들과 선수들 몇몇이 상욱에게 넘어간 공만 허망하게 바라보는 조던 테제
를 보며 중얼거린다.
“테제가..자존심이 많이 상하겠는데요?”
왠지 처량해보이는 그의 뒷모습.
그러나 이는 테제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으하하하하!!!”
3번 모두 꼼짝도 못하고 박살났음에도 그는 어느 때 보다 밝게 웃으며 상욱에
게 다가간다.
“소문이 사실 맞구나! 넌...넌 진짜구나! 너무 잘하니까 이거 뭐- 속상하지도
않아!”
“으..응?”
예상치 못한 테제의 말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상욱.
“스벤 크라머 개자식 패줘서 고마워. 그 인종 차별자 새끼- 나한테도 몇 번이
나 검둥이니 축구 말고 목화나 따라니, 별 개소리를 나부댔거든. 씹새끼!”
“아하하...”
“다쳤다고 했을 때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신이 나서 떠드는 모습에 상욱 역시 빙긋 미소 짓는다.
“네가 그렇게 잘한다고 하니 한번 붙어보고 싶어서 분위기 한번 내봤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아냐, 덕분에 재밌었어. 2번째 수비 때는 진심으로 당황했거든”
대답하는 상욱의 말이 꽤 맘에 들었는지 싱긋 웃으며 악수를 내미는 테제.
“난 조던 테제. 유스팀 주장을 맡고 있어.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이거..
생각보다 적응이 쉬워질 것 같다.
유스리그 학살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