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2화 (12/114)

12화

런던의 광견

박지성의 커리어를 뛰어넘을 것이며, 손흥민의 기량 이상의 재능을 가진 공격수-

전상욱에 대한 한국 에이전트의 소개를 듣고 반니는 코웃음쳤다. 박지성, 손

흥민은 그저 아시아인이라서가 아니라 최소 월드클래스 문턱까지 올라왔던 시

대를 대표할만한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제2의 손흥민이라는 소개 문구를 달고 올라왔으나 별 기대는 없었다. 지금껏

제 2의 ~ 선수가 잘된 케이스가 얼마나 있었는가.

당장 제 2의 메시만 해도 남미에 100명도 넘게 있으며, 아시아에조차 이승우

가 있다. 호날두는 또 얼마나 많았으며 위로 올라가면 제 2의 호나우두, 지

단, 마라도나.

수도 없이 많은 아류들이 쏟아져 나왔다. 상욱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시대를 선도하는 ‘진짜’는 이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게 저 동양인일 리

가 없다-

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으나 반니 감독의 선입견은 지금 완벽하게 산산조각난다.

“hou op!!!” (막아!)

B팀 수비진 전원이 달려드나 동양인 선수는 유려하게 수비진을 헤치고 나선

다.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 끝에서 공을 잡은 그는 빠르게 공을 잡고 위로 올

라온다.

수비수 2명이 몸부터 밀고 들어오나 이들 사이 중간으로 공을 넣어서 제쳐내

고, 바로 뒤에 있던 한명은 순속으로 따라오지도 못하게 만들자 남은건 최종

수비수 한명과 골키퍼 뿐이었다.

방금 상욱에게 살인태클을 날리던 U-17 수비수가 골키퍼를 등지고 그를 마크

하나-

“neuken!” (씨발!)

상욱은 순식간에 플립플랩으로 그를 제치며 넘어뜨리더니 이내 골대 왼쪽 구

석으로 공을 톡 차 넣는다.

“맙소사...이건 진짜 말이...!”

충격에 빠진 건 반니 뿐만 아니다. 코칭스텝 전원이 벌떡 일어나 방금 일어난

소설 같은 상황을 지켜본다.

“...쟤들...”

“보통 애들이 아닙니다. 17세 팀에서도 쓸 만한 자원이었어요”

반니의 질문을 먼저 알아차린 코치가 아직 충격에 빠진 얼굴로 중얼거리며 곧

전반이 마무리된다.

상욱은 개인기로 바닥에 넘어져있던 살인태클 수비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거친 영국 영어로 이죽거린다.

“너 축구 존나 못하는구나?”

“아가리 닥쳐, 칭챙총!”

손을 잡기는커녕 거칠게 밀치는 수비수를 보며 조용히 읊조리고 사라지는 상욱.

“앞으로 30분,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거다”

***

“차라리 현대고가 더 나았어”

내 실력이 오른 것도 있겠으나, 이들 대부분의 실력이 K리그 강한 유스 팀에

비해 떨어진다.

전혀 손발 맞추지 않은 테스트 팀인 걸 감안해도 이들의 개인 기량은 전국 최

상위권 실력인 현대나 영생고를 넘지 못한다. 하물며 전국 고교팀을 전부 씹

어먹고 온 내게 이 정도 수준은 별것 아니다.

수비수 수준은 더욱 참혹하다. 직전 대회에서 올림픽 대표까지 뽑힌 김재민과

붙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정도면..

뭐 가지고 놀만하다. 너무 긴장을 많이 했었나보다.

전반 종료 후,

팀별로 쉬고 있는 자리에서 아까 인종차별 하던 u17 선수들에게 다가간다. 전

반의 기세 좋던 모습은 어디 가고 다가가자 괜히 씩씩 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놈들.

“축알못 새끼들, 잘 있었냐?”

“꺼져 동양인.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살기 등등한 눈으로 쏘아붙이나 조금도 무섭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의 모습

이 귀엽기까지 했다.

“너네 좆된 거 알고 있지?”

“...뭐?”

“몰랐구나. 내가 너희들 병신 만들 거야”

대놓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모습에 분노한 선수들이 알 수 없는 네덜란드어로

소리를 쳐댄다. 딱 봐도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인 것 같다.

“후반전에 2골 더 넣을 거니까 알아서들 막아봐”

무슨 소란인가 싶어 벤치에 있는 코치가 다가오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기

장 안으로 들어간다.

“멍청이들, 사람 잘못 건드렸어”

젊었을 때, 그러니까 다니엘 잭슨 시절에 내 별명은 ‘동런던의 미친개’였다.

한번 복수를 위해 물면 상대방이 지쳐 빌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생

긴 별명이다.

밀월이라는 팀 컬러에 오랫동안 맞추다 보니 플레이가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

고, 이런 모습에 팬들은 아마 다니엘은 이랬을 것이다, 하는 소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고의로 반칙한 수비수를 경기 끝나고 죽을 때까지 팼다던가,

팔꿈치로 친 상대 선수를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앙갚음으로 맥주병으로 내려

쳤다던가,

심하게는 다니엘 잭슨은 할렘 갱 출신이라던가-

미친 소문들이 돌긴 했으나 사실 먼저 다른 선수들에게 거칠고, 비매너를 가

한 적은 단언코 없었다.

대신- 누군가 먼저 시비를 걸었을 땐 철저히, 다시는 도발 따위 하지 못하도

록 망가뜨렸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거부터 해야지”

도발한 놈들을 쳐부수기 전에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는 것, 그것부터 시작이다.

후반은 전반보다 훨씬 나았다.

전반 막판 보인 내 활약을 본 A팀 선수들은 자연스레 내게 패스하기 시작했

다. 그래, 어찌됐든 이기는 게 뽑히기 유리하니까 말야.

내가 공을 잡자마자 B팀 선수 전원이 무지성으로 달려든다. 일반 팀처럼 대형

이나 수비전술을 갖추고 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날 막아서 주목받기 위해 하

는 플레이 따위에 막힐 전상욱이 아니었다.

조직력도 없고, 나보다 실력이 훨씬 아래인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시시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다.

이 페이스면 한 5골도 넣을 수 있겠다싶어 공격하려다 이내 마음을 바꿔 올라

운더로 포지션을 변경한다.

중앙이 밀리고 있으면 중앙 미드필더로,

공격시 받아줄 선수가 없으면 윙포워드로,

수비커버가 필요할 때는 곧장 달려가 스위퍼로,

그러다 어느 순간 나타나 벼락같이 슈팅을 쏜다.

“어씨 시간 얼마 안 남았네, 빨리 넣어야 겠다”

후반 내내 경기를 갖고 놀다 남은 시간 10분을 남겨두고, 패널티 라인 끝에서

스루패스를 받아 빠르게 골대를 노린다.

“건방진 새끼!”

오늘 경기내내 내게 털린 수비수를 슈팅하는 척 하며 하나를 제쳐내고, 맨 처

음 인종차별 했던 수비수 놈 역시 왼발로 슈팅하는 척하며 또 하나 제쳐내...

면서 마지막으로 달려오는 살인 태클하던 수비까지 똑같은 페인트로 속인 뒤

골키퍼와 1:1 상황을 만든다.

“막아! 씨발! 무조건 막아!!”

“골키퍼 못 막기만 해봐!”

차별 듀오는 넘어진 채로 골키퍼를 보며 외치고, 몸을 웅크리며 날 막으러 나

온 골키퍼마저 똑같은 방법으로 슈팅 직전까지 가려다 말고 한번 더 꺾는다.

그야말로 농락 그 자체.

골키퍼까지 제친 상태에서 첫 번째 골보다 더욱 가볍게 골인 시킨 뒤 모든 이

들이 시선이 골대에 쏠렸을 때 세리머니를 위해 가다가 처음 시비건 양키놈의

손바닥을 축구화 날 부분으로 콰직- 밟는다.

“끄아아악!!!!”

어찌나 세게 밟았는지 숨 넘어 갈 듯 한 비명과 함께 고통에 몸부림치는 양키.

삐빅-

“무슨 일이야?!”

심판 보던 코치가 소란에 놀라 뛰어오자 소년은 벌떡 일어나 손을 보여주며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에 대해 알린다.

“저..더러운 동양인 새끼가! 내 손을 밟았어요!!!”

“바트!!! 입 안 닥쳐?!!!!”

그냥 ‘저 새끼 순 나쁜 새끼래요!’ 만 얘기하면 되는데 굳이 노란 원숭이니,

칭챙총이니 비하발언을 하며 고자질하니 코치가 들어먹을 리가 있나.

“진짜 한번만 더 그러면 u19팀 승급이고 뭐고, 팀에서 쫒겨날 줄 알아!!!”

“그.그게 아니라..저 놈이...!”

“알아들었으면 당장 경기장으로 꺼져!!”

코치가 자초지종도 듣지 않고 바로 화내는 걸 보면 바트란 놈, 평소 행실에도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

씩씩거리며 날 노려보는 바트를 뒤로 한 채 이번엔 다음 복수 거리를 위해 정

조준한다.

경기종료까지 5분,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 상태를 확인한 뒤 하프라인에서 위로 천천히 올라간다.

“저.저 자식 또 드리블한다!”

“위치 잘 잡고 막아!”

수비라인을 깊숙이 내린 A팀이 라인을 뭉치며 날 막을 생각하고 있을 때-

“멍청이들”

중앙에서 뻥 때린 공이 좌중간을 지나 골대 중앙으로 날카롭게 빨려 들어간다.

“fantastisch!!!!!!”

“완벽한 골이야!!!”

코칭스텝들의 기쁨의 환호성이 경기장 안을 가득 메운다.

오늘 터진 3번째 골에 A팀 선수들 모두가 절망에 빠졌고, 바트와 살인태클은

멍하니 내 골대만 바라본다.

경기종료 1분,

놈들에게 예언한 3골은 전부 넣었고, 만족할만한 수준에 올랐다. 이제 남은

건...

“올려!!!”

예상대로다.

오른쪽 윙 포워드가 올린 서툰 크로스가 상대 수비수를 지나 내 밑으로 떨어

진다. 헤더로 처리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며, 바이시클 킥으로 불가하다.

좀 더 기회를 보다가 발리로 처리하는 것이 정석이나- 살인태클 바로 옆으로

가서 점프한 뒤 머리는 바닥으로, 다리는 하늘로 쳐들고 공 대신 놈의 얼굴에

냅다 슈팅을 때린다.

“뭐.뭐하는거야?! 끄어어억!!!!”

***

psv 에인트호번 u-17 수비수 스벤 크라머.

그는 17세 이하 팀에서 실력으로는 최고이나 왜인지 모르게 지속적으로 19세

팀으로 콜업 되지 못했다. 이미 동기들은 19세 팀에서 뛰거나 올라가지 못한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 이적했으나 그는 끝까지 불리지 못했다.

‘크라머 너는 성격 안 고치면 절대 이 팀에서 못 뛰어’

코치나 감독들이 몇 번이나 그의 단점을 지적하고, 주의를 줬으나 크라머는

지속적으로 동료들과 불화와 분란을 일으켰고, 이번 테스트가 그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그의 동료이자 비슷한 패거리였던 바트 역시 이번 테스트에서 오르지 못하면

더 이상 psv에서 뛸 길이 없었다.

“저 칭크 칭키(Chink, Chinky)가 일부러 내 얼굴을 찼어요!!!

피가 줄줄 흐르는 찢어진 얼굴을 부여잡고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악을 질러대

는 크라머.

”크라머! 그리고 바트!!! 당장 운동장에서 나가!“

애초부터 문제가 많았던 선수 2명이 타지에서 혼자 올라온 동양인 선수를 괴

롭혔고, 인종차별적인 행동과 동시에 경기에서 지고 죄까지 뒤집어 씌운다.

-는 것이 코치진과 감독의 생각이었고 상황을 보면 이는 대단히 상식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었다.

이들은 곧장 경기장에서 퇴장됐고, 상욱은 이런 차별적 표현을 받은 것에 대

해 코치진 전원에게 사과를 받고나서야 테스트가 끝났다.

물론 상욱이 이번 일로 속상하거나 마음 쓰이진 않는다.

‘복수는 확실하다 못해 넘칠 때까지 했는데 뭐’

입단 테스트가 끝난 뒤,

결과는 일주일 뒤에 공고되어 상욱과 대근이 함께 돌아가기 직전-

코칭 스텝의 부름에 잠시 대근이 다녀오더니 상욱에게 말을 전한다.

“어...상욱이 넌 잠깐 남으라는데?”

“네?”

잠시 코치와 대화하고 온 대근은 의기양양하고 기쁜 표정으로 상욱에게 다가

온다.

“넌 지금 당장 계약한대! 상욱아 축하한다! 너 이제 PSV 선수야!”

마치 자신이 입단한 것 마냥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대근의 뒤로 상욱이 가장

존경해하지 마다 않는 공격수가 그에게 다가온다.

“우리 팀에 와줘서 고맙다. 소년”

그는 내게 한국식 인사를 알고 있다며 가볍게 목례하며 날 껴안는다.

“넌 여기서 psv의 전설이 될 거야”

어....

뭐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닌데요..

유스리그 학살자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