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1화 (11/114)

11화

말상 공격수 (2)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항.

“상욱군! 여기에요, 여기!!”

비행기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마자 젊은 동양인 남성이 [Welcome

Netherlands!] 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소리친다.

psv 유니폼에 머플러까지 찬 그는 누가 봐도...날 데리러 온 것이 티가난다.

나이는 20대 초·중반 쯤 되었을까, 멀끔한 피부에에 꽤 큰 키를 가진 잘생긴

한국인 남성은 날 발견하자마자 열렬히 환영한 뒤 악수를 건넨다.

“에인트호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 여기서 통역 및 생활전반을 도와 줄

안대근이라고 합니다”

대단히 쾌활해 보이는 남성과 어색하게 악수 한 뒤 그가 몰고 온 차에 올라탄다.

“바로 가서 짐부터 정리할게요. 저녁에 같이 식사하고 오늘은 푹 쉬어요. 당

장 내일 입단테스트가 잡혀있으니까. 아! 혹시 관광이 필요하진 않죠? 여기

오래 있을거니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남자와 통성명을 시작한다.

남성의 이름은 안대근, 10대 때부터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민와 현재 에

인트호번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다.

나이는 26살로 휴학 중이며, 평소 해외축구와 psv팀의 광팬이었던 그는 한국

인 유망주의 적응을 돕고, 유스 및 1군 선수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꿈같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와 친한 사이인 스포츠 코리아 대표의 제의를 단번에 수락한 것도 그

이유다.

“나 정말 꿈만 같아. 여기 유니폼 보이니?

만난지 20분 만에 자연스레 말을 놓은 그가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내게 유니폼

뒷면을 가르킨다.

[Ronaldo 9]

팀의 전설적인 공격수 호나우두의 마킹을 보이며 말하는 대근.

“한국에서 활약은 유튜브로 몇 번이고 돌려봤어. 진짜 스피드랑 슈팅, psv 시

절 호나우두랑 똑같더라니까. 아! 사실 호나우두 경기하는 걸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아하하!”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대근이 귀찮으면서도 이 먼 타지에서 생활하기 심심하

진 않겠다싶어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들어간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집은 시내 구석에 있는 작은 투룸. 객관적으로 그리 좋은

집이라곤 할 수 없겠으나 17살 무명의 축구선수가 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

은 집이다.

당장 지난 달까지 습하고, 땀 냄새 가득했던 대건고 합숙소에서 지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숙소는 6성급 호텔과 같은 수준이다.

“앞으로 한국 음식은 걱정 마! 우리 엄마가 손이 장난 아니게 크거든-”

잡채, 갈비찜, 김치찌개, 강된장, 오색나물 등 한국에서도 다 먹을 수 없는

한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내일 중요한 경기가 있어 적당히 조절하려

고 했는데, 해외에오니 한국음식이 더 생각난다.

식사가 끝난 뒤 내일 일정에 대해 설명하는 대근.

“내일 오후 2시에 psv 입단 테스트가 있어. 상욱이 너뿐 아니고 지역 내 유망

주 몇하고, u-17 애들 승격 테스트도 같이 진행한다고 하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최근에 와서야 에레디비시 리그 자체가 하향세에 접어들고, 리그 내에서도 아

약스니, 페예노르트에게 밀리는 추세인 psv이나 부잣집은 망해도 3년은 간다

는 말처럼 네덜란드 어린 선수들에게 psv는 드림클럽으로 유명하다.

’혹시 psv 입단 테스트에 떨어져도 너무 상심하지 마요. 폐예노르트, AZ 등

에레디비시에 있는 다른 클럽이랑 컨택하면 되니까‘

출국 전날 배한영 실장이 내게 했던 말이다. 호기롭게 외국으로 떠난 17살 소

년이 겪는 첫 번째 좌절에 무너지는 것이 걱정되서 하는 말이겠으나-

대니얼 잭슨으로 살면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겠는가. 그거 떨어진

다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난 떨어질 생각이 없어”

에인트호번의 별이되고, 곧 네덜란드의 왕이 된다-

그리고 왕이되었을 때 가차없이 떠난다.

내 생각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이번 생은 팀을 위해서 청춘을 바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더 많은 연봉과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

팀의 레전드가 아닌 어느 팀에서도 우승할 수 있는 세계적인 레전드가 될거다.

“유럽 모든 경기장에 내 동상이 세워질거다”

***

psv 에인트호번 u-19 훈련장.

“테스트는 8대8 팀 게임으로 진행합니다. 이번 테스트는 개인 기량보다 얼마

나 팀에 보탬이 되고, 희생할 수 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봅니다”

깐깐하게 생긴 코치가 나와 유색인종을 위해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천천히 말

한다. 오늘만 30명이 넘는 유망주를 봤다는 그의 모습은 다소 사무적이고 어

딘가 딱딱한 모습이 보인다.

내가 속한 그룹은 C-3. 3일간 진행할 테스트의 마지막 조로 16명의 어린 선수

들이 그라운드 위에 오른다.

“상황이 좀 안 좋아”

안에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어두운 표정의 대근이 소식을 전한다.

감독의 까다로운 조건으로 지난 이틀간 뽑힌 선수가 5명도 안 되는데다 선발

된 선수 중 공격수는 아예 없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선발이 어렵다는 말이다.

“뭐- 상관 없어요”

이 정도도 못 뚫고 다시 한국으로 갈 순 없는 노릇이다. 유럽에서도 10권 밖

인 네덜란드 리그 유스팀도 못 뚫는데 무슨 역대 최고의 저니맨이 되겠다고

하는가.

“걱정마세요, 무조건 될거니까”

당최 왜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잔뜩 겁먹은 듯한 대근을 달래고 있으니 멀리

서 나와 비슷한 덩치의 남성이 팀 저지를 입은 채 천천히 다가온다.

“와...진짜 판골(Van glo:별명)이다..”

“우리 아빠가 진짜 좋아하는 선수였어. 오늘 입단테스트도 따라 온다는 거 얼

마나 말렸는지-”

타 유소년 선수들의 수군거림 뒤로 psv 팀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말

상 공격수 하나가 미소지으며 나타난다.

현 에인트호번 u-19 팀 감독,

뤼트 반니스텔루이

내가 psv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

호사가들이 흔히 일컫는 2000년대 4대 스트라이커의 한 축이었고, 또 그 네임

밸류에 전혀 빠지지 않는 득점력을 지녔던, 당대를 대표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

호나우두, 앙리와 더불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격수 중 하나이며, 현역시절

키와 몸무게가 나와 똑같은 신체를 가진 다니얼 잭슨의 최상위 호환인 선수라

할 수 있겠다.

반니의 옆에 있으면서 그가 가졌던 모든 기술과 재능을 내 것으로 만든다. 그

러기 위해선 일단 이 테스트에서 반드시 그의 눈에 들어야한다.

“Heb je lekker geluncht?”

“ja!!”

점심은 맛있게 먹었냐는 질문에 알아서 대충 다른 선수들과 함께 네- 라고 대

답하자 반니가 곧 있을 테스트 경기에 대한 설명을 지속한다.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플레이는 무조건 불합격되니 명심하세요. 득점한다고

뽑히는 것이 아니고, 실점한다고 떨어지는게 아닙니다. 각자 몸 풀고 10분 뒤

에 A,B팀으로 나눠서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슈퍼스타의 방문도 잠시 16명의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기 위한

연습에 한창이다.

나 역시 가볍게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몸을 예열하고 있을 때, 멀리서 덩치 큰

어린 코쟁이 몇몇이 날 보며 뻐큐를 날리거나 마늘 냄새가 난다며 비웃는다.

“kleine oosterse chick” (눈 작은 동양인 새끼)

“hou je mond!!”

이들의 모습은 결국 대근이 형에게 걸렸고, 형은 이들에게 입 닥치라는 말과

함께 앞에 있는 코칭스텝에게 정식으로 항의한다.

“사과해, 병신 새끼들아!”

코치는 인종 차별한 선수들에게 화를 내고 사과를 종용했으나 이들을 퇴장시

키진 않았다. 아마 저들이 팀의 u-17 선수들이라 그런 듯싶다.

이런 도발을 당했음에도..뭐 솔직히 난 별 감정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훌리건을 자랑하는 밀월FC에서 20년을 뛴 나다.

어찌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지 현역 시절 5경기 연속 득점을 못 했다고 서포

터에게 맥주병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

하물며 고작 저딴 어린 놈들 쯤이야.

“쳇 네덜란드어를 아는 놈이 있어. 그럼 영어로 하면 되지! fuck off yellow

monkey!”

이번엔 내가 못들을 줄 알고 영어로 욕하는 놈들. 이번엔 확실히 이들의 욕설

을 듣고 천천히 다가간다.

“헤이-”

아무리 본인들이 다수라고 해도 190cm에 달하는 남성이 다가가는데 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들에게 걸쭉한 영국식 영어로 욕설을 내뱉는다.

“그만 좀 깝쳐. 어차피 경기 시작하면 박살 날 건데 벌써부터 뒤지고 싶냐 병

신 치즈 새끼들아?”

거칠고 억센 영국식 발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욕설을 내뱉자 화들짝 놀라 뒷

걸음질 치는 이들을 보며 이죽거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밀월에서 무려 20년간 뛴 나다. 저딴 도발에 무서워 할

이유가 전혀없다.

“한 번만 더 아가리 털면 동양 닌자의 검술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려주지”

하며, 저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칼 꺼내는 모션을 취하자 이내 놀라 후다닥

달려가는 두 양놈들.

븅신 그냥 주머니에 손 넣은 건데..

“funny guys-”

반니가 테스트 받는 선수 중 유일한 동양인인 날 보고 반갑게 다가와 능숙한

영어를 하며 다가온다.

“south? or....”

“south!!”

그는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차린 뒤 진심으로 반가운 듯 손을 내민다.

“영어를 잘하긴 하는데..억양이 상당히...뭐 어쨌든 반가워. 한국인 친구”

박지성과 손흥민을 만나 함께 뛰어본 적이 있는 반니. 두 선수 모두 훌륭한

선수였으며, 즐거운 기억이었다고 한다.

“전상욱이라고 합니다. 감독님 플레이 영상을 보고 연습 많이 했습니다, 제

우상이세요”

“그래? 17살이면 호날두나 레비를 보고 따라 할 나이대인 것 같은데..”

의외라는 말과 함께 개인 훈련시간이 종료되자 곧 감독석으로 움직이는 반니.

“뭐 그래. 공격수구만, 뭔가 보여줬으면 좋겠네”

***

경기 시작 후 15분,

예상은 했었으나 이 새끼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전반 15분 동안 내게 온 패스는 단 2회. 그것도 전진 패스가 아닌 별 의미 없

는 공 돌리기와 같은 볼 전달이 전부였다.

내가 속한 A팀 선수들 반이 u-17에서 같이 올라온 놈들이라 그런지 그들만의

카르텔이 심한 모양이다. 게다가 난 이들과 피부색부터 다른 동양인이 아닌가.

“새끼 굿잡이다”

오늘 경기 처음으로 받는 전진 패스에 자신감있게 위로 차고 올라간다.

대통령금배 이후로 급상승한 실력 덕에 이런 유스들 정도는 쉽게 정리할 줄

알았으나-

“젠장!!!”

앞에서 들어오는 위험한 태클에 겨우 몸을 비틀어 피하나 이미 공은 뺏긴 뒤다.

“이 개새끼가...”

누군지 고개를 획 드니 아까 나와 말싸움했던 양놈이 이죽거리면서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너네 나라로 꺼져, 동양인!”

허헛

해외에서 이 정도 도발을 받으리라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빨리, 그

것도 이런 콩만한 놈들이 이럴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는 이런 도발을 한 번도 받지 못했는데. 선·후배 관계가 깊고, 예의

를 중시하는 한국 축구가 그리워지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냐 이 새끼야. 남런던의 미친개가 누군지 알려주마”

“런던..? 너 아시아 사람이잖아”

“닥쳐 새꺄! 밀월이 어떤 팀인지 보여줄테니까”

“?? 너 아시아에서 왔잖아”

***

“좀 긴장한 건가. 확실히 기대이하군”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던 반니는 중앙에 고립되어 있는

동양인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안 그래도 한국의 에이전트에서 연락을 받은 참이었다. 함부르크SV에 같이 있

던 그 손흥민 이상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다고 말이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는데-”

전반전 내내 보이는 모습은 별로다. 기회가 많이 없는 것은 맞으나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진짜 재능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뭔가 보여줘야 할 것이다.

“헨드릭, 난 전반까지만 보고 갈테니...”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되고 전반전이 끝날 무렵 반니 감독이 자리에서 슬 일어

나려고 할 때-

상욱이 공을 잡더니 올림픽 육상 선수와 같은 스피드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런 세상에!!!”

작가의말

그라운드의 저니맨 → 저니맨이 축구를 잘함

제목 변경했습니다 ^^;

런던의 광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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