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0화 (10/114)

10화

말상 공격수 (1)

“런던 남쪽에 있는 밀월이란 클럽이에요. 이번 시즌에 팀 역사상 처음으로 pl

에 올라온 팀인데 구단주가 바뀌어서 이것저것 변화를 주고 있나봐요-”

한영이 성의껏 밀월에 대해 설명하나 귓가에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전상욱으로 태어난 뒤 처음 듣는 전 소속팀의 이름이다.

“아시아 시장 마케팅 일환으로 유망한 아시아 선수를 뽑고 싶다고 하긴 하는

데....”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는 한영.

“여긴 훌리건이 좀 심해요. 인종차별도 있고, 팬들 성향도 폭력적이기도 하구

요. 같은 런던 연고지면 웨스트햄이 훨씬 낫죠”

환생한 뒤 밀월에 대한 애정은 없어졌다.

함께한 구단과 팬들은 점점 잊혀져가고, 수 많은 기억들 역시 한켠의 사진처

럼 가슴에 남아있다.

그러나 날 내친 이사회와 새 구단주는 미치도록 밉고, 복수하고 싶다.

설명을 마친 에이전트에게 잠시 생각한 뒤 질문한다. 지금껏 왜 이걸 물어보

지 않았을까.

“혹시 밀월에 다니엘 잭슨...이라는 선수가 있나요?”

“다니엘 잭슨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뭐 유스에나 있을 수도 있겠지- 하는 한영의 말에

티내지 않으려 했으나 허탈한 웃음을 짓고 한숨 쉰다.

밀월을 안다면 팀의 주장이자 20년 넘게 뛴 다니엘 잭슨을 모를 수가 없다.

‘아예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환생하면서 원래 있던 ‘다니엘 잭슨’이라는 존재는 아예 사라졌구나 싶다.

전생의 육체가 없는 지금, 난 온전히 한국인 고등학생 전상욱이 되어 살면 된다.

“그럼 더더욱 복수해야지”

밀월에 복수하고 싶다.

라파(베니테즈 감독)와 구단주 앞에서 구단의 미래를 박살낼 만한 대단히 치

명적인 골을 넣은 뒤 이들 앞에서 농락하고, 조롱의 춤을 추고 싶다.

그리고 날 비난하는 밀월 팬들에게 팀의 과거를 함부로 내친 결과를 똑똑히

맛보고, 구단을 불태우라며 외치고 싶다.

“그러려면 웨스트 햄으로 가는 게 맞는데 말야”

“어? 웨스트 햄으로? 마음 정한거에요?”

내 혼잣말을 들은 한영이 다음 행선지를 정했냐며 컨택하면 되겠냐며 묻자 가

볍게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워크퍼밋 때문에 당장 EPL에서 뛰지도 못하며, 완벽한 복수를 위해선

기량을 더 성장시켜야 한다.

그리고-

애초부터 마음을 정한 팀이 있었다.

“제가 가고 싶은 팀은요....”

***

“야 농담이지?”

휴가가 끝난 뒤의 대건고 감독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백승수 감독이 절박한 표정으로 상욱을 바라본다.

마치 믿었던 사람에게 전 재산이라도 털린 모습이다.

“내가 잘 못 안거지? 너 외국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던데..아니지?”

“아뇨, 맞습니다. 다음달 4일에 바로 출국해요”

표정에서 조금의 거짓도, 장난끼도 보이지 않는 상욱의 모습에 이 상황이 진

짜임을 조금씩 실감하는 백 감독.

사실 상욱이 떠난다는 것은 이미 오늘 오전부터 알고 있었다.

상욱은 이미 학교측과 얘기를 끝났고, 인천 구단과도 애초 프로계약 한 적이

없기에 구단이 반대할 명분도 없었으나 대신 만약 국내로 돌아오게 된다면 인

천과의 계약 우선권 정도만 합의했다고 한다.

학교 측도 구단도 막을 명분도 없고, 17살 어린 선수의 미래를 막고 싶지 않

았기에 그저 응원하며 보내주는 분위기나 백 감독만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금배에서 상욱의 활약을 본 감독은 집에 돌아와 자신의 미래설계를 다

시 짰다.

고등학교에서 감독 생활이나 하겠다던 그의 목표는 3년간 상욱과 함께 모든

리그를 우승하고, 인천 감독으로 부임해 그를 지도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K리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FA컵 등 모든 리그를 우승하고 국가대표 감독으

로 월드컵에 나가는 상상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전상욱과 함께라면 가능한 시나리오였는데!

“너...K리그에서 프로제의 왔냐? 지금 몸값 올리려고 그래?”

지금껏 착하고 순종적이기만 하던 놈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 몰랐다.

‘이 놈은 내 감독 생활 내내 있어야하는 놈이야!

“잘 들어봐라, 너 지금 실력으로 해외 나가면 아무 것도 못해! 여기서 좀 더

배워서 졸업하고 K리그에서 활약하다가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연봉도 억대로

받을 수 있어!”

절박해진 감독이 어떻게든 상욱의 맘을 돌리기 위해 온갖 말을 뱉어내나-

“여기서 더 배울 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팀에선 더더욱요. 대통령배는

감독님께 드리는 선물로 생각하시고, 이만 보내주시죠”

상욱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너...잘 생각해봐라”

이제 감독에게 남은 수는 거의 없다. 남은 모든 수를 다해서 상욱의 맘에 돌

려야한다.

“인천에서 뛰면서 팀의 레전드가 되는 거야. 리그 우승도하고, 아챔도 우승해

서!”

이 대목에서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상욱을 보며 강한 목소리로 외친다.

“인천 홈구장 앞에!!! 네 동상이 세워지는 거야!! 의리에 사나이! 전상욱! 멋

있지 않냐?!”

감독의 말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은 채 오히려 피식거리며 비웃기까지 하는 상

욱. 어찌나 기가 차다는 표정을 보이는지 이를 지켜보는 감독이 당황할 수준

이다.

“동상 세워준다, 의리 지켜라- 저 이런 말 안 좋아해요 감독님. 말씀 다 끝나

셨으면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나가는 상욱의 모습을 보며 미친 듯 외쳐대는 백 감독.

“너..이 건방진 새끼! 이 바닥 얼마나 좁은지 모르지?! 여기 나가는 순간 다

시는, 다시는! 한국에서 축구 못해!!!”

흥분한 백 감독과 정확하게 대비된,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상욱이 무어

라 중얼거리며 나간다.

“현대고 박 감독님이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그때 드린 말씀 그대로 할게요”

저는 한국에서 축구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

나에 대한 집착이 광적이었던 백승수는 내가 팀에서 떠난 다음에도 어떻게든

날 잡기 위해 가진 수를 다 썼다.

가령 날 설득하지 못하자 부모님을 찾아가 ’다시는 국내에서 축구 못하게 해

주겠다‘ ’지금이라도 싹싹 빌면 용서해주겠다‘ 며 협박했고, 축구는 잘 몰라

도 법은 잘 아는 대기업 법무팀 부장인 아버지에게,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바로 고소하겠다”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고 도게자를 박고 돌아갔다고 한다.

거기다 배한영 실장이 아예 감독을 따로 만나 우리 선수에게 더 이상 피해를

입히면 고소는 물론 다시는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못하게 만들겠다며 엄포

를 놓았다.

“누구의 인맥이 더 강한지 한번 시험해보죠”

대기업 스포츠 코리아의 위협에 더 이상 대응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도

망친 백승수.

“아마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 겁니다. 혹여나 또 찾아온다면...꼭 말씀해주

십쇼. 그때는 정말...”

고객을 위함도 있겠으나 무슨 배짱인지 모를 백승수의 도발에 한영도 짜증이

날 대로 난 모양이다.

8월 1일

출국 전날, 일정 확인 및 인사를 위해 집으로 찾아온 한영. 부모님께 몇 번이

고 내 안전에 대해 안심시킨 한영은간단히 일정에 대해 설명한다.

“도착하는 대로 현지가이드가 나와서 도와줄 겁니다. 도착 다음날 바로 입단

테스트가 있으니 준비해야 하구요”

배한영의 경우 국내외를 자주 오고가야하는 입장이라 공항까지만 동행한다고

한다.

“그럼 내일 오전 일찍 모시러 오겠습니다”

“실장님”

“넵”

어느 때처럼 공손히 인사하는 한영을 문득 바라본다. 20살가량 차이나는 나이

에 국내서 가장 유명한 에이전트나 되는 사람이 어찌 이리 매너있고 친절 할

수 있을까.

돈은 왕이고, 그 돈을 벌어다주는 고객은 신이라는 본인의 인터뷰 그대로 행

동하는 한영의 모습에 절로 믿음이 샘솟는다.

“다음에 볼 땐 말 편하게 해주세요. 나이도 저보다 한참 많으시고.. 앞으로

오래 볼 것 같은데-”

내 말에 한영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아진다.

“다음에 제가 네덜란드로 갔을 땐...반드시 그렇게하죠”

내가 선택한 팀은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를 아약스와 양분하는 명문 축구 클럽. 리그 우승 횟수는

23회나 되고, 유럽축구 역사상 극 소수의 팀만 이뤘다는 ’트레블‘을 이룩한

위대한 팀이다.

허정무부터 이영표, 박지성까지. 한국 선수가 3명이나 뛴 친한파 클럽이며,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는 거스 히딩크가 선수와 감독으로 뛴

곳이기도 하다.

역대 팀을 거쳐 간 선수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네덜란드의 수비 영웅 로날드 쿠만, 바이에른의 레전드 아르엔 로벤, 우승 청

부사라 불리는 루드 굴리트가 등 자국 선수들만 해도 대단히 많은 레전드들이

있으며,해외로 눈을 넓히면 레전드들이 즐비하다.

’악동‘ 호마리우와 아이슬란드 대표 구드욘센, 마지막으로 축구 역사상 최고

의 공격수 중 하나라 평가받는 호나우두가 거쳐간 클럽이기도 하다.

이런 대단한 클럽에서 내가 주전은커녕 후보라도 뚫을 수 있을까 생각하겠으

나 앞의 말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지금 psv는 재정난과 여러 선수들이 교체되어 팀 분위기자체가 혼란스러우며,

무엇보다 가장 내 구미를 당긴 것은 현재 팀의 암울한 공격수 상태다.

팀 내 주전 공격수 루크 더용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골게터가 전무한 팀. 2군

에서 올라온 유망주나 포르투칼 리그 공격수 몇몇을 임대해서 쓰긴 하나 결과

는 처참했다.

명성은 높아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주전경쟁의 가능성이 보이며,

epl 진출을 위한 워크퍼밋 확보와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팀.

PSV는 여러 가지 조건에서 완벽한 팀이었다.

뭐 다른 것보다 최대한 빨리 테스트를 받고 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가

장 컸지만 말이다.

4개월 전,

이 몸으로 처음 환생 했을 때를 기억한다.

하루아침에 동양인 소년으로 환생해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국 팀을 전국대회

에서 우승시킨 뒤, 지금 해외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4개월까지의 내 인생이 프롤로그쯤 됐다면 이젠 제대로 된 1막이 펼쳐지

려는 참이다.

***

“ik word gek!(미쳐버리겠군!)”

00년대 세계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현 psv 에인트호벤 u-19 감독 반니

스텔루이.

유스리그 결승을 앞둔 그는 당최 선발라인업을 짜며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팀에 공격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팀 내 주포이자 에이스인 루크 더용

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스트라이커가 없으며, 오죽하면 팬들은 40대 후반이

된 자신의 현역 복귀를 말할 정도니까.

월드클래스 공격수 출신인 그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 공격수를 육성한다.

볼 컨트롤, 드리블, 슈팅, 헤더 등 피를 깎는 노력으로 선수들을 지도했으나

u-19 선수들은 반니가 충족하는 목표의 반도 도달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쓸만

한 몇몇은 1군에서 써보겠다며 속속 가져가는 psv 감독 필립 코쿠의 행동에

짜증이 솟구친다.

“선수는 다 빼가고 성적은 내라고 하고, 이런 미친놈들. 2개의 빵을 다 잡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나?!”

한술 더 떠 구단에선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공격수 육성을 지시했고, 3달 안

에 결과물을 평가할 것이란 말도 했다.

“미친놈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지도자 생활을 한 지도 벌써 5년,

그는 간절히 필요했다.

자신과 비슷한, 아니 본인보다 훨씬 뛰어난 공격수의 등장을 말이다.

“유소년 테스트가 3일 후...”

어디 제발- 이번엔 쓸만한 놈이 들어왔으면 좋겠군

말상 공격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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