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9화 (9/114)

9화

유럽으로 (2)

팀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

이번 대회 우승이 대건고에겐 정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시상식엔 아예 재단 이사장이 찾아와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했으며, 대놓고 내

년부터 축구단 예산지원을 기대해도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 등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대건고의 최종 성인팀 인천 유나이티드 역시 유스팀의 선전을 반긴다. 지난

시즌 인천의 성적은 K리그 클래식 12개 팀 9위, 가까스로 강등을 면한 꿈도

희망도 없는 팀에게 유스팀의 활약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구단에서도 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6경기 11골 1도움, 대회 득점왕, 대회 Best11, MVP까지. 단일 선수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쓴, 명실상부 이번 대회 주인공은 나였다.

[팀의 미래를 위해서 전상욱을 성인팀으로 올려야한다]

[아직 프로팀 검증도 안 된 17살 선수를 무슨! 1군 스쿼드 낭비할 일 있냐]

구단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고위 관계자들이 날 보고 싶다는 소식

이 들려오고 있을 때, 대건고 숙소에서는 우승파티 뒤풀이가 한창이다.

“야!!! 우리 에이스 오셨다!!!!”

“한잔 안 하고 뭐해! 마셔마셔!!”

감독과 코치가 퇴근한 대건고 숙소.

3학년들이 사온 음식들 사이로 춤추고 즐거워하는 있는 선수들 사이로 내가

등장하니 이들은 날 상석에 앉힌 뒤 저마다 고마움을 표현한다.

“고생했다 상욱이”

“너 아니었으면 선수 그만뒀을거다”

“이번 대회 때문에 대학에서 컨택도 들어왔어”

팀이 많이 바뀌었다.

경직된 분위기에서 좀 더 밝고, 느슨하게. 그러나 선후배 사이에 끈끈함은 더

할 나위 없이 강하다.

짧은 시간이나 이곳과도 정이 꽤 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동양인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훈련하고, 경기하고, 다투기도 많이 하고 갈등도 있었으나-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편안해졌다. 2학년이 되면 더욱 편해질 거고, 팀

은 완전히 날 중심으로 전술을 짤 것이다.

감독을 패싱할 수 있으니 프리롤로 뛸 수도 있고, 상위팀의 오퍼도 더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약팀이긴 하지만 같이해온 의리를 생각하자-

라는 생각을 전생의 다니엘 잭슨 때 해왔고, 결과는 참혹했다.

난 떠나야 한다.

“주장, 말씀드릴 게 있어요”

간만에 팀원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한 뒤, 조용히 주장인 배정환을 불러낸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냐?”

“저 해외 갈 거에요. 빠르면 다음 달, 늦어도 올해 안으로 한국 뜰 거에요”

갑작스런 말에 잠시 충격에 빠진 듯한 주장이나 이내 진정하고 말을 뱉어낸다.

“뭐...주제넘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조금 이르지 않니? 그래도 내년 춘계

리그까지는 뛰고 가는게...”

“선배도 아시잖아요. 저 더이상 여기 고등리그에선 배울게 없어요”

지극히 건방지고 오만한 말이나 정환은 조금도 동요치 않는다.

“그래..그건 그렇지”

내 활약을 누구보다 앞에서 지켜본 정환은 내가 하는 말이 지극히 당연한 것

임을 알고 있다.

“이 소식 감독님도 아셔? 아니면...”

“팀에선 선배가 처음이에요”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짓던 정환이 동시에 곤란한 표정으로 걱정한다.

“백 감독이 쉽게 보내지 않을 텐데-”

“걱정 마세요. 그 양반 반대할 거 모르고 선택한 길 아니에요”

자신 있다는 듯 씩 웃어 보이자 이내 본인도 맘이 놓이는지 내게 악수를 권하

는 정환.

“그래 수고했다. 에이스”

“많이 배웠습니다. 주장”

어색하게 인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주장이 뭔가 밝은 목소리로

불러세운다.

“야!”

“네?”

“싸인하나 해줘라. 앞으로 5년 뒤에 엄청 비싸게 팔 수 있을 거 같으니까 흐흐”

***

대회가 끝난 뒤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대구에 있는 본가로 내려간다.

“그러니까...유럽으로 가겠다고?”

부모님은 좋은 사람이었다.

대기업 부장인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인 어머니.

기성용, 지동원과 같은 유명 에이전트에서 온 연락이 왔다고 하니 벌써부터

손흥민이나 박지성처럼 대성하는 것 아니냐며 웃음꽃이 활짝 핀 두 분.

아들이 K리그에서 유명해져서 국가대표까지 차출되는 꿈을 꾸셨으나 아들의

유럽행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평범한 지방 아파트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중년 부부, 갑작스레 밝힌

아들의 유럽행은 유럽 축구는커녕 월드컵도 잘 안 보는 부모님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꼭...꼭 가야겠니? 한국에 있어도 잘 할 수 있지 않아? 거 이동국도 여기 있

고, 안정환이는 아직 뛰나?”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탄 아들이 대견스럽긴 하나 17살 밖에 안 된 꼬마를 혼

자서 해외로 보내는 것은 부모로서 대단히 걱정스런 일이다.

“아빠는 회사 일 때문에 못 가고, 엄마는 네 동생이랑 할아버지 편찮으셔서

계속 왔다갔다하는데,,,어떻게 너 혼자...”

“에이- 에이전트에서 담당 매니저랑 통역사까지 다 붙여줘요. 살 집까지 마련

해주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국내 최대 규모의 에이전트 회사에서 24시간을 케어해주니 걱정 말라는 소리

를 이미 수십번도 더 했으나 자식 걱정 가득인 부모님에겐 통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도 17살밖에 안 된 애를 어떻게 보내. 1년 정도는 고등학교 좀 더

다니고-”

“엄마, 이거 정말 좋은 기회에요. 해외에서 뛰면 실력도 늘거고, 연봉도 늘

고, 보는 눈이 많으니 국가대표에 빨리 뽑힐 수도 있구요”

애초 축구라면 국가대표팀 밖에 모르는 부모님에게 지속적으로 국대 얘기를

한다.

가문의 영광이며,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번에 받으실거라는 말을 하니

조금씩 눈빛이 흔들리는 부모님이나-

“그래도 안 돼! 세상에 일본, 중국도 아니고 유럽이라니!”

“아니 거기는 인프라가 잘 되있어서 훨씬 더 나아....”

”당신도 좀 뭐라고 해.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어머니의 강경한 반응을 꺾긴 힘들었다. 이번엔 뭐라고 꼬셔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날 보며 조용히 말한다.

“상욱아”

“네?”

“자신 있니?”

아버지는 대통령금배에서 보인 내 활약을 보고 분명히 대성할 것이라고 확신

하신 듯하다. 축구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도저히 국내에선 상대가 없다는 것

을 느끼신 아버지.

당장 축구를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아들이 하루아침에 전국구 유망주가 돼

서 해외 진출까지 논하는데 그저 반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의 물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슬쩍 미소지으며 말한다.

“국가대표 7번 달고, 월드컵에서 골 넣는 아들 한 명쯤 있으면 좋지 않겠어

요? 주변에 자랑도 하구요, 헤헤”

“그럼 좋다”

“여보!!!”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말에 버럭 소리치는 어머니. 그러나 이미 그의 마음은

확고한 듯 하다.

“상욱이가 어린애도 아니고, 자기 돈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회사

에서 돈까지 내준다잖아. 이걸 우리가 막으면 뭐가 되겠어? 나중에 아들한테

원망들어~”

장난스럽게, 그러나 정확한 어조로 말하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일단 에이전트 회사 사람 한번 만나보자. 설명 정도는 들을 수 있잖아. 안

그래? 게다가....”

한일전에서 결승골 넣는 아들이 생기면 얼마나 좋겠어?

아버지의 말에 순간 눈빛이 흔들리는 어머니. 퍽 귀여우시다.

“진짜...조금만 못 미덥기만 해봐! 당장에 그만두라고 할테니까!”

“좋아요, 안 그래도 내일 에이전트랑 만나기로 했어요”

동시에 어느 때 보다 밝은 모습으로 부모님께 명함 한 장을 보여드린다.

[스포츠 코리아 배한영 실장]

전화를 받자마자 밝으면서도 다소 오만한 목소리로 말하는 배한영.

[연락 주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최고의 선수는 최고의 에이전트와 함께 일해

야 하는 법이죠]

***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국내 최고 유망주와의 계약인데 당연히 저희가 와야지요”

배한영 실장은 연락하자마자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는 날 다른 에이전트에 뺏기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겠으나 먼 곳에서 직접

찾아옴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도 충분하다.

업계 최고라는 소문이 자자한 배한영은 가장 먼저 부모님을 설득시켰다.

“전 선수가 1군 데뷔하기 전까진 저희 쪽에서 체류비와 생활비 지급해드릴거

구요, 제휴 맺어진 구단과는 연락해서 아버님 직장 정도는 마련 드릴 수도 있

습니다”

현지 가이드와 축구 이외에 현지 언어 및 학업도 함께 병행할 것이며, 전문적

으로 매니저가 붙어 케어 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는 한영.

“선수는 운동에만, 부모님은 현지 적응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

희와 구단에서 할 일이구요”

에이전트의 설명을 다 들은 부모님. 두 분 다 사정상 한국을 떠날 수 없기에

막상 해외로 나가는 것을 고민하자, 한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충분히 불안하실 수 있죠, 당연한 고민이십니다. 저도 2살 난 딸이 있으니까요”

그러더니 갑자기 액수가 적힌 계약서를 부모님 쪽으로 들이미는 한영.

“저희 쪽에서 전상욱 선수 프로 계약 전까지 지급될 돈입니다”

1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거기다 매니저와 숙소비 일체까지 들어가니 내게 들

어가는 돈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저희는 사기업입니다. 그리고 투자한 금액의 최소 20배는 끌어낼 생각이죠.

그러기 위해선....”

이 대목에서 자신감있게 말하는 한영.

“저희는 사활을 걸고 전상욱 선수를 케어할 겁니다. 잘 키워서 이 돈 회수해

야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 역시 불안해하나 고개를 끄덕인다. 기업에

게 돈보다 더 확실한 장치가 어딨겠는가.

이미 허락 직전에 놓인 부모님이 마지막 남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한다.

“뭐..알겠습니다. 팀을 고르는 건 내가 아니라 아들이 선택하는 거니까 잠시

뒤에 따로 얘기 나누시고...”

“네 편하게 질문 주세요”

“아직 해외 팀이랑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테스트조차 본 적이 없는데..이렇

게 큰 계약을 해도 됩니까? 국내에 남을지도 모르고, 기대만큼 못 클 수도 있

잖습니까”

어머니의 질문에 한영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낸다. 마치 이런 질문이 오

길 바랐던 것처럼.

“박주영, 기성용, 손흥민, 최근엔 이강인 선수까지. 저희 쪽에서 유망주 시절

부터 지켜보고 컨택 진행했던 선수들입니다”

“그...런데요?”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라 생각하십니까?”

질문한 쪽은 자신인데 뚱딴지같은 답변과 동시에 오히려 되묻는 한영의 말에

갸우뚱거리는 부모님을 보며 한영이 잔잔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 나간다.

“그러니까...그쪽에서는 우리 상욱이가 손흥민이랑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할

거라는 말입니까?”

“아뇨”

그 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에이전트.

“최소 2배, 아니 그 이상도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전 선수께서

지금과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자기 아들이 손흥민보다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

라 확신하는데.

“잘 알겠습니다. 나머지 계약 관련 사항은 아들과 나누시죠. 대신 우리 아들

이 싫다고 하면 여기까지 오신 건 고맙지만 언제든 취소하겠습니다”

해외 진출에 대한 반대는 하되, 부모님 계약에 대해 터치할 생각은 전혀 없었

다. 왜 보통 부모가 에이전트 계약에 간섭하는 경우가 파다한데 모든 것은 내

게 위임한 부모님께 절로 감사하다.

“그럼요, 잘 알겠습니다”

웃으며 목례하는 한영이 이제 본격적인 계약과 팀 선정을 위해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좋은 부모님을 두셨군요”

“제겐 너무나 존경스런 분들이죠”

“자 그럼 설명 먼저 드리겠습니다. 우리 쪽에서 컨택 가능한 팀은 EPL 쪽에 2

팀, 독일 분데스리가에 3팀, 네덜란드 리그가 있습니다. 먼저 시기가 빠른 쪽

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EPL, 10월 초에 웨스트햄 유명 에이전트사에서 추천받은 유망주들

을 대상으로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한다. 내가 오케이만 하면 테스트 명단에

올려줄 수 있다.

두 번째는 독일 분데스리가, 1부의 아우크스부르크와 호펜하임. 2부의 함부르

크. 국내 선수들이 뛴 적이 있어 에이전트를 통해서 빠른 시일 내 입단 테스

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PSV, 역대 한국인이 3명이나 뛴 친한파 클

럽으로 유망주 수급과 아시아 마케팅 강화로 따로 입단 테스트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음...배 실장님은 어느 쪽이 최선이라 생각하세요?”

그저 의견을 듣고 싶은거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라는 것은 아니다. 배 실장

역시 이를 인지하고 한 팀씩 설명을 시작한다.

“다 장·단점이 있어서 어디가 최선이라고 바로는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일단

단점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PL 쪽은 수준이 너무 높기도 하고, 아직 피지컬 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아서 1

군으로 나서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유소년리그에서 뛰어야하며, 워크퍼밋

(취업비자) 발급이 힘든 pl의 경우 아무리 잘한다 해도 비자 발급을 위해 기

타 리그로 임대가 무조건적인 상황에서 굳이 지금 갈 필요가 있냐에 대한- 의견.

분데스리가의 경우 조직력을 1순위로 중시하기 때문에 나의 자유로운 플레이

가 나오기 힘들 것이며, 기존 선수들의 조직력이 강해 쉽게 주전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에레디비시의 경우 리그 수준이 높지 않아 1군 데뷔는 빠를 수 있어도 리그

자체의 수준과 관심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특출나지 않는 이상 주목받기가 쉽

지 않을 것이다.

“뭐 단점을...크게 부각시키긴 했는데 장점도 많아요”

리그 관심도가 높은 pl의 경우 뚫기는 힘들어도 주전으로 나와서 어느 정도

활약하는 순간 스텝업은 물론 빅클럽 스카우터들의 눈에 띌 수 있고, 임대 가

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도 있다.

독일의 경우 한번 주전에 오르면 조직력을 맞추기 위해서 계속 경기에 나설

수 있고,

에레디비시의 경우 1군 데뷔가 어렵지 않기에 바로 성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경험을 상승시킬 수 있다.

배 실장의 말을 조용히 곱씹다가 문득 생각이나 묻는다.

“아 처음에 PL팀 2개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 웨스트햄만 말씀하신 거 같

은데?”

“아..말씀 안 드린 곳이 하나 있었네요. 뭐 사실 별로 추천하는 곳은 아니라

서...”

꺼림칙한 목소리의 배실장이 중얼거리듯 말한다.

“영국 런던에 밀월이라는 팀입니다”

말상 공격수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