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7화 (7/114)

7화

MVP (2)

“전상욱이 저놈 지쳤다”

현풍과 대건의 8강 경기가 끝난 뒤 현대고 훈련장.

현대 감독 박순철이 상욱의 플레이 영상을 보며 만족스럽게 끄덕인다.

60개 팀이 20일 동안 경기해서 우승팀을 가리는 대통령금배 특성상 우승하는

팀은 3일 주기로 경기, 20일에 6경기를 하는 비정상적인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아무리 전상욱의 재능이 기괴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한들 17세 고교생, 아니

인간인 이상 지치는 건 당연한 것이다.

현풍고 전에서 상욱은 후반 70분 이후로 지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스프린터

는커녕 제대로 된 슈팅도 힘들어보였다.

게다가 4경기째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는 상욱의 몸상태는 지금 결코 정상이

아닐 것이다.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려야지”

반드시 지난번 리그 경기의 수모를 갚고 싶은 감독과 열의로 가득찬 현대고

선수들.

“재민이, 이리와 봐”

순철의 부름에 머리를 바짝 깎은 덩치크고 체격 좋은 젊은 남성이 천천히 걸

어온다.

김재민

고작 17살에 키 195cm에 몸무게 100kg이 넘어가는 축구보단 미식축구에 더 잘

어울리는 현대고의 괴물 수비수다.

강력한 피지컬에 100m를 11초 후반대에 끊는 스피드와 괜찮은 발재간을 가진

現 현대고 수비의 핵이자, 미래 울산의 기둥이라 불리는 전국구 유망주.

지난 대건고와의 경기 때는 부상으로 나오지 못했으나 박순철 감독은 필승 대

건고 전과 전상욱을 막기 위해 수비의 핵을 꺼내 든다.

“프로에 가까운 진짜 유망주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줘라. 이번 대회 우승은

반드시 현대고다”

***

4강전을 앞둔 대건고 라커룸

“라인 내리는 대신에 양 풀백들이 최대한 위로 올라와서 상욱이한테 공을 전

달해야 해. 안 그러면 현대고 중앙에 완전히- 잡아 먹힐 거야”

”맞습니다. 현대고 3미들, 생각 이상으로 강해요“

이제 코치와 내가 앞으로 나가 전술에 대해 설명하고, 감독은 맨 뒤에 팔짱만

낀 채 고개만 끄덕인다.

백 감독 말로는 이게 선수에게 자율성을 주는 21세기형 감독 트렌드라고 하는

데, 아니 이건 그냥 감독이 없는 거 잖아.

”아! 오늘 경기 김재민 나온다“

코치의 말에 선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특히 주장 배정환의 표정이 어둡다.

”주장, 뭐 무슨 일 있어요? 김재민?“

내 질문에 잠시 생각에 빠지며 중얼거리는 정환.

“중학교 때부터 이름 날리던 수비수야. 17살밖에 안 됐는데 올림픽 대표팀까

지 뽑힌 괴물이지”

앞선 3경기에선 어떻게 내 장기로 경기를 이길 수 있었으나 현대고 전은 다르다.

고교팀 중에서도 최상단에 위치하는 팀이며, 이미 날 한번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박순철 감독은 어떻게든 여러 선수들을 붙여 날 막으려고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

벌써 보름 간격으로 4경기를 뛰어다니니 몸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지난 4개월간 신체 능력을 끌어올렸다지만 그래 봤자 17살이다.

게다가 김재민이라는 현대고 수비의 핵심이라는 놈과도 붙을 생각에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야야, 뭘 그리 걱정해! 수비는 수비 잘하고! 전상욱이는 골 넣고! 그게 전부

지 뭐! 안 그래?!“

마치 남의 인 것마냥 뱉어대는 백 감독의 말에 괜히 피식거리긴 하나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이거 잘하면 질 수도 있겠다.

***

전반전의 반이 지나갈 때,

상욱은 벌써 몇 번이나 현대고 수비에게 막히고 있었다.

“이 새끼들 정말...”

경기 입장부터 어느 정도 지친 상태의 상욱은 무리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2골

정도 넣고 다시 벤치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전반전 동안 평소보다 더 많은 스프린트를 뛰고 체력소모가 많은 드

리블을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지난번 경기에 비해 지친 모습은 어찌할 수 없

었다.

스코어는 0:1

아예 지고 있었다.

아무리 상욱이 지쳤다고 한들 지금 현대고에서 상욱 수준의 선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

아니, 딱 하나 있긴 했다.

[대건고 배정환이 공격수에게 길게 연결해줍니다. 아! 전상욱이 패널티 라인

안으로 뛰어 들어가구요!]

[이거 기회에요! 오늘 대건이 만든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공격수의 패스가 상대진영에 있는 상욱에게 정확히 연결되자 그는 수비수와

골키퍼까지 제친 뒤 골대를 노린다.

“일단 동점...”

[아!!! 김재민 막아냅니다!!!]

[지금 u-17 국가대표팀 핵심 수비수인 김재민입니다! 다음 올림픽 대표 차출

이 확정된, 대단히 유망한 선수죠!]

놀란 상욱과 배정환이 황급히 수비를 위해 들어오나 이미 현대고의 공격수가

골키퍼를 속이며 팀의 두 번째 골을 만들어낸다.

“이런 젠장!!!!”

[현대고의 완벽한 역습! 현대가 2점차로 앞서나갑니다!]

[이야- 김재민 선수 진짜 잘하네요! 환상적인 수비에 이어 역습까지 만들어내

는 모습! 대단합니다!]

“예상대로군”

경기를 지켜보는 현대고의 감독이 혼자 들을 수 있는 말로 이죽거리며 씩 웃

어 보인다.

현대고의 모든 수비를 뚫어낸 상욱이었으나 최종 수비 김재민에게 몇 번이나

막히고 있는 그였다.

“전상욱이 잘하긴 하지. 당장 고교생 중에 저놈을 막을 수비수는 없을거야.

근데 그건 고등학생 레벨이고”

김재민은 프로 수준이다- 그 말이다.

공격에 전상욱, 수비에 김재민을 두고 국내를 씹어먹으려 했던 박순철 감독.

계획에 차질이 생겼으나 천하는 와룡과 봉추, 둘중 하나만 얻어도 가능하다.

“후반에 3골 더 넣는다. 확실히 밟아주지”

자신감 넘치는 박 감독의 말과 동시에 전반이 종료된다.

***

“정말 괜찮겠니?”

팀의 주장 배정환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감독은 젊~은 놈들이 쓰러질

때까지 뛰어야지! 하는 모습으로 말하나 주장은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었다.

“뭐- 뛸 수는 있어요”

거짓말이 아니다.

후반전은 소화할 수는 있다. 문제는 전반과 같은 스프린트가 나올까 문제지만.

“하지만 힘들긴 하지?”

조용히 다가와 묻는 주장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더욱 가까이 다가와

중얼거리듯 묻는다.

“상욱아, 도저히 우리 실력으론 현대고 놈들을 못 이길 거 같다. 너 빼곤 저

놈들 넘을 수 있는 선수가..우린 하나도 없어”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진심 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정환. 그의 얼굴에선

애절함까지 보인다.

“이기적인 거 아는데...진짜 결승 한번 가보고 싶다. 고생한 우리 동기들, 팀

원들 12년간 우승은커녕 결승한번 못 가본 나까지. 조금만, 조금만...더 힘내

줄 수 있겠냐?”

주장뿐만 아니라 주전 선수들 전원이 애타는 얼굴로 나만 바라본다. 고작 1학

년인, 주전으로 뛴 지 4개월밖에 되잖는 17살 선수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은 이 녀석들이 지금 얼마나 간절한지 이해됐다.

이 븅신 같은 팀에는 조금도 애정이 없으나, 대회를 뛰며 간절히 나만 바라보

는 소년들을 보니 맘이 쓰인다.

이기게 해주고 싶다,

우승하게 해주고 싶다.

난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을 이 어린 동양인들에겐 주고 싶다.

지쳐서 쉬고 싶은 맘이 간절했으나 이들을 보며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걱정마요 주장,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으니까”

***

“프레스 강한 팀이랑 경기하니까 많이 밀리네요”

“음...지쳐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스포츠 코리아의 배한영 실장이 대건과 현대의 경기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김재민이란 존재는 전상욱에게 있어 첫 번째 벽이 될 것이다.

전상욱 같은 선수가 지금껏 한 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충격적인 활약을 보이는 특급 유망주. 그대로 한국축구를 씹어먹을 것 같은

재능을 보이나 실제 검증된 대표팀 선수에게 철저히 당하는 모습을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늘 대건고가 경기에 져도 전상욱이랑 계약하는 건 변하지 않아. 대신-”

“전상욱이 얼마나 가능성을 보이는지 보고 싶은거죠?”

후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영.

“그래, 저놈이 진짜 천재인지 확인해야 하니까 말야”

한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와아아아!!!!!”

“13번 쟤 대체 뭐야?!!!”

후반 55분,

관중석에서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고함이 들린다.

하프라인 밑 쪽에서 활동하던 상욱은 전반전엔 재민을 의식하느라 못 봤던 경

기 흐름이 보인다.

[대지를 가르는 패스!]

[13번 전상욱 선수죠. 감히 오늘 경기 최고의 패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상욱의 패스가 상대진영에 매복했던 대건의 오른쪽 윙포워드에게 연결되고-

[그대로 슛! 골키퍼 선방입니다!]

[골로 연결되진 못했습니다만, 아주 좋은 시도였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만들

어 가는 거에요!]

현대고와 김재민을 잡기 위한 작전 첫 번째,

10대 선수가 감히 알 수 없는 넓은 시야로 상대를 공략한다. 전반 내내 제대

로 된 슈팅하나 내주지 않았던 재민이 갑작스런 패스에 수비에 실패하고, 득

점 찬스까지 내주자 대건 쪽에선 탄성이 터진다.

압도적으로 밀리던 경기가 조금씩 대건 쪽으로 넘어가고 있을 무렵-

후반 70분,

[현대고 진영에서 전상욱이 공을 잡습니다만, 수비 숫자가 많습니다]

이미 수비 3명이 달라붙고 최종수비엔 김재민이 대기한다. 현대고 선수들은

자기 진영을 수비하기에 급급하다.

그냥 차넣기도, 돌파하기도 불가한 상황.

[전상욱. 그대로...어?! 아아아아아!!!!!]

상욱이 찬 아웃프런트킥이 수비수 왼쪽을 지나친 다음 골대 앞에서 극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휜 채,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와아아아!!!!!”

“13번 쟤 대체 뭐야?!!!”

갑작스럽게 회전하는 공에 골키퍼는 물론, 재민마저 볼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골! 환상적인 아웃프런트킥 골입니다!!!]

[볼에 회전이 걸려서 어떤 선수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대체 저 선수는

누군가요?!!!]

해설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경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이 경기! 아직 모릅니다!!]

작전 두 번째,

창의성.

축구에서 창의성은 경기 흐름과 결과를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불린

다. 창의성을 갖춘 선수로 인해 팀의 퀄리티가 달라지며, 이는 아무리 연습해

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천재.

1:2에 후반 75분.

이 시점에서 앞서고 있는 것은 현대고였으나 선수들은 좀비처럼 걸어다니는

대건의 13번 선수를 보고 질린 듯한 모습을 보인다.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임마”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들어가지 그러냐”

도발보단 걱정에 가까운 말에 뒤로 돌아볼 힘도 없이 중얼거리는 상욱.

“헉..허억....좆까”

그는 이기기 전까지 여기서 나갈 생각이 없었다.

후반 81분.

지쳤다 못해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상욱에게 남은 기회는 얼마 없었다.

없는 체력을 긁어모아 할수 있는건 단 한번의 스프린트.

“아 현대고 역습 들어갑니다. 공격 3명에 수비수 얼마 없는데요!”

현대고의 패싱플레이에 대건 수비수 2명이 나가 떨어지고, 골대 쪽으로 강하

게 슈팅했을 때-

[아 대건고 주장 배정환이 얼굴로 받아냅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배정환이 그물도 찢을 듯한 슈팅을 그대로 얼굴로 받아낸 뒤

쓰러진다. 얼굴은 시뻘겋고 코피까지 흘러내리나 그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외

친다.

“얘들아! 전상욱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돼! 우리도 우리 역할을 해야하는 거

야!! 대건고!!!!!”

“파이팅!!!!”

[고교리그라고 절대 얕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파이팅이 프로선수들 못지않

네요!]

그라운드에 있는 대건고 선수들 전원이 비장한 모습으로 경기를 펼친다. 더

이상 상욱에게 짐을 지워선 안 된다. 상욱은 골을 넣어야지, 이렇게 수비하러

올 수 없다-

배정환의 지시에 따라 목숨을 걸고 임하는 선수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상욱

이 씩 웃으며 오늘 경기 마지막 스프린트를 위해 달려나간다.

하프라인 오른쪽부터 천천히 공을 몰고 나가던 그는 단 몇 초만에 골라인까지

뛰어간다. 대회 최고 수준의 수비수들이 그에게 달려드나 그는 단지 속도만

이용해 현대고 선수들을 제친 뒤 크로스 올린다.

“저런 미친놈! 아직 저 정도 체력이 남아있다고?!

현대고 박 감독이 빠르게 올라가는 크로스를 보며 입을 떡 벌린다.

너무나 정확하고, 너무도 아름다운 크로스. 감히 축구를 배우고 연습한 17살

짜리 꼬마가 이 정도의 크로스를 올릴 수 있단 말인가.

“마이!!!!!”

곧 있는 힘을 다해가며 달려온 배정환이 정확히 떨어지는 크로스를 정확히 머

리에 갖다 댄다.

작전 세 번째,

대건고의 원팀(one team)이다.

유럽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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