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6화 (6/114)

6화

MVP (1)

광양고 골키퍼 한영광은 후반 시작 후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니 뭐랄까,

자신의 팀 선수 전원을 달고 다니는 저 괴상망측한 공격수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대건의 후반 전술은 우스울만큼 단순하다.

모든 선수들이 공을 잡자마자 전방에 있는 13번에게 공을 연결하면 그는 순식

간에 수비진을 뚫고 무자비한 슈팅을 때려댄다.

우스운 전술이나 지금 광양의 그 어느 선수도 상욱을 단 한번도 막아내지 못

했다.

키는 180대 후반,

몸무게는 80대 중반 정도의 건장하고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13번 공격수는 그

야말로 광양의 재앙과도 같았다.

전반전에 날카롭게 보인 모습을 보며 에이스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지금 모습

은 만렙이 99인 온라인 게임에 핵을 써서 레벨이 999 정도 된 비현실적인 선

수가 있었다.

생전 처음, 메시 스페셜 영상에서 보던 개인기를 한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

게 구사해낸 공격수는 먼저 공을 앞으로 멀리 보낸 뒤 자신감있게 뛰어가기

시작한다.

본인보다 공에 한 뼘이나 가까이 있는 수비수들이 볼을 탈취하기도 전에 말도

안 되는 스피드로 공을 잡고 달려오는 13번 공격수.

“어...어어?!”

순식간에 골대 앞으로 온 그는 영광이 무슨 제스처를 취하기도 전에 골대 왼

쪽 구석으로 공을 밀어넣는다.

“이런 젠장!!!”

욕설을 내뱉은 사람은 광양의 감독도, 대건의 백승수도 아닌 울산의 박순철

감독이었다.

재능으로만 봤을 땐 박주영-이동국, 아니 전 세계를 호령할만한 선수다.

저런 놈을 가지지 못한 것이 분통이 터져 미쳐버릴 것 같던 그는 옆에 있던

물을 단숨에 들이켠다.

“이번 대회로 전상욱은 전국구 유망주가 될 거다. 이제 저놈을 영입하려면 십

억 단위로 돈을 써야 해”

순식간에 동점을 맞은 광양 선수들은 다시 서로 외치며 집중력을 다잡는다.

‘저런 무명의 선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건 분명히 우리가 방심해서 그런거다’

-라고 생각한 그들은 다시 골을 넣기 위해 조직력을 다졌으나 다시 한번 공을

잡은 상욱을 보고 경악한다.

대건고 주장 배정환이 커트한 공이 상대 패널티라인 부근에 있는 상욱에게 전

달되자 그는 무슨 리듬이라도 타는 듯 공을 몬다.

툭, 투툭-

언밸런스한 드리블 소리와 함께 6명의 선수들이 상욱 주변을 둘러싼다.

‘그래 이정도면 막겠지’

‘아까는 무슨 귀신에라도 홀려서 그랬던 거야’

광양고 수비 전원이 상욱에게 달려들자 상욱은 왼쪽에 있는 수비 2명을 그저

방향 전환으로 벗겨내고, 3번째 수비는 속도로, 4번째는 본인의 장기인 플립

플랩으로-

“그동안 내가...”

마지막으로 180cm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덩치 큰 중앙수비 2명을 몸싸움으로

넘어뜨리며 외쳐대는 상욱.

“쇠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알아!!!!”

후반 63분에 역전골이 들어가고, 그 뒤 경기는 원사이드하게 흘러간다.

상욱은 체력관리를 위해 어슬렁거리며 순간 필요할 때마다 스프린트로 광양의

중앙과 수비진을 찢어놨고, 상욱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광양은 경기 막판 배정

환의 헤더 추가골에 3:1로 패배하고 만다.

[저 선수 이름이 뭐라고 했죠? 전...상욱 선수였던가요?]

[조금 이른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아마 다음 K리그 이적시장 최대어는

대건고 13번 선수일 듯합니다]

해설자의 멘트와 함께 승리했음에도 어두운 표정의 대건고 선수들이 라커룸

안으로 들어간다.

고교 팀의 왕이자 절대 권력인 감독에게 항명했으니 오늘은 몽둥이세례에 앞

으로 몇 달간은 지옥 같은 훈련이 기다릴 줄 알았으나...

“음, 잘했다. 다음 경기도 상욱이 네가 알아서 해라”

라커룸 안에 있는 백 감독은 오히려 편안한 얼굴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저 양반이 미친건가...’

생각한 상욱의 황당한 표정 뒤로 씩 웃으며 외쳐대는 백 감독.

“이제부터 선수들의 자율성을 우선시하는 덕장이 되기로 했다, 얘들아 우승

한번 해보자!”

이제 아예 미친건가,

아님 미친 척을 하는건가..

결과만 좋으면 상관없는 양반인가 싶어 대충 기분을 맞춰주며 라커룸을 빠져

나온다.

***

우린 상대를 어렵지 않게 제압하며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2번째 경기는 패널티킥과 헤더 2골을 집어넣었고, 3번째는 아예 헤트트릭을

기록한다.

3경기 7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기록을 세우며 대회를 진행 중일 때-

8강 경기를 앞두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부쩍 늘었다.

확실히 대통령금배가 전국적으로 큰 대회긴한가보다.

[전상욱 학생 번호 맞나요? 안녕하세요! 대전 시티즌 유스팀 스카우터입니다]

[서울 이랜드입니다. 계약금은 신인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대금액으로 맞추구

요, 부모님 거주하실 집도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경남FC 총괄 스카우터 이승현이라고 합니다. 대학 진학 전 프로팀 직행하는

방법도 있구요, 3년 뛰면 원하면 대승적으로 해외진출 방안까지 모색 중....]

고작 몇 경기 했을 뿐인데 그 임팩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1부리그 하위권 팀과 2부리그 팀 스카우터들은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매

일 같이 문자나 전화를 보내고, 난 일단 대회에 집중하고 싶다며 이들의 연락

을 칼같이 정리했다.

그리고-

“네 인생 플랜은 내가 다~짜놨다 자식아”

더 이상 내 실력을 숨기는 것을 포기한 백 감독이 자랑스럽게 날 불러 앞으로

의 계획에 대해 말한다.

3년간 K리그 u-18 챌린지리그 대회, 챔피언쉽, 대통령금배, 전국 고등리그 왕

중왕전까지.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mvp를 수상한다. 졸업 후 인천에서 3년

간 뛰면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우승시킨 뒤 레전드가 돼서 막대한 이적료

를 안기고 해외리그로 진출한다.

“뭐 계속 인천에 남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어린아이가 부엌에서 사탕이라도 발견한 것 마냥 히히거리는 모습에 어처구니

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 너도 영광스럽고 벅차오르지?!”

내가 기뻐서 웃는 줄 알고 자랑스러워 보이는 백승수.

저 양반은 내가 진심으로 여기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저 양반을 전혀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은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대

충 어울려주기로 할까.

“네, 하하! 감독님~ 맡겨만 주십쇼!”

***

8강 상대는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다크호스라 불리는 대구fc의 유스팀

현풍고.

빠르고 날카로운 역습 축구를 구사하는 실제 대구와 같이 초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현풍고는 이번 대회 3경기 동안 10골을 집어넣으며, 최고의 득점력

을 과시했다.

특히 중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 6년간 호흡을 맞춰온 투톱과 양쪽 윙포워드 2

명은 전국에서도 ‘4중주’로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수비력이 뛰어난 대건과 강력한 공격력의 현풍.

[제가 아까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고 했잖습니까. 어...말을 좀 바꿔야할 것

같습니다]

후반 35분.

스코어는 2:0, 이미 점수차에서도, 경기력에서도 상대가 안 되는 현풍고였다.

아니, 분명 객관적인 전력은 현풍도 결코 밀리지 않아 보이는데..문제는 전상

욱이다.

[대건이 방패로 현풍을 난타하는 것 같습니다. 수비는 그렇다치고, 대구의 저

4중주가....]

전상욱 한 명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야 진짜 한 번만이라도 막자!”

“그래! 저놈도 같은 고등학생이야. 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냐고!”

이게 단순 피지컬로만 상대하는 선수라면 키가 아무리 크던, 덩치가 얼마나

두껍던 어느정도 상대할 수가 있었다. 어찌 됐든 같은 고교생이 아닌가.

그러나 뭐랄까, 이상했다.

상욱은 현풍고 선수들에게 ‘한번 부딪쳐봐야지’ ‘상대해봐야지’ 하는 기회조

차 주지 않았다.

그는 수비수들을 제칠 필요도 없이 툭하고 앞으로 공을 몰고 나가더니 이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골을 집어넣는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하는 것 마냥, 내가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

같이 말이다.

전상욱이 오늘 경기 3번째 골을 넣고 마침내 헤트트릭을 달성했을 때 현풍고

감독은 바로 대구fc 감독과 이사진에게 전화를 돌린다.

[박주영? 아니 그런 레벨이 아니라니까요! 쟤는 5년, 아니 3년 안에 K리그 씹

어먹을 놈이에요! 뭘 자꾸 세징야, 에드가가 있어요! 아니 비교가 안 된다니까!]

대건고 3:0 현풍고

31‘ 전상욱, 45’ 전상욱 80‘ 전상욱

이 대회 자체가 마치 전상욱을 위한 쇼인 것 같다.

아직 대회가 끝나지도 않았으나 각 프로팀 스카우터들은 혜성처럼 나타나 대

회를 휩쓸고 있는 정신 나간 공격수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야구에서 야수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가진 선수를 5툴 플레이어라고

한다. 프로구단에서는 이를 축구에 대입해 속도, 패스, 지구력 등 10가지 항

목으로 만들어 10툴 플레이어로 만들어 평가한다.

보통 60점이 넘어가면 유소년 계약을 실시하고, 70점이 넘어가면 바로 1군으

로 데뷔하며, 80점이 넘는 선수들은 이미 여러 팀에서 데려가려는 경쟁이 치

열하다.

90점을 넘는 사람은 역사상 한 명도 없었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였던

데얀도 80점 중반대였다.

전상욱의 현재 점수는 72점으로 당장 K리그 클래식에서 뛰는 평균 이상의 공

격수와 맞먹는 수준이다.

“잠재능력까지 포함하면 몇 점이야?”

대건고와의 경기가 끝난 뒤 찾아온 대구fc 스카우터에게 상욱의 점수를 묻는다.

“100점. 사실 만점이 100점이라 다 못 준거지. 개인적으론 200점, 250점까지

도 주고 싶어요”

그러더니 답답해하는 현풍고 감독에게 어깨동무하며 그를 위로한다.

“그러니까 포기하세요 감독님. 우리가 품을 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아마-

해외에서 빼갈거 같은데...”

동시에 경기장 끝부분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정장 차림의 2명의 남성을 보며

이죽거리는 스카우터.

“안 그래도 왔네요. [스코] 놈들”

***

전상욱의 미친 활약은 프로구단 스카우터 뿐 아니라 여러 에이전트들에게도

대단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아니 우리가 무슨 고교리그까지 가”

최근 국가대표 미드필더 기성용의 재계약 건으로 축구 에이전트 사 ’스포츠

코리아‘의 배한영 실장이 그랬다.

박지성부터 기성용, 지동원, 김영권 등 국내 최상위권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전문적으로 모색하는 굴지의 업계 탑 에이전시로 유명한 스포츠코리아였으나

작년까지 60명 채 안 되던 에이전트가 최근 2년 새 80% 이상 늘어난 지금-

이들은 잠재적인 고객을 찾기 위해 고교리그까지 뒤지기 시작했고, 이에 안

그래도 바쁜 배한영은 짜증섞인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13번 잘하네요”

“흥, 고등학생 수준이 거기서 거기지 뭐”

‘인생 경기 펼치는 대단히 쓸모있는 유망주’

1라운드 광양제철고 전에서 봤던 상욱의 모습은 그랬다. 전상욱? 이름도 없는

놈이었다. 전국에서 이름있는 유망주는 죄다 관리하는 회사에서 저런 놈을 지

금껏 몰랐을 리가 없다- 고 생각하며 별 대단히 생각지 않았다.

2,3라운드에서 본 상욱의 모습은 ‘당장 프로에서 뛰어도 제 몫을 해줄 선수’

였다. 아직 실력은 완성되지 않았으나 빠른 스피드와 큰 키로 분위기를 바꿀

좋은 유망주라 생각했다.

그리고

현풍고와의 8강전에서 이들이 평가한 상욱은-

‘시대를 대표할만한 공격수’라 불리기 충분했다.

“계약하시죠? 이러다 뺏길거 같은데-”

묻는 후배의 말에 침을 삼키며 중얼거리는 한영.

“한 경기만, 딱 한 경기만 더 보자”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 시점에서 대건고와 현대고의 4강전 경기가

시작한다!

MVP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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