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5화 (5/114)

5화

스카웃 제의 (2)

“부모님 두 분 다 운동하신 분 진짜 없어? 아니 삼촌은? 사돈에 팔촌이라도?!”

하아..집에 가고싶다.

안 보고 싶다고 몇 번이나 의사 표현 했음에도 백 감독의 눈을 피해 날 찾아

온 현대고 감독 박순철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온다.

부모가 운동하지 않고서야 이런 미친 유전자가 나올 리 없다며,

“혹시 조상 중에 브라질 분이나 독일 사람이 있는건 아니고?”

“저 곧 훈련 가봐야 합니다. 백 감독님 성격 아시죠?”

뭔 미친 소리를 해대는지.

“바로 본론 말할게. 미안하다, 너무 신기해서 말야”

감독의 요구조건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우리 학교에서 3년만 뛰는 거야. 너라면 현대고의 전국제패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 유일한 공격수다”

이동국-박주영을 잇는 한국 정통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으라니, 울산은 해외

리그 진출에도 대승적으로 보내줄 수 있다니 온갖 감언이설을 내뱉는 감독.

“안 갑니다”

“뭐.뭐뭣?!”

차갑게 말하는 내 반응이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아니 뭐...프로도, 해외리그도 알아서 갈 수 있어요”

“대건고에 대한 의리 때문이냐? 아니면 백승수에 대한 존경심이라도 있는 거냐?”

뭔 개소리야.

둘 다 있겠냐? 진짜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 당장 내일 백승수가 뒤진다고 해

도 나랑 뭔 상관이야 미친.

“전-혀 없습니다, 그냥 제 길은 제가 알아서 결정하겠습니다. 국내 팀 이적도

아니고, 학교를 옮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말씀 끝나셨으면 먼저 일어나겠습

니다”

이제야 팀에 적응했는데 또 환경을 옮길 순 없었다. 게다가 지금 팀도 날 중

심으로 돌아가고 있기에 별 문제 없고.

선배들을 돋보이게 하라는 감독의 요구가 있었으나, 뭐 이건 나만의 방법이

따로 있다.

“그래, 나와줬으니 충고 한마디 하지”

박 감독은 먼저 일어서는 날 보며 괜스레 이죽거린다.

“계속 그렇게 건방지게 굴다간 국내에서 공차기 힘들 거야. 응? 무슨 말인지

알지?”

저는....

“국내에서 축구 할 생각 없습니다”

진심으로요,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박 감독에게 인사한 뒤 훈련장으로 들어간다.

***

“야 빨리빨리 뛰어라!”

“지쳐서 쳐지는 놈은 경기 못 뛸 줄 알아!”

대건고 선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 거칠고 강한 훈련을 진행 중이다.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서 1·2학년

은 주전 확보를 위해, 3학년은 프로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임할 것이다.

“자- 이번엔 1·2학년 팀, 3학년 나눠서 미니게임 진행한다. 다들 위치로 가”

대부분이 주전으로 구성되어 있는 3학년에 비해 저학년 팀이 약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전부가 전상욱이라는 선수 하나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환생한 지 4개월째,

몸 상태가 10%, 아니 그 이상까지 도달한 듯한 상욱의 현 실력은 더 이상 국

내 고교리그 수준이 아니었다.

중앙까지 내려와 공을 잡은 상욱은 순식간에 수비 몇몇을 돌파해 골을 넣거나

어느새 사이드로 빠진 뒤 자로 잰 듯 한 크로스를 날리기도 했다.

“전상욱 쟤는..아예 수준이 안 맞네요”

“....어떻게..날이 갈수록 잘해지냐”

사실 훈련이 그리 체계적이고, 전문적이 아님을 백 감독도 알고 있었다. 유럽

이나 남미에 비해 우스울 정도로 조잡한 수준으로 훈련을 하고 있으며, 국내

고교팀에 비교해도 대단치 않은 주먹구구식 옛날 축구를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욱이 저런 활약을 보이는 것은...

“혹시 나 천재 감독인가?”

같은 어리석은 생각과 동시에 날이 갈수록 지나치게 성장하는 상욱의 모습에

가슴 한켠이 어두워지는 백승수였다.

앞으로 3년간 팀에서 뛰며 자신의 모든 영광을 만들어줄 선수다.

‘전상욱이 졸업해서 인천으로 갈 때, 바로 인천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천천히 빌드업 중이었으나 저 정도로 실력 있는, 탈고교급의

선수를 자신이 지켜낼 수 있을지 자신 없는 백승수.

“어쩌면 저놈을 잃을 수도 있겠다”

***

2017년 대통령금배 대회는 전국 60개 고등학교가 참가하며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단 20일 만에 우승팀이 결정되는 컵 대회이며, 큰 규모로 진행되는 고교 대회

인 만큼 프로 및 대학 스카우터들의 관심도 높다.

그렇다보니 대회에 참가하는 전국 강팀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

수원 삼성의 유스팀으로 국가대표 미드필더 권창훈의 출신 학교이기도 한 수

원의 명문 메탄고,

경상지역 최고의 강자이자 이동국, 손준호, 오범석 등 출신 선수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전통의 강호 포항 제철고,

K리그 최강, 전북 현대의 u-18팀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 작년 전국대회 우

승을 일궈낸 전주 영생고 등.

대건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많았으며, 대학교 수시까지 앞으로 3개월, 다

음 K리그 시즌 전까지 선수들을 보내려면 백 감독이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우승을 목표로 한 대건의 첫 상대는 전남 드래곤즈의 유스팀인 광양 제철고.

작년 전국대회 8강, 대통령금배 4강의 실력있는 팀이다.

“원톱에 전상욱, 미드필더에 최병준, 김호연, 중앙에 이정환, 중앙수비 신재

홍, 황규호....”

감독이 선수단을 독려하며 선수들을 내보낸 뒤, 마지막에 입장하는 상욱을 따

로 불러내 분명히 말한다.

“잘 들어. 경기는 이기되 너무 돋보이면 안 돼. 3학년들 대학만 가면 그 후론

네 맘대로 하는 거야. 알겠어?!”

“아...예...뭐. 최선을 다해보죠”

감독의 지시가 전혀 달갑지 않은 상욱이 존경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표정

을 하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선다.

***

감독의 요구는 크게 2가지다.

경기에 승리해라,

너무 눈에 띄지 않게 선배들을 돋보이게 만들어라.

이는 선배들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함도 있었으나 내가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난 분명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전국구 유망주가 될 것이다.

너무 엄청난 활약을 펼쳐버리면 다른 학교들인 구단들이 데려가려고 난리를

칠 것이다. 큰돈을 제시하기도 하고, 부모님을 꾀어내어 자신의 팀을 선택하

도록 할 것이다.

1년간 옆에서 가스라이팅 시키면서 대건과 인천 밖에 모르는 선수로 키우고

싶어하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겠으나-

“좆 까지마”

난 오매불망 이곳을 떠날 생각뿐이다.

전반전은 철저하게 광양의 페이스대로 진행됐다.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순간의 역습을 통해 상대방의 숨통을 끊어놓는 빠

른 역습 축구를 구사하는 대건의 전술과 거의 유사한 광양은 그야말로 우리의

상위버전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 단단한 수비와 훨씬 빠른 스피드로 압박하는 광양 앞에서 대건은 아무것

도 할 수 없었다.

“뛰어 들어가서 받아요!”

중앙에서 공을 받아 정확히 우리 편 공격수 머리에 맞춰주거나 골키퍼만 제치

면 될 정도로 정확한 크로스를 내려도 이 병신들-

받쳐주는 선수가 단 하나도 없다.

[대건고 13번 전상욱 선수가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만-]

[경기를 뒤집긴 부족해 보이네요]

해설은 내가 안타깝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고, 역습은커녕 광양의 세트피스에

당해 선취점까지 내주고 만다.

여러 번 기회가 있었으나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실력을 숨기려니 죽을 맛이다.

전반 34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을 몰고 앞으로 나가면서 에이스를 알아보고 달려드는

광양 수비수 전원을 제쳐낸다.

전담 마크 2명은 단순 속도로, 최종수비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넘어지게 만

들고, 패널티라인 오른쪽으로 달려오는 골키퍼는 헛다리 한 번으로 벗겨낸 뒤

바로 뒤따라 달려오는 중앙 공격수에게 패스하나-

“하...진짜....!”

후지산 대폭팔 슛하거나, 소녀슛으로 옆으로 빠지는 것이 전부였다.

0:1로 지고 있는 대건고.

“야! 너네 진짜 장난하냐?! 광양이 강하다고해도 뭐 현대나 영생고처럼 탑티

어 팀도 아니고!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며 안 되는 거잖아!”

한번 지는 순간 바로 탈락인 컵대회에서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대학

스카웃은커녕 창피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거다.

독이 바짝 오른 감독은 내게도 욕설을 내뱉는다.

“전상욱! 너도 새꺄! 정신차려!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지,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라고 했어?!”

전반 내내 공격기회창출 1위, 팀을 거의 이끌다시피 한 나인데 백 감독에게

그런 경기보는 눈이 있을리 없지.

“너! 선배들 대학 안 보내려고 일부러 그러는거야?! 응?!! 이 새끼가 빠져가

지고!”

하..여기 있다간 진짜 안 되겠다. 실력도 실력인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겠다

싶어 손을 번쩍 들고 소리친다.

“감독님!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해!”

어딜 감히 감독에게?

하는 표정 짓는 주전 선수들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표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말한다.

“선배님들! 지금이 올해 입시 전 마지막 대회인거 알고 계시죠? 이대로면 프

로는 고사하고, 서울권 대학 갈 수 있는 분도 아무도 없을겁니다”

내 말에 충격받은 선수단과 코칭 스텝들. 완벽한 하극상에 감히 화도 못내고

있는 듯 하다.

“이대로 감독님 말 들어서 후반에도 무기력하게 패배할까요, 아님 저 따라와

서 우승할래요?”

“이.이 개새끼가....!”

분노에 멱살 잡는 백 감독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선수단을 보며 외친다.

“우승시켜드리겠습니다. 저한테 공주세요. 저 따라오면 여기 계신 분 전원 대

학진학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내 뺨을 후려치기 직전-

팀의 주장이자 대학진학이 시급한 배정환이 담담한 목소리로 묻는다.

“장담할 수 있나?”

“걱정마세요, 후반 전에 2골 넣어서 이기겠습니다”

이 새끼들이 감히! 건방진 자식들!

감독이 고래고래 소리치자 배정환과 주전 몇몇이 일어나 감독에게 머리를 조

아리며 부탁한다.

“감독님, 저놈 한 번만 믿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전반전에 아무것도

못했잖습니까. 속는 셈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주장, 부주장, 팀내 고참 전원이 인사하는데 감독이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네놈들 맘대로 해!!!”

***

대건고 주장 배정환은 이번 대회가 축구선수로 뛸 수 있는 마지막 경기라 생

각했다.

별다른 수비능력도, 발밑도 좋지 못한 수비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근성밖에

없었다.

상욱은 그를 보면서 예전 다니엘 잭슨 시절이 떠올랐다. 근성과 피지컬이 전

부인 키 큰 선수. 프로에 가기도 힘들도 운이 좋아 간다 한들 오래 버티지 못

할 것이다.

뭐 훌륭한 감독을 만나 좋은 지도를 받으면 또 다르겠지만.

“네 그 잘난 작전 들어나 보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해?”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입장하는 상욱의 뒤에서 조용히 묻는 정환.

“공을 잡으면 나한테 패스한다. 내가 안 보이면 크게 소리쳐서 날 찾아서 패

스한다. 이상입니다”

지금 경기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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