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4화 (4/114)

4화

스카웃 제의 (1)

“올해도 꼴찌는 대건이구만. 주전들 뺄 준비해라, 경기 기울어졌다”

0:3의 압도적인 경기에 만족하며 선수 교체를 준비하던 현대고 감독이 자리에

서 일어나 입을 쩍 벌린다

“뭐.뭐야 저놈!”

후보의, 후보의, 후보.

당장 축구를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키만 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격수.

저 놈이 활약할 것이라고 상상치도 않았고, 만약 나온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위협이 될 거라 생각지 않았다.

“아니 저거 미친 놈 아냐? 무슨 슛을 아무런 준비동작도 없이 쏴?!”

슈팅이라는 것이 그렇다.

상대 골대를 보고, 공간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수비수를 제친 뒤 다리를 들어

서 킥하는 것.

대충 어느 각도에서 어느 타이밍에 슈팅을 할 것이란 걸 예상할 수 있는데,

저놈은 그렇지 않다.

별 다른 준비동작도 없이, 마치 담장 밖으로 나간 공을 전해주기 위해 차는

것 마냥 찬 슛이 그대로 골대를 가른 것이다.

반 박자 빠른 슈팅이 아닌 한 3박자 빠른 슛인 듯하다.

“13번 쟤 이름이 뭐라고?”

“전..상욱이라고 합니다. 1학년에 공식전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감독의 물음에 코치 역시 아리송한 표정으로 상욱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거...대건의 비밀병기나 뭐 그런거 아냐?”

저 정도 슈팅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지금껏 무명으로 지냈을 리 없다. 다른 팀

에 뺏기지 않기 위해 분명 인천에서 몰래 키우고 있는 거물 유망주가 틀림없

을 것이다.

“수비들 저 13번한테 다 붙어!”

감독이 수비수들에게 저 괴상한 공격수의 마크를 지시하자, 순식간에 3명이

상욱을 에워싼다.

“비밀병기야, 얼마나 하는지 보자. 우리한테 위협이 되는지, 그냥 변긴지 말야”

방금 골로 상욱에 대한 믿음이 커진 대건고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상욱에게 공

을 전달한다.

동시에 현대고 벤치에선 긴장감이 팽배하여 그 모습을 지켜본다.

‘드리블은 얼마나 잘할까’

‘진짜 감독님 말처럼 비밀병기인가’

상욱은 올라오는 크로스를 깔끔하게 받아내더니 이내 수비수에게 다리 사이로

넛맥(알까기)을 성공시킨 뒤 미친 듯 한 스피드로 튀어 올라간다.

“우워어!!”

“와 저놈 뭐야?!”

깔끔하게 한명 제치고, 두 번째 선수까지 제치려던 순간-

“크읍!”

상욱과 비슷한 키에 몸무게가 20kg는 더 나가 보이는 덩치 큰 수비의 몸싸움

에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뭐...야..저놈 왜 저리 허약한 건데?”

그 후에도 상욱은 몇 번 받은 기회를 지속적으로 피지컬 뛰어난 수비들에게

놓치고 만다.

공을 잡을 때마다 당장 3~4명이 에워싸 발을 걸어대고 팔꿈치로 밀어대니 돌

파는커녕 공을 지키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상욱.

오히려 전력질주를 몇 번하고 난 뒤 지친 듯 헉헉거리는 모습에 현대고 감독

과 코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별 거 없는데요?”

“그러게, 아까는 그냥 운이었던 거...같네”

누구나 인생 골을 넣을 때가 있다. 우연찮게 쏜 슛이 잘못 얻어 걸려 득점까

지 연결된 듯하다.

“그래도 쓸 만하긴 하네. 저 키에 발밑도 나쁘지 않고”

감독은 전담마크로 인해 빈 공간을 대건이 노릴 것이 염려되어 한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원래 전술대로 돌아간다.

후반 80분,

이미 두골차로 앞서고 있는 현대고. 이대로라면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저.저새끼 막아!!!! 빨리!!!!”

전담 마크하던 선수들이 다시 위치로 돌아가는 순간, 왼쪽 사이드에 있던 상

욱이 툭툭 공을 몰고 앞으로 나온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선수 몇몇은 생전 처음보는 광경에 직관하는 것 마냥

그를 바라만보고 있었고,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은 그는 터치 몇 번에 패널티

라인까지 다가왔다.

화려한 개인기를 쓴 것도, 무지막지한 힘으로 돌파해 들어간 것도 아니다. 현

대고 선수들은 그저 상욱의 속도에 못 이겨 그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

었다.

“10% 쯤...돌아왔네”

상욱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골키퍼 키를 살짝 넘기는 칩슛으로 2번째

골을 성공시킨다.

“...저 자식 대체 뭐야?!!!!”

이번엔 현대고 감독과 백승수 감독이 동시에 놀라 입을 떡 벌린다.

***

“fuck! fucking body!!!”

2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무릎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토해낸다.

이 약해빠진 몸뚱어리 진짜!

환생 일주일 째,

축구 실력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나, 신체 능력까지

어찌할 순 없었다.

벌크 업을 위한 프로틴과 소고기를 때려 박으면서 운동하고 있으나 고작 일주

일 만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얻을 순 없었다.

거기다 스프린트 2번에 쓰러지는 이 저질체력...

“차라리 35살 다니엘 잭슨 체력이 훨씬 좋겠어”

할 수 있는 건 순발력과 속도를 이용한 기술밖에 없는데다 동료 수준도 낮아

제대로 된 패스 플레이도 힘들 듯 하다.

돌파 못하는 척하며 상대가 기만하고 있을 때 달려가 냅다 때리는 작전-이 성

공하긴 했으나 이게 계속 이어질 거라는 방법은 없다.

완전히 지친 지금 몸 상태론 지금과 같은 마법을 또 부릴 순 없다.

“너 임마! 지금까지 왜 실력 숨겼냐?!”

“전방에 있어! 어떻게든 공 줄 테니까”

지난 일주일 간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이 개무시하던 팀원들이 저마다 신기한

듯 바라보거나 경기에 승리하기 위한 작전을 말하기도 한다.

좋은 시너지다.

0:3일 때야 패배가 확정되어 의미가 없다지만 2점 따라온 지금은 얘기가 다르

다. 대건고 선수들의 눈이 ‘역전’이라는 희망에 반짝이기 시작한다.

후반 90분,

현대고가 강하다고 한들 둘 다 고교 팀이다. 아무리 유리하더라도 한번 기세

를 뺏기기 시작하면 쉴 새 없이 무너진다.

“막아!! 저 새끼 무조건 막아!!!”

일부러 공격진으로 들어가 현대고의 어그로를 끈다. 이미 2번이나 당해 내가

보이자마자 조건반사로 달려드는 수비수들 뒤로 나타나는 대건고 선수들.

“그렇지!!!!”

오늘 터치가 4회도 되지 않던 대건고 오른쪽 윙어의 골. 뒤늦게 복귀한 수비

들과 뒤엉키긴 했으나 결국 득점에 성공했다.

“최-강-대-건!!!!!”

“대건 파이팅!!! 한골만 더!!!”

20분 전까지 침울하다 못해 망하기 직전이던 대건의 벤치가 한 순간에 달아오

른다.

“아직 한 번 더 뛸 수 있어”

***

정규 시간은 끝났고, 추가 시간 3분밖에 남지 않았다.

전상욱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공간이 생긴 대건이 지속적으로 현대의 골대를

노린다.

“무조건 막아!! 중미 밑으로 더 내려와!”

승리를 목전에 둔 현대고 감독은 어느새 공격진을 의식하며 라인을 내리고,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고자 한다.

“추가시간 왜 이리 길어! 이미 2분 지났잖아!!!”

20분 내내 상욱에게 당한 충격이 가시질 않아 경기종료만 바라보는 감독.

90+3,

대건고 중앙 미드필더의 패스가 방금 동점골을 넣은 오른쪽 윙에게 이어진다.

“생각해보니 까먹고 있었어. 라이언 때나 지금이나 내 가장 큰 장점은...”

윙어가 상욱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까딱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제공권인데 말야”

딱 고교 수준의 부정확한 크로스이나 누가 받느냐에 따라서 그 수준이 달라진

다. 상욱은 이를 막기 위해 공중에 뜬 선수들 보다 한 뼘은 더 높게 점프 하

더니 이내 정확히 골대 안으로 헤더슛을 작렬시킨다.

“전상욱!!!!”

“이겼다아아아!!!”

5경기 만에 얻은 값진 승리에 대건고 벤치에 있던 모든 이들이 뛰어나와 선수

들을 환영하며, 특히 오늘 경기의 영웅이자 MVP 상욱에겐 무한한 관심이 쏟아

진다.

그리고-

입이 찢어져라 환하게 웃으며 상욱을 향해 달려와 그를 얼싸안는 백 감독.

“잘했다 상욱아! 역시 내 전략이 맞았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감독의 모습에 어처구니없는 상욱이지만 오늘은, 웃기

로 한다.

경기 종료 후,

침울하다 못해 암울한 현대고 버스 앞에서 받은 기자의 질문에 현대고 감독이

표정 변화 없이 답한다.

Q 오늘 경기, 후반에 들어온 선수의 헤트트릭으로 경기가 끝났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내 축구관을 송두리 째 바꿀 유일한 선수가 될 거요

***

현대고와의 경기 이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더 지났다.

몸 상태는 갈수록 좋아지고, 재능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만개하고 정교해지며,

피지컬도 고교 수준에서도 최상위권 수준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3경기를 더 치렀고, 2승 1무로 무려 중위권으로 순위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난 남은 3경기에서 3골 2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4경기 6골 2도움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 쯤 팀에서도 완전히 녹아들 수 있었다.

아니 완전한 에이스가 됐다.

집단에 섞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단 안에서 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다-는 말처럼 난 확실히 대건에 적응했다.

리그 8경기를 치루는 동안 팀 내 최다 득점자가 2골이었는데 당장 내가 후반

20분 만에 헤트트릭을 해버리니 당연히 날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야- 상욱아 밥 같이 먹자!”

리그 전엔 날 쳐다도 안 보던 동기들이 다가와 친한척 하고,

“어떻게 해야 그렇게 몇 박자나 빠르게 슈팅할 수 있냐? 팬텀드리블은 좀 알

려주라. 너처럼 빠르고 부드럽게 개인기하는 사람은 본적도 없어!”

나란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선배들은 내게 다가와 기술이나 슈팅 타이

밍에 대해 물어본다.

좋다,

실력은 점점 더 나아지고, 사람들과 관계가 좋으니 운동하기도 더 편하다.

잘 먹고, 잘 자고 매일 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가며 개인훈련에 힘쓴다.

이 정도면 할만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조직이 그렇듯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한테 인정 좀 받는다고 건방지게 굴지마 새꺄”

“멀대 같이 키만 큰 새끼, 인사 똑바로 안 해?!”

혜성처럼 나타난 팀의 구원자를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당장 대학팀이나 프로, 실업팀의 눈에 띄어야 하는 주전 3학년들의 경우 날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패스도 않는 이기적인 놈이라니, 실력 좀 있다고 거들먹거린다니 온갖 비난과

견제를 하며 날 방해했고, 이는 백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 맘대로 돌파하지 마!”

축구는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고3 선수들의 미래 역시 중요하다.

-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다.

3학년 학부모들에게 프로팀 직행이나 명문대학교 진학 등을 목표로 돈을 받아

먹은 감독은 어찌해서든지 날 이용해 이들의 미래를 돕고자 했다.

내게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그는 어떡하면 날 뽑아 먹을까 싱

글벙글 하고 있는 듯 했다.

“함부로 나대지마. 설치고 다니는 건 좋은데 일단 올해는 3학년들 돋보이게

해줘. 이번 3학년들만 대학가면 내년부턴 네 맘대로 해”

‘와...사람 새끼들인가, 이러니까 팀이 꼴찌하지’

지금 난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수 많은 경기를 뛰면서 실전 감각을 익히고, 체력을 업하고, 가진 재능을 만

개시켜 프로무대로 나갈 수 있는 실력을 만드는 때인데-

젠장, 훈련 내내 어떻게 하면 선배들이 편하게 골을 넣을 수 있게 할지 그딴

짓만 하고 있으니.

이런 모습은 내 성장을 죽일 뿐이다.

뭐 방법이 없는건 아니지만..

Rrrrr....

답답해하던 찰나,

핸드폰이 울린다.

[예, 누구세요]

[거 전상욱 학생 핸드폰 맞습니까?]

[맞는데 누구십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 분명 이보다 목소리가 훨씬 컸던 거 같은데..

[어 나 현대고 박순철 감독이야]

얼마 전 해트트릭하며 박살냈던 현대고 감독이다. 대체 내 전화는 어떻게 알

고 전화한 건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자네 우리학교 올 생각 없나? 자네 정도면 내가 잘 키

워서 프로로 직행시킬 수도 있는데 말야. 물론 K리그 최강 울산으로!]

어....

생각 없는데요.

스카웃 제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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