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하늘이 준 재능 (2)
[에이 엄마- 걱정하지 마요! 밥도 잘 챙겨 먹고, 훈련도 잘하고 있어. 하나도
안 힘드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
[괜...찮은거 맞지? 얼마 전에는 운동 그만 둘 거라고 하더니- 요새는 괜찮아?]
어머니와의 통화.
경기에도 못 나가고, 선배·동기들에게 매일 같이 무시만 당하니 축구를 그만
두고 싶다고 했나보다.
뭐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동·서양을 떠나서 지금이 운동을 그만두는 적기이긴
하다. 중학교 때까지 통하던 자신의 재능이 프로 데뷔 직전인 고교 괴수들을
만나 처절하게 패배할 때 좌절감을 느끼고 접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동양인의 부모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무리 봐도 우리 아들은 피지컬 빼면 그렇게 재능 있어 보이진 않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내가 계속 축구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니 타 지역
으로 전학까지 보내며 운동을 시키는 거다.
[걱정마요, 곧 경기 나갈 수 있을거니까! 올해 전국대회 가면 꼭꼭 오세요!]
난 진심으로 한 말인데 듣고있는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내가 주전으로 기용될 정도의 실력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부모님은 그저 당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래...당연히 가야지....]
내 말에 울컥한 어머니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이를 뒤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무어라 외친다.
[상욱아!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고! 대구로 내려와도 된다! 축구가 인생의 전
부는 아냐! 응?! 사랑한다~~]
[엄마·아빠는 네가 무슨 선택을 해도 괜찮아! 힘들면 언제든 말하고 내려와도
돼, 상욱아!]
내가 안타까워서 이러는 건지, 아님 힘들어도 웃어보이는 내가 대견스러운 건
지 모르겠으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쳐 흐르는 화목한 부모님의 모습에 절로
힘이 난다.
더불어 이렇게 자식을 밀어주는 부모라면 언제든지 해외로 갈 때 내 의지에
따라 반대는 하지 않으실 것이다.
“자...이제 훈련 좀 하자”
공식 훈련은 이미 1시간 전에 종료됐으나 이대로 쉴 생각은 없었다. 난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훈련이 필요했다.
근성을 키우자며 숨이 터져라 돌리는 뺑뺑이,
피가 쏠려 기절하기 직전까지 시키는 원산폭격,
감독·코치 눈치에 선배들 심부름까지.
제대로 된 훈련이 불가했다.
프로팀 직할 유스팀이면 최소한 갖춰야할 전문화 된 시스템이 있어야할 텐데
백승수 감독 지휘아래 팀이 지속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듯 했다.
‘젠장, 여기 3년 넘게 있으면 앙리는커녕 프로 데뷔도 힘들 거야’
게다가 평생을 영국에서 운동하던 지금과 같은 환경은 전혀 맞지 않았다. 어
떻게든 다시 유럽으로 가거나 최소 여기완 다른 환경으로 이동이 필요했다.
그 누구보다 잘 먹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중점으로 몸 만들기에 나선다.
이미 키나 순발력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으니 내게 시급한 건 9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과 유럽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피지컬
이 필요했다.
최소 2달 뒤엔 이 팀에서 가장 피지컬 좋은 선수가 되리라 자신한다.
뭐, 실력은 당연한거고.
***
현대 고등학교 축구부,
K리그 전통의 명문인 울산 현대의 유스팀으로 현 K리그 주니어 최다 우승팀이다.
전통의 명문답게 거쳐간 선수도 김승규, 남태희, 이동경 등 국가대표 출신 선
수가 즐비한 강팀이며, 2016년 K리그 주니어 챔피언쉽 4강의 강자라 할 수 있
겠다.
“이길 수 있어! 훈련 때 배웠던 것만 해!”
현대고와의 경기 당일,
선수들을 격려하는 백승수 감독의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아무리 현 대건고가 골짜기 세대라 불리는 과도기라 할 지라도 지난 시즌 고
등리그 최하위로 마감한 실적을 용서받긴 힘들었다.
이번 시즌 어떻게든 반등의 기회를 노려야하는 대건이나, 지금까지 보여준 모
습은 작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전 감독이 지휘하던 모습보다 약하
다는 평까지 받았다.
“라인 잘 세워서 수비 튼튼하게 한 다음 단번에 빠른 역습으로 한 방을 노린다!”
는 것이- 대건의 전략이었다.
약팀이 할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전략이며, 수비가 좋은 현 대건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안이었으나-
문제는 역습 찬스 시 골을 넣어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리그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경기마저 패배한다면 상위권 진출에 거
의 빨간 불이 울리는 상황,
“차분하게 한방을 노려! 기합 넣고! 가자!!!”
세부적인 전술 교육 없이 그저 ‘열정’이나 ‘근성’ 같은 단어들만 외친 채로
대건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입장한다.
이들은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나 퇴장이나 세트피스 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부적인 전술은 전혀 듣지 못한 채 떨떠름한 상태로 그라운드로 나선다.
“막아!!”
“돌아 들어가, 라인 무너지지 마!”
경기는 예상했던 것처럼 현대고가 압도적으로 주도권을 갖은 채 진행된다.
433의 강력한 중앙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중앙에서 수적 우위를 갖고 들어가는
현대고의 기세에 전반 내내 공 한번 잡지 못한 채 밑으로 내려앉은 대건.
미드필더들의 정확한 패스와 빌드업해 위에 있는 수비라인을 위시로 강력한
압박을 바탕으로 대건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있는 현대고.
아무리 수비가 좋다고 한들 대놓고 가둬놓고 패는데 장사 있으랴, 수비가 뒤
로 빠져있으니 자연스레 중앙에 공간이 비고 현대고 선수들은 대놓고 편안하
게 슈팅을 난사한다.
곧-
“하아....”
현대고 9번의 깔끔한 선취득점에 백 감독의 골이 깊어간다.
“진짜 미치겠구만....”
어차피 현대고는 강팀이고, 한 경기 정도는 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런 교훈 없이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건 선수들 사기만 떨어
뜨릴 뿐이다.
“야!! 더 이상 먹히면 안 돼! 새끼들아! 둘러붙으란 말야!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
백 감독이 선수들을 보며 강하게 윽박지른다. 그는 결코 자신의 지도방식에
문제가 있다곤 생각지 않는다.
“새끼들이, 저렇게 근성이 없어서야-”
경기장을 떠나갈 듯 외쳐대는 백 감독 지시에도 불구하고, 발 빠른 현대 윙어
의 크로스를 받은 공격수의 헤더로 점수는 2점차로 벌어진다.
0:2
이번 시즌 대건고 최악의 전반전이 막 끝났다.
***
전반 종료 후,
대건 고등학교 라커룸
“유효슈팅 0개가 말이 돼?! 이게 팀이야?!!!”
대건고 선수들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감독의 욕설 섞인 호통을 묵묵히
듣는다.
전술적으로 제대로 준비가 안 되기도 했으나 기량에서 차이가 너무 났다. 같
은 고등학교에다 유스 팀인데 무슨 프로대 아마추어 마냥 탈탈 털렸다.
“안 되면 팔꿈치로 얼굴이라도 때리고, 넘어졌을 때 다리라도 밟아! 너네 그
정도 근성도 없어서 뭐할래?!!!!”
백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와 오른쪽 윙어, 벌써 2명이나 교체한 뒤 후반전을
준비한다.
‘나한테도 기회가 오나? 제바알!“
혹여나 나까지 교체해줄까 싶어 목을 길게 빼고 감독을 바라봤으나,
“후반에 또 먹히면 학교까지 걸어서 올 줄 알아!!!”
난 여전히 벤치를 달군 채 후반이 시작된다.
뭐 이런 압도적인 상황에서 선수 몇 명 바뀐다고 기울어진 경기가 뒤바뀌진
않는다.
“안타깝다, 안타까워”
전력 차가 확연하긴 하나 감독만 실력 있었다면 어느 정도 비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극단적으로 수비에 치우쳐있는 풀백에게 오버래핑 시킨 뒤 날 투
입시켜 제공권을 노리는 방법이라던가.
방법이 없는 건 아닐텐데 대체 무슨 아집으로 저러는지 알 수가 없다.
후반 71분,
원사이드로 흘러가는 경기, 현대고 공격수가 수비수에 골키퍼까지 제친 뒤 3
번째 골을 성공시키자 동시에 이를 마크하던 우리 팀 수비수가 다리에 경련이
왔는지 그대로 쓰러진다.
이건 무조건 부상이다.
“임마! 엄살 부리지마 일어나!!!”
근성이 없니, 다리는 쓸수록 강해지니- 어찌나 강하게 호통을 쳐대는지 코치
진마저 암말 못한 채 발만 구른다.
“교체해야 해요! 더 이상 못 뜁니다!”
더 이상 참지 못 한 채 감독을 보며 외친다. 동양에서 감독에게 항명하는 문
화가 금기시 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감독 성격상 이대로 그냥 입 닫고 교체 타이밍만 보고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
인 걸 알았으나,
괜히 안타까웠다.
저런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는 유망주를 한두번 본게 아니었으니까.
“이..이 어린 놈의 새끼가...건방지게!”
감히 선수가? 그것도 1학년이 반항을 해?
백 감독 표정만 봐도 폭발한 게 보이는 듯한 감독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다가
온다.
뺨이라도 한 대 맞기 직전,
“감독님! 1학년이잖습니까, 저희가 따로 교육 시키겠습니다. 게다가 준혁이
상태가 심각해보이기도 하구요-”
백 감독 옆에서 5년 이상 보필한 코치가 나서서 상황을 수습한다. 역시 짬밥
을 그냥 먹은게 아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상욱이 한 번 내보내 보시죠. 얹그제 훈련 때 폼도 괜찮
지 않았습니까”
“저 새낀 안 돼”
백 감독이 날 노려보며 냉정히 말한다. 젠장, 이렇게 경기에 못 나가면 이 재
능 있는 몸으로 환생한 의미가 없다.
“감독님”
최대한 공손하게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감독에게 말한다.
“경기 한번 뒤집어 보겠습니다. 한번만 기회주세요”
대놓고 내보내달라는 말에 놀란 것이 보이는 감독과 코치. 지금껏 이 동양인
이 얼마나 소심하게 지냈는지 느껴진다.
잠시 생각에 빠진 백감독이 코치진과 눈으로 뭔가 맞춘 뒤 말한다.
“몸은 다 풀었냐?”
“준비 됐습니다. 찢어버릴게요”
“레프리! 선수교체!
***
”건방진 새끼“
백 감독은 상욱이 맘에 들지 않았다.
허우대만 멀쩡하지 연계도, 슈팅도 할 줄 모르는 무색무취의 스트라이커.
그나마 제공권 하나 때문에 뽑았는데 그것조차 못하니 아예 쓸모없어진 그를
이번 시즌이 끝나면 내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 자신에게 똑바로 대드는 상욱의 모습에 이번 경기가 끝나면 바로
내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오냐 오늘 박살한번 나고, 네가 얼마나 쓸모없는 놈인지 한번 느껴봐라‘
근 20분이라도 뛰게 하는 것으로 상욱을 팀에서 정리하려고 했던 백승수 감독.
지금 그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
“기회가 많진 않을 거야”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조용히 읊조린다.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밀리는 데다 같은 팀 선수들에게 신뢰도 받지 못하고 있
는 지금, 제대로 된 기회가 올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몸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걸 하자”
속력? 아직 몸에 10%밖에 내지 못한다.
드리블 돌파? 2명만 제치면 그대로 쓰러진다.
이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것-
센터서클에서 공을 잡자마자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 공격 전개가 안 되니 위
에 있어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야! 패스해!”
“어디보는거야!”
패스하라는 선배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뒤 패널티 라인 바깥쪽으로 흘러나
온 공을 오른발로 냅다 휘두른다.
“이런 세상에!!!!!”
내 골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대건고 선수들도, 코치진도 아닌-
현대고의 벤치였다.
스카웃 제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