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하늘이 준 재능 (1)
“전상욱 임마! 너 들어와!!”
“훈련 하지마! 넌 훈련받을 자격도 없어!”
벤치에서 감독으로 보이는 50대 중반 남성에게 5분가량 시원하게 욕설을 듣고
나서야 대니얼은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1학년 다 엎드려뻗쳐! 신입생 놈들이 이렇게 얼이 빠져 있어서야 니네들 작
년처럼 또 꼴찌 할래?!”
생전 처음 잔디밭에 엎드려 뻗치거나 머리를 박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신의 계시든, 우연이든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고, 10대 아
시아 축구선수로 환생했다.
죽기 직전 저니맨으로 살고 싶다는 소원이 실제로 이뤄진 것이다.
“코리아인가..? 푸른 잔디밭이 무성한 경기장을 보니 노스는 아니고, 사우스
겠군”
노스 코리아였으면 훈련에 집중 못한다고 채찍이라도 맞지 않았을까, 괜스레
몸이 떨려오던 대니얼이 바들거리며 머리를 박고 있자 이내 감독이 다가와 소
리친다.
“전상욱! 정신 좀 차렸어?!”
전상욱,
자신의 이름까지 확실히 인지한 그는 무의적으로 나오는 한국말로-
“네!!”
하고 소리쳤고, 감독은 목소리 하나는 맘에 든다며 기합을 멈추고 모두 일으
킨다,
“5분 쉬고 연습 다시 시작한다”
잠시 가진 휴식시간.
전상욱이 된 대니얼이 바뀐 몸에 익숙지 못해 퍼진 채 쉬고 있자 곧 동기로
보이는 동양인 몇몇이 다가와 욕설을 내뱉는다.
“전상욱 새꺄 집중 좀 해!”
“병신아, 하기 싫으면 축구 그만두던가, 존나 피해주네”
그들은 욕설이 익숙한 듯 그를 툭툭치거나 앞에서 짜증스런 말을 뱉어댔으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미안해, 그렇지만 너희 중 누군가의 잘못으로 혼났으면 난 기꺼이 받아들였
을 거야“
축구는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는 스포츠다.
한 명의 잘못에 단체 기합 주는 감독이 잘못되긴 했으나 동료를 위해선 그는
머리를 박은 채 경기장 전체를 포복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동료고, 그런 신뢰가 바탕이 되어 경기에 승리하는 것이 팀워크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말고 꺼져“
뭐...
이들은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자 한 서클 씩 10세트 진행한다. 준비해”
감독의 지시와 함께 훈련이 진행된다.
첫 번째는 스텝훈련,
슈팅, 패스, 체력과 더불어 축구의 기본기 중 하나이며, 축구의 기초이자 시
작이라 불리는 훈련이다.
경기장에 장애물을 두고 위아래 양옆으로 위치를 변형시켜 뛰어다니는 훈련.
사실 매우 지루하고 힘들기에 선수들 대부분 의욕이 낮아 보이자 감독이 소리
친다.
“자자! 1등하는 놈은 내일 오전 훈련 면제다!”
“으라차차차!!!”
“가즈아!!!”
훈련 면제라니!
갑자기 선수들이 미칠 듯한 속도로 움직이고, 대건고 감독 백승수가 조용히
이를 보며 생각한다.
‘1등은 프로가 확정된 3학년 배정환, 2등은 지금 2학년 에이스. 나머진 거기
서 거기겠지. 아 한 놈만 빼고’
훈련 중인 20명 중 꼴찌는 안 봐도 비디오겠거니- 생각했다.
“코치님! 다했습니다!!!”
대건고 스텝훈련 서클의 평균 기록은 1분 30초, 주전 선수의 경우 1분 20초,
현재 프로가 확정된 3학년 선수가 1분 10초가량 달성한다.
“뭐.뭐야...진짜야?”
전상욱이 머리를 긁적이며 서클을 마친 시간은 1분 9초. 평균 기록보다 30초
가량을 앞서고, 웬만한 프로 수준의 순발력을 갖춘 것이다.
“어...어 예. 진짭니다...그...안 믿으시겠지만...”
감독의 물음에 어안이 벙벙해진 코치가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임마! 야 똑바로 확인 안 할래?!”
1분 9초는 저 나이 때 선수가 나오기 힘든 기록이다. 하물며 느리기로 소문난
전상욱이 팀 내 1등을 기록한 거다.
당장 전국 고등학교 축구부 전원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을 때도 저 정도 성적
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전상욱이 그 정도 실
력이라 생각지 않는다.
한 서클을 덜 돌았거나 날씨가 더워서 코치가 잘못 봤겠거니- 생각한 백 감독
이 곧장 다음 훈련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는 슈팅 훈련
하프라인에서부터 질주해 패널티라인 앞에서 슈팅하는 훈련을 진행한다.
늘 그렇듯 딱 고등학교 수준의 슈팅이 주를 이르고 있을 때,
“우어어!!!”
“전상욱 저놈 웬일이냐!”
골대가 찢어질 듯한 강한 슈팅이 아크서클 왼쪽에서 터진다. 족히 20m는 될
법한 먼 위치이나 맞으면 골키퍼가 쓰러질만한 강력하지만 대단히 정확한 캐
논슛이다.
지켜보던 선수들은 물론 코칭 스텝까지 놀라 감독에게 칭찬한다.
“상욱이 녀석, 컨디션이 괜찮은데요?”
“웃기지 마. 그냥 얻어걸린 거야”
저 정도의 슈팅을 쏠 수 있는 선수는 백승수가 프로판에 오래 있으면서도 많
이 보지 못했다.
차범근이나 김주성이 그러했으며 최근 들어와선 박주영이나 손흥민 정도만이
저 정도 수준의 슈팅 능력을 갖췄다.
파워나 정확도 면에서 아직 그들에 도달할 수준은 결코 아니나 체감상 그렇단
것이다.
“비슷한 느낌을 내는 놈이 하나 있었는데...”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한 명 있었다.
2005년 수원 삼성과 첼시의 친선경기 중, 미칠 듯한 캐논포를 날리던, 상욱과
비슷한 체격을 가진 외국 선수가 하나 있었다.
디디에 드록바
그러나 감독은 감히 상욱이 그 정도 레벨에 도달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을 거
라 생각친 않는다.
“말도 안 되지. 드리블도 제대로 못하는 놈인데-”
스텝훈련 때의 기록은 애초에 잘못된 것 같아 작성조차 하지 않았으며, 방금
보여준 슈팅은 그저 운이 좋았겠지- 생각했다.
다음은 맨마킹 훈련,
공격수는 수비를 뚫어내고, 수비수는 공격을 막아내는 간단한 훈련이다.
약한 공격진에 비해 수비가 뛰어난 대건고의 공격수들 대부분이 제대로 돌파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상욱이 툭툭치며 공을 몰고 나가더니 상대가 수비를 위해 다리를 뻗자 바깥
발 방향으로 공을 모는 척하고 페인팅한 다음 안쪽 발로 공을 몰고 나간다.
“와! 플립플랩!”
“쟤 오늘 왜 저래?”
그냥 단순히 개인기를 쓴 정도가 아니라 마치 용수철처럼 공을 빠르게 뻗었다
순간적으로 돌파해나간다.
“저놈 진짜...”
아직 미숙하다.
K리그 수비수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개인기이나 그건 프로의 이야기고,
고교축구에서 저 정도의 기술을 보여준 사람을 지금껏 본 적 있었던가.
백지훈, 박주영, 고종수, 안정환
한때 K리그를 풍미했던 드리블러들조차도 고교 시절 저 정도 모습을 보여줬을까?
고교 선수 중 지금껏 개인기 잘하는 선수를 수십, 수백 명을 봐왔으나 저렇게
간결하게 치는 선수는 극소수에 달 할 것이다.
“내가 잘못봤나”
그는 다음 경기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훈련을 끝마친 주전 수비수 3명을
불러모은다.
“정환이, 재홍이, 규호. 3명 다 쟤한테 붙어봐”
“네?”
“아니 무슨 1학년을 마크하라고 하세요?”
주전은커녕 벤치에도 못 앉는 신입생을 마크하라는 말에 이해가 안 되는 선수들.
“아! 그냥 해봐 좀! 토달지 말고!”
짜증 섞인 감독의 외침에 놀란 선수들이 이내 집중하고 수비대형을 갖춘다.
‘뚫을 리가 없지’
선수 시절 중앙 수비수로 뛰면서 수비 전술과 수비수 육성 하나는 자신 있는
백 감독. 지금 대건고 수비수들은 자신의 훈련 철학의 정수가 담긴 시스템대
로 훈련받은 선수들이었다.
내가 잘 못 본 거겠지-
라고 생각했던 백 감독의 선입견이 단 3초 만에 박살 났다.
상욱은 수비수 사이로 공을 뻥 차더니 이내 뒤에서부터 질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곧 막히겠지 싶었으나 그는 순간 모터라도 단 것 마냥 미친 듯 앞으로
뛰어나간다. 수비수들은 맨 마크는 고사하고, 상욱의 속도를 눈으로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이런 미친!!!!”
이대로 수비수를 완전히 따돌리나 싶었을 때-
“허..어억...!”
금방 지쳤는지 상욱의 스피드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곧 달려온 수비수들에
게 깔끔하게 볼을 뺏긴다.
“그럼 그렇지- 아까는 그냥 운이었던 거야”
한 번 질주 후 상욱은 완전히 지쳤는지 다음 돌파부턴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
지 못하고 번번이 수비에 막히자 백 감독이 이죽거리며 자리를 뜬다.
‘초심자의 행운, 뭐 그런거라고 생각하자’
백 감독이 자리를 뜨고 난 뒤,
방금까지 상욱을 마크하던 주전 수비수 3명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정환아, 너 처음에 왜 놓쳤냐? 다시 막아 보니까 별거 아니잖아”
“그럼 너는? 아무것도 못하고 전상욱이 쳐다만 보더만”
처음 수비라인이 뚫린 건 그저 상욱을 상대할 때 긴장하지 않아서 기본적인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수비수들이다.
아니면 뭐. 귀신에 홀렸다거나 말이다.
체력도, 기술도, 스피드도 없는 백 감독이 상욱을 스카웃 한 이유는 딱 한 가
지 때문이었다.
피지컬
중학 시절 190에 가까운 키로 상대방을 그냥 찍어누르던 모습 하나만 보고 데
려왔다. 기본기야 좀 늦긴 했으나 3년간 제대로 가르쳐서 ‘얀콜러’나 ‘크라우
치’ 같은 선수로 키워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기대보다도 낮았고 유일한 장점이던 피지컬마저 비슷한
체격의 고등 선수들과 맞붙으니 그저 평범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장점도 존재하지 않는 재능 없는 선수,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삼류 공격
수. 그게 전상욱이란 선수였다.
그러니까,
30분 전 다니엘이 환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For fucking sake!!!”
훈련이 끝난 뒤 숙소 침대에 누워 몇 번이고 환호한다.
그저 저니맨으로 살고 싶다고만 빈 소원인데 내가 환생한 동양인 선수는 지금
껏 내가 본 그 어떤 공격수보다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비슷한 스타일이 누가 있을까..
평생을 2부에서 뛰어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접점은 많지 않았으나 05년 아스날
과의 FA컵 경기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실력을 가진 선수가 하나 있었지.
무지막지하게 빠른 속도와 우아한 발놀림, 숨이 턱 막히게 만드는 골 결정력
을 가진- 티에리 앙리가 있었다.
전생의 내가 앙리와 같은 체형에 그저 빠른 것만 닮았다면 이놈은 속력에다
슈팅 능력부터 스트라이커로서 모든 것이 완벽한 축구선수다.
“앙리와 빼닮았어.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체감으로만 따지면 월드클래스 꼭대기라 불리는 앙리보다도 위이며, 무엇보다
정말로 놀란 것은 수비수를 한 번에 벗겨내는 개인기.
“이건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냐”
그저 이렇게 수비수를 뚫어내야지. 생각만 한 뒤 몸을 움직이자 순식간에 선
수 3명을 바보로 만들었다. 이건 재능의 영역이다. 평범한 선수들은 아까 상
황에서 개인기를 하다가 혼자 넘어졌을 것이다.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야, 이 븅신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으나 지금 몸에서 재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5% 남짓.
폭발적인 스피드를 경기 내내 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체격에 비해 근육도 없
고 지나치게 적은 몸무게는 피지컬 좋은 수비수에게 말 그대로 따먹히기 완벽
했다.
지독하게 훈련해야 한다.
체력훈련부터, 벌크업에, 전술훈련까지.
지금 몸에서 쓸 수 있는 재능을 5%가 아닌 100%, 120%까지 끌어올려야 할 것
이다.
“여기선 불가능해”
전문적인 훈련도, 세밀한 선수 관리도 없이 얼차려나 주는 이곳에 있다간 이
재능을 제대로 사용치 못할 것이다.
해봤자 아시아에서나 호령하는 수준으로 끝나겠지.
“최대한 빨리 유럽으로 가야 해, 밑바닥부터 시작하려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
나도 괜찮겠지”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야 했다.
아시아 변방에서 유럽리그로 컨택 되는 기회는 거의 없다. 입단 테스트가 많
은 것도 아니고, 친선 대회가 열리지도 않는다.
일단 사람들에게서 입소문이 퍼져야 한다. 대건고에 미친 스트라이커가 하나
있다고 말야.
그러기 위해선 일단 보여줘야 한다.
내가 가진 재능이 진짜란 것을!
***
인천 대건고등학교 축구부.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팀으로 문상윤, 김진야, 정우영 등 걸출한 선수들이 배
출된 전국 강팀 중 하나로 꼽히는 강팀이었으나-
2017년 현재,
대건은 예전의 명성을 잃고 침몰 중인 배로 알려졌다.
주변 학교에 유망주들을 뺏기고, 선수단 파벌로 감독이 여럿 교체된 팀이 제
대로 굴러갈 리 없었고, 옛날의 영광은 간데없이 철저히 무너지고 있었다.
작년부터 백승수 감독의 부임 아래 팀의 조직을 새로 다지고는 있으나 아직까
지 별다른 성과는 보이지 못했다.
현재 전국리그 5조 최하위, 대통령배 예선 3라운드 탈락.
잘 정돈된 수비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공격라인, 전문 골게터의 부족은 대건
을 상위 스플릿으로 보내지 못했다.
백승수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어떻게든 공격진의 활로를 찾기위
해 전국 각지에서 쓸만한 공격수들을 스카웃해 왔으나 제대로 된 놈이 하나도
없었다.
“전상욱...”
오늘 훈련에서 보여준 모습이 우연이 아니라면 그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
질 인물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랄, 내 눈이 틀릴 리가 없지”
그 자식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인드부터 틀려먹은 놈이다. 오늘 보여준 모습은
최상의 컨디션에서 우연찮게 나온 모습에 불가할 뿐이다.
게다가 대건의 다음 경기 상대는 지난 전국대회 4강에 빛나는 K리그 울산현대
의 유스팀 현대고등학교.
전국 강팀을 상대로 후보에도 못 드는 선수를 내보낼 수야 없는 법이다.
4-3-2-1 포메이션의 1자리를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감독은 가차 없이 다른 선
수의 이름을 써넣는다.
“내가 틀릴 리가 없겠지만....”
잠시 고민하던 감독은 후보선수 가장 끝자리에 조용히 상욱의 이름을 써넣는다.
하늘이 준 재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