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화 (1/114)

1화

축구는 비즈니스다

2016-17 EFL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

밀월FC과 노리치시티의 선수들이 목숨을 걸고 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팀은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로 승격, 패배 팀은 또다

시 이 지옥 같은 2부에서 1년을 보내야 한다.

스코어는 2:2,

탈진하다 못해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 양 팀 선수들이나 딱 한 명, 밀월의 주

전이자 주포인 다니엘 잭슨만큼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미친 듯 뛰어다닌다.

그에겐 오늘 경기가 인생 마지막 기회다.

후반 45+5분

밀월의 왼쪽 윙이 상대 진영으로 크로스. 헤더로 받기엔 짧으나 선수들은 쉽

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돈, 명예, 팬들의 염원, 선수들의 꿈, 미래.

한 경기에 걸려있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 걸려있었으니까.

[밀월의 오늘 경기 마지막 공격이 될 것 같습니다. 헤리슨의 크로스! 아!! 다

니에에에엘!!!!!!]

[아! 들어갔어요!!! 이 골은 치명적입니다!!!! 밀월이! 밀월이! 승격합니

다!!! 132년 만에 밀월이! 마침내 프리미어리그로 갑니다!!!]

[팀 레전드가! 결국! 해냅니다! 아 펜스가 무너지고 팬들이 경기장으로 난입

합니다!]

“우리의 영웅이 해결했다!!!!”

“Daniel, the hero of Millwall! forever!!”

더 이상 흥분을 주체못한 관중과 훌리건이 그라운드로 달려들어 소리치며 결

승골의 주인공을 찬양한다. 헹가레를 하거나 안고 울거나, 여성 팬들은 그에

게 달려들어 키스하기도 한다.

결승골의 주인공은 밀월의 주장이자 20년 넘게 팀에 헌신한 원클럽맨 다니엘

잭슨,

선수 생활 내내 2·3부를 전전했던 2류선수 다니엘 잭슨이 프로 20년만에 프리

미어리그에 입성한다.

***

원클럽맨.

스포츠에서 프로 생활을 오직 한 클럽에서 보낸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기본적

으로 뛰어난 실력을 기본으로 팀에 대한 헌신이 높아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선수다.

리버풀의 심장 제라드,

레알마드리드의 수호성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카탈루냐의 영원한 자존심 카를레스 푸욜.

등을 위대한 원클럽맨으로 부르며, 뭐 이들의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밀월이란

팀에선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5살 유소년부터 30년간 밀월에서 뛰며 팀을 1부로 올려놓은 위대한 멤버의 주

장인 나, 대니엘 잭슨.

지금껏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동안 어찌나 비참했는가.

수많은 고통과 고난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30년간 한 팀에만 몸담았으나 그동안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

말일 것이다.

2부리그 상위권 수준의 골 결정력과 3부리그서 간신히 통할 수준의 기술을 가

진 프로통산 80골이 겨우 넘는, 별볼일 없는 3류 선수이나 장점이 없진 않았다.

유럽 최상위권 수준의 속도와 190cm에 가까운 피지컬.

20대 후반 폼이 최전성기로 올라왔던 시절 PL 및 스페인 클럽들의 이적 제안

이 있었고, 그중 한 곳은 챔피언스리그 진출 팀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당연히 더욱 강한리그에서, 더 높은 수준의 선수들과 호흡하고 맞붙고 싶었으

나 내 심장은 오로지 밀월에만 존재했다.

“더 댄(The Den) 앞에 대니얼의 동상을 세우자!”

“밀월의 주장은 쓰레기장으로 가지 않는다네!”

토트넘으로의 이적이 진지하게 얘기되고 있을 때, 팬들은 밤낮없이 내 이적을

막았다. 울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고, 사정하기도 하고. 구단 사무실을 점거

하기도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난 이 팀에 평생 남기로 했고-

마침내 팀을 1부리그에 올려놓은 최초의 주장이 됐다.

[런던의 사자들! 마침내 PL로!]

[창단 132년 만에 1부리그 승격! 결승골의 주인공은 ‘런던의 타워’ 장신 스트

라이커 다니얼 잭슨!]

[결승골의 ‘영웅’ 다니엘 잭슨은 누구?]

[팀 레전드 테디 셰링엄‘The Lions의 위대한 승리!’]

유럽 각종 언론사에서는 기적적으로 승격한 밀월에 대한 기사를 연신 쏟아내

며 동시에 이 팀에서 30년 넘게 뛴 나 역시 인터뷰 요청과 함께 지대한 관심

을 받고 있었다.

Q 7년 전, 토트넘이나 스페인의 베티스에서 이적 요청이 왔는데 거절했습니

다. 아쉽지 않습니까?

A 사자는(밀월의 애칭) 자신의 무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Q 전문가들은 다음 시즌 강등 1순위로 밀월을 꼽고 있습니다. PL에서 활약,

자신하십니까?

A 우리에겐 근성있는 선수단과 열정적인 팬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팀의 강

등을 막겠습니다.

프로 20년 만에 영국 전역에서 날 알아보고, 동시에 거칠기로 유명한 우리팀

팬들은 3일 넘도록 밤낮없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

스피드는 눈에 띄게 줄었으며, 원래 부족했던 슈팅과 기술은 현 PL에 통할 수

준이 못 된다. 순발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며, 남은건 제공력과 헤더 하나

뿐이다.

PL에 간다해도 앞으로 2년은 뛸 수 있을까.

“목숨을 걸자”

30년 만에 꿈을 이뤘는데 2년 만에 그만둘 순 없지. 체력이 안 되면 근성으

로, 힘이 없으면 깨물기라도 해서 PL에서 살아남는다.

밀월을 위해 바친 30년,

앞으로 선수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내 목숨을 이 클럽에 바

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

“방..출이요?”

“다니엘, 다니엘. 제발 말을 좀 끝까지 들어!”

밀월의 감독 토마스 제퍼슨은 감히 팀 주장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

었다.

지금 그가 대니얼에게 해야 할 말은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일생의 전부를 부

정하는 말이였기 때문이다.

“방출이 아니야. 은퇴를 종용하는 거지. 새로운 밀월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

물론 은퇴식은 최고로 치러줌세”

너무도 큰 충격에 빠져 아무 말 하지 못하는 대니얼의 심장을 부숴대는 감독.

“만약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다면 좋아, 구단에선 이적료 없이 보내 주마.

블랙풀이나 헐시티 어때? 안 그래도 경험있고 제공권있는 공격수를 원하던데”

“거긴...2부 잖습니까. 팀이 1부리그로 갔는데..당연히..

저도 가야죠...제가...주장이잖습니까”

“다음 시즌부터 주장은 피어스가 될 거야”

그 누구보다 대니얼을 믿고 맡기던 제퍼슨. 이런 자리가 너무나 불편하나 그

는 팀의 헤드 코치, 감독이었다.

“이봐 대니얼. 나도 괴로워. 이번에 바뀐 구단주가 팀 색깔을 바꾸길 원해.

PL에 맞는 빠르고 세밀한 축구를 하길 바라는데..지금 자네 상태론 불가능하

잖는가”

작년부터 구단주로 취임한 재산이 ‘조’ 단위의 미국 구단주의 선택이다.

구단주이기이전에 사업가였던 그는 과격한 서포터들과 훌리건이 많고, 선 굵

고 거친 축구를 지향했던 매니악한 밀월을 대중적인 팀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선 구시대의 산물을 버려야 했고, 이 중 방출 1순위로 장점이 피

지컬과 제공권 밖에 남지 않은 다니엘이 뽑혔다.

빠르고 전성기 때는 드리블까지 쓸만했던 다니엘이었으나 35살의 그는 지금

팀의 계륵일 뿐이다.

“우리 돈 많이 쓸 거야. 이번 이적 시장에 받은 돈만 7천만 유로(한화 940억)

가 넘어가. 미안하다, 팀에 대니 네 자린 없을 거야”

“씨발! 팬들이 가만 있을 것 같아요?!”

화내지 않는 것이 이상한 상황. 다니엘이 책상을 내려치며 외친다.

영국 내에서도 가장 거칠고, 무시무시한 팬을 가진 밀월FC. 만약 팀의 레전드

이자 로컬 보이인 다니엘이 방출 당한다면 팬들의 불만은 폭발할 것인데-

감독은 조금도 동요치 않는다.

“네 대체자로 고려되는 놈들이 라카제트랑 임모빌레야”

리그앙에서 3시즌 연속 20골 이상 넣은 현 리옹의 에이스 라카제트와 라치오

의 폭격기(Il bomber della Lazio)라 불리며 세리에 득점왕 경력까지 있는 임

모빌레.

현재 다니엘보다 2수는 높은 수준의 선수들이다.

게다가 현 유럽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라 평가받는 곤살로 이과인까지 고려되

고 있는 상황에 다니엘은 밀월에 결코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며칠은 널 내친다고 시위하고 화염병을 던져도 700억짜리 공격수 오피셜이

뜨면 언제 그랬는지 사그러들거다. 그 선수가 잘하기라도 하면 오히려 환호할

거고”

틀린 말이 아니며, 다니엘 역시 이를 인지하며 포기단계로 들어섰다.

“하..코치 하겠습니다. 대신 1시즌은 플레잉 코치로 뛰면서 어느 정도 경기는

뛰겠...”

“너 1군 코치아냐. 경기 못 뛰어”

“Fucking Bull shit!

U-12 수비 코치부터 시작하라는 감독의 말에 그의 멱살을 잡은 채 감독 테이

블을 부숴버리는 다니엘.

“미친 새끼! 30년간 팀에 헌신한 댓가가 고작 이거냐?! 어떻게...어떻게! 이

팀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울분을 토해내며 눈물까지 줄줄 흘러내리자 감독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

를 태워댄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대니, 나도 이번 시즌 끝으로 밀월을 떠난다”

“....뭐?”

“다음 시즌부터 밀월 감독은 라파(Rafa)야”

라파엘 베니테즈.

챔피언스리그 및 라리가 우승 경험이 있는 A급 감독으로 팀의 야망을 위해 구

단주가 직접 데려온 감독이다.

자신의 사단이 존재하고, 권위적으로 소통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라파의 특

성상 팀 내 레전드 다니엘을 코치로 두지 않을 것이다.

“대니 인생이란 게 그런 거야. 우리- 좋았던 기억만 생각하고...떠나자”

씁쓸하게 뱉어내는 감독과 충격에 빠져 얼빠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는 다

니엘.

30년간 바래 왔던 승격을 이룬지 3일 만에-

그는 팀에서 버림받았다.

***

“밀월 좆까!! 허친슨(:구단주) 좆까!!!!”

런던 남동부,

새벽 늦은 시간 완전히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길거리를 고성방가해댄다.

“대니! 얼마나 마셔댄거야!”

“하하 내일 훈련 재 껴! 우리랑 한잔 더 하자고!”

이 정도로 시끄러우면 주변 사람들이 화낼만도 하나 그 대상이 나란 것을 안

동네 사람들은 그저 웃어대며 그를 유쾌하게 볼 뿐이다.

이곳에서만 35년을 살았다. 이웃은 가족이 되고, 팬은 이웃과 친구가 되기 충

분한 시간이다.

“씨발 나보고 떠나라고? 밀월은 내 집이야!”

혹자들은 말한다.

원클럽맨은 자본으로 점칠 된 현대 스포츠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이며, 존경받

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좆 까지마. 축구는 돈이야”

그 어떤 낭만도 성적과 자본 앞에서 사라진다. 감독 말 하나 틀린 것이 없다.

앞으로 라파가 만들어나갈 밀월에 난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난 느리고, 힘없고, 순발력마저 사라져 오기밖에 남지 않은 퇴물 수비수

니까 말야.

“목숨을 바쳤는데..내 모든 걸 다 줬는데..흐...흐흑....!”

토트넘 이적 제의가 왔을 때, 팀은 3부리그로 추락했었다. 챔스권 팀을 버리

고 3부리그에 남았을 때 감독과 이사회는 내 손을 잡으며 눈물 흘렸다.

“더 댄에 네 동상이 세워질 거다!”

“넌 죽을 때까지 밀월이랑 함께 하는 거야 대니!”

그런데 지금은 뭐?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고?

원 클럽맨?

좆까라 그래!

“이 씨바아아알!!! 좆까라고!!!!!”

터져 나오는 분노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 맥주병을 들고 도로로 뛰쳐나올 때-

“어...어어?!!!”

순간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트럭에 그대로 부딪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아....”

존나게 억울한 인생이다.

꿈도, 돈도 포기하고 팀에 목숨을 바쳐서 평생 꿈꿔왔던 목표를 이뤘는데 나

가라고 한 날 죽는다니, 세상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또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원클럽맨 따윈 하지 말걸. 한번 사는 인생 철저하게 돈에

따라, 내 마음이 끌리는 팀으로 가서 하고 싶은 대로 살걸.

다음 생에는 저니맨으로 태어나고 싶다.

즐라탄, 히바우두, 에투 같은 위대한 저니맨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그라운드에 낭만은 없다,

원클럽맨 따윈 다신 안 할거야-

순간 몸에 있는 모든 뼈와 장기가 부서지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몸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활강하듯 밑으로 떨어진다.

***

“흐억!!!”

공중으로 솟아오른 몸은 곧 바닥으로 떨어진다.

분명 온몸이 바스러져야 정상인데 멀쩡하다. 팔·다리는 물론 일어설 수도 있

으며, [大建高]라 적힌 유니폼을 입고 있고있다.

거친 숨을 내뱉고 땀에 흠뻑 젖어있는 자신이 느껴짐과 동시에 주변에서 날

한심하게 보고 있는 같은 유니폼을 입은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야- 감독님이 부르시잖아”

“진짜 이 새끼 개 빠진거봐라. 넌 이따보자”

까무잡잡하게 생긴 동양인 남자.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일까.

분명 처음 듣는 언어로 말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모두 알아듣는다.

“야!! 전상욱 너 뭐해!!!!”

뒤이어 감독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날 보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저놈은 허

우대만 멀쩡하다니, 기회만 있으면 농구팀으로 보내고 싶다느니 짜증을 내뱉

는다.

“뭐.뭐야...여기 축구장 아냐?”

하늘이 준 재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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