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207화 (207/208)

207화. 이젠 아닙니다

‘⋯이 타이밍인가?’

그렇게 시작된 연장전은 전후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계속해서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유건은 연장 전반 내내 새롭게 동기화를 하게 된 선수에 대해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사실 평소 하던 대로 경기에 집중을 했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유독 거기에 매달리는 유건이었다.

이렇게 극적인 순간에 동기화가 시작된 것을 보면 무언가 있어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건, 평소와 패스가 좀 다른데⋯.”

크게 티가 나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유건과 몇 년 동안 함께 지내온 팀원들은 무언가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그와 공을 가장 많이 주고 받는 쿠아바나 파티노의 경우 확실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아직 무엇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미안해, 확인할 게 있었는데 후반전에는 확실하게 패스해볼게!”

너무 팀원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생각에 곧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유건이었다.

스스로도 꽤나 느끼던 부분이었는데 그걸 매일같이 받아주었던 팀원들이라면 당연히 더 잘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아스날 선수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유건에게 허락한 연장 전반전의 시간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그게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었는지를 말이다.

***

뻐엉-!

‘⋯건이 왜 저기 있는 거지?’

연장 후반전 5분, 파티노의 머릿속에 드는 의문.

지금 이 순간, 앞에서 헤딩 경합을 준비하는 쿠아바에게 공을 건네주면서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았으면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는 유건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는 오히려 공격 지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공은 뒤쪽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데 말이다.

콰앙-!

“⋯크윽, 곧바로 치고 나가 캐시!”

하지만 파티노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쿠아바는 경합에서 승리하면서 헤딩을 따냈다.

몸을 부딪치며 신음을 흘리는 와중에도 머리를 틀어 공의 방향을 바꿔 캐시가 있는 곳으로 돌려놓는다.

자신의 뒤쪽으로 움직이려는 유건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코앞에 주기가 애매하다 보니 그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은 마치 그렇게 될 것이라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앞으로 달려가려는 캐시를 마크하고 있는 선수의 등에 맞고 땅으로 떨어진다.

스으으-!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눈에는 공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게 보이는 캐시.

자신에게 패스를 준 사람이 분명 최전방에 있던 쿠아바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에서 확실하게 줄 수 있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서 벗어나 공을 잡지도 않고 그저 전방을 향해 조금씩 올라왔던 유건이었다.

자신과 동일선상에 위치해 있는 그를 보며 땅에 떨어졌다가 튀어 오르는 그 순간, 공의 윗부분을 때려 바닥으로 깔리는 패스를 보내는 캐시.

보다 더 앞쪽으로 달려가서 곧바로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맞이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 패스였다.

“쉽게 못 넣는다!”

그러나 물론 유건에게도 수비는 붙어 있었다.

미드필더 지역에서부터 그를 마크하던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더 한 명이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었던 것.

캐시가 보낸 패스가 자신의 앞쪽으로 달려가는 유건과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 사이로 가는 것을 보고 가속을 붙여 뒤쪽에서 달려가며 외친다.

쉽게 일대일 상황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촤아아-!

“뭐라⋯?”

그러나 유건과의 격차가 엄청 빠르게 좁혀지지는 않았기에 결국 잔디를 쓸며 몸을 날리는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지켜보다가 슈팅을 위해 다리를 젖히는 그 순간, 곧바로 차단하거나 튕겨낼 수 있게 슈팅의 방향 앞쪽으로 태클을 들어간다.

앞쪽에서 팀의 골키퍼가 뛰쳐나오고 있었지만 자신이 마무리한다면 더 안전하게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유건은 그렇게 골대와 골키퍼만을 눈앞에 두고도 슈팅으로 연결하지 않았다.

투욱-!

슈팅하려던 오른발은 공의 위쪽을 지나갔고 이내 뒷발로 살짝 공의 앞부분을 차 낸다.

일대일 상황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힐킥이었다 보니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습관처럼 세컨볼을 위해서 아스날 선수들은 골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즌 초반부터 가졌던 집중력 좋은 그런 모습은 결국 시즌의 막바지에 행운을 불러왔다.

바로 전방에서 헤딩 경합을 이기고 공을 연결해준 쿠아바가, 착지한 후 달려오는 방향 그대로 유건의 힐킥이 굴러오고 있었으니까.

투우욱-!

“우리가 가져간다 우승컵!!”

앞을 가로막는 수비도,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도 있어야 할 위치에 없었다.

모두 앞선 상황 때문에 흩어져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쿠아바가 다시 앞서나가는 골을 넣기 위해서 크게 필요한 것이 없었다.

그저 발만 가져다 대는 행동만 필요했을 뿐이다.

‘⋯확실하다, 이건 미래다.’

약 1분 전부터 지금까지 펼쳐진 이 모든 상황을 데자뷔처럼 느끼는 유건.

이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고, 마지막 동기화의 퍼즐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던 그림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렇다.

유건이 미리 보았던 장면은 확실히 미래였다.

[호세 마리아 구티의 데이터 동기화율 22.01%]

[경기가 끝나기 전에 보았던 미래를 활용해 골을 만들어내세요 (1/1)]

호세 마리아 구티.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의 스타로 기복이 있었던 플레이어였지만, 기상천외한 특유의 패스 스킬.

등 뒤에 눈이 달려있거나 시야가 엄청나다고 볼 수 있을법한 장면들.

세계 축구팬들에게는 ‘구티의 그날’이라고 불렸던 그때만큼은 확실히 월드 클래스를 넘어서는 선수였다.

미래를 보는 것 같은 패스 루트를 창조해내던 그였으니까.

그런 그의 데이터 동기화를 시작한 이후인 연장전부터 보였던 새로운 패스길.

찰나의 기억처럼 스쳐 지나가는 미래처럼 모든 것이 다 동일하게 발생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비슷하게 흘러갔다.

이전까지의 데이터 동기화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경쟁하는 수준으로 올라왔던 유건.

만약 그가 경기 중 보이는 상황들에서 확실한 미래라고 보여지는 것들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오늘 경기도 열 번이 넘는 상황 중 한 번만 맞아들어갔다 보니 그럴 일은 없을 확률이 더 높겠지만 말이다.

***

- 와, 진짜 이거 실화인가? 지금 이 시대에 쿼드러블이 말이 되냐고!

극적인 아스날의 재역전골 이후에 남아있던 시간은 겨우 10분.

아무리 후안 루이스를 필두로 한 레알 마드리드라 할지라도 그때부터 수비를 두 명 이상 강화한 절박한 아스날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결국 악착같이 10분을 버틴 아스날이 빅이어의 주인이 되었다.

그로서 카라바오컵, FA컵,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까지 네 개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컵을 차지하며 쿼드러블을 달성했다.

축따튜브의 어느 구독자가 놀라는 게 당연했던 것이 최근 십여 년간 이런 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아스날의 캡틴 유건의 인터뷰]

그리고 끝나자마자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유건의 인터뷰는 동영상으로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볼거리도 많았고,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우선 우승컵을 들게 되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한 시즌 동안 고생해준 감독, 코치진들과 선수들, 그리고 팬 여러분들께 이 우승컵을 바치고 싶습니다.”

“아스날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더 맞는 팀이 있을 거라고, 잘못된 선택이라는 세간의 평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습니다.”

“당시 엄청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고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통상적인 말로 시작하는 그의 인터뷰는 두 번째 문장부터는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수많은 팀들의 관심을 받는 시절.

당시 더 높은 순위의 강팀들에서도 오퍼가 왔었지만, 그저 가능성 있는 유망주를 긁어보려는 그들의 태도에 아스날을 선택했다.

이후 “더 좋은 팀이 있을 거다”, “거기는 네가 아깝다”, “하락하고 있는 팀이다”라는 많은 말들을 들었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갔던 유건.

아르테타의 플랜을 듣고 매료된 이후였기에 거부감을 많이 느낀 말들이지만 일부 인정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확실히 이렇게 상위권에서 경쟁을 하던 팀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그러나 유건이 내뱉는 말과 같이 이제는 아니었다.

상위권도 그냥 상위권이 아니라 세계의 최상위권을 놓고 다투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번 시즌은 달성했다.

“우리가 세계 최고입니다.”

영국 최고라고 내뱉었던 지난 인터뷰에 이어 빅이어를 들고 내뱉는 유건의 당찬 인터뷰.

아스날이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에 가득 찬 말은 세계 팬들에게 여러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아스날 팬들은 보다 더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반응으로 그의 인터뷰에 화답했다.

반면 다른 팀의 팬들은 겨우 한 시즌 우승한 걸로 너무 건방지다는 반응으로 어떻게든 아스날의 업적을 깎아내리려 했다.

물론 역사에 남을 쿼드러블이라는 업적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쥔 업적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말이다.

“루이스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가 제게 있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라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팀원들은 모두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제외했으니 이거 보고 삐지지 마시구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친구인 루이스를 치켜세웠다.

더불어 아스날 팀원들이 신경 쓰였는지 그들을 생각하는 농담도 포함시켰다.

“인터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순간, 이렇게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의미가 가장 깊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프로포즈를 정식으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이 자리에서 청혼합니다.”

“나와 결혼해줄래, 여름아?”

마지막 말을 한국어로 했던 탓에 카메라들은 당황해서 초점을 잠깐 잃어버렸지만, 유건의 손에서 반지함이 나오는 것을 보고 추측하면서 이내 한 곳으로 카메라가 고정되었다.

VIP석에 앉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미모가 가려지지 않는 동양인 여성.

관중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세계 축구팬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계방송에서 정식 프로포즈를 하는 미친 행동을 하는 유건이었다.

다행이었던 점은 여름이 꿈꿔왔던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유건에게 반해 있는 상태였기에 정상 참작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수만 명의 축하를 받으며, 경기장으로 내려간 여름은 유건이 무릎을 꿇고 올려 드는 손을 맞잡았다.

“할머니, 저 정도면 유건 오빠 여름이 고생은 안 시킬 것 같죠?”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여름의 지인 김지연과 강혜리.

그들은 그저 유건을 함께 알고 있었기에 중계방송을 보며 응원하고 있었을 뿐인데 예상외의 장면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조금은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저렇게 공개적으로 프로포즈를 했는데 한눈 팔거나 바람을 피우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어쩔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은 사실 유건보다는 나여름이 중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아픔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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