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역사적인 라이벌
삐익-!
살리바의 동점골 이후, 서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두 팀이었기에 어느 한쪽이 추가골을 뽑기에는 약 3~4분의 시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을 다들 인지하고 있는 경기장 내의 22명이다 보니 차단당할 수 있는 위험한 패스보다는 안전한 패스를 선택했다.
남은 시간 동안 실점을 막고 하프타임을 이용해 감독, 코치진을 비롯한 팀원들과 재정비를 통해 후반전에 리드하는 것을 목표로.
그런 그들의 마음이 주심에게 닿았을까, 오래 지나지 않아 하프타임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상대가 공을 잡는 순간, 바로 타이트하게 압박을 들어가야 하고 우리가 패스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오면 안 된다.”
리드 당한 채로 전반전이 끝났다면 변화를 가져갔을 아르테타였지만, 동점골을 넣은 탓에 따로 전술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저 약 2주간 준비해온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집중을 요구하고 실수를 줄이라 한다.
분명 전반전에도 패스 미스 한 번으로부터 이어지는 위기가 유효 슈팅까지 연결된 적이 있었기에, 그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
“아스날의 패스 플레이에 현혹돼서 섣불리 달려드는 행동을 자제해라.”
“생각보다 그들이 패스를 통해서 풀어 나오는 세부적인 움직임들이 좋다.”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일대일로 무승부인 상황이 유지가 되고 있다 보니 한쪽에서 변화를 먼저 가져가는 순간 허점을 노출시킬 수도 있었다.
이기고 있을 때나, 지고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무언가를 수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니 그도 그런 선택을 내린 것이다.
다만 영상으로 보았을 때보다 압박 속에서 빠져나가는 움직임들이 더 뛰어난 아스날 선수들에 대해서 주의를 준다.
심지어 이번 시즌 프리메라리가를 지배했던 팀의 압박 전술 속에서도 그들은 패스를 주고받았으니까.
“후반전에는 한 건 보여줘라, 막내야!”
“하나 말고 두 개 성공해야 이기지!”
그런 양 팀의 준비 과정을 알 리 없는 용인 FC 원년 멤버들은 한곳에 모여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예전의 막내가 멋진 활약으로 아스날을 우승으로 이끌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전반전부터 원하던 유건의 공격 포인트였지만, 아직 기록하지 못한 상황을 꽤 아쉬워하면서 후반전에 대해 다시 응원을 시작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유건이란 선수는 이런 상황에서 한 건 해줄 것이라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선수였으니까.
***
스으으-!
그리고 그런 용인 FC 선배들의 후배에 대한 바람을 신이 어여삐 여기기라도 한 것인지, 후반전에 접어든 이후 뿌리는 유건의 패스는 찬란하게 빛이 날 정도였다.
미드필더 사이를 통과하면서 잔디를 쓸며 휘어지는 땅볼 패스는 사이드 지역까지 정확히 전달되었다.
전방에 있는 쿠아바와는 이대일 패스를 주고받는 척하며 직접 슈팅을 가져가거나 움직이는 쿠아바의 발동작에 맞춰 패스를 찔렀다.
“건을 막아!”
“혼자서 안되면 둘이서 달라붙어!”
그렇게 찌르는 패스마다 위협적인 찬스로 연결시켜 버리는 유건은 레알 마드리드가 당연히 신경을 곤두세워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에게 미드필더가 마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후반전 내내 자석처럼 붙어 있었다.
그저 한 명의 압박쯤은 패스하는 과정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정확하게 뿌릴 수 있는 유건이 문제였다.
그러한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다 보니 마드리드 선수들의 입에서 그를 막으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감독의 입에서도 한 명의 압박을 추가하겠다는 외침까지 들려올 정도였으니까.
투욱-! 투욱-!
하지만 이제까지 아스날을 상대하는 강팀들이 패배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유건에게 두 명 이상의 압박이 가해지면 그와 동시에 열리는 경기장 위의 공간을 활용하는 아스날 선수들.
단순히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있던 자리인 한 공간이 열린다고도 볼 수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레벨에서는 엄청난 미스 플레이였다.
그 공간에 만약 아스날 선수가 있다면 패스 루트가 주변 선수와의 호흡까지 생각해본다면 한 개가 아니라 몇 개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니까.
물론 지금 후안 루이스를 신경 써서 막는 아스날의 카마메니와 페레이라도 공간을 내주고 있긴 했다.
그 틈을 이용해서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어내던 레알 마드리드가 아스날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투욱-! 투욱-!
“건, 주고 가!”
“쿠아바, 건에게!”
그렇게 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너도나도 유건의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이대일 패스를 하거나 삼각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나간다.
그때부터 더욱 확실하게 풀어나가는 아스날 특유의 패스 플레이는 그저 대단하다는 말로만 표현하는 게 가능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티키타카 전술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맨체스터 시티가 보여주는 패스들보다 훨씬 공격적인 요소가 가미되었고,
아기자기하게 풀어나간다고 평가받는 여러 팀들보다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팀원들 간의 엄청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런 장면들을 위해 수없이 연습했던 훈련 세션이었으니까.
‘⋯이건 직접 처리한다!’
그러던 와중, 왼쪽 사이드의 러너에게서 전달되는 패스를 보고 찰나 동안 고민하다가 선택을 내린 유건.
자신 있는 오른발 각도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원에게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혀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정확하게 슈팅을 마무리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공에 집중시켰고,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갔다.
키핑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굴러오는 공을 왼발로 감아서 때렸으니까.
휘이익-!
아스날 선수들이 뒤에서 바라보는 시야에서는 왼발 슈팅치고 꽤나 날카로운 코스로 날아가고 있는 유건의 슈팅.
때린 당사자도 잠깐 동안 감탄의 표정을 지었을 정도였다.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가 뻗어내는 발을 살짝 스치면서 그의 측면을 돌아 가까운 쪽 포스트 하단으로 빨려들어 간다.
“어딜 감히!!”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반 박자 빠르게 날린 유건의 슈팅이었고 수비수의 몸에 시야까지 방해받았지만 뻗은 팔로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한마디 외치며 선방을 해낸다.
완전 구석으로 빨려들어 가다 보니 멀리 쳐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신 있냐?”
그가 외쳤던 건방진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까, 그에 화답하는 말을 외치며 달려가는 한 선수.
바로 유건에게 공을 건네주고 이대일 패스를 받기 위해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던 러너였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튕겨져나오는 세컨볼을 바라보며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우승을 결정짓는 결승골이 될 수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마무리를 위해서.
투욱-!
“⋯젠장!”
강하게 찰 필요는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이 몸을 날렸던 상황이었기에 재차 일어난다 해도 커버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러너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마드리드의 중앙 수비수가 발을 뻗어 보았지만 공이나 슈팅에는 닿지 않았다.
스치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땅을 내려치며 분한 감정을 표해본다.
출렁-!
그리고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출렁이는 골대의 그물.
아스날이 역전골을 넣는 데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으하하, 내가 넣었다고!!”
엠블럼을 힘차게 두드리며 함박웃음을 짓는 러너는 코너 플랫으로 달려가며 잔디를 쓸고 그대로 경기장에 드러누웠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소리치는 그의 외침은 이내 미친듯이 달려온 아스날 선수들의 움직임에 묻혔지만, 그의 마음은 겹쳐있는 몸을 통해 전달되었을 것이다.
“내가 넣었으니 남은 시간 조금만 잘 버텨서 승리를 따내보자"라는 의미가.
- 으아아아, 가자 러너야! 잘했다 이자식아! 이제 몇 분 남은 거지?
└ 아직 30분 남았음. 그래도 일단 역전골 넣은 게 어디야! 앞서나가니까 마음이 너무 편해지네
└ 형, 안심하긴 이르다. 루이스가 뭐라도 해내지 않겠어? 공 잡을 때마다 진짜 무서워 죽겠다
└ 레알 팬으로서 형이 느끼는 그 감정 축따형한테 공 갈 때마다 내가 느끼고 있어. 응원할 때는 잘 몰랐는데 이게 상대팀이 되니까 너무 무서운데!
물론 축따튜브에서도 난리가 나는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실점하고 전반전부터 끌려다니던 경기를 드디어 아스날이 역전하는 순간이었으니까.
더불어 남아있는 30분이라는 시간은 다시 동점을 노려야만 하는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것을 버텨내야만 하는 아스날의 입장에서는 꽤나 길게 느껴질테고 말이다.
후반 15분, 러너의 골이 터지면서 2:1로 앞서나가는 아스날.
빅이어의 주인이 결정되기까지 남은 시간 30분.
***
“루, 루이스 선수! 대체 몇 번째일까요? 오늘 카마메니와 페레이라가 단단하게 틀어막았던 아스날의 오른쪽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바디 페인팅만으로 앞에 있는 선수를 제치는 걸 볼 때마다 정말 놀랍습니다! 아스날 선수들도 꽤나 쉽게 속아 넘어가고 있어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이미 오른발의 리오넬 메시라고 불리고 있거든요? 예전에 그가 보여주던 모습이 딱 저랬습니다!”
“정말 그 장면을 보았을 때의 전율이 느껴지네요. 호날두 선수와 메시 선수가 경쟁하던 시절을 직접 본게 엄청난 자랑이었는데, 유건 선수와 루이스 선수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인 라이벌이었죠. 사실 저도 호날두 선수가 유벤투스 소속으로 한국 방문하기 전까지는 우리형이라고 불렀었는데 말이죠.”
“그땐 모두가 그랬죠! 아무튼 루이스 선수가 이번에는 최종 수비인 둠바 선수에게 막히긴 했지만, 점점 아스날의 골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스날의 역전골이 터진 이후부터, 루이스가 드리블을 치는 빈도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개인적인 플레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보니 팀에게 악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는 예외였다.
한 명은 기본이고 두 명, 세 명까지 순식간에 제쳐버리는 그의 발재간과 바디 페인팅은 오히려 레알 마드리드가 자랑하는 가장 큰 무기였으니까.
그런 장면이 반복되고 조금씩 더 깊은 지역까지 돌파를 성공하는 루이스를 보며 안준성과 전지우는 연이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방금도 둠바에게 막히긴 했지만, 그까지 공을 몰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네 명을 제쳐냈기에.
그리고 그의 모습에서 전설적인 선수이자 축구의 신, 축구계의 GOAT라 평가받는 리오넬 메시가 떠오른다는 중계를 이어간다.
더불어 호날두와 메시의 엄청난 라이벌 구도를 언급하며 유건과 루이스를 그들과 동일선상에 놓아보려 한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엄청난 경기를 펼치는 둘은 팀의 에이스였고, 앞으로도 맞붙을 날이 많았다.
‘한 명만 더⋯.’
안준성과 전지우가 흥분한 채 중계를 이어가는 그 시각, 방금 돌파를 실패한 것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루이스가 있었다.
한 명만 더 뚫었으면 골키퍼였다는 생각.
재역전골 이전에 우선 동점골을 노리는 그의 눈빛은 아주 매서웠다.
생글생글 웃고 있던 평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