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204화 (204/208)

204화. 사탄은 존재한다

‘왼쪽? 오른쪽? 어디로 찰 테냐⋯’

레알 마드리드에서 키커로 나선 것은 바로 후안 루이스.

패스면 패스, 드리블이면 드리블, 킥이면 킥 축구와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없다고 평가받는 축구의 신.

그를 믿는 건지, 아니면 세컨볼을 확실하게 노리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두 명의 키커가 준비하면서 골키퍼를 속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마드리드였다.

그저 루이스만 공 앞에서 준비하며 아스날의 골대로부터 한두 걸음 물러서면서 킥을 준비할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마세코는 넘겨서만 들어올 수 있게 우측 편으로 팀원들로 구성된 벽을 위치시키고 방향을 추측해본다.

왼쪽, 오른쪽 어느 곳으로 프리킥이 날아오든지 막아내서 선제골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뻐엉-!

그런 와중, 루이스가 선택한 킥은 짧게 끊어 차는 슈팅이었다.

벽의 측면을 돌아 마세코가 서 있는 왼쪽 방향이 아닌 벽을 형성하는 선수들의 머리 위를 살짝 넘겨 마세코의 시야를 가리며 떨어지는 킥.

사실 이 슈팅은 정확하게 공격수가 차내기만 한다면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방향이 구석이 아니라 약간 중앙 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제외한다면 타이밍이 한 박자 늦은 골키퍼의 손이 구석까지는 닿을 수 없으니까.

‘⋯크윽, 제발!’

이번에도 마찬가지.

루이스는 자신이 왜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지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구석으로 향하는 슈팅을 찼다.

왼쪽에서 슈팅을 기다리던 마세코는 공이 보이지 않자마자 오른쪽으로 급히 몸을 날렸지만 뻗는 손은 빠르게 날아오는 공과 손가락 한두 개가 들어갈 공간이 남아있었다.

닿지 않는 손을 바라보며 애타게 마음속으로 팔이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소용없었다.

출렁-!

이미 공은 자신이 지키는 팀의 골대로 철썩하는 소리를 내며 빨려들어 갔으니까.

겨우 전반 14분밖에 되지 않은 시각, 첫 번째 프리킥을 활용해 생각보다 빠르게 선제골을 기록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루이스였다.

경기를 준비해온 아르테타와 아스날 선수단의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루이스의 존재 때문에 실점 자체는 예상했지만 그것도 후반전에 한두 번 허용하겠다 생각했고,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최소 2점은 줄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는 점.

남은 시간 동안 그들의 공격을 얼마나 더 틀어막냐에 따라 오늘의 경기를 대비해서 짜온 계획이 실행될 수 있느냐, 아예 파괴되느냐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만약 전반에 세 골을 먹힌다면,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전술을 바꿔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 이렇게 프리킥 차면 누가 어떻게 막음? 완벽히 구석으로 찔러서 이거 지금 세계 최고 골키퍼가 와도 먹힐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 솔직히 축따형 프리미어리그 온 이후로 프리메라리가 잘 안 봤었는데 루이스 이번 시즌 미쳤다 미쳤다 하더니 진짜 장난 없네

└ 그걸로 따지면 사실 축따형도 폼 장난 아니긴 한데, 오늘 경기 끝나면 이번 시즌 둘 중에 누가 더 잘했냐가 결정될듯

└ 딱히 월드컵도 없으니 진짜 오늘 이기는 사람이 발롱도르 받을 것 같은데? 형들 생각은 어떰

└ 내가 진짜 국뽕 빼고 한국인을 발롱도르 후보로 생각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축따형은 이번 시즌 못해도 포디움 안에 무조건 들어갈듯

└ 포디움도 너무 작게 잡은 거지. 루이스 빼고는 솔직히 경쟁자가 없어보임

심지어 축따튜브에서도 이번에 루이스가 완벽하게 꽂아 넣은 프리킥에는 그저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유건의 팬이기 이전에 대부분의 구독자들이 사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렇다 보니 원더골에는 감탄하고 행운의 골이나 불행의 골에는 솔직한 반응을 내뱉는 등 자신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채널의 주인인 유건을 가장 응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겠지만.

그것은 지금 루이스와 유건을 동일선상에 놓고 발롱도르 후보로 꼽는 대화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박준철, 손지민 등 월드 클래스 선수들도 받아보지 못한 게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발롱도르라는 상이기에.

***

“우리가 할 거 하면 된다. 시간 많이 남았다!”

유건이 실점 이후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수들을 불러놓고 던진 한마디는 단순했다.

실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잊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임해보자고.

패배라는 단어를 생각하기에는 기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었으니까.

“천천히 돌려, 급해지지 말자!”

그 말을 이어받는 것은 아스날의 부주장이자 미드필더 지역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파티노.

수비와 공격 라인을 이어주는 그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렇게 선수단을 유건과 함께 이끄는 것도 이번 시즌 맡고 있는 임무였다.

살리바와 함께 팀의 최고령에 속하면서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였기에.

투욱-! 투욱-!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이끌어주어서일까, 아스날 선수들은 킥오프와 동시에 다시 이전까지 했던 플레이를 잘 수행했다.

짧은 패스, 긴 패스를 활용하여 전진하는 두두다다 전술은 공이 잘 돌아가기만 한다면 어떤 팀을 만나든 확실히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번 시즌 폼이 썩 좋지 않은 바르셀로나와 엘클라시코를 치를 때보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표정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스날의 패스 플레이에 그들의 미드필더 라인도 마음을 편하게 먹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분명한 건 터무니없게 뚫리지는 않고 있었다는 점.

그들이 평소보다 공간을 많이 내주고 공격을 많이 허용하고는 있었지만 유효 슈팅으로 연결되기 전에 최대한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볼을 차단하는 데 성공해내고 있었다.

아스날로서는 그 모든 것을 뚫고 골대를 흔들어야만이 다시 점수 차이를 원점으로 만들고 다시 승리를 위해 달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첫 번째 찬스는 최근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던 페레이라의 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캐시가 만든 코너킥을 짧게 패스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올린 그의 크로스.

타닷-!

아스날이 바라보는 방향 측 오른쪽 코너 플랫에서 시작된 세트피스 전술.

캐시와 함께 서 있던 페레이라가 왼쪽 손을 들면서 킥을 차지 않겠다는 듯이 사이드 지역으로 빠지면서 세컨볼을 받아주기 위한 자리로 가려는 움직임을 가져간다.

마치 자신은 코너킥과 연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투욱-! 스윽-!

그러나 그 순간, 캐시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타이밍에 뒤돌아서 공을 향해 달려오는 페레이라.

마드리드 선수들은 당연히 캐시의 코너킥이 중앙 지역으로 날아올 거라고 생각했었기에 그 짧은 패스를 차단하러 달려갈 수 없었다.

포기하듯이 가다가 순간적으로 뒤돌면서 그 선수가 키커를 담당하는 괴상망측한 세트피스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오늘 경기를 위한 호버 코치가 특별하게 만들어본 독창적인 전술이었다.

‘⋯길다는 신호!’

‘살리바, 뒤쪽으로⋯’

그리고 중앙 지역에서 기다리는 아스날 선수들은 이 세트피스 전술이 의미하는 바를 다들 알고 있었다.

아예 먼 쪽 골포스트가 위치한 곳까지 보내는 긴 크로스라는 것을.

더불어 세부적인 위치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키 큰 선수들이 모두 뒤쪽으로 이동한다면 당연히 공이 그쪽으로 오는 것을 알테니 지역을 나눠서 위치한다.

또한 크로스를 올리는 선수가 기계가 아니다 보니 공이 멀리 날아오지 못하고 중앙 지역까지밖에 안 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팀원들 간의 약속을 따라 둠바가 중앙을 맡고, 살리바가 최외곽, 쿠아바가 그 중간을 맡는다.

“못 따더라도 일단 점프해!”

“저놈들 한 명씩 각자 맡아서 놓치지 마!”

공이 날아오는 그 찰나의 순간, 양 팀 선수들의 외침은 레알 마드리드 골대 앞을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머리에 맞춰 골대로 집어넣으려는 아스날 선수들과 각자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 선수를 마크해 헤딩 경합을 뛰려는 마드리드 선수들.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리싸움을 치열하게 펼친다.

휘이익-!

그 순간, 바람을 가르며 도착한 페레이라의 크로스는 의도한대로 점프한 둠바의 머리가 있는 중앙 지역을 넘어 쿠아바와 살리바가 서 있는 뒤쪽으로 흐른다.

그들과 경합을 하는 마드리드 선수들이 한 명씩 붙어있었지만 미리 예상한 상황이었던 아스날 선수들이 이미 자리를 정확하게 잡고 있었다.

그리고 쿠아바와 살리바의 피지컬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등 뒤쪽에서 파고들어 좋은 위치를 빼앗기는 사실상 쉽지 않았다.

콰앙-! 출렁-!

“나이스 헤딩이었다, 살리바!!”

“페레이라!!!”

동시에 네 명 이상이 떠오른 상황에서 머리에 정확하게 공을 맞힌 사람은 이번에는 아스날의 살리바였다.

골키퍼의 바로 코앞에서 내려찍는 엄청난 파워가 담긴 헤딩 슈팅은 그 와중에도 방향을 읽고 몸을 날렸던 레알 마드리드 수문장의 장갑을 튕겨내 버리고 골대를 흔들었다.

그 말은, 아스날이 동점골을 득점하고 승부를 원점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는 말.

전반 42분이 되어서야 마침내 터진 살리바의 골 덕분에 말이다.

크로스를 정확하게 올려준 페레이라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며 혓바닥을 내밀고 광기가 어린 표정을 짓는 살리바를 아스날 선수들이 뒤쫓는다.

다들 내색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런 경기에서 한 점 차이로 밀리고 있다는 것은 꽤 많은 심적 부담감을 주기 때문에.

“살리바 선수의 엄청난 헤딩 슈팅이었습니다! 지금 장면을 보시면 마드리드의 골키퍼가 분명히 방향을 읽었거든요? 힘을 제대로 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와중에 반응한 저 골키퍼 선수는 정말 엄청난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확실히 이번 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 골키퍼와 함께 야신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죠!”

“아무튼 오늘 경기, 정말 끝장나게 재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벌써 42분이나 지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예요!”

“하하, 저도 사실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 경기가 종료되면 언제 다시 이런 수준의 경기를 볼 수 있을까요!”

“선수분들은 엄청 힘드시겠지만 아마 저희를 비롯한 시청자분들께서는 악마 같은 마음으로 페널티킥까지 가기를 바라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재밌으니까요!”

그런 아스날 선수들의 세레머니를 보며 중계를 이어가는 안준성과 전지우는 이 재밌는 경기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오늘 매치가 최근 몇 년간 본 경기중에 가장 수준이 높은 것은 물론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경기 흐름이 빨랐다.

그렇다 보니 매년 축구 경기를 한국에서 가장 많이 지켜보는 순위를 꼽는다면 헤아려질 그들조차도 평소보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끝나지 말고 연장전, 페널티킥까지 가라는 바람을 아스날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듣고 이해한다면 아마 생각할 것이다.

사탄은 정말 존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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