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203화 (203/208)

203화. 세계 최고가 되고 와라

“오늘부터는 모든 관심사를 레알 마드리드에게 집중시켜라.”

FA컵이 끝난 이후, 마지막 리그 한 경기마저 마친 아스날 선수단에게 다음날 회복훈련에서 아르테타가 말한 내용.

남아있는 약 10일간의 시간을 레알 마드리드를 완벽하게 분석하기 위해 쓰자는 얘기였다.

각자 마크하는 선수들의 습관과 동작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주로 사용하는 패턴을 외운다.

실제 경기에서 마주쳤을 때 성공적으로 공을 커팅하거나 일대일 경합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카마메니와 페레이라의 역할이 크지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아르테타가 틀어막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왼쪽 측면.

데뷔 때부터 오른발의 리오넬 메시라고 불리며 현재 축구의 신이라는 별칭을 받고 있는 후안 루이스.

그가 위치한 곳이 바로 왼쪽 윙포워드였으니까.

일대일 경합을 가장 많이 하게 될 페레이라와 커버를 많이 다녀야 할 카마메니의 역할이 중요한 부분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최근 루이스는 자신을 가로막는 것이 한 명이든지 두 명이든지 모든 것을 뚫고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하지만 선수단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위치에 따른 강한 압박을 요구한다.

공을 최대한 전달하지 못하게 다른 선수들을 틀어막는 것을 목표로 말이다.

“건을 비롯한 공격진에서는 기회가 찾아오면 반드시 골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바로 얼마나 마무리를 확실하게 짓느냐였다.

강팀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팀들은 그런 결정력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득점할 때 득점해야 90분이라는 시간 안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니까.

***

[박범호 : 올라간 김에 세계 최고가 되고 와라]

[강바람 : 우리 막내가 언제 저기까지 올라갔냐, 진짜]

평소에도 중요한 경기가 찾아왔을 때 지인들의 연락으로 유건의 핸드폰이 불이 나긴 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인연을 맺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메세지를 보냈고 그 시작은 용인 FC 선수들이 알렸다.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인연을 이어가고 꾸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기에 이번에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유건과 여름의 청첩장이 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받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상찬 감독님 : 난 내 선수가 어디 가서 지는 것 못 본다고 항상 말했다, 건아]

[박 팀장님 : 흐흐, 사실 감독님이 너네 결승 가고 나서부터 하루에 한 번 이상씩 불안해하고 있다]

선수들을 이어 용인 FC 시절 감독과 코치진들도 연락을 보냈는데 그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었다.

장난기를 섞으며 애정을 보여주는 그들 덕분에 유건은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장면이기 때문에.

[이호준 : 이 자식아, 레알 좀 어떻게 해줘 봐라! 리그에서 형이 당한 거 복수 좀 해봐라]

[손지민 : 호준아,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올해 형 엘클라시코 두 번 다 졌다]

[박준철 : 차라리 레알 만나고 싶다. 아스날 상대하는 게 얼마나 빡센지 너네가 알겠냐고!]

[김수영 : 진짜요, 특히 유건 저 녀석 미치도록 잘해요]

올림픽과 대표팀을 거치며 만들었던 인연들도 하나둘씩 연락을 해왔다.

단체 채팅방을 이용한 대화였기에 서로의 말들에 답변을 달아주는 식으로 진행된 그들의 연락.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복수를,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차라리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한탄을 한다.

말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의미들은 아스날이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엄청난 강팀이라는 것.

그리고 마드리드보다는 유건이 속한 팀의 승리를 바라고 있다는 것.

[바요스 : 마드리드 녀석들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라고!]

[가르시아 : 꼭 이겨라, 챔스]

[마르티노 : 쿠아바랑 네놈이 가고 나니까 외롭단 말이다, 아무튼 꼭 빅이어를 들어라]

헤타페 CF에 소속된 선수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쿠아바와 함께 단 반시즌 임대 갔을 뿐인데도, 코파 델 레이라는 대회를 함께 우승까지 경험하면서 빠르게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

다른 사람들만큼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유건과 쿠아바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는 마르티노도 있었고.

[최창훈 : 덕분에 내가 챔스를 직관하는 날이 온다니! 마지막까지 힘내보자, 건아!]

[박하린 : 여름이랑 같이 응원갈게, 힘내구!]

다음으로는 보다 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들에게서의 연락이었다.

자신을 위해 인생을 걸고 런던으로 넘어와 준 최창훈네 가족.

여름을 제외한다면 일상 생활에 있어 누구보다 많이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이었다.

계약 문제뿐만 아니라 시시콜콜한 얘기들도 주고받는 그들은 그저 지인이 아니라 가족에 가까웠다.

[나여름 : 훈련 끝나면 얼른 들어와요, 오늘은 김치찌개야!]

사랑하는 여름에게서 남겨져 있는 연락까지.

오늘 돌아오면 메뉴는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김치찌개를 해놓는다며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위해 떠나기 이틀 전, 훈련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 유건의 휴대폰으로 쏟아진 연락이었다.

***

아타르튀크 올림픽 스타디움.

역대급 경기로 손꼽히는 2005년 리버풀과 AC밀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펼쳐졌던 장소.

국내 팬들에게는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회자되는 전설적인 경기가 치러졌던 그곳에서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진행된다.

아스날과 레알 마드리드는 미리 경기 진행을 위해 도착해서 워밍업까지 한 상태였고 이제는 시작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약 이 주간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경기를 위해 기다리고 밤잠을 설치셨을까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도 매일같이 대체 오늘이 언제 오냐며 얘기하던 게 생각나는데요. 경기가 이제 곧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정말 많은 레전드들이 구장을 방문했다고 들었거든요? 레알 마드리드와 아스날의 역대급 선수들이 카메라에 하나둘씩 모습이 보여집니다!”

“저런 분들이 한 곳에 모인 게 대체 얼마 만일까요? 그리고 승자가 누가 될지도 다들 궁금하시겠지만 사실 오늘 경기가 주목받는 점은 양 팀의 압도적인 경기력들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정확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한 팀은 항상 최고로 손꼽히는 와중에 그 한계를 넘어 하늘에 도달했다고 한다면, 나머지 한 팀은 좋지 않은 과거를 이겨내고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아스날이 보다 더 언더독으로 평가받고 있긴 한데 직접 경기를 지켜봤던 저희 입장에서는 사실 경기력은 두 팀 다 압도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경기를 더 기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자, 이제 시작할 준비가 끝난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입장했던 양 팀의 선수들이 준비를 마치고 각자의 진영에서 모여 화이팅을 외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 팀의 주장인 선수들은 킥오프를 위해 코인 토스를 진행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그들을 기다린다.

완장을 차고 있는 캡틴의 입에서 경기에 대한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안준성과 전지우도 경기 시작에 앞서 미리 방송 채널을 틀어놓은 시청자들을 위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레전드들을 언급하고, 약간은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를 꼽는 전문가들이 더 많았다고.

물론 언더독으로 평가받는 아스날이 응원을 많이 받고 있긴 했지만.

삐이익-!

“⋯가자,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다!”

선축으로 시작되는 아스날의 캡틴, 유건의 목소리가 킥오프와 동시에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잘 준비해왔고, 잘 치러왔고,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이번 시즌.

그 유종의 미를 거둘 날이 바로 오늘이었고 그를 위해 지난 이 주 동안 이 경기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왔다.

그렇기에 그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엿보이고 있었다.

마치 오늘 절대 패배하지 않겠다는 그런 자신감 말이다.

“압박! 압박! 건이란 녀석을 놓치지 마!”

“사이드 쪽 확실하게 틀어막아!”

양 팀의 선수들이 주요하게 막는 선수들은 각각 다른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포지션도 달랐다.

양쪽 측면까지 움직임을 가져가곤 했지만 보다 중앙 쪽에 치우친 활동량을 보여주는 아스날의 유건을 막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는 압박을 거세게 가했다.

반면 후안 루이스라는 불세출의 스타이자 이 시대 축구의 신을 막기 위해 아스날은 그가 있는 측면에 많은 선수를 배치하면서 막아보려 했다.

스으으-!

“이 정도쯤이야!

하지만 아스날의 에이스인 유건은 그런 압박쯤은 손쉽게 이겨낼 수 있다는 듯이 간단한 개인기와 함께 패스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로 멋지게 찔러넣는다.

마치 이 정도의 수비는 수없이 경험하고 왔다고 외치는 듯이 말이다.

투욱-! 투욱-!

“⋯저 자식, 참 멋있단 말이야.”

그러나 그런 유건의 활약이 불행을 불러왔던 것은 바로 후안 루이스를 자극시켰다는 점이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든 것처럼 날카로운 드리블과 함께 페레이라, 카마메니의 동시 압박을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패스나 계속된 돌파는 아스날 선수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 양팀 다 경기력 오진다. 축따형이랑 루이스뿐만 아니라 둘을 받쳐주는 다른 선수들 클래스도 장난 없네

- 그 와중에 축따형 드리블로 뚫고 패스 뿌리는거랑 루이스 아스날 수비 사이 빠져나오는 거 진짜 미친듯

- 진짜 축구 경기 보면서 경기력에 두 팀 경기력에 감탄 나오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 서로 잔실수가 거의 안 나옴

- 급한 상황에서도 짧은 패스로 압박 풀어나오는 게 진짜 말도 안 되네. 왜 우리 팀은 이런 거 못 보여주냐?

└ 형, 어떤 팀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도 이런 건 꿈도 못 꾼다. 같이 다음 시즌에 혹시나 하는 마음 같이 걸어보자

전반 10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축따튜브의 구독자들은 경기를 지켜보며 거의 1분이 지날 때마다 감탄을 한 번씩 내뱉고 있었다.

두 명, 세 명의 동시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양 팀의 선수들은 주변의 팀원들을 이용하여 압박을 빠져나오고 반대로 전환하거나 빈 공간으로 공을 전개했다.

빌드업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팀들이 꿈꾸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라도 하듯 완벽한 모습으로.

그래서일까 아직 서로의 골대를 향한 유효슈팅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선수들 간의 호흡으로 클리어를 해내고 세컨볼에 대한 집중력도 엄청났으니까.

삐이익-!

그러던 그 순간, 팽팽하던 경기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한 찬스가 찾아왔다.

후안 루이스를 막기 위해 유니폼을 잡아당기는 등 수단을 이용한 카마메니가 결국 심판의 선을 넘어 휘슬을 불어버린 것.

돌파하던 와중이었기에 거리도 꽤나 가까웠고 이런 데드볼 상황에서는 완벽한 수비전술을 펼친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이었다.

만약 키커가 정확하게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찬다면 골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유건이 이번 시즌 많이 보여주었던 장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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