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201화 (201/208)

201화. 이거지, 이거라고!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미친 듯이 뛰자!”

그렇게 시작된 FA컵 결승을 치르는 리버풀 선수들의 자세.

며칠 뒤에 펼쳐질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라운드가 남아있긴 했지만 사실상 순위에 별로 영향을 끼치는 경기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오늘을 시즌을 마무리하는 경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승컵이 달려 있는 경기였기도 하니까.

‘⋯다리를 그렇게 빨리 뻗으면 그저 고맙다고!’

하지만 그 사실이 그들을 맞아 함께 경기를 펼치고 있는 아스날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강팀과의 경기도 어느덧 익숙해진 그들은 상대가 어떤 플레이를 펼치든지 자신들이 준비해온 움직임을 경기장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유건은 그 중심에서 전술과 상관없이 상대가 들어오는 모든 압박을 간단한 개인기로 뚫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휘릭-! 스윽-!

다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발바닥과 깔끔한 터치를 활용한 마르세유 턴.

이제는 전 세계에서 그 개인기를 가장 잘한다고 봐도 될 정도인 유건.

신체조건 중 다리가 그렇게 긴 편은 아닌데 보는 사람이 그렇게 착각할 정도로 상대팀 선수들이 뻗어내는 다리가 닿지 않는 끝 지점에서 동작을 가져갔다.

보다 더 완벽히 타이밍을 잡아서 제쳐내기 위해서.

휘익-! 휘익-!

일대일의 상황에서는 헛다리 드리블을 시전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유건이 배움을 구하는 대상은 동기화를 진행하고 있는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스날, 아니 세계에서 탑클래스에 속하는 아이솔레이션 상황의 전문가 캐시에게 그동안 지도받은 바디페인팅 실력이 그것을 훨씬 파악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몸과 함께 한쪽 방향으로 치고 나가려는 그의 움직임에 상대 선수들은 꽤나 쉽게 속아 넘어갔다.

“시즌 중에도 우리가 이겼다고!”

“이제는 아스날의 시대다!”

그리고 유건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에 엄청난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였다.

이미 더블을 달성하고 트레블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최근에는 리버풀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앞서고 있었던 게 그 이유.

더불어 꾸준함을 유지하는 팀의 압도적인 성적은 승리하는 마음가짐인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주었다.

덕분에 그들은 밀리고 있는 경기에서도 끝까지 가면 역전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뛸 수 있을 정도였다.

콰앙-! 투욱-!

“감히 어딜!”

그렇게 아스날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금씩 경기를 리드하고 있었지만, 리버풀의 저력도 대단했다.

잘 나오지 않는 두 명의 볼란치와 유건 사이의 호흡이 어긋나서 공이 빠지는 사이 그것을 낚아채서 순식간에 총공격에 나섰으니까.

물론 이번에는 그들의 마지막 패스 지점에 있던 스트라이커와의 거친 몸싸움에서 이겨낸 둠바가 차단에 성공했지만 말이다.

빼앗은 직후에는 망설이지 않고 공을 기다리는 카마메니에게 곧바로 전달했고.

투욱-!

“다들 올라가!!”

그때부터 이어지는 역습.

카마메니가 공을 편하게 받고 돌아서는 것을 보자마자 유건과 파티노는 앞쪽으로 전진하며 빈 공간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보통 상황이라면 파티노는 측면으로 벌리면서 볼을 소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겠지만 상대 선수들이 꽤나 많이 아스날 진영으로 올라와 있었기에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갔다.

주변에 있는 팀원들에게 다 함께 올라가자고 외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그와 동시에 공을 오른쪽 사이드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페레이라에게 전달하면서 뒤쪽의 커버를 목적으로 빠지는 카마메니.

‘⋯바로 넣어줘!’

계속 사이드로 질주하는 그가 중앙선을 넘어 골대까지의 거리 중 반 정도의 지점에 도착하며 안쪽으로 파고들기 시작할 때, 순간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유건이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 자신에게 공을 전달해주기를 바라면서.

투욱-!

훈련 세션을 진행하며 수없이 반복해보았던 장면이었기에 그런 유건에게 패스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페레이라.

골대를 등지면서 대각선 방향으로 나오고 있는 그에게 공을 건네준다.

스윽-! 타닷-!

“⋯이 자식이?”

하지만 패스를 유도하긴 했지만 공을 잡는 것은 유건이 아니었다.

끝까지 발로 받는 동작을 가져가며 뒤에서 달려드는 리버풀의 미드필더에게 혼란을 주다가, 닿기 직전에 그대로 흘려보내고 몸을 돌려 순식간에 골대 쪽으로 전진한다.

그런 그를 보며 당황함을 내뱉는 상대 선수였지만 이미 공은 빠져나갔다.

투욱-!

‘저 자식은 진짜⋯’

그리고 그렇게 빠져나가는 공의 코스에 서 있는 것은 바로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간 파티노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심 자신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고 그런 페이크 모션을 보여준 유건에게 감탄하면서 앞쪽으로 나가면서 공을 받는다.

아니, 공을 받는 것이라는 말보단 다이렉트 패스라는 말이 더 맞았다.

이미 중앙 수비수와 같은 라인에서 파티노를 쳐다보면서 공을 기다리는 앞서 달려 나갔던 유건이 있었기에.

투욱-!

라인을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파티노의 발에서 공이 떠나는 그 순간, 더 전진하는 유건.

정확하게 들어오는 패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옆으로 공을 내준다.

노마크인 자신에게 골키퍼가 이미 뛰쳐나오고 있었으니까.

콰아앙-!

콜니 트레이닝 센터에서 이런 광경을 매번 만들어내던 유건이었으니 당연히 아스날 선수들이 패스를 예측하고 동작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 엄청난 호흡을 자랑하며 최고의 파트너라고 평가받고 있는 쿠아바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유건의 몸 뒤쪽에 있는 것만을 신경 쓰면서 빈 골대 앞에서 공이 자신의 발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수비를 하기 위해 달려드는 상대의 중앙 수비수를 등을 지며 막은 채로 확정적으로 골대에 꽂아 넣기 위해서.

출렁-!

“으하하하!! 이거지, 이거라고!!”

“마무리 잘했다, 덩치 녀석아!”

골대가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덩치를 흔들며 포효를 내지르는 쿠아바.

하늘을 향해 양손을 반복해서 올리며 팬들의 호응을 유도하고는 달려가서 유건을 껴안는다.

자신이 마무리하긴 했지만 확실히 이번 골은 유건이 떠먹여 주었다고 보는 게 더 맞으니까 말이다.

“오프사이드 아닙니까!”

“분명 저 자식이 제일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구요!”

“라인 앞쪽입니다!”

아스날 선수들이 한데 뭉쳐 세레머니를 진행하고 있는 사이, 리버풀 선수들은 모두 주심에게 달려가 항의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가장 앞쪽으로 이동한 유건이 패스를 건네받았으니까 오프사이드가 아니냐고.

한 번 더 라인을 확인해보라고 말이다.

그들의 눈에는 오프사이드가 아니더라도 그게 맞다고 보였겠지만.

“골, 골이죠! 유건 선수는 리버풀 선수보다 확실히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VAR로 보니 오히려 더 명확히 골인 게 보이네요.”

“맞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골을 만들어낸 과정 자체는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유건 선수의 엄청난 클래스가 빛이 났죠.”

“다른 선수들도 익숙하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그에 맞춰주는 움직임을 가져간 게 골을 만들어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수준 높은 선수들입니다.”

“코리안 더비에서 먼저 앞서나가는 건 두 선수 중 후배인 유건 선수입니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먼저 한 골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안준성과 전지우가 중계하는 방송 화면에는 VAR 실에서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명백하게 라인 뒤쪽에 위치한 유건이었다 보니 판정을 내리는 데 논란이 당연히 없었고, 골로 인정되었다.

아스날이 골을 만들어낸 과정을 칭찬하며 아직 더 볼 수 있는 많은 시간이 남은 코리안 더비임을 다시 한번 주목시킨다.

조금 전에 전지우가 본 시계로는 벌써 경기 시간이 40분이 지나있었는데, 체감상으로는 그것의 반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까.

전반 40분, 쿠아바의 골로 앞서나가는 아스날.

어시스트는 유건.

***

- 막, 막았다! 마세코 진짜 미친 선방이었다! 오늘 준철이형 폼 너무 날카로운 것 같으신데, 그래도 어찌저찌 막아내고는 있네

- 후, 방금은 진짜 들어가는 줄 알았네. 저 멀리서 감아찼는데 골대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려고 해버리네

- 후반 시작하자마자 리버풀이 급속도로 몰아붙여서 약간 아스날 당황한 것 같은데? 패스 미스 벌써 5분 동안 3개나 나왔음.

└ 정신 차리자 아스날! 우승까지 45분도 안 남았으니까, 제발!

하프타임이 지난 후반전에는 이전까지의 양상과 다르게 시작부터 리버풀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경기를 시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압박하고, 뒤를 보지 않고 달려들었다.

거기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아스날 선수단은 사이좋게 공격진, 미드필더진, 수비진에서 패스 미스를 하나씩 발생시켰다.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리버풀의 공격을 두 번은 잘 막아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축따튜브에서도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실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파티노가 빼앗긴 공이 순식간에 사이드에 있는 박준철에게 전달되고, 그가 빠르게 가속을 붙여 페레이라를 뚫어내자마자 멀리서 슈팅을 날렸으니까.

그 사실보다 더욱 위험했던 것은 처음만 해도 나갈 거라 예상했던 마세코였는데 공이 갑자기 아래쪽으로 가라앉으면서 급하게 몸을 날렸다는 사실.

다행인 점은 몸은 그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기에 손끝으로 쳐낼 수 있었다.

“집중해, 이 자식들아!”

“정신 차리라고!”

“저렇게 쉽게 슈팅하게 둘 거냐?”

그쯤 되자, 아스날의 수비진에서도 호통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이제는 선수단에서 아스날 1군으로 활약한 시간이 가장 긴 살리바가 무서운 표정과 함께 큰 소리로 외친다.

뒤이어 수비 라인 전체를 컨트롤하고 골키퍼를 제외하면 골대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하는 둠바가.

마지막으로는 속으로 ‘골이 들어가지 않아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던 마세코가 팀원들에게 조금 더 타이트한 압박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잘 지켜온 골대를 남은 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지켜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파앙-! 파앙-!

“다들 경기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집중해라!”

“이제부터 실수하면 너네는 주급 삭감이다, 이것들아!”

그들의 외침을 이어받아 선수단 전체의 신경을 다시 한번 치열한 경기 속으로 집중시키는 것은 바로 유건.

왼팔에 완장을 차고 있는 주장으로서 적절한 역할의 수행이었다.

물론 실수하면 주급을 삭감해버린다는 농담이 섞인 그만의 협박은 적절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상한 농담을 해서일까, 오히려 의도만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팀원이 집중하고 실수를 줄여야 한다고 외치고 싶었던 유건의 의도가.

‘⋯너한테 그런 권한 준 적 없다, 이놈아.’

자신이 선택한 그런 주장을 바라보는 아르테타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가지고 있지도 않은 권한으로 장난식으로 말하는 유건이었지만, 사실 그들의 직업에 대한 인정받는 느낌과 자존심이 연관되었다 보니 일부 선수들에게는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아스날 선수들은 평소 유건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영입생들을 고려하면 확실히 주장으로서는 고쳐야 하는 부분이었다.

내뱉은 말의 책임감이란 것은 생각보다 꽤 무거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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