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이제 네 경기
“FA컵이랑 챔피언스리그 결승 전에 우승을 결정 짓자!”
남아있는 프리미어리그는 총 4라운드.
하지만 승점상 2위에 위치한 리버풀과 7점이 벌어져 있었기에 우승을 38라운드를 모두 채우기 전에 확정 지을 수도 있었다.
그게 구단의 직원들 및 감독, 코치진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바라고 있는 바였다.
특히 37라운드에서 맞붙게 되는 토트넘전 전에 확정 지어 가드 오브 아너를 핫스퍼 스타디움에서 받는 것을 원했다.
가드 오브 아너.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통로 양옆으로 도열해 우승을 차지한 상대팀이 걸어올 때 박수를 쳐주는 전통.
우승 말고도 개인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알렉스 퍼거슨과 아르센 벵거가 비슷하게 박수를 받으면서 떠난 전적은 있다.
그 명예로운 의식을 받기 위해 아스날은 리그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만을 위해서 달려 나갈 예정이었다.
“토트넘은 안 해주지 않을까?”
“그러라고 그래. 그게 더 꼴사나운 거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리그 종료 이전에 우승을 확정 짓는 팀이 나온다면 맞붙는 상대팀에서 해주는데, 사실 전적으로 구단의 결정에 달린 의식이었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바르셀로나가 가드 오브 아너를 거부하면서 비난을 받았던 이유는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해서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게 자신들의 홈구장에서 라이벌팀을 축하해주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실 보다 더 꼴사나운 짓이었다.
축하할 일은 축하를 해주고 다음번에 반대로 갚아주는 것이 더 멋있지 않을까.
선수들끼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본 결론은 그런 쪽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토트넘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대한 궁금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우승을 확정 지을 생각이었다.
가드 오브 아너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이 망신 당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기에 말이다.
***
“나이스 패스야, 건!!”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아스날과 브렌트포드의 경기.
꾸준하게 중위권을 유지하던 그들은 이제 상위권을 넘볼 정도의 스쿼드와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 받았는데, 아스날은 수준이 달랐다.
다른 대회의 결승전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선발로 출전한 선수들은 베스트 라인업.
파티노와 카마메니의 커버 아래 마음 놓고 앞쪽에서 패스를 뿌리는 유건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들어간 후반전 12분 캐시의 추가골을 포함하면 벌써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었으니까.
“저건 대체 어떻게 막아야⋯”
한숨을 내뱉는 브렌트포드 FC의 감독.
최근 5경기에서 3승 2무를 기록하며 기세를 한창 올리던 와중인데, 오늘 겪고 있는 아스날의 유건은 차원이 다른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주기라도 하듯 날뛰고 있었다.
작년에 보았을 때는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고 하물며 이번 시즌 전반기에 맞붙었을 때도 다음에는 막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골이 터질 당시 공중에서 떨어지던 볼을 길게 트래핑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타이밍에 달려간 브렌트포드 선수들을 비웃듯이 손쉽게 제쳐냈다.
그리고 바로 중앙 수비수와 왼쪽 사이드백 사이로 파고들어 오던 캐시의 왼쪽 발에 정확하게 패스를 보낸 것이다.
심지어 첫 번째 골이 터진 이후 유건에게 집중적으로 최소 두 명의 마크맨을 붙였는데도 말이다.
휘이익-!
‘⋯들어간다!’
그리고 경기 종료 전, 후반 44분에 주어진 아스날의 프리킥.
골대의 정중앙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거리가 약 20m가 조금 넘게 떨어져 있긴 했지만 오히려 키커로 나선 유건은 자신감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라면 오른발로 프리킥을 차는데도 불구하고 골키퍼가 방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평소에는 안쪽 인사이드 부근에 맞춰 왼쪽 상단이나 하단으로 빨려들어 가는 킥을 구사했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을 선택한다.
정확한 임팩트가 체감되고 공이 날아가는 코스는 골대 안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손을 모아 환호성을 내지르려고 준비한다.
출렁-!
‘오른쪽이라고⋯?’
브렌트포드 FC의 골키퍼가 왼쪽으로 몸을 날리려던 이유.
바로 유건이 이번 시즌 구사한 프리킥이 전부 그쪽 방향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오른쪽에서 킥을 찰 때도 왼쪽 골대를 보고 차던 그였기에, 영상으로 분석한 브렌트포드의 수문장이 그쪽을 의식하는 것은 잘못된게 아니었다.
수십 번을 그쪽으로 차다가 이번 한 번을 다른 방향으로 차버리는 유건이 지독했을 뿐이다.
와아아아-!
“건은 진짜 미쳤다니까!”
“우리 팀에 저런 선수가 있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구!”
골대의 그물이 흔들리자마자 유건이 내지르는 환호성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뒤흔드는 홈팬들의 함성에 묻힌다.
미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자신들의 캡틴이자 에이스에게 있는 힘을 다해 화답하는 팬들이었다.
오래전 프리미어리그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던 왕 티에리 앙리, 그의 존재감을 뛰어넘어버린 현시대의 에이스였으니까.
오늘 경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이번 시즌 리그에서 23골 42어시스트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있는 그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게 거너스들의 마음이었다.
그가 아르테타와 함께 써 내려나갈 역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되었기에 말이다.
- 으하하하, 이대로 끝나면 우승이다! 지난 시즌에 이어서 또 한 번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한다고 아스날이!
└ 솔직히 이번 시즌 초반부터 폼으로만 봤을 때 우승 못 하는 게 이상할 정도긴 했음
└ 둠바 영입으로 진짜 스쿼드가 완벽해진 것 같음. 구멍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라 레알이랑 챔스 결승 개재밌을 것 같다고 예상함
- 축따형은 이제 언터처블이고, 캐시나 쿠아바, 러너를 비롯한 공격 트리오랑 미드필더진과 수비진 폼도 절정인듯
- 지난 라운드랑 이번 라운드에 리버풀 에이스 부상당하더니 경기력 지금 안 좋음. 잘하면 FA컵까지 트레블 가능할 것 같은데!
└ 형 말은 똑바로 해야지. 챔스까지 쿼드러블 할거임 이번 시즌에!
일주일 뒤 찾아온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에서도 베스트 라인업이 모두 출전한 아스날은 레스터 시티의 홈구장을 파괴할 것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경기보다 공격 포인트를 덜 쌓으며 하나의 어시스트밖에 기록하지 못한 유건이지만, 오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파티노의 멋진 중거리 원더골과 코너킥 상황에서 터진 둠바의 헤딩골이 이미 2점 차이로 벌려 놓았으니까.
경기 종료를 몇 분 남겨두지 않은 전광판의 시계를 보며 축따튜브의 채팅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대화가 올라가고 있었다.
지난 라운드에 이어 이번 라운드도 무승부를 기록한 리버풀과 승점 11점, 2위로 다시 올라온 맨체스터 시티와는 8점 차이로 우승을 확정 짓기 직전이었으니까.
더불어 아스날의 경기력을 찬양하며 남아있는 FA컵,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컵을 따내는 상상을 하며 쿼드러블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저 놀랍습니다! 이 정도로 극강의 포스를 보여주던 팀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맡았던 신이 절정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던 그 시절 바르셀로나밖에 없었거든요!”
“이번 시즌에는 아스날을 포함해 한 팀이 더 있긴 하죠? 바로 후안 루이스의 레알 마드리도 압도적인 폼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이제 약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과연 어떤 팀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등극할지 정말 기대됩니다!”
“정말 한국인으로서 그 상황의 중심에 있는 유건 선수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만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도 지금 이 정도는 아닐 겁니다!”
안준성과 전지우도 오늘만큼은 중립적인 성향을 벗어나 후반 30분 이후로는 그저 아스날을 찬양하다시피 중계를 하고 있었다.
리오넬 메시라는 신을 커버하는 세 얼간이라 불렸던 미드필더 라인과 나머지 월드 클래스 선수들을 보유했던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역대 최고의 팀이라고 아직도 손에 꼽히는 그 정도의 팀과 비교하며 아스날을 치켜세우고 마지막에 맞붙을 상대팀에 대해서도 칭찬하며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아스날에 비견될 정도의 압도적인 폼을 보여주는 현시점의 레알마드리드와의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는 이미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사가 된 지 오래.
그것을 언급하며 그 상황의 중심, 아스날의 핵심으로 활약하는 유건에 대해 응원을 요구한다.
“그리고 멀지 않아서 찾아올 박준철 선수의 리버풀과도 FA컵 결승이 예정되어 있는데요!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유건 선수와 박준철 선수 모두 이번 시즌 폼이 좋으니 더욱 기대가 되는데요! 팀의 현재 경기력은 아스날이 우세하지만, 축구라는 게 또 모르거든요?”
“맞습니다! 공은 언제나 둥글잖습니까!”
FA컵 결승에서 코리안 더비가 펼쳐지는 것도 잊지 않고 언급하면서 중계를 마무리하려 하는 안준성과 전지우였다.
유건이 워크 퍼밋을 발급받고 아스날에서 뛰기 시작한 이후로 리버풀과의 상대 전적에서 앞서가고는 있지만, 패배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박준철이 뛰고 있는 리버풀이었던 만큼 승리를 점치기보다는 경기에 대한 기대감만 증폭시킨다.
이 상황에서 확실하게 한 명의 손을 들어준다면 반대 선수의 팬들이 몰려와서 사뭇 몰매를 맞을 수 있기에 말이다.
삐이익-!
“으하하하, 이놈들아 잘했다! 우리가 또 한 번 우승컵을 거머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 이게 다 보스 덕분이라구요!”
머지 않아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 려퍼지고, 그와 동시에 아스날 벤치에 있던 아르테타를 비롯한 코치진과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난입한다.
오늘 경기의 결과로 우승을 확정 짓게 되는 순간이었고 2년 연속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에 등극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 중앙에서 아르테타는 선수들을 한 명씩 안아주면서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칭찬을 하고, 선수단은 그에 화답한다.
킹 파워 스타디움의 그라운드 한편에서 원을 그리며 어깨동무를 하고는 한동안 세레머니를 즐기는 아스날이었다.
두 시즌 연속으로 우승한 구단이 없지는 않았기에 역대급 기록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충분히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남아있는 시즌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에도 이런 경기력을 유지해나갈 자신감 말이다.
‘이제 네 경기⋯’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선수단 사이에서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는 아스날의 캡틴, 유건.
그는 시즌이 마무리되고 펼쳐질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여름과 결혼을 하고, 그 이후의 일들을 상상해보면서.
물론 성공적으로 남은 경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준비라는 게 미리 해두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자신을 믿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겠다는 답변을 해준 그녀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단순하게 유명 스포츠 스타가 아닌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그 시점에, 전 세계의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 그 장소에서 말이다.
여름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모르고 아직 상호합의된 사항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