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증명하기 위해서
출렁-!
눈앞에서 바운드되는 공을 막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물기에 젖은 잔디에 튕기면서 더 빠르게 도르트문트 골키퍼의 손 사이를 통과해버렸으니까.
와아아아-!
“러너! 러너! 러너!”
손을 좌우로 흔들며 유머러스한 표정을 지은 채로 팬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러너.
유건의 패스와 살리바의 커팅이 이번 역습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마무리도 쉽지는 않았다.
중앙에 있던 두 명의 수비수가 압박의 타이밍을 망설이는 그 순간을 이용해 안쪽으로 파고들어 반 박자 빠르게 슈팅을 가져갔으니 득점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준 높은 마무리였기에 홈팬들이 세레머니에 열광하는 것도 이상한 장면이 아니었다.
더불어 후반 38분이라는 경기 종료가 다가오는 시각이었기에 그들이 더 흥분한 상태였던 것도 있고 말이다.
삐익-!
“클락, 상대의 공격을 틀어막아라!”
“스미스는 벌려서 공을 소유한다!”
후반 40분을 기점으로 해서는 아르테타도 수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캐시와 카마메니를 교체시켜주고 스미스와 클락을 투입하면서 4-4-2의 형태로 전환한다.
목적은 사이드 지역에도 미드필더를 배치시키면서 중앙 지역에 한정되었던 지배 범위를 경기장 전체로 넓히기 위해서.
빌드업을 파티노에게 일임하고 그의 옆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선수들을 마크하고 커팅하는 클락을 동시에 투입하면서 말이다.
후욱-! 후욱-!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도르트문트의 게겐 프레싱은 계속되고 있었기에 집중적으로 마크를 당하는 유건의 체력도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를 아르테타가 사실 빼 줄 만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뻐어엉-!
그런 상황에서도 유건은 바로 한 번에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톱 형태로 전환하면서 쿠아바가 타겟맨 역할을 맡아 헤딩으로 러너에게 전달해주고 공격을 시작하는 전술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유건의 패스는 자석처럼 쿠아바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크윽, 러너!”
물론 공중볼 경합이 치열하고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후의 과정으로 부드럽게 연결되는 횟수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도르트문트로서는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결이 되기만 한다면 바로 추가골을 넣은 러너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가져가게 되니까 말이다.
“따라잡고 끝내자!”
“다리 멈추지 말고 뛰어!”
그리고 그렇게 수비에 집중하면서도 도르트문트는 추격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끊임없이 선수단끼리 소통하며 아스날의 두터운 미드필더 라인을 넘어 수비벽마저 뚫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삐이익-!
하지만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문제였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 아스날의 골대 그물을 흔들기에는 말이다.
결국 주심은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고 긴장이 풀린 양 팀의 선수들은 경기가 치열했던 것을 보여주듯 긴장을 풀고 잔디에 주저앉는다.
얼굴에 짓고 있는 표정은 서로 상반되었지만.
“1차전의 승자는 아스날입니다! 홈구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가져가면서 좋은 출발을 합니다!”
“도르트문트가 패배하긴 했지만, 경기력 자체는 사실 나쁘지 않았거든요? 2차전이 너무 기대됩니다!”
“복수의 칼날을 지금 이 순간부터 갈기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다음 경기가 펼쳐지는 곳은 바로 그들의 홈구장이니까요.”
“맞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카드 섹션을 보여줄지도 기대되네요.”
지그날 이두나 파크.
카드 섹션의 일인자라 불리는 도르트문트 홈팬들이 장악하는 경기장에서 펼쳐질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1차전의 패배로 다른 경기보다 더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 힘겨운 상황을 떨쳐내고 결승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며 안준성과 전지우는 흥분한 채 마지막까지 중계를 이어간다.
2점 뒤처져 있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2차전에서 주어질 90분이라는 경기 시간은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긴 했으니까.
물론 아스날의 골문이 그렇게 쉽게, 그 정도로 빈번하게 열리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의 승자팀은 아스날과 레알 마드리드!]
사이좋게 1차전에서 2점 차이 승리를 거둔 아스날과 레알 마드리드는 결승전 진출팀 배당에서 압도적인 수치로 올라가고 있었다.
경기를 전체적으로 압도했던 그들이 2차전에도 승리를 거둘 확률이 높아 보였으니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가기 위한 필수조건은 바로 팀에 한 명의 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후안 루이스와 유건, 신이라 불리고 있는 어린 시절 두 단짝은 과연 결승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승리의 주역들에게는 관심이 집중 조명되었다.
1골 1어시를 기록한 아스날의 캡틴 유건과 현시점 세계 축구계에서 최고,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후안 루이스는 해트트릭.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그들이 맞붙을 그림을 상상해보는 것은 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빅이어를 함께 꿈꾸던 죽마고우가 서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그림이 얼마나 팬들에게는 재밌겠는가.
기자들에게는 좋은 뉴스감일 수밖에 없었다.
“건, 2차전에서도 이기고 올라와라!”
“내가 할 말이다, 이놈아.”
사실 그들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유건과 루이스조차 서로의 만남에 대해서 엄청 기대를 하고 있었다.
사이 좋게 이어졌던 리그 경기에서 휴식을 취하고 2차전을 원정을 떠나기 삼 일 전, 오랜만에 통화상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당연히 결승에서 만나자는 게 주를 이뤘지만 사적인 부분도 주고받는다.
서로 시즌에 집중하면서 요즘 연락을 많이 못 했던 터라 그동안 못다한 말들이 많았으니까 통화 시간 자체도 30분이 넘어갔다.
“루이스, 형 결혼식 한국에서 한다.”
“큭큭, 이미 같이 가기로 해뒀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대신 다녀와서 파티를 런던에서 할 예정이니 와서 즐기고 가라.”
이미 여름과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루이스였기에 시즌 이후의 계획을 말해주고 미리 초대를 한다.
스페인에서 머물고 있는 그의 가족에게는 꽤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날짜가 언제인지를 몰랐어도 작년에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고 있는 부인과는 얘기를 해둔 루이스였다.
유건의 고향이 한국이니 그곳에서 결혼식이 있을 수도 있고 허락까지 받아둔 상태.
“아무튼 부상 당하지 말고, 이기는 데 집중하자고.”
한참을 얘기하다가 마지막에 대화를 멈추는 사람은 바로 유건이었다.
오랜만에 루이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은 좋았지만 지금은 다른 것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훈련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바로 복귀하는 이유.
“여름아, 잘 일어났어?”
바로 그와 곧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연인 나여름.
얼마 전 마지막 방송분까지 촬영한 그녀였기에 남아있는 스케줄들을 하나씩만 일정에 맞춰 가고 있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동안 못 잔 늦잠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서로가 보냈던 하루를 공유한다.
둘 다 모두 그런 부분을 귀찮아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신경 쓰고 있었기에 그들의 애정 전선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결승에 올라가면!’
그렇게 사랑스러운 그녀의 앞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르고 싶었던 유건.
또 한 번 도르트문트와의 2차전에 대한 승리를 다짐하며 행복한 전화를 이어갔다.
내일 있을 체력 훈련 세션에 대한 생각을 지금 이 순간은 까맣게 잊고서 말이다.
***
“⋯허억, 허억! 언제 해도 이건 토 나온다!”
“으아아! 제발 살려주라구요, 코치님!”
내일 원정길에 오르는 아스날 선수단.
경기 영상 분석을 위주로 진행되는 오늘의 세션이었지만 오전에는 체력 세션을 진행했다.
이틀 뒤의 경기를 위한 몸의 컨디션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서.
하지만 악명 높은 아스날의 체력 세션답게 선수들은 매번 해서 익숙해질 만도 한데 헛구역질을 하거나 힘들어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강도 줄여서 하잖아, 이것들아!”
물론 코치들은 선수들의 엄살이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오늘 세션은 평소 진행하던 강도의 반도 되지 않았다.
원정 경기를 앞두고 혹시 모를 부상이나 너무 많은 체력을 빼버리면 뛸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그런 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다그치는 코치들도 장난식으로 외친다.
서로 한가족이라는 감정으로 뭉친 그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분위기 좋게 가고 있었으니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전 경기에서 결승 진출을 앞두고 우승에 도전하는 자격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니까.
“도르트문트는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점 차이로 뒤처져 있는 것은 그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줄 것이고 우리는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침착하게 플레이한다.”
“압박이 아무리 심한 팀을 만난다 하더라도 패스를 정확하게 팀원을 향해 준다면 빼앗기지 않는다.”
“여러분은 충분히 그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줄 수준이 되는 선수들임을 감독으로서 확신한다.”
식사를 하고 오후 분석 세션에서는 아르테타의 브리핑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되는 도르트문트의 공격 방향, 방식 등에 대해서 선수단과 함께 토론하고 경기 영상을 보며 의견을 나눈다.
하던 대로만 한다면 승리할 것이라며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아르테타.
더불어 그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의욕을 불어넣는다.
준우승은 커리어에서 주목받지 않지만 우승은 얘기가 다르다.
당장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하며 팀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던 것만 떠올려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항들이었기에 구단의 모두는 목말라하고 있었다.
“우리가 내일 독일에 가는 이유는⋯”
분석 세션을 끝내는 아르테타의 마지막 한 마디.
도르트문트와 경기를 하는 게 사실 이유 그 자체였지만, 그는 무언가 다른 의도를 표현하고 싶은 것 같았다.
뜸을 들이더니 십 초 이상을 침묵하고 있었으니까.
“승리하기 위해서.”
그렇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벤치에 앉아서 응원하는 선수들, 감독과 코치진 모두 결국 승리라는 두 단어를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모두가 염원하는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기에.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우리가 세계 최고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잠깐 뜸을 들인 아르테타는, 확실하게 목표를 심어준다.
지난 시즌, 그리고 이번 시즌 영국 내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프리미어리그와 FA컵을 지배하고 있었던 아스날.
지금에서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각 리그에서 최상위권 팀들에게만 주어지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세계적인 강팀들 속에서 모두를 무너트리고 결승전에 진출해서 빅이어를 따낸다는 것은, 증명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명실상부 이번 시즌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