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패배의 요인
“라인을 낮춘다.”
아스날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호통 속에서 하프타임을 보내고 온 도르트문트 선수단은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극한의 역습만을 추구하는 전술을 선택했다.
선발로 출전했던 타겟맨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를 포쳐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로 교체하고, 나머지 선수들 대부분은 라인을 낮춰 수비에 치중했다.
아스날이 슈팅을 위한 공간 자체를 창출해내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촘촘하게 서서 말이다.
‘여기는 막혔고, 반대로⋯’
“카마, 라인 조금 올려줘!”
하지만 그 말에서 긍정적인 점을 찾아본다면 점유율 자체는 더욱 아스날에게 넘어갔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리고 도르트문트가 원정 경기에서의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해 그런 전술을 선택했지만 유건의 미친 패스를 시작으로 아스날은 그런 세밀한 수비 진형을 몇 번이나 뚫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막힌 왼쪽 라인을 보고 곧바로 자신보다 낮은 중앙 지역에 위치한 카마메니를 호출해서 공격형 미드필더가 두 명이 되는 포지션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중앙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이 빠지더라도 뒤에 남아있을 파티노가 커버해줄 거라고 믿었기에.
투욱-! 투욱-!
반대로 전환하는 패스가 꼭 한 번에 나가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꽤나 중요했다.
다급하게 부정확한 패스를 전달하는 것보다 침착하게 중앙에 있는 선수 한 명을 거치더라도 정확하게 전환해서 소유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유건의 공을 건네받는 카마메니는 그런 의도를 파악하고 패스를 전달해줄 능력이 충분한 선수였다.
파티노의 장기적인 대체자이자 유망주로 영입했기에 어린 나이였지만 아스날에 와서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클락을 벤치로 밀어낼 정도였다.
더불어 상대의 압박이 강하게 들어오는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빌드업을 담당하던 경험은 조금 더 라인을 올리더라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고 말이다.
타다닷-!
두 번의 패스로 유건에서부터 카마메니를 거쳐 캐시에게까지 공이 전달되는 순간, 뒤쪽에 머물던 오른쪽 사이드백 페레이라는 발을 굴려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한다.
설사 드리블로 뚫어내지 못하더라도 크지 않은 피지컬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바디 밸런스를 이용해 캐시가 소유권 자체는 빼앗기지 않을 것을 믿고 있었기에.
그리고 오버래핑 나가는 타이밍에 패스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만약 주변 선수들이 시선을 자신에게 잠깐이라도 뺏긴다면 이미 성공적인 전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난 시즌에 혜성같이 나타나서 유건만큼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캐시가 그 틈을 이용해 안쪽으로 파고들어 갈 테니까.
스으으-!
물론 이번에 캐시가 선택한 것은 드리블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패스였다.
뒤쪽에서부터 라인을 타고 돌아 뛰어가는 페레이라의 속도에 맞춰서 공을 굴려준다.
‘⋯붙이는 수밖에!’
하지만 도르트문트의 골대 앞에는 거의 5백 형태로 선수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컷백을 위해 움직이는 유건 주변에도 두 명 이상이 위치해 있었다.
공을 따라가며 찰나의 순간 패스 방향을 생각하던 페레이라는 막혀있는 코스에 마지못해 선택했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노마크 크로스 기회였기에 최대한 쿠아바가 있는 쪽으로 올려주려는 의도와 함께.
콰앙-!
“크윽, 이것들이!”
그러나 쿠아바라고 하더라도 중앙 수비 세 명에 둘러싸인 이 상황에서는 올라오는 크로스를 정확하게 따낼 수는 없었다.
몸을 부딪쳐오는 수비수와 경합하는 사이 주변에 있던 다른 선수가 머리로 강하게 클리어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다들 빨리 복귀해!”
그리고 흘러나오는 그 공은 주변에서 세컨볼을 노리는 아스날 선수를 마크하기 위해 서 있던 도르트문트 선수의 발에 떨어졌다.
바로 몸을 돌리는 동작을 가져간 그를 보자마자 뒤쪽에 있던 파티노는 자세를 낮추고 뒤로 물러나며 공격진 선수들에게 복귀를 요청한다.
수비 진형에 위치하던 상대팀 선수들이 일제히 라인을 올리는 것이 보였으니까.
둠바나 살리바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기에 곧바로 역습하기보다는 천천히 올라오며 공을 지키는 그들이었다.
투욱-! 투욱-! 투욱-!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변을 계속해서 일으키고 있는 도르트문트는 바로 이전 8강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마저 이겨낸 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빠른 패스 플레이로 전진했다.
빠르게 복귀를 시도하는 유건과 카마메니가 뒤에서 들어가는 태클에 당하지도 않고 거침없었다.
다행스러웠던 점은 파티노는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뚫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 아래쪽 지역에서는 둠바와 살리바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고.
“도르트문트가 빠른 속도로 아스날 선수들 사이로 움직이며 패스를 주고받습니다! 유건과 카마메니 선수마저 제치면서 중앙선을 넘어서 올라가고 있어요!”
“지난 경기부터 느끼는 거지만 패스 플레이가 정말 매력적인 팀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어요!”
“아스날스러운 패스 무브와는 다르게 공을 가진 선수들이 최대한 전진하면서 드리블을 멈추지 않습니다!”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주력이 빠른 편에 속하는 도르트문트였기에 새롭게 부임한 감독은 게겐 프레싱 전술에 하나를 추가해서 그들의 부활을 이끌고 있었다.
모든 관중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공을 잡고 있는 선수는 최대한 상대편 골대를 향해 빠르게 치고 나간다.
그러다가 막히면 주변의 팀원에게 패스하고 또 받은 사람이 달린다.
혼자 하면 개인 플레이가 될 수도 있는 움직임을 모든 선수단이 함께 한다면 그건 하나의 전술이었다.
모두가 각자가 미친 듯이 전진하는 움직임에 호흡을 맞춰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젠장!”
굳건하게 버티던 파티노마저 양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선수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전진하니 혼자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중앙이 뚫리는 사이 페레이라가 자리에 이제 막 복귀해서 포백 라인은 정상적으로 위치를 잡고 있었다.
각 방향으로 도르트문트 선수 네 명이 달려오며 앞쪽에 머물던 스트라이커와 합류하자 총 5명.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마세코의 바로 앞에 위치한 둠바와 살리바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둘 다 팀을 실점에서 구해내는 최종 수비수로서 경험이 많았고 그런 부분에서 자신이 있었으니까.
“둠바, 내가 먼저 간다!”
“뒤는 맡겨둬!”
심지어 호흡마저 완벽한 둘이었다.
간단하게 외치는 둘의 의사소통은 완벽하게 전달되었고, 살리바가 조금 더 앞선 위치에서 수비 자리를 잡는다.
자신들 사이의 공간으로 이대일 패스를 통해 통과하지 못하도록 간격을 멀리 떨어트리지 않고서.
‘⋯막혔는데?’
‘사이드로 잠깐 빼야⋯’
그 상황이 되자 막힘없이 전진해오던 도르트문트 선수들도 얼굴에 당황스러운 감정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 챔피언스리그 최소 실점 기록을 이어가는 아스날의 강력한 수비의 핵심 둘이 그대로 남아있는 중앙은 들어갈 공간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곳에서 그들이 실수했던 것은 평소처럼 자신 있게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고 사이드로 빼고 정비를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점.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하는 선수들로서 순간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패배의 요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콰앙-! 투욱-! 타닷-!
“나가자!!”
측면 지역으로 패스를 주고 다시 중앙에서 리턴을 받으려는 찰나를 이용해 어느새 타이밍을 잡고 뛰쳐나온 살리바가 자리를 잡고 어깨싸움을 이기면서 커팅에 성공했기에 말이다.
그리고는 앞쪽으로 흐르는 공을 다시 달려 나가 수비에 실패했음에도 계속해서 복귀를 하고 있었던 유건에게 곧바로 패스를 전달한다.
좋은 역습 상황에서 가장 정확하게 좋은 코스로 공을 보낼 능력이 충분한 아스날의 캡틴에게.
휘릭-!
‘⋯허, 허억!’
후반전이 끝나가는 시간에 갑작스런 역습을 쫓아 내려왔던 탓에 체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유건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살리바의 패스를 보고 힘을 뺀 다리에 공이 달라붙는 순간 몸을 반대쪽으로 돌린다.
클래스를 보여주는 듯 자석처럼 발에 달라붙는 공을 앞쪽으로 곧바로 치고 달려 나간다.
약간의 시간도 지체하지 않고 흐름을 살려서 전진하기 위해서.
콰아앙-! 스으으-!
이미 스스로도 체력이 빠져 빠르게 몰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선택을 내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중앙선 부근에서 이미 출발을 하고 있는 선수단 내의 스피드 스타, 러너의 앞쪽으로 향하는 땅볼 패스를 위해 강하게 공의 중앙보다 위쪽 부분을 때린다.
그와 동시에 잔디를 강하게 가르며 치고 나가는 유건의 패스.
- 역습 개빠르다! 그대로 치고 나가자, 러너야!
- 순간적으로 커팅해내고 패스하는 살리바도 대단하긴 한데, 축따형 패스 진짜 개미친 거 아니냐?
- 아니 전속력으로 복귀하고 있다가 바로 강하게 들어오는 패스 받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거기서 돌아서자마자 패스를 하는 게 진짜 사람 맞냐고 축따형!
- 여기서 한 골 더 넣으면 2차전 심적으로도 엄청 편해질 수 있다, 제발!
유건의 패스가 비어있는 도르트문트의 왼쪽 사이드로 길게 뻗어나가는 순간, 성공할 것만 같은 역습 상황에 축따튜브의 채팅창은 급속도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깐의 휴식도 취하지 않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완벽한 패스를 전달하는 축따튜브 채널의 주인에게 감탄하는 대화가 대다수.
그리고 일부는 다음 상황에서 공을 이어받는 러너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이번 시즌 보여주었던 모습이라면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줄 것을 말이다.
투욱-! 투욱-!
마침내 공을 잡은 아스날의 왼쪽 날개 카일 러너.
뒤쪽에서 사이드백이 복귀하는 것이 곁눈질로 보였지만 크로스를 위해서 사이드 쪽으로 파고드는 것보다는 중앙 수비만이 지키고 있는 안쪽으로 방향을 꺾어 드리블을 시작한다.
이미 가속이 붙어있는 상태였기에 단 두번의 드리블만으로도 슈팅 각도를 만들어낸다.
뻐어엉-!
중앙 수비수가 달려 나오는 것이 보였지만 중계 화면상으로 비치는 러너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유건의 패스를 전달받았을 때부터 결정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각을 만들자마자 먼 쪽 포스트 방향을 보고 슈팅을 강하게 날린다.
러너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코스였기에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도르트문트의 골대를 향한다.
투웅-!
‘⋯들어가라!’
완전 땅을 가르며 가는 슈팅은 아니었기에 몸을 날리는 골키퍼 근처에서 바운드가 되면서 더 가속이 붙기 시작하는 러너의 슈팅.
그 장면을 보며 패스를 보낸 이후 숨을 고르며 혹시나 모를 세컨볼을 위해 앞쪽으로 올라오고 있던 유건은 가슴 속으로 소망한다.
팀의 두 번째 득점이 터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