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195화 (195/208)

195화. 선제골을 넣을 때까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명문 클럽으로 국내 팬들에게는 꿀벌 군단이라는 별칭으로 익숙한 팀.

위르겐 클롭과 토마스 투헬이 만들어놓은 젊은 에너지를 이용한 게겐 프레싱으로 세계 탑클래스 수준이 되었다가 하락세를 꽤 오래 겪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새로운 감독의 리빌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부활을 알린 전통 강호였다.

‘⋯이놈들, 압박이 생각보다 빠르다.’

그들을 상대하는 유건이 느끼고 있는 현재 감정은 압박 속도가 다른 팀에 비해 월등히 빠르다는 것.

소속된 아스날의 훈련 중 압박 세션에서 하는 높은 강도로 그들은 강한 압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점이라고 한다면 아스날 선수단은 이미 그 정도 압박 수준에서도 경기를 풀어나가고 점유율을 유지하는 경험이 있었다는 점.

그래서일까 당황하는 것도 잠시였고, 유건은 이내 적응해서 파티노, 카마메니와 함께 중앙 지역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다.

투욱-! 투욱-! 투욱-!

“주자마자 바로 움직여서 받아!”

첫 터치를 바로 주변에 있는 팀원들에게 향하는 패스로 가져가는 아스날의 미드필더들.

그와 동시에 다시 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움직여주면서 도르트문트의 압박을 분산시킨다.

아무리 그들이 젊은 에너지를 기반으로 엄청난 마킹을 보여준다고 해도 선수의 숫자는 동일했다.

한 명이 일대일로 제쳐지거나 패스를 통해 빠져나가 버린다면 결국 그 선수는 다시 다른 곳으로 수비를 지원하기 위해 이동이 필요했다.

그 빈공간은 아스날 선수들이 노릴 수 있는 좋은 지역이었고 말이다.

스윽-! 휘릭-!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 유건이었기에 패스와 간단한 개인기를 섞어서 볼을 키핑하며 점유를 이어나갔다.

앞쪽에서 압박이 강하게 들어오니 당황할 법도 한데 발바닥으로 살짝 끌어오고 곧바로 반대 발을 이용해 다시 공을 뒤쪽으로 굴리면서 몸을 돌린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습득한 그의 마르세유 턴은 상대 선수가 태클을 걸어오는 타이밍을 이용해 빼앗기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스으으-! 뻐어엉-!

‘사이드에서부터⋯’

다음 동작으로는 지체하지 않고 넓게 벌려주는 것을 선택했다.

땅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위치한 공간에서부터 같은 쪽, 반대 사이드까지 정확하게 패스를 전달한다.

왼쪽에 위치할 때는 러너에게 앞쪽으로 뻗는 긴 패스로 달려 나갈 공간을 만들어주고, 반대쪽의 캐시에게는 전환하는 롱패스로 아이솔레이션 상황을 만들어준다.

반대로 오른쪽에 위치할때는 캐시에게 발밑에 전달하며 동일하게 일대일 상황을 마주치게 만들고, 러너에게는 공간을 향해서 롱패스를 보낸다.

공격 작업을 사이드에서부터 시작하기 위해서 말이다.

투우욱-!

그에 맞춰 왼쪽에서는 공간을 파고드는 러너가 빠른 주력을 이용해서 길게 치고 나가서 크로스를 올리거나 순간적으로 반대쪽 터치를 가져간 뒤 안쪽으로 이동하거나 오버래핑하는 소우사에게.

투욱-! 투욱-!

오른쪽에서는 드리블에 자신 있는 캐시가 특유의 리듬으로 바디 페인팅을 섞어가며 도르트문트의 사이드백을 제치고 파고들거나 힘차게 달려온 페레이라에게 노마크 크로스 찬스를 넘겨준다.

“마무리!”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상대의 골대를 향해 마무리 짓는 선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유연하게 바뀐다.

중앙 수비수 사이에서 공간을 차지하며 움직임을 가져가는 쿠아바가 잡는다면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며 슈팅을 날리거나 공중에서 내려찍는 강한 헤딩으로 마무리.

뒤쪽에서 패스를 보내고 파고드는 유건에게 컷백 형태로 공이 온다면 정확한 코스나 체중을 실은 강한 슈팅으로 마무리.

그 외의 선수들도 저마다 자신 있는 방법을 이용해 도르트문트의 골문을 열어젖히기 위해 공격 작업의 마침표를 찍는다.

투우욱-!

‘⋯살짝 감아서 아래쪽으로 향하게!’

이번에 마무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선택권은 바로 유건의 손에 달려있었다.

오늘 도르트문트의 수비진 중에서 가장 고통받는 선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왼쪽 사이드백.

아스날의 오른쪽 날개 캐시에게 영혼까지 털린다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리블을 칠 때마다 모두 제쳐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

왼발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코너 라인에 가까운 오른쪽으로 치며 약발로 크로스를 올리려는 움직임을 가져가다가 발바닥으로 뒤로 끌어와서 다시 바깥쪽으로 왼발 터치.

그리고는 달려 들어오는 유건에게 바로 컷백으로 내준 것이다.

스으으-!

강하게 힘을 실어서 차기보다는 회전과 방향에 치중해서 발을 가져다 댄 유건.

공은 중앙 수비수들의 발에 닿지 않는 오른쪽을 시작으로 반시계 방향을 살짝 그리려다가 이내 멈추는 듯한 코스로 골대를 향해 잔디를 가르며 나아갔다.

“제발 나가라!”

자신의 정면 시야에 몇 명의 선수가 있었기에 유건이 발을 공에 맞히는 장면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 도르트문트의 골키퍼.

앞에 있는 왼쪽 중앙 수비수를 돌아서 땅볼로 휘면서 오는 슈팅을 인지한다.

하지만 몸을 날리려는 찰나, 이미 공은 골대 근처에 다가오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뒤늦게 몸을 날려본다.

아슬아슬하게 왼쪽 골포스트 쪽을 향해 날아오는 슈팅을 보며 제발 라인 밖으로 벗어나라고 외치면서.

출렁-!

‘⋯노마크였는데 나가겠냐? 이건 무조건 넣는다’

도르트문트의 수문장이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답변하는 유건은 슈팅이 도착하는 위치가 어디일지 답을 알고 있었다.

캐시의 드리블 상황에서 쿠아바가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며 중앙 수비수의 시선을 빼앗아준 덕분에 유건은 노마크 찬스였다.

그저 임팩트를 정확하게 수비수들의 발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슈팅을 때린다면 들어갈 확률이 더 높다는 말.

그런 상황에서 현재 아스날의 에이스를 넘어 세계 축구계의 신이라고 불리는 후안 루이스와 동급 취급을 받는 유건이 놓칠 리가 있겠는가.

옛날, 레알 마드리드의 슈퍼스타이자 플레이 스타일과 외모로 교수님이라고 불렸던 천재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가 보여주었던 전매특허 슈팅.

엄청나게 휘어 들어가며 골대의 우측 하단을 노리는 땅볼 슈팅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으아아!! 이번에는 진짜 우승하는 거냐고!!”

엄청난 함성 소리와 폭발적인 리액션으로 멋진 골을 터트려준 유건에게 화답하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홈팬들.

그들이 챔피언스리그라는 대회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던 건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르센 벵거 시절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레만이 퇴장당하고 트로피를 들지 못했던 그 설움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기다려왔던 나날들.

아르테타와 유건, 그리고 환상적인 월드 클래스 베테랑 선수들과 나이가 어리지만 월드 클래스로 거듭나고 있는 젊은 유망주들까지.

더불어 이번 시즌 자국 리그와 컵 대회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더욱 기대를 하고 있는 시즌이었다.

퍼억-! 퍼억-!

“보이시죠? 이게 여러분이 응원하는 구단의 캡틴입니다!”

강하게 왼쪽 가슴에 달린 구단의 엠블럼을 한참 두드리며 팬들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유건은 자신의 세레머니를 찍는 카메라 화면에 대고 중계로 보고 있는 아스날 팬들이 볼 수 있도록 입모양을 크게 해서 외친다.

자신의 왼팔에 채워진 주장 완장을 쓰다듬으며 여러분의 눈에 이것이 보이냐고.

앞으로 자신과 함께 더 많은 역사를 써 내려가자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 미친⋯, 슬로우 모션으로 나오는 축따형 슈팅 코스 본 사람 있음? 저거 실제 축구에서 나올 수 있는 궤적이었음?

└ 옛날에 토니 크로스가 매번 보여주긴 했었음. 근데 그 코스를 따라 한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거였다는 게 놀라울 뿐!

- 이렇게 멋지게 안 넣어도 매 경기 미친 활약 보여주는데 환상적인 이런 골까지 터트리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임? 축따형 내가 남자지만 형 많이 사랑한다

- 아르테타 감독님이 평소와 같지 않게 입 벌리고 벙쪄서 쳐다보는 거 보임? 그게 진짜 이번 골이 미쳤다는 걸 말해주는 장면인듯

- 좋다! 전반전 이대로만 유지하고 끝내고 후반전에 한 골만 더 넣자!

슬로우 모션으로 다시 한번 나오는 유건의 슈팅 궤적에 또 한 번 감탄하는 축따튜브의 팬들.

보통 축구팬들은 응원하는 팀에서 멋진 골이 터트리고 나면 당시에는 엄청난 기쁨에 미쳐 날뛰지만, 이내 진정하고 느린 장면으로 보며 또 한 번 감탄한다.

대체 어떤 코스로, 어떻게 골이 들어갔는지 보기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 수석코치로 옆에서 보좌했었던 펩 과르디올라가 가끔 보여주던 선수들의 미친 골에 대한 리액션.

입을 벌리고 사랑에 빠진 눈으로 득점한 선수를 쳐다보았던 그 표정이 지금 미켈 아르테타의 얼굴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전반전 39분, 유건의 선제득점으로 아스날 1 VS 0 도르트문트.

다시 한번 승리라는 두 글자를 향해 팀을 이끄는 유건이었다.

***

삐이익-!

“이대로 전반전이 종료됩니다! 유건 선수의 엄청난 골과 함께 아스날이 리드하고 있는데 후반전에 과연 양 팀이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줄지 기대되는 하프타임입니다!”

“방금도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나왔지만 정말 다시 봐도 엄청난 궤적이군요! 저도 조기축구에서 저런 슈팅을 한 번 날려봤는데 그때는 기분이⋯”

“자,자! 지우씨 너무 과장됐습니다! 같이 경기를 뛰어본 제 앞에서 너무 거짓말이 심하십니다”

“⋯크흠, 준성씨가 없을 때였습니다! 아무튼 그럼, 저희는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유건의 선제골 이후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는 양팀 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아스날이 점유하던 경기가 전반 시작 초반보다 거칠게 압박하고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도르트문트 선수들 때문에 팽팽해졌으니까.

분위기가 조금씩 그들에게 넘어가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하프타임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것은 어떻게 보면 아스날에게 행운이었다.

그래서일까 인기 있는 캐스터들답게 숨을 참고 지켜보던 팬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짧은 농담으로 간단하게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옆에서 그것을 적절하게 끊어주고 받아주는 안준성과 전지우의 찰떡같은 호흡은 그들이 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캐스터들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전반전은 여러분들에게 감탄했고 정말 상대하기 힘들 것 같던 팀을 상대로 잘해주었다.”

라커룸으로 들어온 아스날 선수단을 맞이하는 미켈 아르테타.

전반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경기장을 장악하다시피 한 팀의 경기력에 만족한 듯한 말을 내뱉으며 선수단을 칭찬한다.

덕분에 전광판의 스코어를 1점 앞서도록 만든 그들이었으니까.

“딱! 선제골을 넣었을 때까지만 말이다.”

“그 뒤에 펼쳐진 전반전 내용은⋯”

예상하지 못한 칭찬에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지려는 찰나, 그 순간을 노리기라도 한 것인지 곧바로 호통을 치는 아르테타였다.

선제골을 넣은 이후로 남발했던 패스 미스와 쉽게 내줘버린 슈팅들.

전반 막판에 보여주었던 불안한 내용들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후반전에 나서기 전에 개선을 요구한다.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 결승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오늘 승리를 거두는 게 좋기 때문에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