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보여주고 와라
“토마스, 뒤쪽에 맨온이다!”
“리턴 주고 움직여, 토마스!”
“길게 찔러줘 봐!”
그리고 시작된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토마스 에르난데스 한 명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패스를 돌린다 하더라도 핵심적인 전진 패스나 공격 방향을 정하는 패스는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새롭게 영입된 좋은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술인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반복적으로 그를 통해 게임을 풀어나갔다.
덕분에 아스날로서는 신경을 단 한 명한테만 쓰면 돼서 기분 좋게 경기를 진행해나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건, 리턴 줘야 되겠다!”
“쿠아바, 돌아서 때려봐!”
“둠바, 라인 조금만 더 올려줘!”
반면 그들을 상대하는 아스날은 경기장에 뛰고 있는 모든 선수가 스스로가 전술의 핵심인 것처럼 플레이했다.
이제까지 유건이 그런 상황에서 빛나는 것은 그가 모든 것을 맡아서가 아니라, 비슷하게 찾아오는 패스 기회에서 가장 정확도가 높게 많이 전달하기 때문이었다.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라는 위치를 가리지 않고 서로의 근처에 있는 선수들을 호명하며 호흡을 맞추고 공을 마무리 짓거나 소유한다.
‘⋯우리가 더 좋은 분위기다.’
남은 대회 중 첫 번째 결승전이었고, 시작하기 전 꼭 이기리라 다짐했던 유건.
그는 서로 상반된 양팀의 경기 스타일을 비교하며 자신들이 더 부드럽게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수비와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간격, 미드필더와 공격 라인 사이의 간격 모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좁게 서며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더불어 팀원들의 패스가 상대적으로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 아스날이 더 잘하고 있는 거 맞지, 형들? 축구를 잘 모르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긴 한데 뭔가 잘 안 풀려 보이네
└ 안 풀리는 수준을 한참 넘었어 형. 우리 팀 핵심은 알다시피 토마스인데 패스가 거기서만 나오니까 아스날 선수들이 거기만 막고 있어
- 맨유도 미드필더 영입이 필요하긴 할 것 같음. 이번 이적시장에서 공격 쪽은 잘 영입한 것 같은데 미드필더 한 명도 영입 안 할 줄은 몰랐음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음! 진짜 토마스 빼고 다들 사람 구실 못할 정도인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미들 영입 없이 시즌 시작한걸까!
└ 그만큼 공격이 강하다고 믿었던 거 아닐까? 초반만 하더라도 잘 치고 나갔던 건 사실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오늘만큼은 축따튜브의 응원이 아스날 쪽으로 쏠리거나 집중되는 현상이 좀 덜했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축구 클럽을 꼽자면 단연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뽑힌다.
거기다 최근에는 토마스 에르난데스라는 젊은 캡틴을 중심으로 리빌딩을 시작하고 발전을 하고 있었기에 인기를 더 끌고 있는 상황.
그렇다 보니 오늘 축따튜브의 채팅창에는 아스날을 응원하는 팬들과 맨유의 경기력에 실망하는 맨유 팬들이 7대3 정도로 분포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 인기 1위의 팀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이 축따튜브인 것은 변함없었으니까 말이다.
***
“연속으로 세 번째인 것 같은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당황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당황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죠? 이제까지 수비를 잘해왔지만 아스날의 세트피스가 날카롭게 들어오고 있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전 코너킥이 수비수의 머리를 맞고 골대를 스쳐 지나갔으니까요.”
“과연 이 기세를 몰아 아스날이 선제골을 터트릴 수 있을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반격에 성공할 수 있을지 함께 지켜보시죠!”
먼저 상대팀의 골대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은 바로 아스날.
최근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는 둠바와 살리바, 쿠아바의 피지컬과 높이를 활용하는 호버 코치의 세트피스 전술.
매번 킥을 찰 때마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아스날의 움직임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특히 흘러나오는 세컨볼에 대해서 계속 놓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그 순간이 멀지 않아 찾아올 것만 같았다.
뻐어엉-!
“세컨볼 집중해!”
“마무리 짓고 와야 해!”
세 번으로 연속해서 코너킥을 차는 상황이었음에도 아스날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어지는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하기 위해 더 집중을 하고 있었다.
왼쪽에서 러너의 킥이 날아오는 순간, 골대 앞에 있는 선수들의 입에서는 저마다 한 마디씩을 외치는 게 보였던 게 그 증거였다.
‘⋯한 칸 내려서?’
공이 앞쪽으로 잘라서 들어가는 자신의 머리를 충분히 넘어갈 것이라 판단한 유건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뒤쪽으로 물러날까 순간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중앙 혹은 반대쪽에서 경합한 이후 다시 이쪽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대비해서 이곳에 위치하고 있던 자신이기도 했기에 머물러본다.
뒤쪽에서는 세컨볼을 기다리는 다른 동료들이 위치해 있었기에 그들을 믿고서 팀적으로 약속된 자리를 지킨다.
콰앙-!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고민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중앙 지역에 있던 살리바가 점프 타이밍을 완벽히 맞추며 상대 중앙 수비수보다 머리 하나 높은 위치에서 공을 골대를 향해 내려찍는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그의 이마에 맞은 공은 바로 앞에서 골키퍼가 반응할 수 없도록 강하게 바운드된다.
‘⋯아씨, 제발 닿아라!’
늦게나마 공의 형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닿지 않는 손을 두고 다리를 뻗어본다.
타이밍을 뺏겼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골대를 지키는 수문장으로서 그물이 흔들리기 전까지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먹힌다는 것이 팀의 사기를 얼마나 떨어트리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지 수없이 경험했으니까.
그래서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노력하는 게 당연하고, 그게 자신이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출렁-!
하지만 이번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헤딩을 한 곳이 골대 바로 앞이다 보니 형체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골 라인을 넘어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저 방금 한 행동이 발악에 불과하게 되었는데 아스날 선수들은 그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키퍼의 마음은 관심이 없었다.
골을 넣고 팬들 앞에서 보여줄 세레머니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 살리바를 쫓아가느라 바빴으니까.
“와하하하, 내가 한 건 해낸다!”
“골 멋졌다, 살리바!”
“그 머리가 쓸 데가 있었구나!”
엠블럼을 두드리며 달려가더니 근엄한 표정으로 팬들 앞에서 무표정으로 아무 동작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세레머니를 보여주는 살리바.
그를 따라간 아스날 선수들은 등 뒤로 점프하며 머리를 두드린다.
한동안 골을 터트리지 못해 장난기로 가득했던 그 머리통이 쓸 데가 있었다고 놀리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다들 마음 흐트러지지 말고 다시 집중해! 우리는 우승컵을 챙겨서 돌아가야 하니까!”
모두가 득점의 기쁨을 즐기는 그 순간, 선수단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유건이었다.
그런 행동을 가르쳐준 외데고르도 옛날 아스날 레전드 그라니트 쟈카한테 배웠다고는 들었지만, 아무튼 그런 주장의 역할을 전수해주고 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스날의 전통은 유건이 제대로 이어받고 있었다.
그가 십년 이상을 지켜나갈 그 전통은 또 누군가가 이어받을 것이고 말이다.
‘⋯저놈, 이제 어엿한 주장이네.’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는 아스날 벤치의 누군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뿌듯한 감정을 숨겨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난 시즌까지는 캡틴, 이번 시즌부터 라이센스를 따고 아르테타 사단에 합류한 뉴페이스 코치.
노르웨이의 레전드이자 아스날의 레전드, 마틴 외데고르의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과 유건이 기특하다는 듯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으니까.
그의 행동에 만족감을 느끼기라도 한 듯 말이다.
***
“젠장! 한 발자국 더 뛰고, 더 빠르게 움직이란 말이야!”
“상대는 지금 리그와 유럽 대항전을 거의 지배하고 있는 팀이다! 근데 여러분에게는 왜 승리하고 싶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거지?”
“토마스, 미드필더에서 압박을 넣을 때 왜 지켜만 보는 거지? 강하게 달라붙어!”
“남은 시즌 경기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무조건 승리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
한 골을 먼저 실점한 이후, 하프타임을 맞이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커룸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실점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경기력 자체도 많이 밀렸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토마스 에르난데스가 패스 줄기의 중심을 맡으며 전반전 내내 분전하긴 했으나 모든 선수가 공을 잡으면 핵심 선수가 되는 아스날에 비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
그래서일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있는 에릭 텐 하흐는 선수들에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평소답지 못하게 무거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꽤나 긴장한 듯한 선수단은 보기에 별로 좋지 않았으니까.
승리를 위해서는 그들을 각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더 과장해서 의견을 표한 것도 없지는 않았다.
“해보자, 해보자!! 저 녀석들한테 언제까지 지기만 할거냐고!”
“토마스 말이 맞다! 우리가 맨날 이겨오던 팀인데 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
가장 먼저 감독의 호통에 반응해서 선수단을 독려하는 것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캡틴, 토마스 에르난데스.
아스날과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점은 그들도 나이가 20대 초반으로 어린 주장을 중심으로 선수단이 똘똘 뭉쳐있다는 것.
유건과 토마스는 각 팀의 핵심 선수 중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선수단의 신뢰를 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첫 마디에 이어 베테랑 선수들은 큰 목소리로 힘을 보태며 참여한다.
“보여주고 와라!”
후반전 시작을 위해 나가기 전까지 원을 그리며 모인 맨유 선수들은 단합을 목적으로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달라진 모습으로 경기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원하는 부분들을 말하면서 개선시킬 점들을 찾아 나갔다.
그리고 그 장면을 하프타임 초반과 달리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텐 하흐.
그런 변화 덕분에 역전을 위해 후반전이 시작되는 경기장으로 나가는 선수들의 등 뒤로 만족스러운 목소리를 담아 외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래, 우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경기장에 나오자 리드를 당하고 있음에도 응원해주는 팬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그런 응원이 두 귀로 들려오자 힘들었던 전반전으로 지쳐있던 체력이 오히려 경기 시작할 때보다 충만한 상태로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구단명을 계속해서 외쳐주는 팬들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자각한다.
우리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고, 가장 응원을 많이 받는 팀답게 팬들을 만족시켜주어야 하고, 매번 승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팀이라고.
그와 동시에 그러니까 지금부터 역전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