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탑클래스 스트라이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날의 FA컵 경기,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고도 평가받는 경기가 지금 곧 시작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도 우승 후보로 평가받고 있지만 사실 리그 1, 2위를 다투는 두 팀이 가장 배당이 높은 것은 사실이거든요! 충분히 그런 얘기가 나올 만합니다!”
“서로 며칠 전에 치러진 리그 경기는 대부분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베스트 라인업끼리의 명승부가 예상되는데요. 지우씨는 경기 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 같나요?”
“마음 같아서는 그냥 쉽게 쉽게 아스날이 때리는 슈팅이 다 들어갔으면 좋겠는데요! 맨체스터 시티도 최근 엄청난 경기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엄청나게 치고받는 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터널에서 경기를 위해 입장을 기다리는 선수들이 중계 화면에 잡히자, 하던 잡담을 멈추고 경기가 곧 시작한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아직까지 FA컵에서 살아남은 프리미어리그 강팀이라고 하면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등.
중위권, 하위권 팀들이 이변을 발생시키며 진출해있기도 하지만 확실하게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것은 그 네 팀이었다.
그들은 스쿼드에 최소 한 명 이상의 월드 클래스라 불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지난 리그 경기에서는 동점이라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우리는 오늘 승리하고 돌아가야 한다.”
“프리 시즌부터 우리의 목표는 어떤 경기이든지 동일하다. 몸담고 있는 아스날이라는 구단의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다.”
경기 시작 전, 원을 그리며 뭉쳐있는 아스날 선수들의 중심에서 오늘 경기에 대한 각오를 전파하고 그들을 독려하는 것은 바로 유건.
반시즌 넘게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것은 폼이 아니었는지 이제 완연한 캡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선수들도 시선을 집중시키고 유건이 외치는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나 팬들이 그를 신계의 영역으로 올려놓고 있었고, 사실 팀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훨씬 체감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훈련 세션에서 항상 유건이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축구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 것처럼 경기를 지배해버렸기에.
삐이익-!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시티!”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잠깐의 시간 이후, 주심이 청명하게 부는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는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양쪽 구단의 팬들은 각자의 팀을 외치면서 응원을 시작한다.
경기장에 뛰고 있는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기운을 받아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함께.
***
“패스 조금 더 빠르게 돌리자! 중앙 지역 주도권 뺏기지 마!”
“저놈들 압박이 빠르게 들어오니까 타이밍 주지 말자!”
많은 이들이 치열할 것이라 예상했던 만큼, 초반부터 펼쳐지는 양팀의 거센 압박과 신경전은 경기의 열기를 끌어올리는 데 충분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2위에 위치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팀 패스 횟수를 따진다면 압도적으로 1위인 맨체스터 시티.
어떤 경기에서든지 티키타카 전술을 기반으로 자신감 있는 플레이하는 그들이었지만 오늘은 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스날 선수들은 주변에 있는 시티 선수에게 패스가 들어가는 순간 즉시 압박을 시작했으니까.
“공 잡았을 때 패스 확실하게 하자! 소유권 뺏기면 우리 체력만 힘들어져!”
“다들 라인 올리고 미드필더랑 간격 좁혀줘! 주도권 가져오자!”
하지만 물론 아스날 선수들도 꽤나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평소와 같았으면 90분 내내 주도권을 유지하고 빈 공간을 파고드는 것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전반 20분 동안 점유율이 밀리고 있었으니까.
그 상황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보기 위해 최후방에 위치한 둠바는 살리바를 비롯한 양쪽의 사이드백이 구성하는 라인을 조금 올려달라고 외친다.
중앙 지역의 간격을 촘촘하게 가져가서 패스가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이유였고 사실 자신감이 받쳐주고 있었기에 가능한 요청이었다.
충분히 그들은 롱볼을 이용해 한 번에 뒷공간을 치고 들어올 수 있는 팀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이 커버를 할 수 있었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말이었으니까 말이다.
투욱-! 투욱-! 투욱-!
“패스, 패스 그리고 또 패스입니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 경기가 진행됩니다!”
양팀의 선수들이 돌리는 패스가 전달되는 속도 자체도 엄청났다.
경험이 쌓여 변수가 생기는 상황을 중계하는 것에 적응된 안준성과 전지우였음에도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사이드 지역에서 드리블을 시도하기 위해 공을 일단 잡아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이 거의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 처음 터치를 바로 패스로 가져가는 다이렉트한 플레이를 하고 있었으니까.
스으으-!
먼저 경기의 균형에 균열을 내기 위해 시도하는 것은 바로 맨체스터 시티.
지금까지 잡고 있는 주도권을 바탕으로 라인을 올려놓은 상태인 아스날의 사이드쪽 공간으로 길게 땅볼 패스를 보낸다.
소우사보다 더 빠르게 스타트를 가져간 오른쪽 윙포워드가 충분히 공을 잡을 수 있는 속도로 말이다.
‘⋯여기까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멋진 패스였지만, 필드 내에서 아스날을 지키고 있는 최후의 수호신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예상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살짝 몸을 사이드 쪽으로 옮겨가면서 중앙 지역에 대해서도 함께 신경 쓴다.
확실하게 커버를 간다는 의도를 가진 움직임이라기보다는 견제를 통해 다음 동작을 늦추고 팀원들이 커버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중앙 수비수로서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던 둠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장점이었다.
“더 치고 가도 됐잖아! 당황하지 마.”
그리고 그 움직임에 약간 움찔했던 맨체스터 시티의 윙포워드가 한 번 공을 잡아놓고 상황을 보는 사이, 하나둘씩 돌아오는 아스날 수비수들.
열려있던 드리블 공간이 막혀버리자 그로서도 주변으로 움직여준 선수에게 뒤로 내줄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기회였던 것이 분명했기에 공을 받는 선수가 애써 원망해보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자신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드리블로 치고 나가서 골을 득점하는 것보다 주변의 팀원을 이용해서 득점하는 상황에 더 익숙했기에 공격의 타이밍을 늦춘 것뿐이니까.
“나이스 커버야, 둠바! 자리 잡고 다시 확실하게 공 빼앗아 오자!”
이제는 파티노와 카마메니까지 수비 라인을 보호할 수 있는 위치까지 내려온 덕분에 맨체스터 시티는 다시 공을 돌리며 다음 번의 공격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수비수가 있는 위치까지 공을 빼자 잠깐 숨을 돌리면서 실점 위기를 성공적으로 지켜낸 둠바를 칭찬하는 파티노였다.
지난 시즌 탄탄하게 수비 라인을 지켜준 살리바가 두 명이 된 것만 같은 든든한 감정을 느끼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와 동시에 오랜 기간 프리미어리그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던 그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전반 초반보다는 그들의 패스에 적응해서, 이번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되기 전까지는 꽤나 좋은 모습을 보였던 아스날이었기에.
그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분위기를 잡을 수 있는 타이밍이 오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을 잡아내는 것 역시 팀원들의 능력이겠지만 말이다.
***
- 아스날 진짜 패스 플레이 미쳤다.
- 한 전반 30분부터는 아스날이 맨체스터 시티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오늘 템포 장난 없네
- 파티노랑 카마메니 폼이 오늘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것 같은데? 중앙에서 압박이랑 커팅 다 하면서 소유하고 있는 공은 안 뺏기네.
└ 사실 20분까지도 미드필더랑 수비 라인에서 결국에는 수비에 성공해서 버틴 게 반전의 시작이기도 함
이제는 완연하게 베테랑으로 불릴만한 파티노의 그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생각이 들었던 그때를 기점으로 넘어온 공들은 전반전 초반보다 훨씬 더 잘 돌아갔다.
미리 그 상황을 어림짐작하고 있던 것은 파티노밖에 없었지만 카마메니와 유건은 그저 오늘 전반전까지도 그래왔던 것처럼 실수하지 않았다.
덕분에 미드필더 라인의 정확한 패스 플레이를 기반으로 점유율을 늘려가고 보다 많은 유효 슈팅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를 물어 붙이는 아스날.
스으으-!
그리고 전반 종료 전, 시티가 만들어냈던 전반전의 좋은 패스를 똑같이 보여주는 유건이었다.
사실상 그들도 라인을 높게 유지하는 유명한 팀들 중 하나였기에 충분히 뒷공간을 노리는 팀들에게 찬스를 많이 주게 되는 팀.
아스날이 수비에 성공했던 상황과는 다르게 그들에게는 없었고 달랐다.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윙포워드들도 압박을 느낄 만큼 거대한 존재감의 둠바.
더불어 지금 공을 잡은 캐시는 누가 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밀고 나갈 만큼의 강심장을 보유한 선수.
투욱-! 투우욱-!
그 말은 움찔하면서 주변 팀원을 기다렸던 맨체스터 시티의 윙포워드와 달리 계속해서 골대와 근접하게 드리블 쳐서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짧고 긴 터치를 번갈아 가면서 가져가며 오히려 반대로 수비수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었다.
너네가 타이밍을 조금이라도 놓친다면 나는 이 공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캐시!!”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날의 팀 스타일상, 주변으로 받으러 가는 팀원들의 움직임도 달랐다.
그들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다른 곳으로의 패스를 생각해서 뒤쪽으로 움직여 받아주는 움직이었다면 득점에 자신이 생긴 유건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쿠아바와 함께 동일선상으로 움직이며 상대팀의 수비수들이 누가 공을 받을지 예상할 수 없도록 말이다.
투욱-!
거기서부터 펼쳐지는 상황도 달랐다.
캐시가 안쪽으로 파고드는 상황에서 완전 골대 앞이 아닌 조금 거리가 떨어진 지역에 서 있는 유건에게 패스를 먼저 준다.
투욱-!
‘뒷발로 주면⋯.’
동작 자체를 엄청 크게 가져가면서 당연히 슈팅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 유건.
하지만 공이 발에 닿기 전 몸을 공중으로 아주 살짝 띄우면서 뒷발로 패스를 선택한다.
골대 앞에 캐시와 쿠아바, 유건이 함께 서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세션에서 자주 준비했던 장면이었다.
저 패스를 받기 위해 다른 중앙 수비수와 경합하고 있는 선수가 그쪽으로 먼저 움직이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타닷-! 콰앙-!
이번에도 그곳으로 움직이는 것은 바로 쿠아바.
유건이 직선으로 밀어놓은 탓에 슈팅을 위해서는 몸을 돌리는 터닝 슈팅 형태로 차야 했지만, 그에게는 충분했다.
어떠한 각도에서도 밀어 넣는 것이 바로 탑클래스 스트라이커.
그중에서도 최고를 꿈꾸는 쿠아바였기에 못 넣는 게 더 자존심 상할 상황이었다.
“제발 들어가라!!”
그리고 그 장면을 중계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는 촬영장의 나여름.
쿠아바의 슈팅이 날아가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외친다.
전반이 끝나기 전에 선제골이 터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