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일부러 여기 준 건가?
“팍을 막아!”
“⋯크윽!”
하지만 이곳 안필드의 주인, 리버풀도 참가하고 있는 모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아스날이 선수들 달리고 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3위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동일했다.
그 말은 그들을 쉽게 본다면 언제든지 역습을 당하고 실점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리버풀의 핵심 선수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국적의 슈퍼스타, 박준철은 그러한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였다.
오늘 경기에서 그에 대해 방심을 놓지 않고 시선을 고정시켰던 페레이라가 처음으로 허무하게 뚫렸던 순간은 바로 전반 34분이었다.
투우욱-!
사이드백을 제쳐내고 열린 아스날의 비어버린 오른쪽 공간으로 길게 공을 치면서 수비 라인이 긴장을 하게 만드는 박준철.
둠바와 살리바 중에서는 살리바가 그 방향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커버를 나가면서 거리를 유지한다.
더 안쪽으로 직접 드리블을 치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뻐엉-!
하지만 박준철도 더 이상 파고들어 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살리바랑 상대한 게 몇 년인데 단순한 플레이로 간만에 찾아온 기회를 날려버리겠는가.
이미 처음에 길게 드리블을 칠 때부터 측면으로 고개를 돌리며 패스할 곳을 보고 있었다.
‘⋯젠장, 높다!’
“소우사!!”
그 선택지는 바로 반대 사이드로 길게 크로스를 올리는 것.
앞으로 치고 나가는 박준철보다 뒤쪽 라인에 머물면서 오프사이드를 의식하고 있는 리버풀의 오른쪽 윙포워드가 있는 곳이었다.
정확하게 중앙을 넘어서 날아가는 그의 킥은 큰 키로 점프를 뛰었던 둠바의 머리마저 닿을 수 없는 높이로 가다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넘어서 지나가는 공을 보며 그쪽 방향에 있는 소우사의 귀에 들리도록 외쳐본다.
대신해서 이 위기를 막아달라는 의미를 담아서.
콰앙-!
하지만 박준철과 눈을 마주치고 미리 스타트를 끊었던 상대팀 선수는 소우사보다 빠르게 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속을 붙어 달려가고 있던 그대로 자신의 도착 지점에 알맞게 떨어지는 공의 아랫부분을 이마로 강하게 내려찍는다.
아스날의 골문을 지키는 힐슨 근처에서 바운딩을 시켜 골키퍼가 미처 반응할 수 없도록.
“리버풀이 홈구장으로 찾아온 리그의 지배자 아스날에게 동점골을 넣는 것에 성공합니다! 박준철 선수의 크로스가 완벽했습니다!”
“키를 넘어가는 크로스에는 둠바 선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무리 리그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고 있는 아스날 수비 라인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사람입니다!”
“페레이라가 너무 손쉽게 벗겨지면서 사실 아스날 수비 라인이 순간 흔들렸거든요? 그 타이밍에 침착하게 반대편을 보고 올리는 선택이 좋았습니다!”
“정확히 내리꽂는 헤딩도 완벽했죠! 마세코와 번갈아 가면서 나오다가 리그에서만큼은 이제 붙박이로 나오는 힐슨 선수로서도 선방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려찍혔으니까요!”
리버풀이라는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답게 눈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내려찍을 수 있었다.
힐슨의 왼쪽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는 슈팅은 아스날의 골문을 열어젖혔고, 박준철의 활약에 안준성과 전지우는 흥분한 채로 골 장면을 해설한다.
약 십 분 전에 보여주었던 유건의 엄청난 어시스트 당시에도 흥분했지만 지금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떠오르는 신예이자 축구계의 신으로 추앙받기 시작하는 유건과 오래전부터 스포츠 스타로 활약하면서 꾸준한 인기를 받아온 박준철의 팬들은 이 경기를 놓치지 않고 있을 테니까.
삐익-!
“그대는 혼자 걷지 않으리!”
“결코 그대는 혼자 걷게 두지 않으리!”
다시 한번 울려퍼지는 안필드의 홈팬들이 부르는 응원가는 이미 치열한 경기장의 분위기를 한 단계 더 달아오르게 만든다.
리버풀의 세레머니가 끝나고 놓인 공을 차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심판의 휘슬.
그와 동시에 쿠아바가 공을 뒤로 둠바에게까지 빼주고는 일제히 달려간다.
킥오프 상황에서 한 번 순간적으로 골을 만들어보려는 아스날의 변칙적인 전술이 시행되는 시각은 전반전 35분이었다.
***
뻐어엉-!
“두 번은 뚫리지 않아!”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도 전반과 마찬가지로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은 시간이 몇 분 흘렀는지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모두 집중하고 있었다.
중계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의 축구팬들은 수준 높은 경기력에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하는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후반전 12분, 이번에는 박준철에게 페레이라가 복수에 성공했다.
자신을 마주한 채로 헛다리 드리블을 시도하려는 그의 공을 커팅하고 꽤나 멀리 보이는 중앙 지역의 유건에게 무릎 높이 정도로 낮고 빠른 패스를 날린다.
하지만 거리가 먼 곳에 보내려다 보니 정확함이 떨어졌고 거의 슈팅이 날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물론 유건이 처리만 할 수 있다면 공격을 나오면서 전체적으로 라인을 올리고 있던 리버풀이었기에 한 번에 역습을 날릴 수 있었다.
‘이거 트래핑은⋯, 저기!’
공이 날아오는 지점으로 미리 이동하고 있음에도 다리를 최대한 펼쳐도 트래핑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한 유건.
그렇게 생각을 마치자마자 이제 습관처럼 확인하는 팀원들의 위치를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확인한다.
투욱-!
그리고는 트래핑을 하지 않고 바로 패스로 연결시키려고 했다.
뒤쪽 상황은 이미 인지해두고 있었기에 원하는 의도로 공을 전달하기 위해 시선을 떼지 않는다.
공이 발에 닿는 그 순간까지 집중해야만 공중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측면 방향으로 다리를 들어 힘을 빼고 날아가는 공의 아랫부분을 뒷발로 차서 살짝 방향을 꺾어놓는다.
‘⋯이거 일부러 여기 준 건가?’
혹시 페레이라가 날렸던 패스가 자신의 앞쪽으로 올까 하여 이미 뛸 준비를 하고 있던 러너.
그는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유건의 발을 맞은 공은 각도를 꺾으면서 속도가 줄어 바운드가 되는 것을 보고 곧바로 스타트를 끊는다.
앞쪽으로 나가있던 사이드백을 커버하기 위해 중앙 수비수가 뒤쪽에서 공을 잡기 위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스날에서 가장 주력이 빠른 선수는 바로 러너.
두 발자국 이상을 앞서가며 먼저 공을 터치하면서 유건의 패스가 노린 건지 생각을 해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건이었기에 정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준비를 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예 사이드가 아닌 중앙으로 살짝 꺾으면서 치고 나가면 곧바로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 수는 패스가 들어왔으니 그런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항상 그의 창의적인 패스를 받을 때마다 미쳤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투욱-! 투욱-! 투우욱-!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 상황에 러너는 두 번 정도 공을 앞으로 치면서 골대와 가까워진다.
리버풀의 수문장이 골문을 비우고 앞으로 뛰쳐나오지만 불가능했다.
최근 엄청난 폼을 선보이며 골 결정력 부분에서 날이 서 있는 러너의 슈팅을 막아내는 것은.
그저 전방으로 패스를 하듯 땅볼로 비어있는 빈 공간으로 보내면서 골대로 밀어 넣는다.
출렁-!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리버풀의 골문이 두 번째로 흔들리는 순간, 아스날 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를 하며 팀 이름을 외친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달려가며 주먹을 치켜올리며 점프하는 득점자 러너.
최근 강팀들과의 경기가 없었기에 예전 맨체스터 시티, 유나이티드 전을 기억하며 불안했던 팬들도 있었다.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유지하던 승점 차이가 이제 사라지게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지금 이 순간의 골이 결승골이 된다면 리그 테이블의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환호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이거 옛날에 외질이 지루한테 준 패스인데!
└ 보니까 그렇네. 지루보다 러너가 마무리가 깔끔해서 그런지 그때보다 훨씬 멋진 골이 나온듯
- 노리고 준거겠지? 다른 사람이면 아무리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운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축따형은 얘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 우리 그동안 믿을 수 없는 패스 여러 번 봤다. 축따형이 100% 보고 준 거라고 생각함.
- 내가 진짜 클롭이었으면 오늘 축따형 명치 최소 두 번은 치고 싶었을듯. 오늘 어시스트 두 개 다 미쳤네!
- 축따형! 축따형! 축따형!
이제 축따튜브에는 십 년 넘게 아스날을 응원해왔던 올드팬들도 와서 대화를 나누며 채팅을 칠 정도.
팀의 레전드였던 외질이 보여주었던 창의적인 패스를 영상으로 보았던 기억을 가진 팬이 주제를 던지자 그에 대해 얘기가 이어지고 영상을 찾으러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주제는 이번 패스도 과연 유건이 의도하고 준 것인지에 대한 대화.
엄청난 패스를 수없이 보여주었던 유건의 패스였던 건 마찬가지지만 방금 본 장면은 또 다른 차원의 수준이었다.
놀라운 걸 넘어서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로 정확한 패스였으니까.
삐익-!
세레머니가 끝나고 다시 주심의 휘슬과 함께 남아있는 후반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스날은 한 점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리버풀은 따라잡고 역전하기 위해.
서로 상반되는 목표였지만 득점이라는 것을 공통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오늘 경기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으니까.
“한 골 넣은 걸로 만족하라고! 더 이상 안 준다!”
공격수를 추가 투입하면서까지 가져갔던 클롭 감독의 전술 변화.
그러나 이번 시즌 리그 9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던 아스날 수비 라인은 그것을 10실점으로 만든 리버풀을 상대로 더 이상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중앙으로 공격해온다면 두 명의 볼란치가 굳건하게 지켜냈고, 사이드백들도 크로스는 주더라도 돌파만은 허용하지 않았다.
“둠바, 이 자식아! 나이스 커버였다!”
“으아아아, 그렇지 살리바!”
물론 매서운 공격력을 자랑하는 리버풀이었던 만큼 당연히 몇 번 정도는 뚫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
결국 아스날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힐슨 앞에 있는 두 명의 수호신.
일반적인 중앙 수비수들보다 훨씬 넓은 커버 범위에 엄청난 피지컬, 준수한 주력을 보유한 둠바와 살리바에게 모든 것이 막혔다.
그들은 마치 전반전에 박준철의 크로스 한 번에 손쉽게 실점을 내준 것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매정할 정도로 다 막아내고 있었다.
돌파를 잘해서 마지막에 컷백을 하는 것도 재빠르게 움직인 둠바가 발을 뻗어 막았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흐르는 세컨볼은 살리바가 잔디를 쓸면서 태클로 걷어냈다.
삑-! 삑-! 삐이익-!
“으아아아!!!”
그리고 그것은 남은 30여 분 동안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둠바와 살리바는 포효하며 서로를 껴안는다.
덕분에 추가 실점의 상황을 막았다는 의미를 전달하며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아스날,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승리하며 18전 16승 2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