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신계의 영역
“크윽, 클리어해!”
“사이드 쪽으로 길게 차내!”
아스날이 텐백 전술을 선택함으로써 이득을 받는 것은 당연히 상대팀인 바이에른 뮌헨.
둠바와 살리바를 중심으로 주변에 공이 온다면 대각선 방향으로 멀리 클리어하면서 사이드로 나가게 하거나 상대 선수들이 없는 곳으로 공을 보내려 하는 아스날 선수들.
그래서일까 튕겨 나오는 공들은 모두 뮌헨의 소유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뻐어엉-!
‘⋯후우, 후웁!’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어진 5분의 추가시간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바로 2분.
흐르는 땀을 훔치는 것과 동시에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있는 공을 클리어하는 살리바.
장난기가 넘쳐흐르던 평소의 얼굴과 달리 십여 분 넘게 지속되는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에 숨이 턱 끝까지 이미 차오른 상태였다.
“수비! 앞으로 나오지 마. 우리한테 맡겨!”
“러너, 아예 아래쪽까지 내려와도 돼!”
홈팬들의 응원을 받아서 그런지 경기가 끝나가는 지금 순간까지도 활발하게 뛰어다니며 빈 공간을 찾는 뮌헨의 선수들.
반면에 그들을 상대로 후반전에 교체된 미드필더들을 중심으로 팀원들을 독려하는 말을 외치기 시작하는 아스날 선수단.
상대적으로 체력이 남아있는 교체 선수들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수비 라인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오빠 표정 안 좋네⋯, 살리바 제발 끝까지 막아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스물두 명의 선수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치열한 경기를 펼치고 있는 그 시각, 새벽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여름은 중계방송을 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화면에 잡힌 벤치에서 수건을 목에 두르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자신의 연인을 보며 걱정하면서 영국에 있을 때 얘기를 나눠보았던 그의 동료들의 이름을 외친다.
열정적으로 해외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본 지 3년 차가 되었기에 그녀도 이번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이미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면서 챔피언스리그를 보았던 경험이 있으니까.
삑-! 삑-! 삐이익-!
“으아아아!!”
“으하하, 다들 고생했다!!”
그런 여름의 응원이 통했던 건지, 경기를 이끌어가는 주심은 휘슬을 세 번에 걸쳐 나눠 불며 종료를 알린다.
그와 동시에 아스날 벤치에서 뛰쳐나가는 선수들이 중계 화면에 잡히고 아르테타는 공중으로 점프하며 주먹을 힘차게 내지른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로 끌어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좋아 보였다.
사실 매년 최소 4강에 진출하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오랜만에 진출한 챔피언스리그에서 결과를 낸 것에 기뻐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아직 조별 예선일 뿐이었지만 그들을 상대로 1승 1무의 성적을 거두었으니까 말이다.
***
- 아, 너무 아쉬운데! 오늘 시티 골키퍼가 폼이 미쳐서 거의 들어가는 걸 막아버리네
└ 리얼 코스 보고 들어가는 줄 알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결국 안 들어가더라
- 무실점 기록도 깨지고 너무 아쉬운 경기다
- 2위였던 쟤네랑 점수 차이 안 좁혀진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됨
바로 이어지는 경기는 맨체스터 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독일 원정에서 돌아온 이후 며칠 만에 치러지는 최상위 팀과의 경기는 풀어나가기 쉽지 않았다.
그들도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경기를 하고 온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상황이 달랐다.
홈에서 보다 쉬운 상대와의 경기였기에 힘을 뺄 수 있었고, 덕분에 아스날전을 위해서 힘을 비축해놓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분투한 아스날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수문장이 보여준 엄청난 선방에 막혀 추가적인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티키타카 전술을 이용한 그들의 패스 플레이에 리그에서도 실점을 기록하며 무실점 행진을 마감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F조 5경기, 이변 없이 아스날의 승리]
그 이후로는 두 경기 연속으로 뛴 베스트 선발 라인업 선수들을 로테이션시키면서 홈에서 치러진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5경기.
이미 아스날과 바이에른 뮌헨의 16강 진출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다 보니 상대팀은 꽤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도 두 점 차이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골, 골입니다! 프리킥을 이렇게 차면 솔직히 어떤 골키퍼가 와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토마스 에르난데스 선수가 완벽한 킥으로 아스날에게 프리미어리그는 쉽지 않은 곳이라고 메세지를 보냅니다!”
“지난 경기부터 아스날이 두 경기 연속 승리를 가져가지 못합니다! 리그에서 승점을 뒤쫓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로서는 아주 기쁜 소식이겠는데요?”
“맞습니다! 시즌 초반에 한두 번씩 미끄러졌던 그들에 비해 아직 아스날은 그러지 않았었거든요? 물론 아직 아스날이 승점을 앞서나가고 있긴 합니다.”
“그래도 5점 차이라고 말하다가 3점 차이라 말하니까 확실히 가까워진 느낌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는 베스트 라인업이 출전했음에도 맨체스터 시티 전에 이어 무승부를 기록했다.
먼 거리에서 때린 토마스 에르난데스의 프리킥은 정확하게 무회전 슈팅으로 연결되어 힐슨이 지키는 골대를 흔들어버렸으니까.
마치 옛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역사를 쓰고 역대급 선수로 발돋움을 시작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프리킥 골을 재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경기 결과로 리그에서 1위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당장 뒤를 추격하는 맨체스터 시티와는 3점 차이, 리버풀과는 4점 차이로 승점이 좁혀진 아스날이었다.
[잠깐 주춤하는 듯 보였던 아스날, 그들의 질주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승리를 따내지 못해 분노한 상태인 아스날의 제물이 된 상대팀들]
물론 일시적인 경기 결과였을 뿐이다.
시즌 시작부터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 끝날 것처럼 보였던 아스날의 경기력은 그 시점부터 부활하면서 다시 전문가들의 칼럼에 오르내렸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6차전에 이어 프리미어리그.
FA컵과 카라바오컵.
주전과 로테이션 선수를 가리지 않고 출전하는 선수들이 마주치는 모든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러너와 캐시가 계속해서 스위칭하면서 짝발 윙포워드에서 정발 윙포워드로 추가한 부분적인 움직임들이 성공적으로 먹혔던 게 이유였다.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아스날의 윙포워드들이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대비되어 있다”]
바로 다음에 맞붙을 리버풀의 레전드 감독 클롭도 자신의 팀을 치켜세우는 와중에 그들의 최근 모습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들도 박준철을 비롯한 양쪽 날개 모두 세계에서 최고라 평가받는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히 러너와 캐시가 폼이 좋았다.
최근 경기들 중에서 그들이 득점을 만들어내는 비율이 아스날 전체 득점의 50%를 넘을 정도였으니까.
- 17경기 10골 21어시스트, 이거 말이 되는 기록이라고 생각해? 건은 진짜 언터처블이라고!
└ 한 시즌 기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구너로서 우리의 주장이 그런 존재라니 요즘 너무 행복하다 그냥
- 솔직히 팬심을 빼놓고 보더라도 지금 건과 비교할 수 있는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 없어. 프리메라리가에 살고 있는 신과 비교해야지
- 둘이 어렸을 때부터 단짝 친구라더니 건이 만약 마드리드에 남아 있었다고 생각해봐. 앞으로 10년 동안 빅이어를 그들이 끼고 살지 않았을까?
└ 생각만 해도 토 나오네. 그 친구한테 찔러주는 게 만약 건이라고 상상하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경기력과 선수들에 대한 칭찬에 앞서서 아스날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공통적으로 “유건은 미쳤다”.
어떤 대회에 출전하든지 매 경기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축구팬들이 장난식으로 정해놓는 인간계의 영역을 벗어나 신계의 영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전 세계 팬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 그 반열에 있는 것은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괴물 후안 루이스, 단 한 명.
이번 시즌 17경기 리그에서만 29골을 기록하며 메시가 세웠던 50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존재였다.
아직 맞붙지 않은 어린 시절 친구끼리의 경기 결과에 대해 얘기가 빈번하게 나올 정도였고 함께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팬들은 상상했다.
그런 두 명의 선수들이 만약 같은 팀이라면 세계 축구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지 생각해 보면서.
***
콰아앙-!
‘젠장,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안필드에서 펼쳐지는 리버풀과의 경기.
전반 22분이 흘러가고 있는 시점에서 유건은 쿠아바가 건네준 리턴 패스를 다이렉트로 강하게 그들의 골대를 향해 때려 넣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서 원하는 임팩트 위치보다 더 깊숙하게 맞았다는 촉감을 느낀다.
“리버풀! 리버풀! 리버풀!”
“걷고 또 걸어라! 마음속 희망과 함께!”
“그대를 혼자 걷게 두지 않을 거야!”
골대 밖으로 나가는 유건의 이번 슈팅을 보며 리버풀 홈팬들은 가장 유명한 응원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한국 팬들에게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인 그 노래를 수만 명이 떼창하는 것은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도 충분히 들릴 정도였다.
그런 팬들의 엄청난 응원 열기는 안필드를 원정팬들의 무덤이라고 불리게 만들었고, 아스날도 이곳에서는 승리보다 패배를 경험한 적이 많았다.
물론 오늘 그들의 노래 속에 간절함이라는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은 착각일까.
전반 20분여만에 이미 한 골을 먹혀서 그런 것은 아닐까.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더불어 이제 아스날 팬들에게 경기 장소는 의미가 없었다.
원정석에 앉아 있는 팬들의 숫자가 적든지 많든지 상관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응원 열기를 매번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그들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지난 시즌부터 구단이 보여주는 경기력에 열광하고 있었다.
패배라는 결과표를 받아 드는 경기에서도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냈고, 아름다운 패스 플레이를 보여준다.
단 5분 만이라도 아름다운 축구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아르센 벵거의 철학이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건, 뒤쪽으로 돌아! 공간 났다!”
“바로 때려, 쿠아바!”
“나이스 오버래핑이야, 페레이라!”
덕분에 아스날은 선수들끼리도 당연히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프리미어리그 1위.
챔피언스리그 조 1위로 16강 진출.
FA컵 및 카라바오컵 다음 라운드 진출.
이번 시즌 그들이 참가하고 있는 대회에서 탈락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모든 경기에 임할 때 패배라는 단어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경기장 내에서 어떤 식으로 잘 풀어나갈지 소통하고 팀원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칭찬해준다.
“더 빠르게 패스 나갔어야지, 소우사! 공을 잡으면 우리가 어디를 가장 먼저 확인하기로 했지?”
“둠바, 라인 올려! 미드필더랑 공간 벌어지지 마!”
사이드 라인 밖에서는 벤치에 앉아 있지 않고 일어나서 경기장 내의 선수들에게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아르테타가 있었다.
처음 감독으로 부임했을 시절, 아스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그런 모습.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뒷받침하는 성적 자체가 엄청났으니까.